166화 : 타이탄스야!!!
기용찬 투수가 1회 초를 가볍게 세 타자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고, 1회 말이 시작됐다.
타석에 선 1번 타자 김유빈.
그는 평소보다 몸이 가벼웠다.
신기록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동산 보육원 아이들이 보러와서?
물론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이길 수만 있다면 말이지.’
상대 투수가 포수의 송구를 받아 송진 가루가 묻은 손으로 공을 꽉 쥐는 걸 주시하다가 힐끔 응원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김진만과 김종호와 오전에 통화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유빈이 형! 오늘 꼭 홈런 쳐!]
[원장님이랑 애들이랑 응원할게!]
김유빈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오늘 내가 이긴다면 아이들이 더 환하게 웃겠지.’
소중한 가족에게 버려지고, 언제가 데리러 온다는 약속을 믿다 배신당하고, 세상에 나 혼자 밖에 없다는 외로움에 답답한···.
크나큰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다.
어린 시절 김유빈처럼···.
그래서···.
저 아이들이 웃을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이길 거야.’
그때 투수가 초구 와인드업했다.
날아오는 공.
공의 궤적이 이상하리만큼 느리게 보였다.
원래 초구는 휘두르지 않고 지켜보는데···.
‘이건···.’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따아아악!
배트로 공을 친 순간, 느낌이 왔다.
‘이건 달려야 해.’
곧바로 배트를 내려놓고 1루를 향해 달렸다.
[김유빈 초구 스윙! 쳤습니다! 쳤어요!]
[우중간을 가르며 쭉쭉 뻗는 공! 우익수 달립니다!]
[김유빈 선수 역시 빠르네요! 벌써 1루를 지나 2루로! 우익수 공을 잡고 송구···.]
[김유빈 선수! 2루를 지나 3루로! 이야~ 빠릅니다!]
[유격수 공을 받고 송구···. 하지만 김유빈 이미 3루 베이스를 밟았습니다!]
[김유빈 선수! 정말 빠릅니다! 1회 말! 타이탄스 첫 타석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네요!]
[말씀드리는 순간 타석에 2번 타자 오재근···.]
김유빈은 힐끔 윤형식 작전 코치를 쳐다봤다.
따로 사인이 오지는 않았다.
홈 스틸을 노리든, 안전하게 안타를 기다리든 재량껏 하라는 소리였다.
숨을 고르며 홈을 주시했다.
‘재근이가 오늘 컨디션이 좋댔는데···. 한 건 해주면···.’
그때 트리플스 투수가 와인드업했다.
초구, 가운데 낮은 공.
“볼!”
2구, 바깥쪽 낮은 코스.
“볼!”
3구도 역시 바깥쪽 낮은 코스.
“볼!”
투수의 안색이 나빠졌다.
유인구를 노리거나, 투수를 거르려는 게 아니고 제구력이 흔들려서 실투했기 때문이다.
김유빈은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그리고 네 번째 공···.
“볼!”
오재근이 1루로 출루했다.
무사 주자 1, 3루.
그것도 발이 빠른 김유빈과 오재근이다.
투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오재근이 리드 폭을 길게 벌리기 시작했다.
오재근이 이러는 건 트리플스에서 선수 생활을 한 덕분에 마운드에 오른 투수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 녀석은 발 빠른 주자가 출루하면 엄청 신경 쓰는 놈이니까. 제구가 더 흔들리겠지. 그리고 견제도 심해지고···.’
오재근의 예상대로였다.
[투수 또 1루 견제!]
[아~ 오재근 선수한테 놀아나고 있어요. 공은 홈으로 던져야죠. 계속 이러면 본인 페이스만 무너집니다.]
[투수 마음도 이해됩니다. 타석에 선 타자는 손재현이거든요. 자칫 잘못해서 장타라도 맞으면 발 빠른 두 주자가 단숨에 홈으로 들어올 수도 있거든요.]
[그렇다고 계속 이러면 안 되죠. 말씀드리는 순간, 투수 또 견제···. 아! 1루수 공을 놓쳤어요!]
[오재근, 김유빈 동시에 달립니다! 1루수 공을 잡았습니다!]
[바로 던져야죠! 1루수 뭘 망설여요!]
[1루수 홈으로 송구···!]
김유빈은 홈을 막아서는 포수를 보며 몸을 날렸다.
해드 퍼스트 슬라이딩.
위험할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동산 보육원 아이들에게 행복한 어린이날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이긴다!’
그리고···.
[김유빈 선수! 홈 스틸에 성공합니다!]
[트리플스 선수들 정신 차려야 해요. 김유빈 선수가 출루했을 때 수비 실책이 나오면 바로 실점으로 이어지거든요.]
[김유빈 선수 환하게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합니다. 타이탄스 팬들의 환호성이···.]
[자···. 타이탄스가 1점 앞서가며 무사 주자 2루, 타석에는 3번 타자 손재현 선수. 트리플스 이 위기를 어떻게···.]
= = = = = = =
김진만과 김종호는 응원석에 앉아서 홈 스틸에 성공하는 김유빈을 보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했다.
두 아이는 얼마 전에 어린이 야구단에 입단했다.
한수가 야구 꿈나무들을 위해 설립한 ‘타이탄스 새싹 야구단’이었다.
국내 최고 시설과 뛰어난 지도자들로 이뤄진 야구단인데,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타이탄스 장학생 제도’의 혜택을 받아서 무상으로 야구를 배울 수 있다.
덕분에 김진만과 김종호는 야구에 더 큰 흥미를 붙였고, 야구 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래서 둘 다 김유빈처럼 멋진 선수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
‘나도 나중에 타이탄스 선수가 될 거야!’
‘열심히 훈련해서 유빈이 형처럼 멋진 선수가 되자!’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보육원 원장이 물었다.
“유빈이 참 멋지다. 그렇지?”
“네! 타이탄스가 이겼으면 좋겠어요!”
“저도요! 그리고 전 형처럼 멋진 선수가 될 거예요!”
“저도요! 제가 더 멋진 선수가 될래요!”
“내가 더 멋진 선수가 될 거거든?”
“아닌데? 내가 더 멋지거든!”
보육원 원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둘 다 멋진 선수가 될 거야. 엄마가 응원할게.”
“네!”
“네!”
그때였다.
-따아아아악!
3번 타자 손재현이 친 공이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쭉쭉 뻗어갔다.
그리고 공이 펜스를 넘어간 순간,
-와아아아아!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김진만과 김종호를 비롯한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며 환호했다.
“우와! 홈런이다!”
“와아! 대박!”
보육원 원장은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 = = = = = =
요즘 야구팬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돌고 있었다.
‘타이탄스가 먼저 승기를 잡으면 역전은 불가능하다.’
괜한 말이 아니고, 타이탄스가 초반에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이변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이탄스를 상대할 때 1회 공격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타이탄스는 1회 공격 때 점수를 올리기 시작하면 정말 폭풍처럼 휘몰아치니까.
바로, 지금처럼···.
[윤진호 쳤습니다! 쭉쭉 뻗는데···. 아~ 이거 2루타 감인데, 이소호 선수 발이 너무 느리네요.]
[윤진호 안전하게 1루에 멈춥니다.]
[급할 필요 없죠. 3점이나 앞서고 있거든요?]
[맞습니다. 무사 주자 1, 2루. 타석엔 장문원 선수가 섭니다.]
[장문원 선수, 지난 경기 때 무안타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죠? 오늘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는데요.]
[경기가 뜻대로 안 풀리는 날도 있는 법이죠.]
장문원은 타석에 서서 배트를 강하게 쥐었다.
동시에 오재근이 해준 팁을 떠올렸다.
‘결정구로 스트라이크 존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낮은 공을 주로 던진댔지.’
하지만 오늘은 제구가 좋지 못해서 볼이 될 확률이 높다고도 했다.
장문원은 생각했다.
‘볼보다는 재현이 형처럼 홈런을 치고 싶은데···.’
프런트 오피스에 있는 엄마한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 투수가 와인드업했다.
오재근의 말과 달리 바깥쪽 높은 코스를 노리고 공이 날아왔다.
하지만 스트라이크 존에서 너무도 벗어나서 배트를 휘두르진 않았다.
“볼!”
‘역시 제구가 안 좋네. 긴장을 많이 한 건가?’
그때 포수가 마운드로 송구하며 말했다.
“인마~ 문원아. 눈에 힘 풀어라. 친정팀 상대로 그라믄 안돼~! 사람이 정이 있어야지!”
‘정이라고···?’
장문원은 트리플스 2군 시절,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모두에게 무시당했다.
물론 여은포로 인해서 첫 단추를 잘못 채웠기 때문이었다.
‘여은포를 스카우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데려온 덜떨어진 놈.’
‘훈련 시켜봤자 시간만 아까운 가망성 없는 머저리.’
‘재능도 없으면서 친구한테 빌붙어서 구단에 들어온 낙하산.’
장문원은 억울했다.
입단하고 나서야 여은포가 그와 상의도 없이 멋대로 일을 벌였단 걸 알았으니까.
그런 식으로 구단에 입단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만두지 못했다.
비겁한 건 알지만···.
프로 선수의 꿈을 포기할 순 없었다.
‘노력하면 될 거야.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모두 인정해줄 거야.’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를 제대로 된 트리플스 선수로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수록 배트는 무거웠고, 투수가 던지는 공은 두려워졌다.
그렇게 2년을 버텼다.
정말 악몽 같은 나날이었다.
그런데 친정팀이니까 살살하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정말 어이가 없었다.
포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인마, 무시하냐? 이야~ 타이탄스 가더니 많이 컸네. 선배 말도 무시하고···.”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인마, 좀 잘 나간다고 그러지 마. 저번 경기 보니까. 슬슬 거품 빠진 거 같은데···.”
그때 심판이 말했다.
“포수, 적당히 해.”
“얘가 선배를 무시해서···.”
“포수!”
“네, 입 다물겠습니다!”
포수는 실실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장문원은 한숨을 내쉬며 배트를 강하게 쥐었다.
트래시 토크로 그의 평정심을 휘두르려는 개수작이란 건 알았지만, 몹시 기분이 안 좋았다.
‘친정팀···? 웃기지 마. 내 인생에 유일한 팀은···.’
그때 투수가 와인드업했다.
오재근이 말했던 낮은 코스를 노리고 날아오는 포심 패스트볼.
장문원은 배트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타이탄스야!!!”
-따아아악!
[장문원! 쳤습니다! 큽니다! 쭉쭉 뻗어가는 공!]
[좌익수 달립니다! 아! 아! 넘어갔습니다!]
[낮은 코스를 정확하게 노리고 쳤네요. 대단합니다. 장문원 선수!]
[트리플스 포수, 마스크를 벗고 허탈해하네요.]
[저런 모습 좋지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포수가 멘탈을 단단히 잡아야 하거든요.]
[맞습니다. 장문원 선수의 3점 홈런으로 타이탄스가 6점 차로 앞서가는데요.]
[올 시즌 타이탄스는 초반에 정말 무섭거든요. 트리플스는 어떻게든 이 흐름을 끊어야 하는데요.]
[말씀드리는 순간, 타석에 7번 타자 하민철 선수가···.]
= = = = = = =
VIP 관중석.
한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선수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저번 경기 때 져서 조금 걱정했는데···. 다들 잘해주네. 좋아, 좋아. 흐흐.’
그때 옆자리에 놔둔 포수 마스크 위로 느낌표가 나타났다.
‘뭐지?’
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포수 마스크 착용했다.
-띠링!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현재 보유한 포인트는 48,000 Point입니다.】
【현재 임무 28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문원 선수의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정보창 업그레이드를 시작합니다.】
한수는 눈을 크게 떴다.
‘업그레이드?!’
곧바로 장문원을 정보창을 확인했다.
그 순간,
-띠링!
【장문원 선수의 재능이 94%에서 95%로 오릅니다.】
【장문원 선수가 Platinum 등급에서 Diamond 등급으로 진화합니다.】
【장문원 선수가 보유한 특기들이 업그레이드···.】
【장문원 선수의 장비 슬롯이···.】
한수는 알림창을 보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기용찬, 장문원, 홍진철 중에 두 명만 자력으로 Diamond 등급으로 진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대박···!’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최초로 Diamond 등급으로 진화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1% 재능 수치 상승권’이 지급됩니다.】
“오오!”
옆에 앉아 있던 강덕수가 움찔하며 물었다.
“왜, 왜 그러세요?”
“좋아서 그래. 좋아서.”
강덕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팀이 이기고 있으니까 그러려니 했다.
한수는 씨익 웃으며 1% 재능 수치 상승권을 기용찬에게 사용했다.
-띠링!
【기용찬 선수의 재능이 94%에서 95%로 오릅니다.】
【기용찬 선수가 Platinum 등급에서 Diamond 등급으로···.】
【기용찬 선수가 보유한 특기들이···.】
【기용찬 선수의 장비 슬롯···.】
‘좋았어! 이제 임무 28을 완료한 다음에 홍 선수를 다이아몬드 등급으로 업그레이드시키면 되겠네!’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벗고 맥주를 원샷했다.
“크으~! 좋다! 좋아!”
강덕수가 그의 잔을 다시 채워주며 말했다.
“구단주님, 오늘 경기는 타이탄스가 무난하게 이길 거 같아요.”
“야구는 9회 말 투아웃까지 모르는 거야.”
“에이~ 그래도 설마 지겠어요?”
“흐흐, 설레발치지 말고 경기나 보자.”
“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날 경기에선 이변이 없었다.
타이탄스는 1회 말에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았고, 장문원의 연타석 홈런에 힘입어···.
【신영 타이탄스 14 : 0 엔젤 트리플스】
···압도적인 점수 차로 승리했다.
전문가들은 타이탄스의 경기력을 극찬했다.
모두들 타이탄스가 다시 연승행진을 이어갈 거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