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 드디어 올스타전이 시작됐다.
올스타전은 팬들과 선수 투표로 뽑은 12명의 선수 말고도 감독 추천을 받은 13명의 선수가 더 출전한다.
작년 정규시즌 성적이 가장 좋았던 팀의 감독이 맡는다.
드림 팀은 작년 1위였던 스페이스 강원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나눔 팀은 원래는 작년 3위였던 티라노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야 하지만, 사정으로 인해서 작년 5위였던 빌런스 감독이 맡았다.
보통 올스타팀 감독은 본인 팀을 선수들을 많이 뽑고, 베스트 12에 많이 속한 팀 선수들을 뽑지 않는다.
그래서 나눔 팀 감독은 재규어스 선수들을 1명도 뽑지 않고, 빌런스 4명, 벌처스 3명, 티라노스 3명, 트리플스 3명을 추천했다.
반면에 드림 팀 강원식 감독은 타이탄스 5명, 스페이스 2명, 그리즐리스 2명, 위닝스 2명, 드래곤스 2명을 추천했다.
덕분에 드림 팀은 타이탄스 선수가 17명이나 출전하게 됐다.
강원식 감독이 추천한 타이탄스 선수 5명은 다음과 같았다.
【투수: 홍진철】
【투수: 기용찬】
【투수: 장은수】
【투수: 전예준】
【외야수: 최민준】
백업 외야수인 최민준을 제외하고 전원 타이탄스 주전 선수였다.
특히, 홍진철과 기용찬은 15승, 14승을 기록한 초신성이었고, 장은수도 출전 경기가 부족해서 그렇지 7승 1패를 기록하며 놀라운 활약을 펼치는 투수였다.
강원식 감독이 이렇게 선수들을 추천한 건, 타이탄스 주전 선수들과 친해지라는 프런트의 지시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눈부신 재능을 보유한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를 펼쳐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탄스 팬들은 타이탄스 선수들이 많이 출전하니 뿌듯하기도 했지만, 스페이스의 생각을 짐작이라도 한 듯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스페이스가 우리 애들 노리는 거 아님?
└스페이스 개XX야! 진철이는 안 돼!
└마! 용찬이한테 수작 부리면 죽는다!
└외계인 XX들! 개수작 부리면 엎어버린다!
└타이탄스 프런트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애들 간수 제대로 안 하면 확!
심지어는 선수들 개인 SNS에 다른 팀으로 가면 안 된다고 호소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올해 타이탄스 1군 선수들의 활약은 정말 엄청나니까 말이다.
몇몇 선수들은 팬들의 호소 글이 너무 많아서, SNS를 잠깐 닫아두기도 했다.
= = = = = = =
잠실 구장, 드림팀 라커룸.
염철수는 여은포가 휴대폰을 잡고 뭔가를 열심히 하는 걸 보며 물었다.
“아까부터 뭐 하세요?”
“팬들한테 답글. 형님이 워~ 낙 인기가 많아서 말이야. 흐흐.”
“오~! 뭔가 멋진 거 같아요.”
“그럼 너도 SNS 시작해.”
“아···. SNS는 조금 익숙하지 않아서···.”
여은포는 혀를 차며 말했다.
“인마, 매일 훈련한다고 실력이 느냐? 노는 거도 훈련이야. SNS도 하고! 게임도 하고! 술도 좀 마시고! 어? 한 번뿐인 인생인데 즐겨야지!”
그 말을 들은 주변의 다른 선수들이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지만, 나서지는 않았다.
다른 선수가 염철수한테 저런 소리를 했다면 뭐라고 했겠지만···.
여은포는 현재 1승 25세이브를 기록하며 타이탄스의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한 선수다.
이 페이스로 간다면 단일 시즌 최고 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울 게 분명했다.
염철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저는 훈련하는 게 재밌어서···.”
여은포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짜 미쳤다. 미쳤어. 살다, 살다 훈련이 즐겁다는 놈은 처음이다. 죽을 둥 살 둥 해봐야 너만 피곤해. 적당히 해. 적당히!”
한수가 들었으면 여은포의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놓겠다고 할 망언이었다.
염철수는 별다른 대답을 못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때 안종렬이 다가오더니 인상을 쓰며 말했다.
“마! 철수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주둥이 다물어! 주둥이!”
“뭐가 이상한 소리예요? 후배 걱정돼서 조언하는 건데···.”
“조언은 무슨···. 그냥 SNS나 해!”
여은포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저 형은 맨날 나한테만···.”
“뭐야!?”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무 말도.”
여은포는 그렇게 소리치더니 라커룸 구석으로 가서 다시 SNS에 집중했다.
안종렬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찬 뒤, 염철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놈 말 신경 쓰지 마. SNS 안 해도 돼. 나도 작년부터 계정 다 지웠어. 히딩크 감독도 그랬잖냐?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퍼거슨 감독이 한 말 아닌가?’
하지만 안종렬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차마 태클을 걸진 못하고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조언 고맙습니다.”
“여은포 저놈 저거 재능 믿고 까부는데, 저러다 훅 가. 독고준 선배가 잘나갈 때 딱 저랬거든. 이십 대 중반쯤 되니까 구위가 반 토막 나더라, 반 토막! 그러니까 잘나갈 때 더 열심히 해야 해. 알았지?”
“네.”
“그리고 술은 웬만하면 마시지 마. 특히 시즌 중엔 절대! 네버!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러자 감독 추천으로 드림팀에 합류한 스페이스 최적 선수가 껄껄 웃으며 다가오더니 말했다.
“이야~ 우리 종렬이가 후배한테 조언도 하고···. 멋지다! 멋져!”
“선배님, 멋지긴요···. 하하.”
“놀리는 거 아냐.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철수야, 종렬이 말 잘 새겨들어.”
염철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안종렬과 최적은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다른 쪽으로 가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염철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생각했다.
‘SNS나 게임 같은 건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여은포가 했던 말 중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
[매일 훈련한다고 실력이 느냐? 노는 거도 훈련이야.]
확실히 예전에 훈련할 때처럼 개운하지 않고 정체된 기분이 들었다.
구속도 더 오르지 않고, 전체적으로 조금 답답했다.
염철수는 팔짱을 끼며 생각했다.
‘은포 형 말대로 올스타 브레이크 때는 며칠만 쉬어볼까? 기왕이면 엄마랑 함께 여행을 가는 것도 좋겠네. 엄마도 휴가를 쓰실 수 있으려나···.’
경기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어버이날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랑 함께 여행을 간 적이 한 번도 없네.’
염철수는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 정말 못났네. 앞으로 엄마한테 더 신경 쓰자.”
그때 라커룸을 강원식 감독이 들어오더니 말했다.
“자, 모두 경기 준비됐지?”
선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큰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강원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염철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강원식은 자상한 눈빛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흠, 무슨 일 있거나 고민 있으면 말해. 알겠지?”
염철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강원식은 손을 뻗어 염철수의 조심스럽게 어깨를 토닥였다.
그런 강원식의 모습을 본 안종렬은 옆에 있던 최적에게 속삭였다.
“강 감독님, 눈에서 하트 나오겠어요. 너무 노골적이시네···.”
“우리 스카우트 팀장님이 철수 데려오자고 할 때도 감독님이 기대했었거든. 잘만 다듬으면 좋은 선수 하나 나올 거 같다고···. 그런데 좋은 선수 정도가 아니고, 완전 괴물이니···. 아쉬워서 저러시지.”
최적의 말대로 신성 스페이스는 염철수를 놓친 걸 무척 아쉬워하고 있었다.
특히, 강원식 감독은 스페이스 임정태 단장한테 염철수를 트레이드로 데려올 수 없겠냐고 몇 번이나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타이탄스는 전부 거절했다.
한 시즌에 퍼펙트게임과 노히트노런을 달성하고 17연승을 이어가고 있는 투수를 트레이드하는 건 미친 짓이니까 말이다.
안종렬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아쉬워도 철수는 다른 팀 안 갈 겁니다. 쟤 타이탄스 골수팬인데다가, 구단주님 빠돌이거든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에이~ 그럴 일 없어요. 강 감독님께 꿈 깨시라고 해주세요. 우리 구단주님이 철수를 놔주실 분이 아니거든요. 흐흐.”
“음···.”
최적도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한수의 소문을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최적은 생각했다.
‘종렬이 말대로 철수를 데려오는 건 불가능할지도···.’
그때 강원식 감독이 말했다.
“자~ 그럼, 출전선수를 호명한다. 투수들은 1이닝 씩만 던질 거고···. 1회는 염철수···.”
= = = = = = =
잠실 구장, VIP 관중석.
한수는 자리에 앉아 오늘의 라인업을 확인하고 있었다.
【올스타전 드림팀 라인업】
선발투수 : 염철수(Diamond 등급)
1번 타자 : 김유빈(Platinum 등급, 좌익수)
2번 타자 : 오재근(Platinum 등급, 중견수)
3번 타자 : 손재현(Platinum 등급, 3루수)
4번 타자 : 최적(Gold 등급, 지명타자)
5번 타자 : 윤진호(Diamond 등급, 2루수)
6번 타자 : 장문원(Diamond 등급, 우익수)
7번 타자 : 하민철(Platinum 등급, 포수)
8번 타자 : 김효철(Gold 등급, 유격수)
9번 타자 : 안종렬(Gold 등급, 1루수)
선발투수는 염철수로 1이닝을 던지고 다음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와서 또 1이닝을 던지는 식으로 해서 총 9명의 투수가 출전한다.
그 외에는 4번 타자로 스페이스의 최적 선수가 출전한 거 말고는 전부 타이탄스 선수들이다.
한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강원식 이 인간 우리 선수들만 굴릴 셈인가?”
그러자 옆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던 강덕수가 말했다.
“그게 아니고 타이탄스 선수들이 워낙 뛰어나니까 한번 써보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까요?”
“쓰긴 뭘 써. 우리 선수들이 물건이냐?”
“아···. 죄송합니다. 실언을···.”
한수는 혀를 차며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대형 스크린에 드림팀 더그아웃의 모습이 보였다.
거기엔 강원식 감독이 염철수한테 어깨동무를 하고 껄껄 웃으며 뭔가를 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수는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저 인간, 지금 염 선수한테 개수작 부리는 거지?”
“그냥 작전 설명하는 거 아닐까요?”
“인마! 올스타전에 뭔 작전이야! 어차피 1회만 던지고 내려오잖아!”
“그, 그건 그렇죠.”
“신성 스페이스 저 자식들···. 우리 선수들을 5명이나 감독 추천할 때부터 알아봤어.”
강덕수는 한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보고 어떻게든 분위기를 좋게 바꾸기 위해 캔맥주를 꺼내며 말했다.
“저, 구단주님, 맥주 한잔···.”
“지금 맥주가 중요한 게 아니고···. 덕수야, 프런트에 연락해서 오늘 올스타전에 출전한 선수들 전부 특별 관리 들어가라고 해.”
“특별 관리요? 그게 뭡니까?”
“다른 팀에 뺏기지 않게 관리하라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양팀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나왔고, 관중석에서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드디어 올스타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