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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70화 (170/187)

170화 : 김칫국 말고 술이나 마시죠.

타이탄스 1군 선수들이 탄 버스가 도착한 곳은 서울 근교에 있는 유명한 한우갈비 전문점이었다.

여은포는 버스가 주차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투덜거렸다.

“어우~ 그냥 가까운 식당으로 가지.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장문원이 말했다.

“여기 엄청 맛집이야. 보통 먹으려면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데···.”

“한 달? 겨우 한우갈비가? 금가루라도 뿌렸대?”

“한우갈비 말고도 다른 요리들도 맛있대. 구단주님이 우리 회식이라고 신경 쓰신 거 같아.”

여은포는 코웃음을 치더니 버스 밖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흥, 신경은 무슨···.”

장문원은 한수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여은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지나가던 안종렬이 장문원을 불렀다.

“어이, MVP!”

“MVP는요···. 그,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안종렬은 씨익 웃으며 그의 옆자리에 앉더니 말했다.

“뭘 그렇게 쑥스러워해. 3연타석 홈런이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어깨 힘 팍! 주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안 해! 진호 형님 봐라. 홈런 1위라고 당당하게 다니시잖아.”

“하하···.”

‘진호 선배님은 원래 저렇게 다니셨던 거 같은데···.’

“근데 홈런 레이스 준우승이랑 올스타전 MVP까지 차지한 분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두워? 뭔 일 있어?”

“아···. 별거 아닙니다.”

“에이~ 별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형한테 말해봐. 혼자 속 쌓아두면 병 돼! 병!”

“······.”

장문원은 말해도 되나 고민하다가 안종렬은 여은포랑 친하니까 말해도 괜찮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은포가 구단주님을 너무 싫어하는 거 같아서요. 지난번에 진철이랑 다툰 뒤로 대놓고 티를 내진 않지만···.”

“음···.”

안종렬은 여은포가 왜 한수를 싫어하는지 알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 이유를 정확히 몰랐다.

그래서 구단주를 무척 존경하는 선수 중에는 여은포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홍진철이 여은포와 사이가 나빴다.

그리고 크게 내색은 하지 않지만, 선배들도 여은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구단주를 싫어하는 거뿐만 아니라, 재능만 믿고 야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안종렬이 커버쳐주지 않았으면 이소호 급의 선배가 나서서 군기를 잡았을 수도 있었다.

안종렬은 생각했다.

‘확실히 은포를 이대로 놔둘 순 없어. 하지만 지금 당장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랬다간 은포 성격에 더 엇나갈 수도 있단 말이지.’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는 여은포가 최혜선을 좋아하고, 최혜선이 구단주를 좋아하는···.

‘치정 문제···.’

쉽사리 끼어들 수 없고, 괜히 끼어들었다가 피 볼 수 있는 문제다.

김유빈의 전여친인 손미나 치어리더한테 부탁해서 최혜선과 여은포의 식사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최혜선이 거절해서 실패했다.

안종렬은 팔짱을 끼며 생각했다.

‘음···. 회식 때 구단주님께 슬쩍 말씀드려볼까? 고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으니까.’

그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문제는 너무 신경 쓰지 마. 은포가 당장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잖아. 일단 나도 방법을 찾아볼게.”

“네···.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괜찮아.”

그때 버스 출입문 쪽에서 박종구가 큰소리로,

“종렬이 형! 안 나와?”

“갈게! 문원아, 가자.”

“네!”

그렇게 두 사람은 식당으로 향했다.

= = = = = = =

한수는 선수들보다 회식 장소에 늦게 도착했다.

차가 막혀서 늦은 게 아니고, 일부러 늦게 출발했기 때문이다.

모두 선수들을 위해서였다.

‘회식 장소에 늦게 가서 일찍 빠져주는 게 선수들한테도 편하겠지.’

한수는 차에서 내리며 강덕수에게 물었다.

“회식 끝나면 선수들이랑 코치진들 선물 잘 챙겨줘.”

“경영 지원팀 직원들한테 당부해두겠습니다.”

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당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페르난도 킴 감독과 장보형 코치가 한수에게 다가오며 인사를 했다.

“구단주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실 텐데···.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잠깐 들른 겁니다. 인사만 하고 갈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요.”

페르난도 킴과 장보형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 있다 가시지···.”

“맞습니다, 구단주님. 선수들도 구단주님 덕담을 듣고 싶을 텐데···.”

한수는 두 사람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마음만 받죠. 내일도 일정이 있어서요. 일단 들어갑시다.”

“네.”

회식 장소로 들어가서 특별한 건 없었다.

선수들과 코치진이 일어나서 우렁차게 인사를 했고, 한수는 전반기 리그 1위를 한 것에 대한 축하 말을 간단히 하고 페르난도 킴과 코치진들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테이블에는 박동준 코치, 페르난도 킴, 장보형 코치가 함께했다.

박동준은 한수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구단주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할 거까진 없어요. 그보다 박 코치, 요즘 안색이 좋네요. 기침도 안 하는 거 같고.”

박동준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하, 김 영양사님이 여러모로 챙겨주셔서···.”

김 영양사는 바로 염철수의 모친 김명숙이다.

정보창에 프런트의 황충으로 비유되는데, 상대의 입맛을 백발백중으로 저격하는 요리 실력을 보유했다.

한수는 박동준의 정보창을 통해서 그가 편식이 너무 심하단 걸 알고 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김명숙에게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덕분에 박동준은 요즘 건강이 많이 회복됐고, 늘 달고 살던 기침도 줄어들었다.

한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래요? 그거 다행이네요. 박 코치, 김 영양사님께 선물이라도 해드려야겠습니다.”

“하하, 그, 그렇죠···.”

한수는 박동준이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자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반응이 조금···.’

그때 장보형 코치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박 코치가 얼마 전에 김 영양사님께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

“자, 장 코치님···.”

한수는 처음에는 꽃다발을 선물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별로 비싸지도 않고, 시들면 쓰레기가 되는 걸 왜 선물한 거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박동준의 반응을 보고 눈을 깜박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박 코치, 김 영양사님 좋아합니까?”

박동준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 무슨···!”

그러자 옆에 있던 페르난도 킴 감독이 웃으며,

“역시 구단주님이십니다. 정확한 판단이십니다.”

“페, 페르난도! 너 헛소리 할래!?”

한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박 코치가 공석에서 페르난도 감독한테 반말까지 하는 거 보니 진짜인가 보네.”

“아, 아니, 그게···.”

“에이~ 애들도 아니고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요. 가만있자···. 박 코치가 마흔하나고 김 영양사님이 몇 살이었죠?”

그러자 장보형 코치가 말했다.

“마흔다섯입니다. 마흔다섯!”

“이야~ 사주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네. 좋네. 좋아.”

“뭐, 뭐가 좋습니까! 그,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너무 부정하니까 더 진짜 같은데···.”

“아, 아니···.”

한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소주잔을 들며,

“뭐, 놀리는 건 여기까지 하고···. 박 코치, 제가 조언 두 가지만 하죠.”

“조언이요···?”

“우선 첫 번째 조언은 박 코치를 위해 하는 겁니다. 좋아하는 분이 있으면 너무 숙맥처럼 굴지 말고 남자답게 밀어 붙어요. 그러다 딴 사람한테 뺏기고 후회합니다.”

“······.”

박동준은 이번에는 딱히 부정하지 않고 조금 복잡한 눈빛을 했다.

한수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소주를 마신 뒤 재차 입을 열었다.

“두 번째는 팀을 위해서 하는 조언입니다. 염 선수 컨디션에 문제 생기게 하지 마세요. 김 영양사님과 만날 거면 철저히 비밀로 하든가 아니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아요.”

“······.”

“혹은, 염 선수한테 들켰을 때 어떻게 할지 대비를 하고 만나던가요. 분석하고 예측하는 거 잘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페르난도 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박 코치는 야구 말고는 어려워해서요.”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어쨌든 김 영양사님은 염 선수한테 하나뿐인 가족입니다. 제 말뜻···. 알겠죠?”

박동준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습니다.”

“진지하게 말하기 했지만···. 어디까지나 조언입니다. 조언. 무엇보다···. 김 영양사님도 박 코치를 좋아해야 성립되는 거니까.”

“그, 그렇죠.”

한수는 씨익 웃더니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러니까 김칫국 말고 술이나 마시죠.”

= = = = = = =

테이블에서 코치진들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한수는 옆에 놔뒀던 포수 마스크에 느낌표가 나타난 걸 보고 생각했다.

‘임무 28을 드디어 달성했나 보네.’

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아이고, 좀 더 있다 가세요.”

“맞습니다. 곧 있으면 경품 이벤트도 한다고···.”

“아직 술도 많이 남았습니다!”

“고기도 이렇게 많은데···.”

코치진들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진심인 사람은 몇 없었다.

한수를 존경하지만 동시에 한수 앞에서 실수라도 했다가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수는 그걸 알고 피식 웃으며,

“내일 일정이 있어서요. 그럼.”

페르난도 킴과 장보형이 배웅을 하려고 했지만, 한수는 괜찮다며 사양했다.

선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수에게 인사를 했다.

한수는 손을 흔들어준 뒤 식당 밖으로 나갔다.

술을 마셔서 조금 더웠는데, 밖에 나오니까 조금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7월인데도 밤에는 시원한 편이네···.’

그때 강덕수가 다가오며 말했다.

“차 대기시켜 두겠습니다.”

“응, 난 바람 좀 쐬고 갈게.”

“네!”

한수는 바람을 쐬면서 천천히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생각했다.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선수들 컨디션 관리에 신경 쓰고, 1군 엔트리에 추가할 선수 5명도 알아봐야지. 한민석 카드로 새로운 보석을 트레이드해야 하는데···. 그리고 염 선수도 뭔가 고민이 있는 거 같던데···. 혹시 박 코치랑 김 영양사 문제는 아니겠지? 음···. 이건 따로 얘기를 해봐야겠어. 내일 식사라도 하자고 할까?’

그때 식당에서 안종렬이 나오더니 한수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구단주님.”

“안 선수, 무슨 일입니까?”

“그게···. 조금 의논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말해보세요.”

“사실···.”

안종렬은 여은포에 대한 걸 한수에게 털어놨다.

야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은 언급하지 않았다.

프로는 성적으로 본인을 증명하는데, 여은포는 전반기 세이브 1위이자 타이탄스 수호신으로 불리고 있다.

뭐라고 할 건 없었다.

하지만 한수에 대한 태도는 싫어하는 선수가 많고, 팀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언급했다.

왜냐면 이걸 해결할 열쇠는 한수가 쥐고 있으니까 말이다.

한수는 안종렬의 얘기를 듣고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여은포와 최혜선 문제도 질질 끌지 말고 해결하긴 해야지. 후반기부터 제대로 활용하려면···.’

방법은 세 가지가 떠올랐다.

비겁한 방법, 아픈 방법, 나쁜 방법.

한수는 잠시 고민한 뒤 안종렬에게 말했다.

“여은포 선수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안 선수는 들어가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한수는 차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여은포···.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야.”

‘일단 어떤 방법을 쓸지는 좀 더 고민하고···.’

차에 탄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착용하며 생각했다.

‘우선 임무 보상을 확인해볼까?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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