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 저 선수를 어떻게 데려올까?
다음 날 저녁.
한수는 어머니가 초대한 저녁 식사 때문에 직접 차를 운전해서 한남동 본가로 향했다.
강덕수는 ‘위치 확인 주문서’로 찾아낸 트리플스 2군에 소속된 허지웅 선수를 조사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뒷조사를 지시한 건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허지웅의 정보창이 등록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트리플스가 타이탄스의 트레이드 요청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준비를 철저히 하려는 거다.
트리플스를 떠나 타이탄스로 온 장문원, 여은포, 양기주, 오재근이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친 덕분에 팬들한테 엄청나게 까인 데다가 사방에서 ‘탈G는 과학’이라며 조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트리플스 이기석 단장은···.
‘내가 또 타이탄스랑 트레이드하면 이기석이 아니고 개기석이다! 개기석!’
···이라고까지 했다.
그렇지만 한수는 허지웅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덕수가 설명한 대로면 허저에 비유되는 허지웅은 Diamond 등급이 분명해.’
“반드시 타이탄스로 데리고 오마. 흐흐.”
그때 한수가 운전하던 차는 본가에 도착했다.
한수는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저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긴 어째 변한 게 하나도 없네.”
‘하긴, 이희수 그 녀석 성격에 할배의 흔적을 하나도 더 남기려고 애썼겠지.’
이태백 회장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이희수를 무척 애틋하게 생각하며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웠다.
그래서 이희수도 이태백을 무척 따랐고, 이태백이 숨을 거뒀을 때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러나 이태백과 달리 한수는 여동생 이희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둘은 성격이 맞지 않았다.
한수는 모든 걸 의심하고 모략을 세우는 걸 즐기며 이빨을 보이는 적이 있으면 다시는 덤비지 못하게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성격이다.
반면에 여동생 이희수는 한수의 표현을 빌리면···.
‘대가리에 꽃밭이 가득한 녀석.’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이유가 있을 거고, 상대가 나를 아프게 해도 내가 조금 참고 말자는 성격이다.
한수는 여동생한테 그렇게 살다가 호구 된다며 여러 차례 교육했지만 소용없었고,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만 깨닫게 됐다.
하여튼 이런 이유로 여동생만 보면 복장이 터져서 뭘 하든 신경을 쓰지 않게 됐다.
한수는 저택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저녁만 빨리 먹고 나와야지.”
하지만 한수의 바람과 달리 저녁만 먹고 바로 나올 수는 없었다.
왜냐면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조용하던 오정숙이 식사가 끝나자마자 한수에게 대뜸 당혹스러운 말을 했기 때문이다.
“타이탄스에서 손 떼.”
“거참, 소화 안 되게 왜 이래? 그 얘기 좀 그만해.”
“완전히 손 떼라는 게 아니야. 너 구단주 겸 단장이라며? 구단주만 해. 구단주는 어차피 다른 계열사 맡아도···.”
“그만. 그만. 거기까지.”
“······.”
“하아···. 이러니까 내가 본가에 오기 싫은 거야. 분명히 말하는데, 싫어. 알겠어?”
그러자 이희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빠, 엄마도 생각이 있어서···.”
“너까지 잔소리하냐? 입 다물어.”
“하지만···.”
“······.”
이희수는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한수가 눈을 부라리자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오정숙이 휠체어를 밀어 한수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한수야, 구단주로서 충분히 했잖아. 엄마도 뉴스 봐서 알아. 타이탄스가 통합 우승할 확률이 높다며. 그러니까 서울로 올라와.”
한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서울 오면? 뭐, 내 자리라도 봐 놨어?”
“네가 패션 사장이 될 거야.”
“내가? 하! 그럼, 이재수는?”
“재수는 신영 디펜스 부사장으로 가게 될 거야.”
신영 그룹의 뿌리인 신영 디펜스.
디펜스의 사장은 연로해서 퇴임이 멀지 않았다.
그런데 이창호 부회장의 아들인 이재수가 부사장으로 들어간다는 건 뒤이어서 사장에 오른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한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재수랑 무슨 작당 모의를 하나 했더니 이거였어? 디펜스, 패션으로 작은아버지 쳐내려고? 근데 좀 부족하지 않나···. 아~ 혹시 고모랑도 손잡았어? 근데 고모는 좀 그렇지 않아?”
“한수야, 일단 내 말을···.”
“아~ 됐어. 듣고 싶지 않아. 늘 말하지만, 난 회장 자리 관심 없어. 이재수랑 지지고 볶든 뭘 하든 알아서 해.”
“······.”
“우승 확률이 높으니까 손 떼라고? 엄마, 야구는 9회 말 투아웃까지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구단에서 손 떼는 일은 절대 없어. 네버! 알겠어?”
“······.”
오정숙이 미간을 찌푸리자 한수는 생각했다.
‘엄마가 바라는 건 내가 회장 오르는 게 아니라, 작은아버지한테 복수하길 원하는 거지.’
하지만···.
‘작은아버지한테 복수하는 게 맞는 걸까?’
여동생 이희수처럼 복수는 옳지 않다며 꽃밭 가득한 망상을 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작은아버지가 복수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엄마한테 이걸 말하면···.’
아직도 기억난다.
어린 시절 그에게 함께 죽자고 하던 오정숙.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기운을 차리더니 광기 어린 눈빛으로 작은아버지한테 복수해야 한다고 속삭이던···.
한수는 혀를 차며 악몽 같은 기억을 떨쳐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이희수가 움찔하며 물었다.
“오, 오빠···. 차, 차라도 마시고···.”
“됐어.”
한수는 오정숙을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향하며 말했다.
“밥 잘 먹었어. 바빠서 가볼게.”
“한수야!”
“오빠!”
오정숙과 이희수가 그를 불렀지만, 한수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저택 밖으로 나가서 차에 탔다.
그는 시동을 걸며 중얼거렸다.
“작은아버지랑 얘기해봐야 하나···.”
하지만 이창호가 복수의 대상이 아니란 건 심증뿐이다.
만약 이창호와 오정숙의 문제를 상의했는데, 그가 진짜 아버지를 죽였다면···.
“머리 아프게 하네. 구단에 신경 쓰기도 바쁜데···.”
한수는 혀를 차며 생각했다.
‘일단 덕수한테 아버지의 교통사고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조사해보라고 해야겠어. 분명 작은아버지가 엄마와 아버지한테 여행을 가라며 선물을···.’
그때 강덕수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한수는 ‘이놈 양반은 못 되겠네.’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구단주님, 강덕수입니다. 통화 가능하신가요?]
“말해.”
[우선 염철수 선수, 여은포 선수랑 약속을 잡았습니다. 구단주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각각 잡았는데, 둘 다 내일모레가 좋다고 해서 염철수 선수를 점심, 여은포 선수를 저녁으로 했습니다.]
“오케이. 잘했어.”
[그리고 트리플스 2군 허지웅에 대한 자료 조사 끝났습니다. 메일로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메일로 보내놔. 그리고 부모님의 교통사고에 대해서 조사 좀 해봐.”
[그건 이미···.]
“좀 더 파헤쳐보라는 거야. 사건과 연관된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알겠어?”
강덕수는 평소와 달리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면 한수 부모님의 교통사고에 대해선 몇 번이나 조사했다.
빙판길에서 차가 미끄러지며 발생한 사고이자, 어떤 흉계도 찾을 수 없는 재난이었다.
···더는 나올 게 없었다.
한수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강덕수는 생각했다.
‘사모님과 무슨 일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조사한다고 뭐가 더 나올진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은 다해봐야지.’
강덕수는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다시 조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아닙니다. 더 시키실 일 있으신가요?]
“없어. 더 보고할 거 있어?”
[없습니다.]
“오케이. 수고했어. 아~ 맞다. 내일까진 쉬어. 혼자 움직일게.”
[아닙니다. 제가···.]
“됐어. 쉬어. 그럼.”
그렇게 한수는 통화를 끝내고 차를 출발시켰다.
= = = = = = =
다음 날, 이천, 엔젤 챔피언스 파크 근처.
한수는 차에서 내려서 멀찍이 보이는 엔첼 챔피언스 파크 경기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챔피언스 파크···. 역시 거창한 이름이야. 우리 2군 구장도 이름을 바꿀까?”
한수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허지웅의 정보창을 얻기 위해서다.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이라, 며칠 간은 선수들도 훈련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허지웅은 쉬는 날이 없었다.
단순히 그가 노력파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한수는 프린트해둔 허지웅의 조사 자료를 확인했다.
【성명 : 허지웅】 【포지션 : 포수】
【생년월일 : 20XX년 02월 20일】
【출신학교 : 폭풍고등학교】
【투타 : 우투우타】
허지웅은 홍진철과 마찬가지로 폭풍 고등학교 출신의 포수였다.
포수로서 재능도 있었고, 프로 구단들도 눈여겨봤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경기 중 무릎이 크게 다치며 그의 야구 인생에 크나큰 시련이 찾아왔다.
포수는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는 자세를 취하느라 치질과 무릎 등 고질병을 앓는 포지션이다.
그런데 허지웅은 무릎 부상으로 인해서 쪼그리고 앉는 자세를 오랫동안 할 수 없게 됐다.
1년 넘게 재활 치료를 하며 자세도 교정했다.
하지만 바뀐 자세 때문인지 포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고, 무릎이 또 다칠까 봐 블로킹은 물론, 주자의 홈 스틸 수비도 어려워졌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포수란 포지션을 밀고 나갔다.
그리고 결국, 재작년에 트리플스 2군 육성 선수로 입단했다.
포수로서도 2군 백업 수준까지는 활약하게 됐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그는 더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배트컨트롤이라도 뛰어나면 모르겠지만···.
허지웅은 그렇지도 않았다.
고교 때까지는 3할을 쳤던 타자였지만, 재활 치료를 오래 하면서 감을 잃었기 때문일까?
그는 작년 퓨처스리그에서 1할 타율에 그쳤고, 홈런은 한 번도 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포수 자원이 귀하기 때문에 트리플스는 그를 버리지 못했다.
정 안 되면 불펜 포수로라도 활용 가능하니까 말이다.
한수는 허지웅의 자료를 차 안에 넣어두며 포수 마스크를 착용했다.
‘흠···. 포수는 이미 충분한데···. 추가 엔트리에 필요한 건 투수랑 내야 백업 정도···.’
그래도 그는 김유빈 때를 떠올리며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를 믿었다.
김유빈도 투수였는데, 타자로 전향했으니까 말이다.
그때 조사한 자료에 똑같은 모습을 한 거구의 남자가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한수는 눈을 반짝였다.
‘허지웅이다···!’
그 순간, 허지웅의 몸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졌다.
그리고···.
-띠링!
【허지웅】【Diamon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99%)
(타이탄스 코치진: 19%)
(타이탄스 프런트: 12%)
결론: 경기장의 허저입니다. 뛰어난 장타력을 보유한 선수로서 현재는 본인의 재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로 출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을 타격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중략)···
【포지션】
1순위: 내야수, 지명타자
2순위: 포수
【투타】
우투우타
【특기】
1. 놀라운 괴력(怪力)
2. 매처럼 매서운 선구안
3. 본능적 슬러거 [비활성화]
4. 호랑이처럼 달려 [비활성화]
···(중략)···
【호감도: + 10%】
한수는 그의 정보창을 보고 피식 웃었다.
‘1순위가 내야수랑 지명타자라···. 아주 좋아.’
그는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허지웅을 보며 중얼거렸다.
“자~ 그럼, 저 선수를 어떻게 데려올까?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