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74화 (174/187)

174화 : 재수 없네.

타이탄스 프런트 오피스, 회의실.

포수 허지웅을 내야 거포형 타자로 만들 거라는 말과 함께 트리플스에서 데려올 방법을 찾으라는 한수의 지시에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때 입사 3개월 차인 운영팀 부팀장 심연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허지웅이 누구길래 분위기가 이래?’

심연주는 뛰어난 인재답게 운영팀의 많은 업무를 파악했다.

하지만 그녀가 관심 있는 건 구단 운영이라는 커다란 숲이다.

그래서 1군 선수도 아닌, 무명의 2군 선수 하나까지 파악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녀는 고민에 잠긴 이소희, 고민수, 주현우를 살피며 생각했다.

‘일단 허지웅이 스타급 선수여서 어려운 건 아닌 거 같고···. 장문원이나 김유빈 같은 느낌인가? 뭐가 됐든 간에 트리플스랑은 트레이드가 쉽지 않겠지···.’

그때 옆자리에 앉은 공명량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볼펜을 잡고 이면지에 오늘 점심 메뉴는 뭐가 좋을지 끄적이고 있었다.

공명량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밥만 축내는 무능한 월급 루팡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니다.

워낙 바쁜 이소희나 2군 운영을 전담하고 있는 윤가희 대신 공명량에게 프런트 업무에 대해 배우면서 그 생각이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공명량은 양파처럼 까도 까도 끝이 없을 정도로 파악하기 힘든 별종이자,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천재였다.

그는 절 때 찾아서 일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수나 이소희가 내린 지시는 난이도에 상관없이 아주 쉽게 해결해낸다.

점심 메뉴를 뭐로 정할지 고르는 거보다 쉽게 말이다.

이 사람이 얼마 전까지 9급 공무원이었다는 게 놀랍고, 이런 인재를 찾아낸 한수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심연주는 나중에 구단을 창설한다면 공명량을 꼭 스카우트하고 싶었다.

어쨌든!

심연주는 허지웅을 데려올 방법을 찾으라는 한수의 지시에도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공명량을 보며 생각했다.

‘벌써 방법을 찾은 건가?’

심연주가 존경할 정도로 철두철미하고 뛰어난 이소희나 다른 건 모르겠고 머리 하나는 정말 똑똑한 주현우도 고심하고 있는 문제를···!?

‘이 사람이 뛰어난 건 알았지만···. 지시를 듣자마자 방법을 생각해낸다고?’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아직 야구에 대해 배운지 얼마 안 된 심연주도 질투가 날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놀라운 능력이다.

심연주는 공명량이 어떤 신출귀몰한 방법을 떠올린 건지 궁금했다.

그래서 공명량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요, 공 사원.”

“······?”

“트레이드 성공시킬 방법 찾은 거예요?”

“아뇨.”

“···네? 그럼···.”

‘왜 점심 메뉴나 끄적이고 있는 거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공명량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면지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열정 넘치는 분, 충성스러운 분, 욕심 많은 분···. 뛰어난 분들이 많은데 굳이 제가 왜 나섭니까?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가요. 회의가 길어지는 건 극혐입니다.”

“아, 네···.”

한 마디로 자기 머리 쓰기 귀찮다는 소리였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열의 없는 인간···.’

심연주는 다시 점심 메뉴 정하기에 몰두하는 공명량을 어이가 없었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한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심연주는 생각했다.

‘설마 우리 대화 들은 건가···?’

한수한테 허지웅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들켰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부끄러웠다.

호기롭게 타이탄스에 들어왔는데, 선수 이름 하나 모른다면···.

심연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엄청 작게 말했잖아. 분명 듣지 못했을 거야.’

그녀는 한수의 시선을 피해 자연스럽게 서류로 시선을 돌려 조그맣게 메모했다.

【모든 구단 선수 정보 외우기★★★】

‘이번 주 안에 전부 외우자!’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은 많지만, 한수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수는 귀가 무척 밝았고, 심연주와 공명량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다만, 한수는 그녀가 허지웅을 모르는 걸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심연주가 효율적인 프런트 운영에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한수가 관심을 보인 건 공명량이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열정 넘치는 건 이 팀장이고, 충성스러운 건 고 팀장···. 욕심 많은 건 주 팀장인가? 나는 돈 많고 잘생긴 놈인가?’

한수는 공명량을 쳐다봤다.

공명량은 본인이 반드시 해야 할 일 외에는 절대 스스로 나서지 않는다.

뭔가를 시키면 마지못해 능력을 보여주지만 자주 시키면 배 째라는 듯 멍청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한수는 싫은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 얄미운 놈이지.’

그래도 이소희의 말은 고분고분 따라서 다행이다.

한수는 피식 웃은 뒤,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는 심연주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심연주는···. 귀찮은 인간이지.’

틈만 나면 귀찮은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쓸모만 없었으면 무시했을 테지만, 99% 재능 수치를 보유한 인재답게 그녀는 운영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점차 타이탄스에 필요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좀 더 일을 많이 시켜야겠어. 쓸데없이 마주치는 일 없도록···.’

그는 그렇게 다짐한 뒤, 이소희, 고민수, 주현우를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슬슬 우리 팀장들이 생각을 정리할 때가 됐는데···. 어디 누가 먼저 입을 열려나? 열정이 넘치는 분? 욕심이 많은 분? 아니면···.’

한수는 생각에 잠긴 고민수 팀장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 = = = = =

스카우트팀 고민수 팀장은 고요한 회의실 분위기에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포수에 매진한 선수를 내야 거포형 타자로 만들 거라는 말에 무척 당황했다.

‘허지웅은 포수로서 잠재력이 나쁘지 않은데···. 무릎 재활만 제대로 하면 최소 1군 백업 정도는 될 수 있어. 그런데 굳이 내야수로 포지션 변경을 할 필요가 있을까?’

트리플스 이기혁 단장도 허지웅의 포수로서 잠재력을 보고 육성 선수로 입단시켰다.

물론 타격력에 크나큰 문제가 있을 줄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허지웅은 포지션 변경을 하기엔 아까운 인재였다.

하지만 한수의 주장에 반박할 순 없었다.

고민수가 한수에게 슈퍼카 수리비라는 약점이 잡혔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염철수를 발굴하고, 왼손잡이이던 김효철에게 오른손잡이 훈련을 지시하고 모두가 반대하던 유격수를 맡겨서 성공을 거두고, 투수로 활동하던 김유빈한테 배트를 잡게 하더니 이번 시즌 최고의 테이블세터로 만든 것 등등···!

한수가 이룩한 업적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수의 선택이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고민수가 도달한 결론은 이랬다.

‘구단주님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허지웅의 재능을 발견하신 거구나.’

그렇다면···.

‘허지웅을 데려올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트리플스 이기혁 단장과 동문이기는 하지만, ‘장문원 탈G 효과’로 인해 서먹한 사이가 됐다.

앞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친분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이기혁이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게 빤히 느껴졌다.

하지만 한수가 허지웅을 반드시 데려오고 싶어 한다면···.

‘···철판 깔고 찾아가 봐야 하나? 아냐, 그럼 쫓겨날지도 몰라. 일단 다른 선배를 통해서 우연을 가장하고 만나서 차근차근 친분을 쌓은 다음···. 음···. 선물은 뭐가 좋을까? 홍삼은 너무 흔하고···. 흑삼? 아니야, 먹는 거보다는 차라리 골프채 같은 걸···.’

이때 운영팀 이소희 팀장도 허지웅을 어떻게 데려올지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가 쓸만한 카드는···. 투수 한민석, 외야수 윤태철과 박상학 정도···. 현재 성적, 기량만 따지면 셋 다 허지웅보다 좋은 선수들이야. 본래라면 두 손 들고 환영을 할 테지만···.’

문제는 타이탄스가 허지웅을 달라고 하면, 트리플스는 절대 넘겨주지 않을 거다.

쓰레기 카드라고 생각하며 넘겼던 장문원이 어마어마한 기량을 펼쳐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허지웅을 받아오려면 한민석, 윤태철, 박상학을 전부 넘겨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이건 너무 손해 보는 거야. 더군다나 우리가 3대 1 트레이드를 제안하면 이기혁 단장은 허지웅이 그만큼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하고 더 넘기려 하지 않을 거야. 어쩌면 1군 주전급 선수를 요구할지도 몰라. 쉽지 않은데···.’

이소희는 한수를 쳐다봤다.

‘아마 이런 문제쯤은 다 파악하고 있겠지.’

그런데도 한수가 이런 난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라고 대뜸 통보한 건, 여기 모인 직원들을 골탕 먹이려는 게 아니라···.

‘여기 모인 사람들이 타이탄스가 손해를 보지 않고 허지웅을 데려올 방법을 찾아낼 거라고 확신한다는 거겠지.’

보통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소희는 그렇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아무것도 모르고 서울에 상경했던 스무 살 그녀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신뢰받는 게 무척 익숙하다.

국내 재계 서열 1위 신성 그룹.

그곳에서 어린 나이에 비서실장으로 활동하며 오너 일가인 차 씨 집안사람들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받았던 덕분이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상사의 신뢰에 부담은커녕, 감흥조차 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지금은 조금···.

“······.”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상한 생각을 털어낸 뒤, 다시 트레이드 방법에 대해 고심했다.

‘트리플스가 원하는 건 거포형 내야수···.’

작년에 구멍이 났던 투수진은 대충 봉합했더니, 이번에는 타자들이 물빠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한수는 포수 허지웅을 거포형 내야수로 변경하고 싶어 한다.

‘이걸 들키면 이기혁 단장은 절대 허지웅을 내주지 않을 거야. 이건 절대 비밀로 해야 해. 그리고 설계에 들어가야겠지.’

그녀는 이면지에 생각한 바를 적기 시작했다.

【1. 트리플스가 원하는 거포형 내야수.】

【2. 허지웅의 포지션 변경은 절대 비밀.】

【3. 우리가 포수를 원하는 걸로 하는 게 좋음.】

【4. 우리가 내밀 수 있는 카드는 투수와 외야수.】

이소희는 그렇게까지 적은 뒤 다시 생각에 잠겼다.

‘상대는 우리가 내민 카드를 싫어하지만, 우리는 원하는 카드가 있어. 그렇다면 상대가 원하는 카드를 줘야 하는 건데···.’

그 순간, 그녀는 눈을 반짝였다.

‘트리플스가 원하는 선수···! 그래, 그거야!’

그녀는 고민수에게 시선을 돌리며 뭔가를 묻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보다 한발 먼저 전략분석팀 주현우 팀장이 손을 들고 말했다.

“구단주님, 좋은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말해봐요.”

“네!”

이소희는 입을 다물고 주현우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설마 나랑 같은 방법을 떠올린 건가?’

그때 이소희와 주현우의 시선이 마주쳤다.

주현우는 그녀를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에 이소희는 눈가를 움찔했다.

주현우의 미소가 조금···.

‘···재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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