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76화 (176/187)

176화 : 구단주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트리플스 프런트, 단장실.

올스타 브레이크가 시작되고, 트리플스 이기혁 단장은 정신없이 바빴다.

후반기 추가 엔트리에 거포형 내야 타자를 넣어야 하는데, 현재 2군에 마땅한 인재가 없었다.

그래서 트레이드를 위해 다른 팀 선수들 정보를 파악하고, 단장들과 간을 보고 있었다.

현재 원하는 선수는 두 명이다.

【김성겸(신성 스페이스 2군, 내야수)】

【이삼천(자람 빌런스 2군, 내야수)】

김성겸은 현재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다.

홈런 기록은 7위지만, 장타력이 나쁜 건 아니다.

이삼천은 퓨처스리그에서 홈런 3위를 기록하고, 타율도 3할대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다.

수비 능력은 둘 다 준수하다.

이기혁은 두 선수의 자료를 보면서 생각했다.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데려와야 하는데···.’

하지만 신성 스페이스는 김성겸을 내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스페이스 1군은 초호화 군단이지만, 신생 구단답게 미래를 책임질 신인이 부족하다.

작년 한국 시리즈 MVP였던 노장 김강준만 해도 언제 은퇴할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잠재력 높은 김성겸은 스페이스의 미래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이삼천인데···.’

자람 빌런스는 트레이드에는 긍정적이다.

그들은 내야수진이 워낙 탄탄해서 이삼천을 내주고 필요한 포지션의 선수를 얻으면 되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원하는 게 너무도 컸다.

‘1군 불펜 투수 한 명이나, 지명권과 2군 선발투수를 달라니···. 미친 것도 아니고···.’

자람 빌런스는 올해 투수진이 문제였다.

작년 신인왕이자 골든 글러브의 주인공인 박은우를 제외하고 투수들이 대부분 성적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폭풍의 손자 유정호를 필두로 타자들이 활약해주고 있는 덕분에 물빠따로 고생하는 트리플스만큼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

성적도 5위로 7위인 트리플스보다 앞서고 있고 경기 내용도 더 좋았다.

그래서 이런 배짱을 부리는 거다.

아쉬운 건 트리플스니까.

이기혁 단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1군이든 2군이든 투수를 내줄 순 없어. 내가 어떻게 모은 선수들인데···. 절대 안 돼. 자칫 잘못했다가 작년 꼴이 날 수도 있어.’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삼각 트레이드···. 우리 2군 소속 타자를 원하고 빌런스가 원하는 투수를 내줄 수 있는 팀을 찾아야 하는데···. 마땅한 팀이 없네.’

9위, 10위의 대명 티라노스나 한영 벌처스가 만만하긴 하지만, 두 팀이 보유한 신인 투수들은 빌런스 눈에 차지 않을 거다.

이기혁은 M자형 탈모 머리를 박박 긁더니 담배를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쉬었다가 빌런스에 다시 연락해보자. 지명권이랑 타자까지 준다고 제안하면···.’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스카우트팀 팀장 오형준이 들어왔다.

“단장님!”

이기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노크도 없이···.”

“타이탄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타이탄스? 그 자식들이 왜? 아니, 그보다 그게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 일이야?”

“그, 그게 타이탄스에서 삼각 트레이드를 제안했습니다.”

그 말에 이기혁은 움찔하며 되물었다.

“삼각 트레이드? 어느 팀이랑?”

“빌런스입니다. 이삼천을 얻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

이기혁은 눈을 크게 뜨며 주먹을 꽉 쥐었다.

가장 원하던 선수를 얻게 해주겠다니!

너무 기뻤지만, 그걸 이뤄주는 팀이 타이탄스라는 게 문제였다.

‘타이탄스가 빌런스에 넘길 선수는 한민석이겠지? 그런데 우리 2군 타자 중에 한민석만 한 놈이 있나?’

이기혁은 오형준에게 물었다.

“타이탄스는 누구를 달라는데?”

“그게 2라운드 지명권이랑 2군 허지웅 포수를 달라고···.”

“허지웅? 아~ 그 무릎 재활하는···.”

“맞습니다.”

이기혁은 장문원을 트레이드할 때를 떠올리며 의심의 눈빛을 했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걔들이 허지웅을 왜 원하는 거지? 허지웅한테 뭐 특별한 점이라도 있어?”

오형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게···. 특별한 건 없습니다. 리드는 나쁘지 않은데, 무릎 재활이 더뎌서 포구 실패가 종종 있습니다. 타율은 고교리그에선 2할 후반에서 3할 초반대였는데, 현재 퓨처스리그에서 1할 초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 팀장, 장문원은 고교리그부터 퓨처스리그까지 무안타였어! 무안타!”

“그건 그렇지만···.”

“우리가 놓치는 게 있을 수도 있어! 허지웅에 대해서 자세하게 파악해봐!”

그 말에 오형준은 들고 있던 서류철을 내밀며 말했다.

“사실 지난달에 육성팀한테 2군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성장 가능성을 상세하게 파악해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이기혁은 눈을 반짝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언제 그런 걸 또 했어?”

“장문원 같은 경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래···.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어야지. 그래서 허지웅의 성장 가능성은 어때?”

“D 등급입니다. 재활에 성공한다고 해도 2군 백업 포수 이상은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타격력이 너무 떨어져서···.”

이기혁은 서류철을 받아 허지웅의 정보를 살피며,

“흠···.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타이탄스는 왜 허지웅을 원하는 거지?”

“사실 타이탄스가 실질적으로 원하는 건 우리가 받은 2라운드 지명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이한수 구단주가 잠재력 높은 신인을 발굴하는 능력이 뛰어나니까요.”

이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한수의 인재 발굴 능력은 신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굳이 이 시점에 한민석까지 내주면서 지명권을···.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허지웅을 원하는 게 걸리는데···.’

오형준은 이기혁의 고심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단장님이 타이탄스에 대한 경계가 너무 심하네. 하지만 이삼천을 얻을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무엇보다 허지웅은 아무리 생각해도 포수로서 발전할 여지가 없었다.

‘허지웅이 장문원처럼 되는 일은 없어. 육성팀장도 확신했어!’

오형준은 이기혁을 어떻게든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타이탄스 운영팀장이 포수가 필요하다는 거 말고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습니다만···. 제가 판단하기에는 타이탄스 2군의 홍연준 포수를 하민철 백업으로 올리고 그 공백은 허지웅으로 채우려는 거 같습니다.”

“그래···?”

오형준의 말에 이기혁은 조금 의심을 거뒀다.

왜냐면 지난번 양기주, 여은포, 장문원을 타이탄스로 보낼 때, 유일하게 반대했던 사람이 오형준이었기 때문이다.

이기혁은 생각했다.

‘오 팀장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이때 오형준이 결정구를 던졌다.

“그리고 타이탄스와 잘 얘기해서 2라운드 지명권이 아니고, 3라운드 아니, 4라운드 지명권으로 조건을 바꿔보겠습니다.”

“4라운드로? 가능하겠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이기혁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 4라운드 지명권에 하자 있는 포수 하나 보내고 이삼천을 얻는 게 이득이지.’

그는 오형준에게 말했다.

“오케이. 그럼 이번 삼각 트레이드, 오 팀장이 전담해서 진행해봐!”

오형준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 = = =

타이탄스 프런트, 단장실.

한수는 이소희가 가져온 결재 서류를 검토하며 물었다.

“삼각 트레이드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어제 이소희한테 삼각 트레이드 전권을 일임하고 결과만 보고하라고 했지만, 중간 과정이 궁금했다.

이소희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좀 전에 트리플스에서 조건을 바꿔 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조건? 설마, 허지웅 말고 다른 선수를 주겠다는 건가요?”

“아뇨. 허지웅은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한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허지웅을 보내주기로 했는데 트리플스가 무슨 조건을 바꿔 달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소희가 입을 열어 그의 의문을 해결해줬다.

“허지웅 선수와 2라운드 지명권 말고, 허지웅 플러스 4라운드 지명권으로 바꿔 달라고 하더군요.”

“지명권? 이 팀장 설마···.”

“이렇게 하면 트리플스는 우리가 허지웅보다는 지명권에 무게감을 두고 트레이드를 원하는 거라고 착각할 거 같아서요.”

한수는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말했다.

“이야~ 역시 이 팀장이야. 좋아. 좋아. 최고야!”

“칭찬 감사합니다.”

그는 서류에 사인한 뒤, 서류철을 덮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제안을 거부하다가 3라운드 지명권으로 흥정하는 게 좋겠어. 그래야 이기혁 단장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게 허지웅이 아니라 지명권이라고 확신할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심연주 부팀장이 구단주님 말씀처럼 흥정하고 있습니다.”

“심연주가···?”

한수는 생각했다.

‘괜히 99% 재능을 보유한 게 아니네.’

그는 이소희에게 서류철을 건네며 물었다.

“어쨌든 이 팀장 정말 잘했어.”

“아직 트레이드가 이뤄진 건 아닙니다.”

“오늘 중으로 될 거 같은데?”

이소희는 말없이 빙긋 웃었다.

한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수고한 이 팀장한테 선물을 하나 하고 싶은데···.”

“성과급을 많이 챙겨주시면 됩니다.”

“그건 당연하지. 또, 원하는 거 없어?”

“딱히 없습니다만?”

“이 팀장, 그러지 말고 뭐든 말해봐.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고?”

“······.”

그 말에 고민하던 이소희의 눈에 한수가 책상에 올려둔 낡은 포수 마스크를 보였다.

그녀는 말없이 그 포수 마스크를 응시했다.

한수는 이소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왜 저래? 꼭 울 거 같은···.’

그때 이소희가 포수 마스크에서 시선을 떼고 한수를 쳐다봤다.

그녀는 평소처럼 냉정하면서도 차분한 표정이었다.

이소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구단주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봐.”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신가요?”

“오늘은 선약이 있어.”

오늘은 점심에는 염철수와 식사 약속이 있고, 저녁에는 여은포와 식사 약속을 잡았다.

염철수는 최근에 고민이 있는 것 같아서 상담을 위해서 만나는 거고, 여은포는 최혜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려는 거다.

그러자 이소희가 재차 물었다.

“그럼, 내일 저녁은 괜찮으신가요?”

“음···. 오케이. 괜찮아. 그런데 저녁은 왜? 먹고 싶은 거 있어?”

“식사는 괜찮고···.”

이소희는 포수 마스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걸···. 들고 나와주실 수 있나요?”

“포수 마스크? 이건 왜?”

“그건···. 내일 저녁에 말씀드릴게요.”

한수는 이소희가 왜 이런 부탁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심연주처럼 이 포수 마스크를 한번 써보고 싶어서···. 아냐, 아냐. 이 팀장이 그런 황당한 부탁을 할 리가 없지. 그럼 대체 왜···.’

한수는 이소희의 생각이 무척 궁금했지만, 원하는 걸 들어주기로 했으니,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내일 저녁···. 어디서 볼까?”

이소희는 한수를 빤히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타이탄스 구장···. 홈팀 더그아웃에서요.”

“더그아웃? 거긴···. 오케이. 오케이. 내일 되면 이유를 다 말해줘. 알겠지?”

“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한수는 단장실 밖으로 나가는 이소희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이 팀장에 대해 모르는 게 있나?’

그러고 보니···.

‘이 팀장의 뒷조사를 제대로 지시한 적이 없네.’

첫 만남이 인상적이었고, 타이탄스에 대한 애정이 워낙 강한 사람이라 별다른 의심을 안 했다.

그 뒤로, 강덕수가 그녀가 신성 그룹에서 비서 실장을 지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고,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를 통해 그녀가 고등학교까지 야구부에서 활동하다가 선수의 꿈을 접었다는 사실은 파악했다.

그 외에는 공명량을 영입하기 위해 그녀가 야구부 시절에 있었던 일을 알아본 정도였다.

한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덕수한테 이 팀장 뒷조사를 해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강덕수는 지금 한수의 아버지가 당했던 교통사고를 조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일 되면 뭔가 알게 되겠지.’

한수는 생각을 정리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염철수와 약속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자아~ 우리 에이스님이 무슨 고민이 있는지 들으러 가볼까?”

그렇게 한수는 염철수와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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