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78화 (178/187)

178화 : 내가 홈런 1위도 할 생각이거든.

타이탄스 프런트, 단장실.

한수는 단장실로 돌아와 이소희 팀장에게 삼각 트레이드와 관련된 보고를 받았다.

한민석한테는 심상호 육성팀장이 트레이드를 전하기로 했다.

원래는 이소희가 하려고 했지만, 심상호가 2군 선수들과 친분이 깊어 전하기로 한 거다.

이소희는 한수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한수가 사 온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신 뒤, 재차 입을 열었다.

“한민석 투수도 빌런스로 가는 걸 만족하는 거 같아요. 타이탄스와 달리 1군 선발 투수가 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요.”

“그거 다행이네요. 허지웅은?”

“허지웅 선수한테는 트레이드가 결정되자마자 통보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타이탄스에 왜 본인을 요구한 건지 이해하지 못해서 많이 당황했다는 거 같았습니다.”

한수는 허지웅이 어떤 마음인지 짐작이 돼서 피식 웃었다.

이소희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틀 뒤에 허지웅 선수와 미팅 약속을 잡았습니다. 저랑 심연주 부팀장이 함께 가려고 합니다.”

“심연주는 왜요?”

“뛰어난 인재니까요. 손발을 맞춰보니 편했어요.”

“알겠어요. 이 팀장, 원하는 대로 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허지웅 선수의 입단식은 다음 주중에 하려는데, 언제가 좋을까요?”

입단식이니 구단주 겸 단장이 한수는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한수는 다음 주 일정을 떠올린 뒤 대답했다.

“일단 수요일로 생각하고 있어요. 변동 사항이 있으면 강 비서 통해서 전달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핫초코와 빵이 든 봉투를 챙겨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케이. 수고했어.”

“아닙니다. 그럼···.”

“아~ 이 팀장, 잠깐만···.”

“시키실 일이 더 있으신가요?”

“오전에 했던 부탁 말이야.”

“······?”

“···혹시 포수 마스크를 써보고 싶은 건 아니지?”

그 말에 이소희는 피식 웃더니,

“아닙니다.”

“알겠어.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이소희가 단장실에서 나가자 한수는 탁자 위의 포수 마스크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걸 왜 들고 오라는 거야?”

한수는 고개를 휘휘 저은 뒤, 스마트폰을 들어 뉴스 기사를 확인했다.

타이탄스에 부임하기 전에는 제일 먼저 연예계 기사들을 확인했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스포츠 기사들로 시선이 갔다.

그때 해외 야구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타니 슈헤이, 3년 연속 올스타전 투타 겸업!】

【이도류 오타니! 커쇼와 맞대결에서 승리!】

【WBC 챔피언 오타니! 타자로 홈런 18개 52타점, 투수로 7승 3패를 기록하며 순항!】

일본은 올해 3월에 펼쳐졌던 WBC에서 전승을 기록하며 챔피언을 차지했다.

‘대한민국은 예선 탈락했지만···.’

한수는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론 타이탄스 선수들이 WBC에 출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프로답지 않은 미스 플레이로 팬들의 많은 비난이 받았기 때문이다.

WBC에 참가했던 국가대표 선수 중 슬럼프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호재가 된 선수도 있었지.’

ST 위닝스의 천재 타자 강천호다.

강천호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빌런스의 폭풍의 손자 유정호의 라이벌로 타격왕 경쟁을 펼쳤던 선수다.

하지만 국제 대회에서 논란이 되는 일이 생겨서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작년에는 시범 경기에서 손가락 골절을 당해 시즌 초반에 출전하지 못하고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고, 강력한 라이벌의 부진 덕분에 유정호는 수월하게 타격 5관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 강천호는 부활에 성공했다.

그는 이번 WBC에서 어이없는 세레머니사로 욕을 대차게 먹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연습에 더욱 필사적으로 됐고, 플레이 하나하나에도 절실함이 생겼다.

덕분에 타율과 출루율, 장타율, WRC+ 모두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유정호를 압도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장문원 선수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지.’

장문원은 홈런(2위), 출루율(2위), 장타율(3위)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다 지난 WBC가 아니야.’

한수는 다시 오타니 슈헤이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지금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투타 겸업이다.

일본의 WBC 우승 이후, 한국 야구팬들은 KBO에도 오타니 슈헤이 같은 투타 겸업의 플레이어가 등장하길 바랐다.

신인 선수 육성 기술이 뛰어난 자람 빌런스가 제2의 오타니 슈헤이를 만들겠다며, 두 명 신인 선수, 김재희와 서건영을 투타 겸업으로 시범 경기에 출전시켰다.

그러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김재희는 투타 둘 다 애매한데···. 그냥 투수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나?

└시도는 나쁘지 않았음.

└시도만 좋았지. 근데 이대로 가면 불펜 투수로서 자리 잡기도 힘들걸?

└투타 겸업 참 쉽지 않쥬~? 오타니가 괜히 만화 주인공이라고 불리겠슈?

└그래도 서건영은 가능성 있어 보이는데···.

└구속이 빠르니까 괜찮긴 함.

└포수 겸 투수로 성공하면 재밌을 거 같긴 함.

└그래도 나는 포수에 집중하는 게 옳다고 봄.

└옳고 그른 건 없음. 잘하냐 못하냐의 차이뿐.

└명언 오지네.

└맞는 말. 겸업이든 뭐든 잘하면 됨. 못해서 문제.

└ㅋㅋㅋ ㅇㅈ

이런 팬들의 반응 때문에 빌런스는 물론, 다른 구단들도 투타 겸업 선수 육성에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타이탄스는 달랐다.

‘우리는 육성할 필요가 없지.’

왜냐면 당장 투타 겸업으로 뛰어도 성공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재능을 보유한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템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재능 수치 100%, 잠재 레벨 100을 타고난 천재.

바로···.

‘여은포···.’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여은포는 KBO 최고의 재능을 보유했고, 적합한 포지션이 투타 겸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반기에는 그를 마무리 투수로만 활용했다.

첫 프로 무대라 체력 관리도 필요하고, 워낙 독불장군이라 코치진들도 그를 상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를 거듭할수록 많이 독불장군 같은 성정이 점점 누그러졌고, 코치진들한테도 어느 정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

‘모두 안종렬 선수가 수고한 덕분이지.’

여기서 한수와 관계만 개선되면 금상첨화다.

‘이건 오늘 해결할 거고···. 그렇게만 되면···.’

“슬슬 여은포를 투타 겸업으로 활용해봐야지.”

현재 타이탄스의 지명 타자는 이소호다.

허벅지 부상이 재발하는 걸 막기 위해 수비를 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제 완벽히 회복됐으니, 굳이 지명 타자로 맡길 이유가 없지. 후반기부터는 여은포를 지명 타자로 출전시키는 거야.’

한수는 여은포가 투타 겸업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 자빠질 다른 팀 관계자들과 팬들을 상상하며 히죽 웃었다.

그러나 여은포가 투타 겸업을 해서 지명 타자를 고정적으로 맡게 된다면, 타이탄스 라인업은 크게 바뀌게 될 거다.

이소호는 다시 1루수를 맡게 되고, 고정적으로 1루 수비를 맡던 안종렬은 원래 포지션인 외야수를 맡게 될 거다.

그리고 이번에 트레이드로 영입한 허지웅.

그는 포수가 아닌 내야 거포형 타자, 정확히는 유격수로 전향시킬 예정이다.

현재 타이탄스는 김효철이 유격수를 전담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김효철은 수비 능력, 배트 컨트롤, 장타력 등이 1군 평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유하진 못했다.

청백전에선 수비 실책도 종종 범한다.

하지만 그는 실전에선 위기의 순간마다 놀라운 호수비를 펼치고, 팀이 패배의 상황에 몰렸을 때 뛰어난 타격력을 보여주는 기기묘묘한 선수다.

‘반면에 무난한 경기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지.’

그래서 입스만 해결되면, 뛰어난 배트 컨트롤과 장타력 그리고 무난한 수비력을 보유한 허지웅한테 주전 유격수를 맡기고, 김효철은 교체 카드로 활용하려는 거다.

하지만 확정된 건 아니고, 페르난도 킴 감독과 추가 엔트리에 대해 상의를 하며 이 문제도 논의해볼 생각이다.

일단 중요한 건···.

‘여은포와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는 거지.’

한수는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출발해볼까?’

그렇게 그는 여은포와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향했다.

= = = = = = =

부산 시내의 어느 고깃집.

여은포는 인상을 쓴 채 불판 위에 올라간 삼겹살을 집게로 뒤집으며 투덜거렸다.

“누구는 최고급 한식 레스토랑이고, 누구는 동네 고깃집에서 삼겹살이나 사주고···. 마무리라고 차별하는 거야, 뭐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세이브 1위인데···. 진짜 너무 하네.”

맞은편 자리에 앉은 한수는 사이다병 뚜껑을 따며 말했다.

“그만 좀 투덜대. 네가 여기 삼겹살 좋아한다고 해서 온 거야. 홈경기 끝나면 매일 여기 온다며?”

여은포는 집게를 내려놓고 잔을 들며,

“종렬이 형 때문이죠. 그 양반이 여기 단골이니까.”

한수는 그의 잔에 사이다를 따르며 물었다.

“그래? 그럼, 넌 뭘 좋아하는데?”

“비싼 음식.”

한수는 ‘황금만능주의’ 특기를 보유한 여은포다운 대답이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한국 시리즈에서 홈런 치면 비싼 거 사줄게.”

“사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쇼. 투수가 홈런 치는 게 말이 됩니까?”

한수는 본인의 잔에 사이다를 따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타자도 하면 되지.”

“······?”

“너 할 수 있잖아. 타자도.”

“···이 양반이 내 골수까지 빼먹으려고 하네. 일없습니다. 지금도 내가 받는 연봉 이상으로 하고 있어요. 더는 바라지 마십쇼.”

여은포는 혀를 찼다.

무슨 일로 불렀나 했더니, 투타 겸업으로 개고생시키려 하다니!

‘이런 얘기할 거면 최소한 한우라도 사주던가. 삼겹살이 뭐야? 삼겹살이!’

그때 한수가 말했다.

“여자는 말이야. 본인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남자한테 매력을 느끼곤 해.”

그 말에 여은포는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한수는 씨익 웃으며,

“매력 좀 높여보는 게 어때? 이대로는 최혜선 마음 얻는 거 영영 불가능할걸?”

“···이보쇼. 구단주님.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뼈와 살이 되는 조언을 하는 중이지.”

“염병···! 가르침은 개뿔! 이게 놀리는 거지, 무슨!”

한수는 여은포가 내려놓은 집게를 잡고 불판 위의 삼겹살을 뒤집으며 말했다.

“놀리는 거 아니야.”

“그만하쇼! 구단주고 뭐고 더는···.”

“내가 최혜선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건 이성으로서 호감이 아니야.”

“뭐···?”

“굳이 따지면···. 강 비서 같은 거야. 내 말을 잘 듣고, 나를 좋아해 줘서 좋은···. 뭐, 그런 거. 이 마음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야. 하지만 이건 내 감정이지. 최혜선은 달라.”

“······.”

한수는 집게를 내려놓고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신 뒤 재차 입을 열었다.

“최혜선은 내 도움으로 지옥 같은 삶에서 탈출했거든. 그래서 나한테 의지하게 됐고, 좋아하게 된 거야. 물론 내 잘생긴 외모도 한몫했지만.”

여은포는 한수의 마지막 말이 재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토를 달진 않았다.

한수가 잘생긴 건 사실이고, 지금 분위기가 무척 진지했기 때문이다.

여은포는 사이다를 원샷한 뒤에 말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뭡니까?”

“최혜선을 뺏길까 봐 나한테 이를 드러내지 말고, 최혜선과 어떻게든 해보고 싶어서 전전긍긍하지 마.”

“······.”

“그럴 시간에 지금보다 매력적인 남자가 되려고 노력해. 그래서 최혜선이 널 돌아보게 만들어.”

“···그 노력이 투타 겸업입니까?”

“그건 시작이고 다른 것도 노력해야지.”

“······.”

“염철수나 장문원이 왜 너보다 인기 많은 줄 알아?”

“···잘생겨서···?”

“잘 아네.”

“뭐요!?”

“네가 말해놓고 왜 흥분해? 흐흐.”

“젠장···.”

한수는 여은포의 잔에 사이다를 따르며,

“걔들은 말이야. 참 멋지거든.”

“외모 얘기 좀 그만···.”

“경기에서든, 훈련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말이야.”

“······.”

한수는 본인의 잔에도 사이다를 채운 뒤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포야, 멋진 남자가 돼라.”

“···왜 이런 말을 해주는 겁니까? 당신, 나 싫어하잖아요.”

“네가 날 싫어하지. 난 너 좋아해.”

“네···?”

한수는 사이다를 원샷한 뒤 밝은 목소리로,

“세이브 1위 투수를 싫어하는 구단주가 어딨어? 나 너 무척 좋아해.”

그 말에 여은포는 푸핫! 웃음을 터뜨리더니 마찬가지로 사이다를 원샷한 뒤,

“그럼, 앞으로 더 좋아하게 생겼네.”

“······?”

여은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홈런 1위도 할 생각이거든.”

그 말에 한수는 피식 웃더니,

“그래, 그럴 거 같다. 고기 탄다. 어서 먹어.”

“오케이!”

그렇게 두 사람은 훈훈하게 식사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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