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 그때부터 출전시키죠.
KBO 리그는 9월부터 확대 엔트리를 시행한다.
그러면 기존 1군 엔트리 28명에 5명을 더 등록할 수 있고, 출전 선수도 26명에서 31명으로 늘어난다.
9월까지 한 달하고 일주일 정도 남았다.
각 구단은 확대 엔트리에 포함될 선수들을 정하기 시작했다.
타이탄스도 마찬가지였다.
한수는 회의 시작은 선언하고 회의실에 모인 팀장급 인사와 코치진을 훑어보며 말했다.
“일단 9월 1일부터 1군에 올릴 선수 3명을 정하도록 하죠.”
확대 엔트리는 한 번에 다섯 명을 등록하기보다는 우선 세 명 정도 올린 뒤에, 두 명을 추가로 콜업한다.
그러자 박동준 QC 코치가 손을 들며 물었다.
“이번에 트레이드돼서 온 허지웅, 김아진은 어떻게 하시길 원하십니까?”
“허지웅은 9월 1일부터 1군에 합류해서 출전시키는 걸로 하죠. 김아진은···.”
김아진은 삼국지 악진에 비유된 선수로 영웅 도감을 완성하기 위해서 벌처스에서 데려온 선수다.
재능 수치는 83%, 잠재 레벨은 45 / 73이다.
김아진은 벌처스 시절 1군 콜업을 앞두고 투수 코치한테 투구폼을 교정받았다.
1군에서 성공하기 위해 한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으로 그는 망해버렸다.
구위가 떨어진 건 물론, 팔꿈치와 손목에 무리가 와서 부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2군으로 돌아갔고, 투구폼 교정을 하며 예전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리 쉽진 않았다.
그러다가 타이탄스로 오게 된 거다.
“···급하게 올릴 필요 없어요. 실력이 부족하면 2군에서 더 실력을 쌓게 해요. 김아진에 대한 건 페르난도 감독과 심 팀장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
페르난도 킴 감독과 육성팀 심상호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네.”
박동준 코치는 서류에 뭔가를 체크하며 물었다.
“허지웅은 반드시 9월 1일에 1군으로 올려야 하나요?”
“문제 있나요?”
“그야···. 포수였던 선수가 내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건데···. 너무 이른 건 아닌가 싶습니다.”
회의실에 모인 많은 이들이 고개를 소곤거렸다.
‘한 달 만에 포지션 변경은 오바지.’
‘허지웅이 예전에 내야수를 했던 선수면 모르겠는데, 걔 아마추어 때부터 포수만 하지 않았나?’
‘음···. 하지만 김유빈 선수도 포지션 변경에 성공했잖아.’
‘김유빈은 마무리 캠프부터 시작해서 몇 달 동안 미친 듯이 훈련을 했잖아. 그런데 허지웅은···.’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허지웅한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뭔가가 있을 거야. 구단주님은 그걸 발견해서···.’
‘구단주님 말대로 하면 자다가도 승리를 하지.’
‘구단주님은 다 계획이 있으실 거야!’
한수는 웃으며 박동준한테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허지웅은 뛰어난 거포형 유틸리티 내야수가 될 거니까.”
“음···.”
박동준은 볼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나마 적응이 빠른 1, 3루 수비도 아니고, 모든 내야 수비가 가능한 유틸리티 내야수라니···.
심지어 장타력까지 보유했다고?
‘그렇게만 되면 김효철은 조커 카드로 쓰고, 허지웅을 주전 유격수로 출전시키는 게 베스트지만···.’
김유빈이 타자로 전향할 때는 이종규 타격 코치의 추천도 있었고, 고교 리그에서 김유빈이 타자로 좋은 모습을 보인 기록도 있어서 신뢰가 갔지만, 허지웅은 그런 게 전혀 없다.
트리플스에서 다른 포지션 훈련도 받아봤을 텐데, 포수만 시켰다.
‘역시 이해가 안 되지만···.’
한수가 벌인 일 중엔 이해되지 않는 기행들이 많았고, 팀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
박동준은 힐끗 페르난도 킴을 쳐다봤다.
페르난도 킴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수의 지시에 따르자는 의미다.
박동준은 생각했다.
‘감독까지 오케이라는데, 더 이상의 태클은 민폐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9월 1일에 합류한 선수 둘만 더 고르면 되겠군요.”
한수는 고개를 끄덕인 뒤, 페르난도 킴 감독을 쳐다보며 물었다.
“확대 엔트리 포지션은 어떻게 생각해요?”
“투수 둘, 내야수 둘, 외야 하나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허지웅의 콜업은 결정됐으니, 내야수는 하나면 되겠네요.”
“생각해둔 선수가 있나?”
“투수는···. 김지후가 괜찮을 거 같습니다. ”
“김지후···?”
페르난도 킴 감독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2군의 주장이요. 재능 있고 성실한 선수입니다. 제가 몇 번 만나보니, 1군 콜업에 대한 의지도 있는 거 같았습니다. 불펜 투수로 조금씩 출전시켜 1군에 적응하게 만들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김지후는 타이탄스 2군에 입단한 지 6년 차로, 현재 2군의 주장이다.
그는 4년 전 1군으로 콜업됐었는데, 당시 5선발로 마운드를 책임졌지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팬들로부터 심한 욕을 먹고 자신감을 잃어 슬럼프에 빠지기까지 했다.
지금은 슬럼프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퓨처스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김지후는···. 1군에 오는 거 껄끄러워하는 선수잖아.’
오죽하면 ‘1군 알레르기’라는 특기를 보유하고 있겠는가?
‘Bronze 등급이었지? 김지후 정보창을 확인한 지가 오래된 거 같은데···. 한번 볼까?’
한수는 책상에 올려둔 포수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자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갑자기 포수 마스크는 왜 쓰시지?’
‘김지후가 마음에 안 드셔서 저러시는 걸까?’
‘아빠 생각이 떠오른 걸까?’
‘저건 구단주님이 고민 있으실 때 쓰시는 거야.’
‘하긴~ 김지후가 퓨처스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다른 이들이 떠들거나 말거나 한수는 김지후의 정보창을 확인하기 바빴다.
【김지후】【Silver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79%)
(타이탄스 코치진: 51%)
(타이탄스 프런트: 30%)
결론 : ···(중략)··· 페르난도 킴 감독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넘어가서 1군에 대한 욕심이 다시 생겼다. 공포와 희망이 공존하는 상황. 그는 페르난도 킴에게 설득을 당해서 1군으로 첫발을 내딜 준비를···.
【포지션】
1순위: 투수
【투타】
좌투좌타
【특기】
1. 삼진을 잡으면 점점 강해져.
2. 미약한 1군 알레르기
3. 지독한 훈련 중독자
···(중략)···
6. 함구구(상대 구(球)단을 함(陷)락하는 갈매기(鷗)) [New!]
7. 1군 바라기 [New!]
【호감도: 5%】
한수는 눈가를 움찔했다.
특기에 있던 ‘1군 알레르기’에 ‘미약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1군 바라기’라는 새로운 특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1군 바라기】
└1군에 오를 길 간절히 바라는 2군이 선수에게 생기는 특기다. 1군에 오르면 무척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던가, 자신감이 상승해서 능력이 소폭 상승한다든가 등등···.
한수는 ‘1군 바라기’가 재밌는 특기라고 생각했다.
그때 박동준 코치가 다가와 김지후에 대한 자료를 건넸다.
한수는 자료를 확인하며,
‘훈련에 특별한 건 없네. 어떤 일로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거지?’
입스에 가까운 특기가 변할 정도면 꽤 큰일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함구구’ 특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상호 아저씨의 영향을 받은 선수한테 나타나는 스킬···.’
그러고 보니 함구구도 낮은 확률로 투지를 발동시킬 수 있는 특기였다.
한수는 생각했다.
‘9월 전까지 허지웅을 상호 아저씨가 전담하게 해야겠어.’
한 달 남짓한 시간이라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만약 허지웅한테 함구구 특기가 생긴다면 입스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때 결론에 ‘감언이설’과 ‘설득’이란 키워드와 함께 페르난도 킴의 이름이 두 번이나 등장한 게 보였다.
그제야 김지후가 왜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 알아차렸다.
‘페르난도 킴이 김지후한테 뭔가 했구나.’
페르난도 킴은 처세술의 달인답게 말발이 장난이 아니다.
상황만 갖춰진다면 선수 하나 찜 쪄 먹는 건 일도 아닐 거다.
한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페르난도 킴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역시 범상치 않은 사람이야.’
김지후의 재능 수치도 놀라웠다.
분명 몇 달 전 김지후의 재능 수치는 48%로 Bronze 등급이었다.
그런데 못 본 사이에 재는 수치가 31%나 올라 79%가 됐다.
‘곧 Gold 등급이네. 언제 이렇게 오른 거지? 이 정도면 단순히 심경 변화 때문만은 아닌 거 같은데···.’
한수는 잠재 레벨 창을 오픈했다.
김지후의 레벨은 59 / 70이다.
예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레벨이 48 / 70였으니, 11레벨이나 오른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특성도 ‘소방수 C’에서 '소방수 B'로 업그레이드됐다.
이렇게 되면 재능 수치가 오른 건 다른 이유가 없다.
김지후는 정말로···.
‘노력했군.’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변할 리가 없다.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벗은 뒤, 김지후 보고서를 계속 검토했다.
그때 특이 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문희동, 안종렬, 박종구 선수와 친함. 팀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됨.】
【2군에서 주장으로서 신망이 높았음. 박종구가 의지했었음. 타격 슬럼프에 빠진 박종구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됨.】
문희동은 주장으로서 팀 장악력이 약했다.
특별히 큰 문제가 아니면 직접 지시하기보다는 알아서 잘하기를 바라며 방임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여은포나 공형찬처럼 개성 강한 선수들이 제멋대로 할 때마다 안종렬이 나서서 군기반장 역할을 했다.
문희동보다 선배들이 나서면 주장인 문희동의 체면이 구겨지고 권위를 잃을 수도 있으니···.
‘덕분에 안종렬만 고생하고 있지.’
하지만 문희동보다 후배이고, 2군에서 주장을 했던 김지후라면 안종렬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 거다.
그러면 안종렬의 스트레스도 줄 거고, 더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에 집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종구의 슬럼프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박종구는 수비력은 무척 뛰어나지만, 타격력이 나빠서 경기 출전율이 저조했다.
그는 타이탄스 1군 타자 중에서 유일하게 1할대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흠···. 이건 뭐···. 더 생각할 필요가 없군.’
한수는 보고서를 내려놓고 회의실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김지후, 확대 엔트리에 넣도록 하죠.”
페르난도 킴 감독은 빙긋 웃으며,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페르난도 감독이 김지후 선수 신경 좀 써줘요.”
“알겠습니다.”
한수는 심상호 팀장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심 팀장님.”
“네.”
“9월까지 허지웅 선수 좀 부탁드립니다.”
“부탁이라뇨···?”
“포지션 변경 훈련 및 육성을 전담해주세요. 2군 타격 코치와 수비 코치한테도 심 팀장님 육성 방법을 따르라고 지시해두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건 허지웅에게 함구구 특기가 반드시 생기길 바라기 때문이다.
심상호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회의를 다시 진행시켰다.
하지만 허지웅, 김지후 말고 확대 엔트리에 포함시킬 선수를 확정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국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일단 허지웅과 김지후는 9월 1일에 1군으로 콜업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이번 달까지 생각해보도록 하죠. 혹시 확대 엔트리에 포함시키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개별적으로 보고해도 좋아요. 아~ 만약 김아진의 상태가 빠르게 좋아진다면 김아진을 9월 1일에 콜업해도 되고요.”
한수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드디어 회의가 끝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 안건? 확대 엔트리말고 다른 게 있었나?’
‘오늘 확대 엔트리에 대한 회의 아니었나?’
‘곧 점심시간인데···.’
‘별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 순간, 한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은포 선수한테 투타 겸업을 시킬 겁니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그들을 보며 한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반대 의견을 받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회의 안건으로 투타 겸업에 대해 언급한 건, 여은포 선수가 타자로 출전했을 때 어떻게 라인업을 짜는 게 좋을지 의견을 나눠보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에 모두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언젠가 여은포가 투타 겸업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 시기가 조금 빠르고 의외여서 놀랐을 뿐이다.
페르난도 킴 감독이 손을 들며 물었다.
“여은포 선수를 언제부터 투타 겸업으로 출전시키고 싶으십니까?”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신아 재규어스와의 주말 3연전이 시작되는 7월 21일···. 그때부터 출전시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