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84화 (184/187)

184화 : 타이탄스 경기 보고 싶네.

타이탄스와 재규어스의 주말 3연전은 타이탄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차전에서 타이탄스가 노히트노런, 사이클링히트, 3연타석 홈런이 동시에 기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반면에 2차전은 초반에 조금 고전했다.

전날 엄청난 화력을 보여줬던 타이탄스 타자들이 6회까지 점수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루는 계속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점수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7회 말.

여은포가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물꼬를 텄다.

그리고 후반에 폭풍처럼 휘몰아쳐서 승리했다.

마지막 3차전에선 3선발 홍진철이 재규어스 타자들을 변화구로 괴롭혔고, 타이탄스 타자들은 어제와 달리 초반부터 막강한 화력을 보여주며 승리를 견인했다.

그렇게 3차전이 끝나고···.

한수는 VIP 관람석에 앉아 전광판에 비친 여은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은포는 오늘 홈런 1개와 안타 2개를 치고, 7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재규어스 타자들을 철저하게 무력화시키며, MVP에 등극했다.

여은포는 MVP 인터뷰는 처음이라 조금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아나운서의 진행 능력 덕분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아나운서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여은포 선수의 앞으로의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제 목표는···. 홈런왕입니다.]

한수는 여은포의 대답을 듣고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약속대로 3경기 연속 홈런을 쳤으니, 한우를 사줘야겠네. 흠···. 그냥 먹는 고기는 그렇고, 송아지라도 사줄까? 아니지. 송아지는 키울 수가 없잖아. 그러면 금 송아지라도 만들어줘야 하나?’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소희가 물었다.

“구단주님, 무슨 생각을 하세요?”

“딱히 별거 아닙니다.···. 일어나죠.”

“네.”

오늘도 이소희는 한수의 비서 역할을 자처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며칠 사이에 그녀의 보좌에 무척 익숙해졌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해온 강덕수보다 편한 부분도 생겼다.

‘신성 그룹 회장 비서 출신답네···. 괜히 보좌의 스페셜리스트란 특기를 보유한 게 아니야.’

경기장에서 벗어나는데, 이소희가 말했다.

“그리고 장문원 선수가 경기 시작 전에 마운드 위에서 춤을 춘 건 내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내기?”

“이틀 전 경기 때 여은포 선수랑 누가 안타를 더 많이 치나 내기를 했는데 지는 바람에···.”

한수는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장 선수가 무척 억울하겠네. 3연타석 홈런을 치고도 졌으니 말이야.”

“그럴 거 같습니다.”

“그런데 내기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니겠죠?”

한수가 염려하는 부분은 여은포와 장문원 혹은 다른 선수들의 불화이다.

그러자 이소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선수들 간의 갈등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오히려 여은포 선수와 장문원 선수의 관계가 전보다 더 돈독해진 거 같다고 하더군요.”

“누가요?”

“박동준 코치요.”

“아~ 그래요? 그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네.”

한수는 박동준 QC 코치를 굉장히 신뢰했다.

자기 관리는 엉망이지만, 능력도 뛰어났고, 인간성도 좋았기 때문이다.

이소희는 차로 달려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한수는 “땡큐!”라고 말하며 뒷좌석에 탔고, 이소희는 운전석에 앉으며 물었다.

“호텔로 바로 갈까요?”

“호텔 말고 가고 싶은데 있어요?”

“사실 투구 연습장에···.”

“아···. 그건 좀···.”

한수가 정색하자 이소희는 피식 웃으며,

“장난입니다.”

“이 팀장이 장난을 칠 줄도 아네?”

“저 장난 잘 칩니다.”

“이 팀장이? 믿기지 않는걸?”

그녀는 백미러로 한수를 쳐다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니까요.”

“흠···.”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한수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강덕수한테 걸려온 전화였다.

[구단주님, 통화 가능하신가요?]

“말해.”

[구단주님, 아버님의 교통사고 조사가 끝났습니다.]

한수는 눈가를 움찔했다.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강덕수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너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돌아가신 회장님께서 워낙 철저하게 사건을 묻으셔서···.]

한수는 복잡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배는 하늘나라 가서도 나를 귀찮게 하네~. 수고했어. 그래서 결과는···?”

[그게···.]

강덕수가 아주 잠깐 말을 머뭇거린 그 순간이 한수에겐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이 조사 결과에 따라 앞으로 한수가 걸어야 할 길이 크게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끄러운 눈길에 반대 차선의 차가 미끄러지면서 발생한···. 불행한 사고입니다.]

“그 말은···.”

[이창호 부회장은 물론, 가족분들 누구도 구단주님 아버님을 돌아가시게 만든 교통사고와 관련이 없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우리 부모님께 준 호텔 숙박권은···.”

[사고 며칠 전에 있었던 신영 그룹 창립 기념일 파티 때 추첨 이벤트로 받았던 겁니다.]

한 마디로 우연히 호텔 숙박권을 받아서, 이정호 부부한테 선물을 했단 소리다.

한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그러면 할배는 아버지 사고를 왜 그렇게 묻으려고 한 거야? 조사마저도···.”

[당시 회장님 비서실 소속이었던 직원이 하는 말에 따르면···. 그게···.]

강덕수가 망설이며 말을 잇지 못하자, 한수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운전하던 이소희는 ‘아버지 사고’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백미러로 한수를 살폈다.

이소희는 생각했다.

‘강 비서한테 정호 아저씨의 교통사고 조사를 지시했었나 보네. 갑자기 왜···.’

그러다 그녀는 눈가를 움찔했다.

‘설마···. 아저씨 사고에 뭔가 음모가···.’

그녀는 신성 그룹 비서실에서 ‘오태호 사건’을 직접 경험하며 재벌가의 추악한 면모를 경험했다.

차재덕 회장의 잃어버렸던 손자, 차은수가 오태호의 음모를 파헤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신성 그룹은 풍비박산이 됐을 거다.

그리고 오태호 사건과 같은 일이 신영 그룹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오히려 그룹 주인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한 신영 그룹에서 지금까지 유혈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소희는 핸들을 꽉 쥐더니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만약 아저씨가 누군가한테 당한 거라면···.’

이때 한참을 망설이던 강덕수가 한수에게 대답했다.

[···회장님께서 착각해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착각? 그게 무슨 소리야?”

[회장님께서 이창호 부회장이 구단주님의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죽이려고 했다고···.]

“뭐···?”

한수는 황당해서 말이 더 나오지 않았다.

강덕수는 재차 입을 열었다.

[회장님도 뒤늦게 사고가 정말 우연히 일어났다는 걸 알고 이창호 부회장한테 사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찰 조사도 다시 시작하게 하고, 막았던 기사들도 다시 내게 하려고 했는데···.]

“······.”

[···이창호 부회장이 말렸다고 합니다.]

“왜?”

[그게 그러니까···.]

강덕수는 이번에도 한 번에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수는 이창호가 오해를 풀지 않았던 이유를 짐작했다.

“어머니 때문이야?”

[······네.]

당시 오정숙은 사고로 남편과 두 다리를 잃고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한수와 함께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하는 건 물론,

‘한수야, 엄마가 너무 힘들어. 우리 그냥···.’

‘아무도···. 아무도 없어···. 한수야 엄마랑···.’

‘그만 쉬고 싶어. 너무···. 힘들어. 한수는 엄마랑···.’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 시도를 멈췄다.

그리고 독기에 찬 눈으로 이창호를 보며···.

‘한수야, 이창호한테 복수해야 해. 저 사람이 아빠를 죽인 원수야.’

‘한수야, 네가 신영 그룹의 진짜 후계자야. 이창호한테 그룹을 뺏기면 절대 안 돼.’

복수심에 불타오르며 재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한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강덕수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사실 어린 시절 이재수가 한수한테 아버지가 없다고 놀렸을 때, 지나가던 이창호가 그걸 듣더니 자기 아들인 이재수를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보고 조금 의심했었다.

어쩌면 이창호는 적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작은아버지를 미워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자, 설마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던 거네.’

“하아···.”

강덕수는 곧바로 말했다.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지금···.]

“됐어. 그동안 수고했는데 며칠 푹 쉬어.”

[아닙니다. 내일부터 출근···.]

“내일 월요일인데 무슨 출근이야.”

타이탄스 프런트는 월요일에 쉬기 때문에 출근할 필요가 없다.

강덕수는 조금 민망해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러네요.]

“일주일 정도 푹 쉬고 와.”

[내일만 쉬고 출근하겠습니다.]

“됐고, 일주일 휴가야. 오케이?”

[···알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수는 전화 통화를 끝내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은 아직 대낮처럼 밝았다.

타이탄스의 압승으로 경기가 끝나 아직 오후 5시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소희한테 말했다.

“이 팀장, 김해 공항으로 갑시다.”

“공항이요? 거긴 왜···.”

“만나러 갈 사람이 있어서요. 서울로···.”

이소희는 백미러를 통해 한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살피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세기도 대기하라고 하겠습니다.”

한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김해 공항으로 향했고, 한수는 전세기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 = = = = = =

저녁, 한남동, 고(故) 이태백 회장의 저택 앞.

택시에서 내린 한수는 저택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구로 다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인터폰을 통해 가사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이 집 아들입니다. 문 열어요.”

[네? 아···!]

가사 도우미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삐!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한수는 천천히 저택으로 들어갔다.

정성스럽게 꾸며진 정원을 지나서 현관 앞에 도착하자, 문이 열리더니 동생 이희수가 나왔다.

그녀는 살짝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오, 오빠, 여긴 왜···.”

“저택에 불 지르러 온 거 아니니까 쫄지 마.”

“쪼, 쫄다니···! 그, 그런 거 아냐!”

“어머니, 집에 있어?”

“있는데 왜?”

“어디?”

“서재···. 그런데 왜?”

한수는 대답하지 않고 이희수를 지나쳐 집으로 들어갔다.

이희수는 불안한 표정으로 한수를 따라가려 했지만,

“이희수, 따라오지 마. 나가서 꽃이나 구경해.”

“···응.”

그녀는 곧바로 정원으로 나가 꽃 구경을 시작했다.

한수는 서재로 들어갔다.

휠체어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오정숙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너 언제 왔니? 오면 온다고 연락이라도···.”

“어머니.”

“응?”

“작은아버지가 아버지 죽인 거 아니래.”

“뭐···?”

“그러니까 작은아버지 뒤통수치려고 이재수 흔드는 거 그만해.”

“한수야,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이창호는···.”

한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버지를 죽인 것도 어머니 다리가 그렇게 된 것도 그냥 사고였다고.”

“······!”

“그러니까 잘못된 복수에 나나 이재수를 끌어들이지 마.”

“네가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입씨름하고 싶은 생각 없어. 덕수가 조사한 자료 메일로 보내놨어. 그거 보고 어머니가 직접 판단해. 관계자들과 미팅도 잡아줄게. 그리고 원한다면···.”

“······.”

“···작은아버지랑 약속도···.”

“한수야, 너···.”

한수는 몸을 돌려 서재에서 나가며 말했다.

“쓸데없는 짓 좀 그만하고···. 행복하게 살아요.”

뒤에서 오정숙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한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곧바로 저택에서 나왔다.

그는 노을 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타이탄스 경기 보고 싶네. 화요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냐?”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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