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 저희 2군 포수였습니다.
8월 31일, 대전.
신영 타이탄스는 한영 벌처스와 주중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올스타 브레이크가 이후, 타이탄스는 총 35경기를 했다.
원래 36경기지만, 우천으로 1경기가 취소됐다.
그동안 타이탄스는 7연승 이후 1패, 7연승 이후 1패, 7연승 이후 1패, 7연승 이후 1패, 그리고 지금은 3연승을 하며 총 31승 4패를 기록했다.
놀라운 성적이지만, 네 번이나 7연승 이후 1패를 하며 ‘드래곤볼’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드래곤볼 일곱 개 모았으면 1년 쉬는 건 국룰.
└오늘까지 3연승 했으니까, 내일부터 시작되는 트리플스 3연전은 이기겠네.
└그럼 다음 주에 스페이스랑 2차전에서 지는 건가?
└샛별이랑 윌슨 폰스랑 붙는 경기 아니냐?
└1, 2위 팀 1선발끼리 붙네.
└윌슨 폰스 상대면 질 수도 있지.
└질 수도 있긴 무슨! 마! 헛소리 ㄴㄴ야!
└샛별이가 드래곤볼 법칙 깨부숴버리길 바람.
└그라믄 안 돼~ 그날 타이탄스 패에 걸거라고~
└끄지라! 외계인 팬 놈들!
└타이탄스 승리 가즈아아아!
드래곤볼 논란으로 야구 커뮤니티는 시끄러웠고, 타이탄스를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현재 타이탄스 성적을 보면 질투심에 눈이 먼 자들의 헛소리에 불과했다.
[1위] 신영 타이탄스: 109승 2무 13패
[2위] 신성 스페이스: 87승 4무 33패
[3위] ST 위닝스: 79승 3무 42패
(중략)
[5위] 엔젤 트리플스: 52승 2무 70패
[6위] 신아 재규어스: 49승 2무 73패
(중략)
[9위] 대명 티라노스: 34승 3무 77패
[10위] 한영 벌처스: 28승 2무 84패
8월까지 109승.
작년도를 뛰어넘는 승률을 보여주는 스페이스조차 비벼볼 수 없는 압도적인 기록이다.
야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올 시즌 통합 우승은 타이탄스라고 확신했다.
물론, 야구는 9회 말 2아웃까지 모른다며, 한국시리즈에서 역대급 반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개소리 취급을 받았다.
왜냐면 타이탄스의 무시무시한 신인들 덕분이다.
[염철수]
개막전 퍼펙트게임, 두 번의 노히트노런, 0점대 ERA를 기록 중인 명실상부 최고의 에이스다.
그는 부산의 영웅이라고 불리며 이번 시즌 최고로 인기 많은 선수다.
[장문원]
42홈런(1위), 133안타(1위), 103타점(1위), 4할 타율(1위), 5할 장타율(1위) 등을 기록하며 타격왕과 홈런왕을 동시에 차지할 거라고 전망되는 천재 타자다.
이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선수다.
[여은포]
세이브 1위 사이클링히트, 18홈런을 기록 중인 투타 겸업 선수로, 괴물 혹은 수호신으로 불린다.
놀라운 건, 후반기 들어서 그가 타자로 출전한 건 18경기뿐이다.
18경기 18홈런···.
타자로 출전할 때마다 1개씩 홈런을 치는 괴물 같은 타격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셋 말고도 기용찬, 장은수, 홍진철, 손재현이라는 무시무시한 신인들이 타이탄스에 있었으며, 이소호, 윤진호, 김유빈, 찰스 스팅, 문희동 등등 뛰어난 베테랑 선수들도 많았다.
그래서 타이탄스 팬들은 단언했다.
[타이탄스는 정규시즌 씹어먹고, 한국시리즈에서 상대 팀을 짓밟아, 압도적인 성적으로 통합 우승한다!]
몇몇은 타이탄스 팬들이 갈매기 뽕을 맞고 돌았다며 조롱했지만, 초특급 신인이 있는 타이탄스가 통합 우승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그리고 9월 1일···.
타이탄스에 또 한 명의 초특급 신인이 1군으로 합류했다.
= = = = = = =
9월 1일, 아침, 서울 신영 호텔 레스토랑.
한수는 조식을 즐기며 핸드폰으로 타이탄스와 관련된 스포츠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때 박동준 QC 코치가 오늘 저녁 잠실에서 펼쳐질 트리플스와의 1차전 라인업이 적힌 메시지를 보냈다.
【타이탄스 VS 트리플스 1차전, 타이탄스 라인업】
선발 투수 : 장은수(Diamond 등급)
1번 타자 : 김유빈(Diamond 등급, 중견수)
2번 타자 : 오재근(Diamond 등급, 우익수)
3번 타자 : 손재현(Diamond 등급, 3루수)
4번 타자 : 장문원(Diamond 등급, 우익수)
5번 타자 : 윤진호(Diamond 등급, 2루수)
6번 타자 : 여은포(Diamond 등급, 지명타자)
7번 타자 : 허지웅(Diamond 등급, 유격수)
8번 타자 : 하민철(Diamond 등급, 포수)
9번 타자 : 안종렬(Platinum 등급, 1루수)
8월 초, 이소호가 허벅지 부상이 재발했고 9월까지 출전이 어렵게 됐다.
그나마 여은포가 있어서 타격 공백을 메꿀 수 있었지만, 내야 수비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찰나, 희소식이 들렸다.
오재근, 손재현, 하민철이 차례차례 Diamond 등급으로 진화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안종렬도 8월 말에 Platinum 등급으로 승급했다.
아이템을 사용한 게 아닌, 자력으로 이뤄진 성장이라 한수는 무척 기뻤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성장했다고 해도 이소호의 공백이 완전히 메꿔지는 건 아니었다.
타이탄스는 새로운 내야 거포형 타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준비는 이미 되어 있었다.
한수는 유격수 포지션을 맡은 7번 타자 허지웅의 이름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오늘이군.’
오늘부터 확대 엔트리가 시작된다.
5명의 선수를 추가로 1군 엔트리에 포함할 수 있다.
타이탄스는 우선 3명의 선수를 1군으로 콜업했다.
김지후 투수.
김아진 투수.
허지웅 타자.
김지후는 2군의 주장으로 1군 경험도 있는 선수다.
김아진은 벌처스에서 데려온 선수인데, 1군 투수 코치 장보형이 직접 투구폼 교정을 도와준 덕분에 빠르게 1군에 합류했다.
그리고 허지웅···.
그는 이미 9월 1일에 1군에 포함되기로 확정된 선수였다.
다만, 원래 포지션인 포수가 아니라, 유격수로 말이다.
그래서 심상호 팀장에게 체계적이고 무시무시한 포지션 변경 훈련을 받았다.
그 결과 아주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허지웅】【Diamon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99%)
···(중략)···.
결론: 경기장의 허저입니다. 뛰어난 장타력을 보유한 선수입니다. 심상호의 도움으로 출루에 대한 강한 의지와 수비에 대한 필사적인 ···(중략)···
【포지션】
1순위: 유격수 [New!]
2순위: 내야수, 지명타자
3순위: 포수
【투타】
우투우타
【특기】
1. 놀라운 괴력(怪力)
2. 매처럼 매서운 선구안
3. 본능적 슬러거
4. 호랑이처럼 달려
···(중략)···
9. 함구구(상대 구(球)단을 함(陷)락하는 갈매기(鷗)) [New!]
【호감도: + 19%】
바로, 포지션 1순위가 유격수로 변했고, 특기 목록에 ‘함구구’가 생겼다.
‘함구구’는 허지웅의 출루 공포증을 해결할 수 있는 투지 능력을 발동할 수 있는 특기다.
한수는 허지웅을 심상호한테 맡기면서 함구구가 생기길 바랐는데, 뜻대로 돼서 무척 기뻤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름: 허지웅】
【레벨: 59 / 95 (현재 레벨 / 잠재 레벨)】
【특성: 장타력 S】
허지웅의 잠재 레벨도 개화했는데, 무려 59였다.
KBO 1군 평균인 40레벨을 훌쩍 뛰어넘은 레벨이라 잭팟이 터진 기분이었다.
‘특성 비활성화도 풀렸어. 이제 실전에서 테스트해보면 돼. 트라우마를 이겨냈는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지···.’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허지웅의 첫 출전이 트리플스와의 원정 경기다.
절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공교로웠다.
한수는 빙긋 웃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트리플스를 엿 먹이라는 하늘의 뜻 같네.’
= = = = = = =
잠실 구장, 트리플스 프런트 오피스, 단장실.
이기혁 단장은 요즘 기분이 좋았다.
트리플스가 5위에 오르며 포스트시즌 진출을 향해 순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혁은 생각했다.
‘후후, 계획대로군. 1, 2, 3위는 불가능하지만···. 4위까지는 노려볼 만해. 그렇기 위해선 타이탄스와의 3연전에서 무조건 1승은 따내야 해.’
그리고 3연전 중 가장 승리할 확률이 높은 건 오늘이다.
오늘은 4선발인 잭 마티니가 마운드에 오르고, 내일은 5선발 기용찬, 모레는 염철수다.
‘내일과 모레는 포기하고, 오늘 총력전을 펼치는 거야.’
지난번 삼각 트레이드로 데려온 비밀 병기 이삼천 타자도 오늘 출전한다.
이기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삼천이 잭 마티니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주면 여한이 없겠는데···. 그러면 이한수 구단주도 속 좀 쓰리겠지? 흐흐.”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오형준이 단장실로 들어왔다.
이기혁은 오형준을 반갑게 맞이하려다가, 오형준의 표정이 어두운 걸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왜 이래? 어제까지만 해도 5위에 확실히 안착했다고 좋아했는데···.’
“오 팀장, 무슨 일이야?”
“저···. 그게···.”
오형준은 머뭇머뭇 A4 용지 한 장을 내밀었다.
이기혁은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뭐지?”
“···오늘 타이탄스 출전 명단입니다.”
“아~ 그래? 근데 왜···. 뭐야? 장은수가 선발이잖아? 젠장, 이래선 이삼천이 활약하기 힘든데···.”
이삼천은 잭 마티니처럼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좌우로 공을 던지는 커맨드가 뛰어난 투수한테는 강했지만, 변화구에는 약했다.
그러니 3대 마구(魔球) 너클볼을 상대하는 건 어려울 게 뻔했다.
이기혁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오늘 장은수가 실수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나?’
그때 오형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단장님, 장은수 말고···. 타이탄스 유격수가···.”
“유격수? 타이탄스 유격수는 김효철이 고정···.”
【7번 타자 : 허지웅(유격수)】
이기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김효철이 아니네? 허지웅···? 타이탄스 2군에 이런 이름의 유격수도 있었나?”
유격수는 중요한 포지션이라 각 팀의 뛰어난 인재는 전부 파악하고 있다.
그렇지만 허지웅이라는 유격수는 처음 들어봤다.
그러자 오형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포수였습니다.”
“······?”
“허지웅 말입니다. 7월까지는···. 저희 2군 포수였습니다.”
“뭐···? 자, 잠깐! 그, 그럼 설마 그때 삼각 트레이드로 데려간 하자 있는 포수···!?”
오형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네, 맞습니다.”
이기혁은 어이없단 표정으로,
“타이탄스 이 자식들 미친 거 아니야? 포수를 유격수로 출전시킨다고? 야구를 무슨 장난으로 아나···. 아니지, 이 자식들 지금 우리 무시하는 거지? 하! 100승 찍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장난을 치는 것도, 우리를 무시하는 거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야?”
“단장님, 타이탄스 구단주가 어떤 사람입니까?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입니다.”
“그건···.”
오형준은 출전 명단에 있는 허지웅의 이름을 보며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길 바라지만···. 괜히 걱정됩니다. 혹시 허지웅이···. 장문원처럼···.”
이기혁은 버럭 소리쳤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
“허지웅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포수만 하던 놈이야! 심지어 무릎까지 망가졌어! 그런 놈이 무슨···!”
“하지만 장문원도 타이탄스로 가기 전까진 무안타였습니다···.”
“시끄러워! 허지웅이 장문원? 말도 안 돼···! 자네가 육성팀한테 부탁해서 직접 확인했잖아! 허지웅한테 다른 포지션의 잠재력은 없다고! 그런데···!”
오형준은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분명 육성팀과 함께 허지웅의 잠재력 테스트를 했고, 잠재력이 낮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타이탄스는···. 이한수 구단주는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허지웅의 재능을 찾아냈을 수도 있어. 만약 그렇게 되면···.’
간신히 잠잠해진 장문원, 여은포 탈G 효과 사건이 재점화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나나 단장님이나 끝이야···.’
이기혁과 오형준은 오늘 경기에서 허지웅이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하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타이탄스와 트리플스의 1차전 경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