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 탈G 효과는 과학이니까!
불타는 금요일을 즐겨야 하는 저녁.
야구팬들은 잠실 구장으로 모여들었다.
왜냐면, 오늘은 KBO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세 구단 중 두 곳이 경기를 펼치기 때문이다.
바로, 타이탄스와 트리플스···. 엔꼴라시코다.
잠실에서 펼쳐지는 경기라 트리플스 팬들이 훨씬 많은 게 당연하건만, 잠실 구장 주변에는 타이탄스 유니폼 상의를 입은 팬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기존 타이탄스 팬들이 원정 경기를 많이 찾았을 뿐만 아니라,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며 KBO를 씹어먹고 있는 타이탄스를 응원하는 신규 팬들이 무척 많이 늘어난 덕분이다.
그래서 잠실 구장에 각양각색의 팬들이 모였다.
KBO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김유빈의 팬클럽.
“얘들아! 이따 유빈 오빠 타석에 서면 응원가 크게 불러야 해! 신입 회원분들도 가사 다 외웠죠?”
“네, 언니!”
“물론이죠!”
“자~ 그럼 다 같이 불러볼까요? 제가 선창할게요! 짜라! 짜라! 짜! 짜! 짜! 무조건, 김유빈이야! 짜라! 짜라! 짜! 짜···.”
타이탄스에서 후원 중인 보육원의 아이들도 서울 나들이를 왔다.
“얘들아~ 줄 서야지!”
“네~!”
“네, 원장님!”
“원장님! 우리 치킨 먹어요!”
“원장님! 오늘 유빈이 형 출전해요?”
“그럼~ 우리 이따 힘껏 응원하자!”
“네!”
타이탄스 구단 에이스 투수의 동창이자 타이탄스 장학금을 받고 서울에 있는 명문대로 진학한 김송이도 대학교에서 친해진 친구를 데리고 잠실 구장을 찾았다.
“송이야, 정말 철수 오빠랑 친구 맞아?”
“응, 집이 근처였거든. 초중고도 같이 나왔어. 근데 오빠 아니라니까? 철수 우리랑 동갑이야.”
“경기 끝나면 철수 오빠 볼 수 있는 거지?”
“···오래는 힘들고, 차 한잔 정도는 마실 수 있댔어. 혜주야, 근데 오빠 아니라니까?”
“대~ 박~! 빨리 철수 오빠 만나고 싶다~!”
“······.”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칭 갓단주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헬스 트레이너 김영복도 야구 뉴비인 후배와 함께 경기장을 방문했다.
“마! 오늘 투수가 누군지 아나?”
“누군데요?”
“니~ 너클볼이라고 들어봤나?”
“아뇨?”
“이기 3대 마구거든? 억수로 던지기 어려운 거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 그리고 오늘 타이탄스 선발 투수이신 장은수 선수가 바로 그~ 너클볼을 자유자재로 던지는 괴물 투수야!”
“오오···! 왠지 멋진 거 같습니다.”
“멋지지! 갓단주님이 미국에서 모셔온 초특급 유망주인데!”
“갓단주면···. 선배님께서 구해줬다는···.”
“뭐, 그렇지. 후후.”
김영복은 거들먹거리며 재차 말했다.
“궁금한 거 또 있냐?”
“음···. 아까부터 김유빈이란 이름이 자주 들리던데···. 누군가요?”
“타이탄스 1번 타자! 질풍의 사나이! 김유빈! 현재 도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야!”
“오~ 그러면···. 안종렬은요?”
“타이탄스의 최후의 보루! 불멸의 9번 타자! 종렬이 형! 타격 부문 기록이 모두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뛰어난 플레이어야!”
“오···!”
뉴비 후배는 핸드폰으로 타이탄스 출전자 명단을 살피다가 조금 낯설어 보이는 이름을 발견했다.
그는 김영복에게 물었다.
“허지웅은 누구예요? 유격수로 출전한다는데···.”
“유격수? 타이탄스 유격수는 김효철 선수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럭키 플레이어··· 어라?”
말을 멈춘 김영복도 눈을 크게 떴다.
뉴비 후배의 말대로 정말 타이탄스 유격수는 허지웅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허지웅은 누구야?’
타이탄스 출전 명단을 보고 놀란 건 김영복만이 아니었다.
인터넷 중계를 기다리던 팬들도 허지웅을 보고 말들이 많았다.
└오늘 김효철 왜 안 나오는 거임?
└유격수 허지웅? 인마, 누구임?
└7월에 삼각 트레이드로 데려온 포수임.
└포수?
└뭐야, 유격수라고 오타 난 건가?
└오타 아닌 거 같음. 하민철 포수 출전함.
└너클볼 놓치는 걸 막기 위한 전략인가?
└투 포수 전략? ㅁㅊ 투 배럭 따라 하네.
└투 배럭 ㅋㅋ 미친X들 ㅋㅋ
└유격수로 출전하는 게 맞는 거 같음.
└듣보잡 포수를 데려다가 유격수로 쓴다고? 페르난도 감독 109승 했다고 돌았나? 갓단주한테 돈으로 맞아야 정신 차리지!
└허지웅, 갓단주가 데려온 선수래.
└ㄹㅇ?
└ㅈㅉ?
└ㅇㅇ 진짜임. 내 친구의 여친의 오빠의 아빠가 타이탄스 프런트에서 일해서 알려줌.
└여친의 오빠의 아빠면 그냥 여친의 아빠 아님?
└태클 ㄴㄴ
└어쨌든 갓단주가 데려온 선수면 뭔가 있네.
└ㅇㅈ
└제2의 장문원이 되어주면 좋겠네.
└그런데 허지웅은 어디서 데려온 거임?
└트리플스.
└오?
└와?
└탈G 효과 나오나요 ㅋ
└탈G 효과는 과학이지!
허지웅과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가 커뮤니티로 슬금슬금 퍼져나갔다.
그리고···.
“플레이볼!”
타이탄스와 트리플스의 경기가 시작됐다.
= = = = = = =
허지웅은 원정팀 더그아웃에 앉아 불안한 표정으로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프로리그 데뷔 무대이지만···.
꿈을 이뤘다는 행복한 마음보다는 과연 이번 경기에서 잘할 수 있을지 불안한 생각만 가득했다.
허지웅은 침을 꼴깍 삼키며 홈팀 더그아웃으로 시선을 돌려 트리플스 선수들을 살폈다.
아는 얼굴도 있었고, 낯선 이도 보였다.
그때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트리플스 2군에서 재활 중이던 이원복 투수다.
‘역시 확대 엔트리에 포함됐구나.’
이원복은 허지웅한테 1군에 잘 말해 주겠다며 희망 고문을 하며 연습을 도울 걸 강요하던 선배였다.
[허지웅, 너는 그냥 아무 생각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그러면 내가 1군 무대로 불러줄게. 알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2군 선수를 1군으로 올리는 권한 감독이나 단장급 인사한테만 있는 걸 빤히 알았는데···.
‘왜 멍청하게 원복 선배 꼭두각시로 산 거지···.’
허지웅은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더욱 안색이 어두워졌다.
심상호 팀장의 정신교육으로 단단해진 멘탈이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 경기장에 환호성이 들렸다.
1번 타자 김유빈이 트리플스 선발 투수 독고준과 접전 끝에 안타를 쳐서 1루 베이스를 밟았다.
이어서 2번 타자 오재근이 타석에 섰고, 3번 타자 손재현이 대기석으로 향했다.
허지웅은 손바닥으로 양쪽 볼을 두어 차례 두드리며 정신을 차렸다.
‘트리플스에서 일은 잊자. 나는 이제 타이탄스 선수야. 우리 팀의 승리만 생각하자!’
그렇게 다짐했지만, 떨리는 다리는 여전했다.
이종규 타격 코치는 그런 허지웅을 지켜보다가 페르난도 킴 감독에게 다가가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웅이가 불안해 보입니다. 이대로 출전시켜도 될까요? 저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지금이라도 효철로 교체하는 게 어떤가요?”
페르난도 킴 감독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지웅은 교체하지 않을 겁니다.”
“네? 하지만···.”
“누구나 처음은 떨리는 법이죠. 연습에서 충분히 잘해줬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도 잘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이 코치님도 허지웅 선수를 믿어주세요.”
“음···. 알겠습니다.”
이종규 코치가 물러나자 박동준 QC 코치가 혀를 차며 페르난도 킴 감독한테 말했다.
“믿기는 개뿔. 구단주가 트리플스 3연전에 허지웅 무조건 출전시키라고 지시해서 이러는 거잖아요.”
“그런 이유도 있긴 하죠. 하지만 허지웅 선수를 믿는 것도 사실입니다.”
“선수를 아끼는 이종규 코치가 그 사실을 알면 귀찮아지기 때문이겠지.”
“···동준, 오늘따라 까칠하네? 혹시 명숙 씨랑 무슨 일 있어?”
그 말에 박동준은 화들짝 놀라더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 일이 있긴 무, 무슨 일이 있다고 그래! 시, 시끄럽고 경기나 집중해!”
페르난도 킴은 멀찍이 떨어져 앉는 박동준을 보며 생각했다.
‘뭔 일이 있긴 한가 보네. 음···. 설마, 고백했다가 차이기라고 했나?’
페르난도 킴 감독의 예상대로 박동준은 며칠 전 김명숙에게 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미안해요. 박 코치님이 싫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저도···.]
[그럼···!]
[···저한텐 철수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거든요.]
[······.]
[철수한테 상처 주는 일···. 하고 싶지 않아요. 미안해요.]
···박동준은 김명숙한테 차였다.
그래서 무척 예민해졌고,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페르난도 킴의 능구렁이 같은 태도까지 태클을 걸고 말았다.
박동준은 벤치 구석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한심하네···. 괜히 페르난도한테 심술이나 부리고···.’
이때 염철수는 더그아웃 뒤쪽 벽에 기대서 가만히 박동준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빛은 조금 복잡해 보였다.
그때였다.
-따아아악!
-와아아아아아!
시원한 타격음과 관중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더그아웃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홈~런! 3번 타자 손재현 선수! 오랜만에 시원한 홈런을 쳤습니다!]
[손 선수의 배트가 7경기 만에 불을 뿜는군요!]
[타이탄스 1회 초부터 3점을 올립니다! 독고준 투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야 해요!]
[손재현 선수는 34홈런으로 다시 홈런 3위가 됐네요!]
[홈런 1위 장문원 선수와 차이가 크지만, 손 선수의 시즌 초반 기세가 살아나면 8개 차이는 금방이거든요?]
[그렇지만 문제는 장문원 선수가 가만히 있을 타자가 아니라는 거죠.]
[그건 그렇죠. 자~ 말씀드리는 순간, 타석에는 타이탄스 4번 타자 장문원이 섭니다!]
그리고···.
장문원은 홈런왕은 본인 거라고 선언이라도 하듯···.
-따아아아악!
독고준의 초구를 홈런으로 만들어버렸다.
원정팀 팬들은 미친 듯이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중계진들 또한, 극찬에 극찬을 이어갔다.
마운드의 독고준은 머리에 쓴 모자를 벗어 바닥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젠장···!!!”
= = = = = = =
원정팀, VIP 관중석.
한수는 장문원이 홈런을 친 순간, 빈 맥주캔을 손으로 꽉! 쥐어 찌그러트리더니,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야~ 장 선수, 진짜 멋지네! 덕수야, 장 선수의 차가운 눈빛 보이냐? ‘마! 홈런왕은 내 거야!’라고 소리치는 거 같지 않냐!”
옆에서 치킨 다리를 먹고 있던 강덕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냥 피곤해 보이는 거 같은데요.”
“······.”
“저···. 구단주님, 치킨 다리 안 드시면 제가···.”
“그래, 다 처먹어라. 다 처먹어.”
“네! 감사합니다.”
한수는 강덕수가 홈런보다 치킨에 더 관심을 드러내자 혀를 차며 생각했다.
‘덕수 이놈이랑 야구를 보면 혼자 떠드는 거 같아서 재미가 없다니까.’
차라리···.
‘내 옆에 이 팀장이 있었다면···.’
한수는 움찔하며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미쳤구나, 미쳤어.”
그때 강덕수가 말했다.
“어~! 구단주님, 나왔어요.”
“뭐가?”
“구단주님이 기다리던 허지웅이요. 드디어 타석으로 나왔어요.”
“그래?”
한수는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내고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덕수의 말대로 타석에는 6번 타자 허지웅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한수는 생각했다.
‘어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네.’
강덕수가 치킨 몸통을 잡으며 말했다.
“구단주님, 허지웅 선수 너무 긴장한 것 같은데요? 저건 딱 삼진 각인데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치킨이나 뜯어.”
“네···.”
한수는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허지웅 코인···. 난 네가 떡상할 거라고 믿어.”
왜냐면···.
‘탈G 효과는 과학이니까!’
그 순간, 마운드의 독고준 투수가 와인드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