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 탈G 효과는 마법이다!
허지웅은 더그아웃에서 손재현과 장문원이 홈런을 치는 모습을 보고 몹시 부담감을 느꼈다.
그리고 타자 대기석에서···.
윤진호가 안타를 쳐서 1루 베이스를 밟는 순간, 식은땀까지 흘렀다.
그는 타석에 서서 생각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심상호 팀장은 자존감이 낮은 허지웅에게 말했다.
경기에 나서면 정신 차리고 상대 팀을 물어뜯을 궁리만 하라고···.
그 외에 불안한 생각들은 집어치우라고!
‘하지만···.’
타석에서 1루 베이스를 힐끗 쳐다보니, 숨이 막혀왔다.
그 순간, 독고준 투수가 와인드업했고, 150km의 포심 패스트볼이 포수 미트에 꽂혔다.
허지웅의 아차 하며 몸을 움찔했다.
잡생각에 빠져서 공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다니···.
‘심 팀장이 TV로 보고 계실 텐데···. 부산으로 돌아가면 혼날지도···.’
정신 차리고 집중하자고 생각한 순간, 트리플스 포수 엄천호가 독고준에게 송구하며 말했다.
“우리 2군에 있을 땐, 무릎은 병신이어도 겁쟁이는 아니었는데···. 타이탄스 가더니 새가슴이 됐나 봐?”
“······.”
“하긴~ 타이탄스 XX들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갈매기 XX니까 새가슴 되는 게···.”
허지웅은 험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병신 취급하는 건 상관없는데, 우리 팀을 욕하진 마십쇼.”
“뭐? 마십쇼? 이 배신자 XX가 선배한테 어디 건방지게···.”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자, 허지웅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었다.
타이탄스로 가서 성공한 장문원을 보고 ‘나도 타이탄스로 가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가려고 욕심을 낸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를 입단시켜준 트리플스 구단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더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그런데···.’
허지웅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왜 배신자입니까? 제가 타이탄스로 보내달라고 했습니까?”
“뭐? 이 XX가 그게 지금···.”
둘의 언쟁이 심해지자 심판이 엄한 목소리를 냈다.
“둘 다 적당히 해. 경기 진행 안 해?”
“······.”
“······.”
허지웅과 엄천호는 서로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자세를 잡았다.
엄천호는 이를 갈며 허지웅의 대가리에 공을 맞히라는 사인을 보낼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심판이 상황을 다 알고 있는데, 이 다리 병신 XX 대가리에 공을 맞히면 나한테 비난의 화살이 쏘아질 수 있어. 그건 안 돼···.’
그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주제 파악하게 밟아 버리는 수밖에 없겠네···.”
귀가 밝은 허지웅은 엄천호의 중얼거림을 듣고 배트를 꽉 쥐었다.
처음 타석에 섰을 때 느껴졌던 두려움은 싹 사라졌고 지금은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나를 무시하는 엄천호한테 한 방 먹이고 싶어!’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허지웅은 와인드업하는 독고준을 노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치는 거야···.”
손재현이나,
“나도···.”
장문원···.
“그 두 사람처럼···.”
눈을 부릅뜨며 날아오는 공을 주시했다.
그러자 공의 미세한 떨림을 시작으로 실밥 하나까지 보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는 배트를 휘둘렀다.
수백, 수천, 수만 번을 넘게 훈련하며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가장 자신 있고 완벽한 스윙.
타고난 힘 덕분에 후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거센 바람이 배트에서 휘몰아쳤다.
그리고···.
‘홈런을 칠 거야!!’
-따아아아아악!
강렬한 타구가 하늘을 가르듯 날아갔다.
독고준은 1회 초에만 세 개 홈런을 맞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지 모자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젠장···! 씨X···!”
엄천호 포수는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외야수들에게 막으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타구는 너무나도 높았고, 아득히도 멀리 날아갔다.
엄천호는 오만상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미친, 어디까지 날아가는 거야···!’
[허지웅 선수~! 홈런~ 홈런입니다!]
[와! 비거리가 어마어마합니다! 허 선수, 대체 힘이 얼마나 좋은 겁니까?]
[조금만 더 높았으면 경기장 밖으로 날아갈 뻔했습니다!]
[허지웅 선수, 처음에는 무척 긴장한 걸로 보였는데···. 아주 놀라운 한 방을 선보이네요!]
[타이탄스 2점을 추가하며 6 대 0으로 앞서 나갑니다.]
[아~ 트리플스 입장에서 이번 홈런은 속이 무척 쓰릴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허지웅 선수는 얼마 전까지 트리플스 2군의 포수였거든요.]
[맞습니다. 저런 장타력을 보유한 선수는 흔치 않은데요···. 물론 이제 첫 타석이니 좀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만···.]
[그렇죠. 특히 허지웅 선수는 유격수로 출전했거든요? 과연 그가 수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허지웅은 베이스를 돌아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리고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엄천호한테 말했다.
“저는 배신자가 아닙니다. 전 트리플스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저를 버린 건···. 트리플스입니다.”
“······.”
“앞으론 말씀을 가려서 해주세요. 그럼.”
허지웅은 더그아웃으로 향하며 쿵! 쿵! 거리며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내가 홈런을···. 홈런을 쳤어.’
그리고···.
‘베이스를 돌았어···. 아무렇지 않게···. 편안하게···.’
무릎을 다쳤을 때 악몽이 깨끗이 씻겨나간 기분이다.
대체 왜 지금까지 그렇게 두려워했던 걸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건데···.
그때 더그아웃에서 그를 반겨주는 타이탄스 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허지웅은 그들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타이탄스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그렇게···.
【허지웅, 세계에서 두 번째로 5연타석 홈런 기록!】
【탈G 효과는 과학? 아니! 마법이다! 트리플스가 버렸던 삼류 포수 허지웅! 타이탄스에서 초특급 슬러거로 부활!】
【허지웅! 5연타석 홈런으로 10타점 기록! 타이탄스 18대 2로 대승!】
【갓단주 이한수! 또 잭팟을 터뜨렸다! 공수 완벽한 S급 플레이어 허지웅! 유격수로 만점 활약!】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내야 거포형 타자 허지웅! 앞으로가 기대되는 초신성!】
···허지웅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2차전은 물론···.
【허지웅, 트리플스와의 2차전에서 사이클링히트 기록!】
【장문원, 2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45홈런 달성!】
【여은포, 19경기 연속 홈런 기록! 완벽한 세이브까지! 그야말로 전천후 투타 겸업!】
【‘탈G 효과는 마법이다!’를 입증하는 타이탄스 신인 삼인방!】
3차전에서도···.
【허지웅! 미친 호수비로 타이탄스를 위기에서···!】
【접전 중에 터진 허지웅의 홈런! 트리플스의 심장에 비수가 되어···.】
【허지웅의 홈런 덕분에 2대 0으로 승리한 타이탄스!】
【세 경기 만에 7홈런을 기록한 허지웅! 설마, 홈런왕 경쟁에 합류하나?!】
···허지웅은 대활약하며 타이탄스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트리플스 이기혁 단장은···.
“으아아악! 빌어먹을! 빌어먹을!!!”
단장실의 물건을 집어 던지며 발광하고 있었다.
설마 했던 허지웅이 5연타석 홈런에, 사이클링히트, 역전홈런까지 하며 미친 경기력으로 선보였다.
반면에 간신히 데려온 이삼천은 3경기 1안타 0타점으로 한심한 모습만 보여줬다.
이기혁은 간신히 잠잠해졌던 ‘탈G 효과는 과학이다!’ 도화선에 다시 불이 붙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번에 불이 붙으면···.
‘나는 끝장이야! 어떻게든, 어떻게든 방법을···!’
그때 홍보팀 직원이 단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소리쳤다.
“단장님! 지, 지금 큰일 났습니다! 팬들이···!”
팬들이라는 말에 이기혁은 생각했다.
‘X 됐다.’
이기혁의 예상대로 야구팬들, 정확히는 트리플스 팬들은 정말 난리가 났다.
└미친 개호구 같은 트리플스 단장 XX야!
└난 진짜 장문원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거든. 올해는 트리플스 프런트가 더는 병X 호구 같은 짓 안 하겠지···. 그렇게 안심했다고···. 그런데 XX! 니들이 어떻게 이러냐?
└트리플스 프런트 개XX들아. 뒈지기 싫으면 다 나가라!
└5연타석 홈런? 5연타서어억 호오오옴러어어언? 에라이! 단장 이 머저리 XX!
└이쯤 되면 탈G 효과는 과학이 아니고 마법이네.
└탈G 효과는 마법이다···. 명언이네.
└명언은 무슨! XX! 단장 XX야! 허지웅 당장 데려와라! 못 데려오면 네 대가리 깨러 간다!
└오랜 약점을 해결해줄 세 선수를 손수 버리네.
트리플스의 오랜 약점은 거포의 부재다.
그런데 장문원, 여은포, 허지웅 모두 홈런을 뻥뻥 때리며 시원한 장타력을 뽑냈다.
그래서 트리플스 팬들은 더욱 화가 났다.
└이쯤 되면 이기혁 단장 타이탄스 끄나풀 ㅇㅈ?
└무조건이지.
└이기혁 XX 뒤 좀 털어봐야 함.
└이딴 팀을 십 년 넘게 응원한 스스로가 한심하다.
└이기혁 단장은 병X인다. 이한수한테 그렇게 당하고 또 당했다. 이기혁 단장은 분명 상병X이다.
└프런트 물갈이 좀 해야겠다.
└겨우 물갈이? 전부 죽여야 함.
└다음 스토브리그 때 피바람이 불겠구나.
└까짓 거 내 칼춤 한 번 춰주지!
└깨알 이중구 드립 ㅋ
└피바람이든 칼춤이든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그냥 타이탄스 팬들이 부러워. 미친 X나 부러워.
└ㅇㅈ···.
└신바람 야구 어디 갔니···.
└트레발, 트레발 놀림을 받으면서도 트리플스를 응원한 나한테 너희가 어떻게 이래!?
└이 죽일 놈의 트리플스!
= = = = = = =
3차전이 끝나고, 잠실 구장 VIP 관중석.
한수는 맥주를 시원하게 원샷하며 소리쳤다.
“캬아! 아주 시원하네! 시원해!”
먹은 음식을 정리하던 강덕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구단주님, 승리 축하드려요.”
“땡큐! 아! 그리고 허지웅 선수한테 줄 특별 선물 제작은 어떻게 됐어?”
한수는 트리플스와의 1차전이 끝나고 강덕수에게 허지웅이 다섯 번째 홈런을 쳤을 때 모습을 금으로 조각해서 선물하라고 지시했었다.
강덕수는 핸드폰으로 일정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주문해뒀습니다. 2주 뒤에 완성된다고 합니다.”
“오케이. 그럼 가볼까?”
“네!”
경기장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던 도중, 강덕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조금은 뜬금없고, 듣기 싫지만, 궁금한 주제를···.
“사모님께서 돌아가신 회장님 비서실 직원이랑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 가족들을 만나셨습니다.”
강덕수가 말하는 사모님은 한수의 어머니 오정숙이다.
한수는 잠깐 걸음을 멈칫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그래?”
“희수 아가씨가 모시고 가셨고, 희수 아가씨도 모든 사정을 알게 된 거 같습니다.”
“···이재수는?”
“사모님께서 거리를 두시자마자 부회장님께서 뉴욕으로 보냈습니다.”
“뉴욕?”
“내후년에 신영 디펜스 부사장으로 보내기 전에 외국 방산 시장이 어떤 식으로···.”
“아~ 됐어. 됐어.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아.”
한수한테 중요한 건 오정숙과 이재수의 동맹이 어떻게 됐는지와 통합 우승 이후 이재수의 손에 장을 지질 수 있는지 뿐이다.
‘어머니랑은 깔끔히 끝난 거 같고···. 손에 장을 지지는 것도 시간문제 같으니···. 걱정할 건 없겠네.’
그때 강덕수가 물었다.
“사모님께 연락드려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됐어. 지금은 나를 보고 싶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 더는 신경 쓰지 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차에 탔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엔젤 그룹은 트리플스 팬들의 어마어마한 분노를 잠재우고자 직접 나섰다.
【엔젤 그룹, 트리플스 이기혁 단장 경질.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고개 숙여 사과. “실망을 드린 팬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엔젤 그룹 부회장, 경찰에 이기혁 전(前) 단장에 대한 조사 의뢰. 타이탄스 구단주와의 불법적인 커넥션이 있었는지 반드시 찾겠다는···.】
이기혁 단장은 쫓겨났고, 한수와 이기혁이 부정한 거래가 있었을 게 분명하며 수사까지 진행됐지만···
【타이탄스와 이기혁 사이에 불법적인 커넥션은 전혀 없었다. 스스로 무능하단 사실만 재차 밝힌 트리플스!】
└이럴 줄 알았다!
└삼둥이놈들 뱀심 역겹네.
└자기들이 선수 재능 알아보지 못해놓고 한심하네.
└어디 감히 갓단주를 의심하냐? 쯧쯧.
└근데 진짜 의심할 만도 함. 데려오는 선수마다 대박을 터뜨리는데···.
└의심이 정당하다는 거임?
└그런 말이 아님. 그 정도로 갓단주가 대단하다는 거지.
└ㅇㅈ
한수는 무혐의가 밝혀지자마자 엔젤 그룹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