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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세상은 불타고 있었다.
회색 머리카락의 남자 앞에 거대한 흑룡이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카일.
“말하지 마. 반드시 구해낼 테니까!”
카일이 이를 악물며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거대한 마력이 넘실거렸다.
그러나 드래곤의 배에 뚫린 거대한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젠장! 젠장! 너마저 잃을 순 없다고!”
-아니…… 난 틀렸다. 카일. 그러니 내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라.
“이봐, 그런 미친 소리 좀 그만하고 입 닥쳐!”
카일이 거칠게 말했다.
“아르온이랑 루나! 드웨노처럼 허무하게 뒈지지 말라고! 넌 드래곤이잖아! 위대한 종족답게 버텨! 이 망할 도마뱀아!”
-카일……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지?
숨을 삼켰다.
그때와 똑같은 미소를 지은 리시나스가 말했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할 거야.
“그러니까 우리…….”
-미안…… 혼자 떠안게 해서.
스르륵- 눈꺼풀이 감겼다.
“…….”
숨이 끊긴 흑룡을 보며 카일은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비가 내렸다.
생명을 갉아먹는 죽음의 비.
세상이 멸망을 향해 치닫는다는 증거.
“하하하…… 빌어먹을.”
비를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카일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동료의 심장을 헤집고 심장을 꺼낸 카일이 고개를 돌렸다.
멀리, 불타는 탑이 보였다.
“에레보스.”
씹어 내뱉듯 원수의 이름을 내뱉었다.
“반드시 네놈을 죽여주마. 나 혼자 남았다고 해도.”
최후의 대영웅이 결전의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세상은 한 인간에 의해 구원받았다.
***
“레오~ 엄마가 동화책 읽어줄게.”
플로브 가문의 안주인.
레이나 플로브는 이제 한 달 된 아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데이드 플로브가 웃음을 터트렸다.
“레이나. 그 동화책은 벌써 백번도 넘게 읽어 줬잖아? 태교 때까지 합치면 천 번도 넘었겠어.”
“하지만 데이드. 이 동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위대한 대영웅들의 이야기인걸?”
레이나는 요람 속에서 곤히 자는 아들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레오는 이 동화책을 제일 좋아해. 읽어줄 때마다 기뻐한다니까?”
“정말?”
“응. 한번 볼래?”
레이나는 요람 앞으로 다가가 동화책을 펼쳤다.
“레오야~ 엄마가 [시작의 영웅들] 동화책 읽어줄게.
레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5000년 전에…….”
“아부! 아브브! 아드드!”
“봐!”
“하하, 진짜구나!”
도리질 치며 옹알이를 하는 아들을 보며 데이드 플로브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긋 웃으며 레이나는 동화책을 계속 읽어나갔다.
엘프 대마법사 루나.
드워프 마스터 스미스, 드웨노.
수인 전사 아르온.
마지막으로 지혜로운 드래곤 리시나스.
“그렇게 대영웅들은 나쁜 에레보스를 물리치고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끝!”
“아부! 아그그그!”
레오는 짧은 팔과 다리를 격하게 휘둘렀다.
아들을 보며 부부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부모님을 보며 레오는 속으로 외쳤다.
‘그 망할 동화책 좀 제발 그만 좀 읽으라고!’
플로브 부부가 알았다면 깜짝 놀랐을 일이다.
이제 막 태어난 자신들의 아이가 이렇게 또렷한 의사를 가지고 있다니!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의 정체였다.
옛날,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5000년 전.
세상을 구한 대영웅 중 한 사람이었다.
카일.
태초의 악 에레보스을 토벌하고 세상을 구원한 남자.
하지만 세계의 역사에서 잊힌 불행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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