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아아! 영웅 명가분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집은 벌써 그분들을 위한 파티 준비를 끝냈어!”
수업이 끝난 델란 학생들은 들뜬 반응을 보였다.
오늘부터 루메른 아카데미의 후보생들의 델란 방문이 시작된다.
델라드 왕국 귀족들은 영웅 명가 사람들을 집에 모시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영웅 명가.
대대로 영웅을 배출해온 최고의 가문들에게 붙여지는 영광스러운 호칭이다.
당연히 루메른에 입학할 확률도 높았다.
“걸리번. 이번에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영웅 명가 중 가장 명성이 높은 곳은 어디라고 생각해?”
“훗, 당연히 제르딩거지.”
걸리번의 말에 그의 친구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제르딩거는 당연히 트라든 가문을 방문하겠지?”
“당연하지! 지금 우리나라에서 루메른 입학시험을 치를만한 인재는 걸리번 뿐이잖아?”
띄워주기 정신없는 친구들을 보며 걸리번이 으스댔다.
“후…… 제르딩거의 사람들과 영웅에 관해 논할 걸 생각하니 벌써 기대되는걸?”
“크으! 야! 부럽다! 부러워!”
“걸리번! 나중에 너희 집에 가도 되냐?”
“안 될 건 없지.”
“오오! 고맙다!”
“걸리번!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나도!”
걸리번 트라든.
트라든 후작가의 후계자로 델라드 최고의 마법 천재로 불리고 있었다.
열다섯의 나이에 2서클.
세간에는 루메른에 입학할 인재라고 주목받고 있었다.
델라드 왕국에서 루메른 입학생을 마지막으로 배출한 건 20년 전.
그렇다 보니 왕국 차원에서도 걸리번을 주목하고 있었다.
모두가 들떠 있는 가운데.
창밖에 있던 학생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얘들아! 저거 제르딩거 가문기 아니야?”
“헉? 어디? 어디?”
“벌써 왔다고?”
학생들이 우르르 창으로 몰려들었다.
그런 가운데 레오는 관심 없다는 듯 교실을 나갔다.
그러다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 걸리번 패거리와 눈이 마주쳤다.
“훗! 너 지금 눈도장 찍으러 가냐? 제르딩거 가문 사람들은 너 따위한테 관심 없을 텐데?”
걸리번이 레오를 비웃었다.
걸리번은 모든 방면에서 최고 우등생으로 평가받는 학생이었다.
그런데도 걸리번은 레오를 시기하고 있었다.
그가 절대 레오를 이길 수 없는 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전투 수업.
교수들 역시 노골적으로 걸리번을 편애하기에 실기시험에서 레오와 걸리번을 붙이지 않고 있었지만, 결과는 뻔했다.
레오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하교하는데.”
“훗, 주제 파악을 잘하고 있군.”
“그래. 가서 제르딩거에게 실컷 꼬리나 흔들어라.”
“말 함부로 하지 마라. 나는 경쟁자로서 셀리아 제르딩거를 확인하러 가는 것뿐이니까.”
걸리번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두 사람 사이에 살벌한 기류가 흐를 때였다.
[교무실에서 알립니다. 지금 모든 학생은 연회 강당으로 집합하시기 바랍니다. 한 명도 예외는 없습니다.]
교내에 마법 방송이 울려 퍼졌다.
집합 이유는 불 보듯 뻔했다.
제르딩거 사람들을 환영하기 위해서였다.
‘이래서 일찍 가려고 했는데.’
속으로 투덜거렸다.
걸리번이 코웃음을 치고 교실을 나갔다.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연회 강당으로 향했다.
머리를 벅벅 긁던 레오가 투덜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째자.’
“어? 레오, 너는 안 가?”
“집에 간다.”
“뭐? 모처럼 제르딩거 가문의 사람들을 볼 기회인데?”
“관심 없어.”
손을 휘휘 저으며 연회 강당 반대편으로 가는 레오를 보며 같은 반 학생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방문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지스 제르딩거님!”
제이든 교수가 상기 된 얼굴로 소리쳤다.
다른 학생들 역시 선망 어린 눈으로 지스를 보았다.
“이렇게 환영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이 학생은 걸리번 트라든. 이번에 루메른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치르는 학생이죠!”
“그렇습니까? 마침 제 조카도 이번에 입학시험을 치릅니다.”
학생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향했다.
제르딩거의 기사들과 함께 서 있는 소녀.
셀리아 제르딩거.
제르딩거 가주의 여식.
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검의 공녀였다.
학생들의 시선에 셀리아가 어깨를 활짝 폈다.
걸리번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런 셀리아를 보았다.
‘아, 아름답다!’
검은 머리카락에 커다란 루비 같은 붉은색 눈동자.
콧대는 오뚝했고 입술은 빨갛다.
여러 귀족 여식들을 봐 왔지만 셀리아 만큼 아름다운 소녀는 본 적이 없었다.
“셀리아, 이리 오거라.”
지스의 말에 셀리아가 성큼, 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걸리번을 향해 생긋 웃었다.
“너도 입학시험을 치니? 우리 함께 힘내자.”
“그, 그래! 우리 함께 좋은 경쟁을 해보자. 하하하!”
걸리번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셀리아가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스가 팔꿈치로 툭- 옆구리를 치자 그제야 손을 맞잡았다.
걸리번이 헤벌쭉한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학교를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좋은 말도 조금 해주시죠.”
“후후. 제 말이 큰 도움이 되려나 모르겠군요.”
“지스 제르딩거님의 말씀이면 큰 도움이 되죠!”
플레임 블레이드라는 별칭을 가진 그는 제국에서 손에 꼽히는 기사다.
그 무용담은 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
곧 영웅의 칭호를 받을 것이라 평가받는 그의 말 한마디의 값어치는 엄청났다.
“그나저나 머물 곳은…….”
“머물 곳은 이미 정해뒀습니다.”
“그, 그렇군요.”
제이든 교수가 얼굴을 흐렸다.
“그래서 말입니다.”
“예!”
“레오 플로브 학생을 만나고 싶습니다만.”
“예?”
제이든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걸리번은 눈을 부릅떴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레오 플로브를 알고 있지?’
지스는 델라드 왕국 최고 인재라고 평가받는 걸리번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데 어떻게 레오는 알고 있단 말인가?
“레, 레오 학생은 어떻게 아시는 건가요?”
“아는 분께 뛰어난 인재라고 들었습니다.”
“지스 제르딩거님께서는 무언가 착각한 게 아니실까요?”
꼴도 보기 싫은 레오의 이름이 거론되자 걸리번이 살짝 발끈했다.
“내가 뭘 착각했다는 건가?”
“레오 플로브는 저와 같은 반 학생입니다. 분명 뛰어난 학생이긴 하지만…….”
걸리번이 고개를 저었다.
“그 친구는 오러 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합니다.”
“그런가?”
델란 왕립 학교 관계자들은 걸리번이 지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며 감탄했다.
걸리번도 자신의 대담함에 몸을 떨었다.
‘지스 제르딩거가 내 의견을 들어주다니!’
지스의 끄덕임을 긍정이라 생각한 걸리번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르딩거 사람들은 걸리번을 비웃었다.
지스는 가문에서 혈족들의 지도를 책임지고 있다.
가주조차 아이들의 자질을 논할 때 지스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런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의견이랍시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하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래서, 레오 플로브는 어디 있습니까?”
걸리번을 거들떠보지 않고 다시 묻는 지스.
걸리번은 당황했고 제이든은 다급히 말했다.
“레오 플로브 학생! 앞으로 나오세요!”
“…….”
“레오 학생?”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교수님, 레오는 아까 마차 타고 집으로 돌아갔는데요?”
“뭐, 뭐라고요?”
제이든이 입을 떡 벌렸다.
“분명 모든 학생은 모이라고 했을 텐데요?”
“그…… 자기는 제르딩거 분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셀리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스는 빙그레 웃었다.
‘역시 누님의 아들답군.’
***
델란 왕립 학교의 일정을 끝낸 지스와 셀리아는 마차에 올라탔다.
배웅을 나온 이들은 두 사람이 타는 마차를 보고 흠칫했다.
‘그, 그리폰?’
환수가 이끄는 마차라니!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사이 마차가 출발했다.
“아아, 대체 어느 가문에서 머무실까?”
“부럽다, 부러워.”
학생들이 중얼거리는 사이.
떠나가는 제르딩거 가의 사람들을 보며 걸리번은 주먹을 꼭 쥐었다.
‘루메른에 입학하면 저런 소녀들과 함께 공부하는구나!’
역시 뛰어난 인재인 자신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그렇게 확신하며 걸리번이 눈을 빛냈다.
‘일주일 후에 있을 입학시험! 꼭 통과하고 말겠어!’
한편.
그리폰 마차 안에서 지스가 물었다.
“델란 왕립 학교 학생들은 어땠지?”
“엉망이던데요.”
셀리아가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짧은 시간 동안 델란 왕립 학교에서 가르치는 영웅학 내용을 들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들을 가치도 없었다.
나라 불문, 종족 불문.
선대 영웅에 관한 연구를 하는 영웅학은 영웅을 목표로 하는 이에게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
하지만 델란 왕립 학교의 수업 내용은 죄다 엉터리였다.
“게다가 걸리번인가?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감히 삼촌의 말에 토나 달고 말이죠.”
“지금 우리가 방문하는 가문은 조금 다를 거다.”
“플로브 가문이라고 했죠?”
셀리아는 조금 전 일을 떠올렸다.
분명 먼저 간 학생 중 제르딩거 가문에 관심 없다고 한 이가 있었다고 했다.
‘흐응. 시건방진 녀석.’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셀리아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기사학과 지망 같은데 그 나이에 오러도 다루지 못한다고?’
셀리아는 레오에게 도저히 흥미가 일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가는 곳이 사촌의 집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한편 지스는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가문을 떠나지 않았다면 요직을 맡았을 누님이야.’
현 가주인 셀드 제르딩거.
그리고 지스, 레이나.
세 남매는 가문의 미래라 평가받던 이들이다.
불의의 사고로 가문을 떠났지만 레이나의 실력은 지스가 잘 안다.
그런 누이가 ‘천재’라고 평가한 조카다.
게다가…….
‘오러를 다루지 못한다라?’
기사를 지망하는 귀족가 아이들에게 오러는 필수.
어릴 때부터 오러를 익힌다.
그런데 레오는 오러를 다루지 못한다고 했다.
‘어떤 아이일지 기대되는군.’
***
저녁 시간.
연무장에 혼자 남은 레오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조금 전 수련을 마쳤기에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릇은 완성되었군.’
지금까지 오러를 익히지 않은 이유.
어머니의 수업에 발을 맞추기 위함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무인의 자질만 본다면 전생 카일의 몸보다 지금의 몸이 낫다.
하지만 다른 능력인 마법사와 소환사의 자질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함부로 오러를 익히지 않았다.
전생에 카일은 전투에 이골이 난 전사였으며 강대한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이자 정령과 환수의 맹약자였다.
한 명, 두 명.
친구들이 숨을 거두는 와중에도 토벌대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모든 이능을 섭렵했던 카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녀석들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었지.’
최후의 전투 직전.
혼자남은 카일에게는 동료들이 가졌던 힘의 정수가 남아 있었다.
그들이 맡긴 의지이자 희망.
‘전생에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지만, 이번 생에서는 완벽하게 다루겠어.’
오러를 몸에 받아들이는 순간 육체는 자연스럽게 오러에 특화된다.
그렇게 되면 마력과 영력을 쌓을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다.
그렇기에 기반을 다져왔던 것이다.
동료들의 의지를 잇기 위해서.
레오가 주먹을 꾹 쥐었다.
‘우선은 오러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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