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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5화 (5/483)

【5】4

기절한 셀리아를 내버려 둔 레오는 저택으로 돌아왔다.

저택 거실에서는 레이나와 지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제르딩거의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아들을 발견한 레이나가 웃었다.

“오늘 수련은 끝냈니?”

“네, 어머니.”

레이나의 물음에 대답한 레오는 힐끔 지스를 보았다.

‘제르딩거, 제르딩거 하더니. 대단하긴 하네.’

전생에도 이만한 무인은 보기 드물었다.

‘영웅 명가라는 이름이 헛된 건 아닌 모양이군.’

“레오, 이쪽은 지스 제르딩거. 이번에 가문을 찾은 손님이란다.”

“레오 플로브라고 합니다.”

“지스 제르딩거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네 삼촌이란다. 편하게 대하렴.”

“편하게 대하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제게는 제르딩거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르딩거는 아니죠.”

선을 명확하게 긋는 레오의 모습에 지스가 눈을 빛냈고 레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아들은 귀여운 맛이 없다니까.’

지스 제르딩거.

현재 제르딩거 가문의 부가주이자 공식 권력 서열 2위.

보통 레오 또래라면 그만한 인물이 친근하게 ‘삼촌’이라고 하면 들뜨기 마련이다.

그러나 혈연으로는 이어져 있을진 몰라도 족보상으로는 남이다.

제르딩거의 가문 법은 매우 지엄하다.

레이나가 지스를 삼촌이라 소개하지 않은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레오도 그걸 짐작했기에 물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너를 조카라 부르지 못하겠구나.”

“알겠습니다.”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레오를 보며 지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누님의 아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호호호. 그게 무슨 뜻일까?”

지스의 발을 밟으며 웃던 레이나가 물었다.

“레오. 연병장에서 셀리아라는 아이를 보지 못했니?”

“걔요?”

레오가 저택의 정문을 힐끔 쳐다보았다.

게거품을 물고 들것에 실려 오는 셀리아가 있었다.

“헉! 아, 아가씨!”

“이게 무슨!”

제르딩거의 기사들이 경악했다.

“허.”

지스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오러를 익히지 않은 몸으로 셀리아를 이겼단 말인가?’

“휘튼 경, 무슨 일이 있었지?”

지스의 물음에 휘튼이 연병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지스가 고개를 저었다.

패배의 원인은 명백했다.

‘오만.’

셀리아는 레오가 오러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과소평가했다.

물론 상식적으로 본다면 틀린 생각도 아니다.

오러 사용자와 비사용자의 전투력 차이는 엄청나다.

하지만 셀리아가 방심해서 당했다는 건 변함 없다.

‘그리고 그건 제르딩거의 방식이 아니지.’

지스가 레오 앞에 섰다.

“셀리아를 이기다니, 대단하구나.”

“이 애는 저를 얕잡아 봤으니까요.”

“그래. 그런데 셀리아와 너 사이에 약속이 있는 것 같구나.”

“예. 셀리아 제르딩거와 내기를 했어요.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종이 되기로 했죠.”

“무슨!”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제르딩거의 기사들이 발끈했다.

제르딩거의 직계가 종이라니?

레오를 노려보는 제르딩거의 기사들.

하지만 레오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앞으로 셀리아 제르딩거는 일주일 동안 제 하녀입니다.”

레이나가 피식 웃었다.

아들은 한다면 하는 성격이다.

그래도 제르딩거의 기사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자리에서 태연하게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저 성격을 누가 말리겠어.’

한편 지스가 부드럽게 웃었다.

“셀리아는 제르딩거다. 하녀 일을 시킬 수는 없단다.”

그는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약속은 물려 줬으면 하는구나. 대신 내가 다른 보상을 해주마. 그래, 가령 예를 든다면…….”

지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우리 가문의 상위 오러심법은 어떠냐?”

“거절합니다.”

“뭐라고?”

“이번 내기는 저와 셀리아 제르딩거사이의 약속이에요.”

레오가 힐끔 셀리아를 보았다.

“지스님께서는 그녀를 ‘제르딩거’라고 했습니다. 영웅 명가의 이름을 짊어진 이상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겠죠.”

시선을 뗀 레오가 다시 지스와 눈을 마주쳤다.

“협의를 한다 해도 저와 그녀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레오가 못을 박았다.

“조카가 수치를 당하는 걸 면피하기 위한 구실로 쓰일 오러심법이라면 익힐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네요.”

이를 갈던 기사들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용납할 수 없다!”

“감히 제르딩거를 모욕해!”

발끈하여 소리치는 기사들.

그 모습을 보며 분노한 휘튼이 꾸짖었다.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언성을 높이는가!”

“하, 하지만 단장님!”

“저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이유가!”

“아무래도…….”

상황을 지켜보던 레이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가문을 떠난 사이 제르딩거의 수준도 많이 떨어진 것 같네.”

“아무리 레이나님이 제르딩거였다 하더라도 그건 선을 넘는 말씀입니다!”

한 기사가 경고하듯 말했다.

그리고 휘튼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감히!”

휘튼이 분노를 터트리려 할 때.

레이나가 손을 들어 휘튼을 제지했다.

그러고는 기사들 앞에 섰다.

“선을 넘어? 그럼 너희에게 물으마. 너희는 대체 무엇이길래 부가주의 대화에 함부로 끼어드는 거지?”

싸늘한 질문에 기사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 그건.”

“분명 나는 가문을 떠난 몸. 그래도 제르딩거는 여전히 내게 있어 자랑스러운 긍지다. 그러니 할 말은 해야 될 것 같구나.”

레이나의 몸에서 서슬푸른 기세가 흘러나왔다.

“일개 기사 나부랭이가 부가주가 이야기를 하는데 끼어들어? 그대들은 기사인가? 아니면 상황과 관계없이 짖기 바쁜 짐승인가?”

“흡!”

기사들이 숨을 삼켰다.

레이나의 위엄.

그건 가주의 것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지스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휘튼 경.”

“예, 부가주님.”

“이들은 아직 제르딩거의 기사로서 자격이 부족한 것 같군.”

“알겠습니다.”

기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휘튼이 굳은 얼굴로 기사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그래도 기사 자격 박탈은 너무 한 거 아니니?”

제르딩거 기사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레이나가 살짝 나무랐다.

“누님이 한 말 중 틀린 말은 없습니다. 짐승에게 기사의 작위는 아깝죠.”

지스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는 아랫사람이 실수를 온화하게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수가 계속된다면 냉정하게 자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기사들은 레이나가 경고를 할 때 잘못을 깨닫고 물러서야 했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지스는 다시 레오를 보았다.

“레오 플로브. 너는 제르딩거의 직계를 하녀로 부리겠다고 선언했으며 제르딩거의 오러심법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맞느냐?”

“네.”

“그 발언이 경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느냐?”

온화한 목소리로 묻는 지스.

레이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스는 제르딩거 가문 혈족들의 교육을 맡고 있다.

모든 제르딩거 아이들의 스승.

그래서 아이들의 그릇을 꿰뚫어 보는 데 능숙했다.

‘지금도 레오의 그릇을 가늠하는 중이겠지.’

아마 지스의 기준에 레오는 이미 합격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레오를 몰아붙이는 이유.

그건 아직 레오가 얼마나 깊은 그릇인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레오 역시 그런 지스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래서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제르딩거를 모욕한다고 받아들이셨다면 사과드릴게요. 하지만 전 딱히 제르딩거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직계를 하녀로 삼겠다고 한 것과 가문의 오러심법에 가치가 없다고 말한 게 모욕이 아니면 무엇이냐?”

“셀리아 제르딩거의 문제는 앞서 말했듯 저와 그녀의 거래입니다. 그녀가 진짜 제르딩거라면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오?”

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러심법에 가치가 없다고 한 건 제르딩거의 오러심법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럼?”

“만약 지스님께서 셀리아를 쓰러트린 대가로 오러심법을 하사하셨다면 전 기쁘게 받았을 거예요.”

지스의 입매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스님은 셀리아가 저지른 실책을 덮어주기 위해 제게 오러심법을 주신다고 하셨죠?”

“그래.”

“지스님은 셀리아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제게 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신 거죠.”

단언하듯 턱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셀리아가 진지하게 대련에 임했다고 해도 저는 이겼을 겁니다.”

‘요약하자면……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거절했다는 건가? 하하,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려 레이나를 보자 누이는 그것 보라는 듯 웃고 있었다.

‘누님의 말이 이해가 가는군.’

당돌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오를 보며 지스가 크큭- 웃었다.

‘엄청난 그릇이야. 이런 아이가 제르딩거였다면!’

제르딩거는 또 한 명의 영웅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형님께 말씀드려야겠어.’

가문에서 품어야 하는 아이라고.

“셀리아를 하녀 방에 보내라.”

“부, 부가주님!”

들것에 실린 셀리아를 돌보던 하인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명령이다.”

하인들이 우물쭈물 셀리아를 하녀 방으로 데려갔다.

“네 말은 알겠다. 네 뜻에 따르도록 하마.”

“네. 지스님.”

“레오. 조금 전 내가 공적인 자리에서‘는’ 너를 조카라 부르지 않겠다는 말은 사석에서는 조카로 대하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스가 부드럽게 웃었다.

레오가 어떤 그릇을 가졌든 이 말은 진심이었다.

그걸 알았기에 레오도 순순히 따랐다.

“예, 삼촌.”

“그래. 수련 때문에 지친 것 같으니 들어가서 쉬거라.”

“편안한 밤 되세요.”

레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머니도 좋은 밤 되세요.”

“그래. 푹 쉬렴, 레오.”

레오가 떠나고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누님.”

“왜?”

“레오가 ‘피닉스 브레스’를 배울 수 있도록 형님을 설득해보겠습니다.”

“피닉스 브레스?”

제르딩거의 상징은 타오르는 불꽃.

그 상징에 걸맞게 제르딩거의 오러는 불꽃의 형태를 띤다.

그중 피닉스 브레스는 특별했다.

초대 제르딩거가주가 피닉스의 피를 마시고 완성 시킨 오러.

가문의 모든 오러심법은 피닉스 브레스에서 파생되었다.

그 위력은 제르딩거가 영웅 명가로서 인정받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혈족 중에서도 인정받은 자만이 익힐 수 있다.

설마 피닉스 브레스 이야기를 꺼낼 줄 몰랐던 레이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 물론 가주인 형님께서 허락하실지는 미지수입니다.”

지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레오는 그 누구보다도 제르딩거 다운 아이입니다.”

셀리아를 쓰러트린 검술 재능.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그릇.

“그러니 형님을 설득할 만한 구실이 필요합니다.”

“너 설마?”

“예.”

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메른에 입학하는 겁니다.”

“위험해.”

영웅을 선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학을 꿈꾸는 루메른.

하지만 루메른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각오가 필요했다.

루메른의 학생은 하나같이 천재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졸업자 수는 매우 적다.

물론 도태되는 학생을 퇴학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데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경우.

학생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자퇴, 혹은 죽음.

그만큼 루메른의 학교생활은 가혹하다.

그리고 가혹한 건 입학시험 역시 마찬가지.

시험은 실전으로 치러진다.

매번 입학시험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이 나온다.

그래서 레이나는 레오가 오러심법을 익힌 다음 입학시험을 치렀으면 했다.

“레오는 대련은 몰라도 실전에는 한계가 있어.”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형님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습니다.”

지스가 주먹을 쥐었다.

“누님은 레오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십니까?”

“무슨 뜻이야?”

“영웅이 되었으면 하지 않습니까?”

“그게 그 아이가 원하는 길이라면.”

“그렇다면 안전한 길만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 시련에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레이나가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레오의 뜻에 따를 거야.”

‘그 아이라면 당연히 한다고 하겠지.’

지스는 확신했다.

‘그 아이는 앞으로 나아가는 걸 주저 하지 않는 눈을 가지고 있었어.’

레오의 눈빛을 떠올리며 지스가 웃었다.

‘후후. 기대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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