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다음 날 이른 아침.
똑똑-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벌컥-
방문이 열리고 들어온 온건 플로브가의 하녀들이 입는 수수한 메이드 복을 입은 셀리아였다.
“일주일간 레오 도련님의 하녀 일을 맡게 된 셀리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죽은 생선 눈을 하고 인사하는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책에서 눈을 뗐다.
“꽤 본격적인데?”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라. 가문의 가훈 중 하나입니다.”
죽은 생선같은 눈을 하고 있지만 자세는 번듯했다.
이상적인 하녀의 모습이다.
기본적으로 스타일이 좋아서 감색 천에 하얀색 프릴이 조화된 메이드 복은 매우 잘 어울렸다.
햇빛이 반사된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셀리아가 말했다.
“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감탄하는 건 이해하지만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라면 날려 버리겠어요.”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레오가 쩝- 입맛을 다셨다.
“친구 중에 자칭 예술가라는 녀석이 있었거든. 아름다운 걸 도가 지나치게 찬양하는 녀석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물들어 버린 모양이야.”
‘아름다움은 언제나 최고일세. 영원불멸이지.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면 나는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파하며 일생을 보낼 생각이라네!’
지금은 [신의 대장장이]라 칭송받는 드워프의 대영웅 드웨노.
무기를 만들 때보다 예술품을 만들 때가 훨씬 행복해 보였다.
에레보스를 토벌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와중에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진실하게 찬미할 줄 아는 좋은 친구분이네요.”
제르딩거의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들을 이끄는 자질이 필요하다.
매력적인 것도 그러한 자질 중 하나.
칭찬에 우쭐하는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턱을 괴었다.
‘진실되다 못해 광적인 변태라서 영감 얻겠답시고 리시나스와 루나에게 누드모델을 요구해서 문제였지.’
자연스럽게 옛날 일이 떠올랐다.
‘리시나스, 루나. 그대들은 성격은 지저분하지만, 자태만큼은 누구보다 빼어나네. 그러니 예술을 위해 누드모델이 되어주게.’
물론 리시나스와 루나가 그 요구를 들어줄 리 만무했다.
‘그딴 변태도 대영웅으로 추앙받는데 난 대체 뭐지.’
하하하- 혼이 나간 웃음을 지으며 창밖을 보았다.
한편 셀리아는 레오를 유심히 살폈다.
자신은 분명 어제 패했다.
‘방심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겼을 텐데…… 같은 건 멍청한 생각이지.’
어젯밤 패배는 자신의 어리숙함이 불러온 결과다.
일주일간 하녀를 했다는 사실이 본가에 알려지면 분명 비웃음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이야.’
외면하면 오히려 더 큰 수치다.
‘게다가 궁금한 것도 있어.’
어떻게 하면 오러를 익히지 않고 그만한 위력을 검에 담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아침에는 책을 읽는군요. 저는 검술 수련을 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수련법을 지켜보려고 했던 셀리아였다.
‘혹시 저 책이 특별한 수련서 같은 건가?’
“아침은 느긋하게 보내야지.”
그렇게 말하고 책을 덮었다.
책 제목을 본 셀리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영웅 동화책이네.’
셀리아가 힐끔 레오의 책장을 보았다.
‘전부 대영웅들과 관련된 책이야.’
동화책뿐만 아니다.
역사서와 연구서 등등.
상당한 자료들이 모여 있었다.
“대영웅들에게 관심이 많으신가 보네요? 하긴 근본이긴 하죠.”
셀리아도 대영웅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책장을 봐도 될까요?”
“그래.”
책장 앞에 선 셀리아가 감탄했다.
“대단하네요. 어지간한 대영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명함도 못 내밀겠어요.”
대영웅에 관한 연구는 지금도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다.
“카일에 관한 책들이 많네요.”
“참고 자료.”
“하긴. 카일이 실존 인물이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행적들은 진짜라는 의견은 제법 많죠.”
“너도 그렇게 생각해?”
“물론이죠.”
대영웅들이 이룬 위업 중 후대에는 누구의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은 모두 카일이 이룬 것이다.
‘역사에서 사라졌다 해도 내가 완전히 잊힌 건 아니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후대의 사기꾼이 모호한 대영웅들의 업적을 훔치려고 시도한 거겠죠.”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그 말은 카일이 사기꾼이다?”
“그럴 공산이 크죠.”
셀리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것이 일반적인 학계의 견해다.
“그렇군. 그딴 생각을 하고 있군.”
“네?”
“그럼 아침을 먹고 수련을 해볼까?”
셀리아가 눈을 반짝였다.
“허락해주신다면 저도 같이 수련할 수 있을까요?”
셀리아는 레오의 강함의 비밀이 궁금했다.
“내 수련은 따라오기 힘들 텐데.”
“훗, 제르딩거의 수련도 거뜬히 이겨낸 저입니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훗날 그녀는 생각했다.
그때 도망쳤어야 했었다고.
***
후웅-!
따악-!
“윽?”
“반응이 느려.”
레오의 목검이 셀리아의 목검을 쳐냈다.
다급히 무너진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셀리아.
하지만 레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후웅-
퍽-
“끄억-!”
“그러니까 이렇게 등을 내주는 거야.”
뒤에서 목검으로 어깨를 가격당한 셀리아가 고통에 바닥을 뒹굴었다.
아침 식사 이후 레오의 수련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고통이 진정되자 셀리아가 발끈했다.
“레오 도련님! 이런 게 정말 수련이 되나요?”
셀리아가 느끼기에 레오의 수련법은 단련을 넘어선 혹사에 가까웠다.
한계 이상으로 힘을 쥐어 짜내며 계속해서 움직이는 걸 강요한다.
그 과정에서 오러의 힘은 빌리지 않는 건 당연했다.
이런 방식의 수련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항의하는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중얼거렸다.
“요즘 애들은 나약하네.”
“뭐라고!”
“말했잖아. 내 수련은 힘들다고. 뭐, 힘들면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어때?”
“웃기지 마! 이따위 수련! 얼마든지 받을 수 있어!”
자존심이 상한 셀리아가 발끈했다.
“그래? 그럼 다시 시작할까?”
“좋아!”
‘어, 어라? 이게 아닌데?’
괜히 객기 부리다가 엉겁결에 수련을 재개한 셀리아는 잠시 후 또다시 목검에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둘의 역량 차는 너무도 났다.
‘왜! 못 이기는 건데!’
근력뿐만 아니라 검술로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어제, 오늘.
자존심이 제대로 짓밟히고 있었다.
‘확실히 5000년 전과 비교하면 오러 수련법이 엄청나게 발전했군.’
바닥에 쓰러져 헐떡이는 셀리아를 내려다보며 레오가 감탄했다.
현시대는 오러를 다루는 기술이 5000년과 비교해 확연하게 발전했다.
덕분에 기사들의 평균 실력은 지금이 훨씬 높다.
하지만 절대적인 강함의 기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5000년 전이 더 강한 것 같은데?’
지금 시대는 오러 수련이 발전한 만큼 육체 수련은 등한시되고 있다.
오러는 육체의 힘을 극대화하는 힘.
결국 육체를 단련하면 오러 역시 강화된다.
‘오러심법이 발전하니 이런 문제도 생기는군.’
“그래도 대단한데. 이 정도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는데?”
“나를 얕보지 마세요.”
“그럼 오후 수련은 이걸로 끝내도록 할까? 나중에 저녁에 또 하지.”
한계까지 다다른 셀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근력은 몰라도 검술은 절대 안 져! 무조건 이길 거야!’
***
“날 얕보지 말라고. 빌어먹을 백발 녀석.”
저녁 수련이 끝난 후.
셀리아는 후들후들 떨리는 팔다리를 이끌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레오는 먼저 방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으으…… 저 자식은 괴물인가?’
지치지도 않고 끝없이 검을 휘두르는 레오를 떠올리며 셀리아가 진저리를 쳤다.
매일매일 이렇게 움직이니 육체가 그렇게 단련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후후…… 그래도 저녁 훈련은 검술에서 밀리진 않았어!’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총동원한 덕분에 저녁 훈련에서는 허무하게 밀리지는 않았다.
‘나도 이런 수련을 계속하면 그 녀석처럼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 다섯 번이나 토했다.
‘생각해보니 엄청나게 쪽팔리잖아!’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던 셀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빨리 씻고 자고 싶다.’
하지만 그 전에 레오의 잠자리를 준비해야 했다.
일단은 지금 신분은 레오의 하녀이니 말이다.
‘얼른 이불 펴주고 씻고 자야지.’
레오의 방 앞에 도착한 셀리아가 심호흡을 했다.
떨리는 팔다리를 진정시키고 태연함을 가장했다.
약한 모습 따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반발심 때문이었다.
똑똑-
“들어와.”
벌컥-
“생각보다 멀쩡하네.”
“훗- 저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셀리아.
“다섯 번이나 토하지 않았던가?”
“이부자리를 정리해드릴게요.”
레오의 지적을 싹 무시한 셀리아가 침대 정리를 해주었다.
“그럼 도련님. 내일 아침에 뵐게요.”
“잠깐 와 봐. 선물이 있으니까.”
‘선물?’
느닷없는 말에 셀리아가 레오에게 다가갔다.
“오늘 하루 힘내줘서 고마워.”
빙긋- 웃으며 선물 상자를 건네는 레오.
‘고마운 건 아나 보네.’
셀리아는 가슴에 응어리가 조금 풀어지는 걸 느꼈다.
‘그래, 제르딩거의 가주의 딸인 내가 시중을 들어주는데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의기양양해진 셀리아가 상자를 열었다.
거기에 있는 건 체인 형태의 심플한 은팔찌였다.
팔찌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불길함을 느꼈다.
“중량 마법이 걸린 팔찌야. 내일부터 수련할 때 차.”
레오가 웃었다.
우지직- 셀리아의 얼굴이 굳었다.
“저는 괜찮아요.”
“하녀가 주인이 준 물건을 거부하는 건 예의가 아닐 텐데?”
“야! 너 솔직히 나 괴롭히려고 이러는 거지?! 그런 거지! 이런 걸 끼고 오늘 같이 움직이면 그게 훈련이냐! 혹사지!”
결국 폭발한 셀리아가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나약하긴.”
셀리아의 얼굴이 불똥이 튀었다.
“나약하긴 누가 나약해!”
“나도 원래는 끼고 훈련하는데? 뭐,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누가 못하겠데? 이딴 거 얼마든지 껴주겠어!”
결국 또 간단하게 도발 당한 셀리아는 그렇게 선언하고 레오의 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레오의 방문 앞에서 머리를 붙잡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저주했다.
‘단순하긴.’
레오가 피식 웃었다.
‘누가 사기꾼이라고?’
레오는 아침에 셀리아가 카일을 사기꾼이라는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세상을 구한 대영웅답지 않은 속 좁음.
그러나 물론 레오는 자신의 감정에 한 점 부끄러움도 없었다.
‘다른 녀석들이었으면 나보다 더 끔찍한 꼴로 만들어줬을걸?’
그의 친구들은 자신보다 더한 성격 파탄자들이었다.
‘피의 일주일로 만들어주마.’
일주일간 고통에 떨 셀리아를 생각하며 레오는 살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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