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0
걸리번은 시험 통과를 확신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탈락하지 않고 버텼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에는 든든한 파티도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탈락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가장 처음 만난 응시자 무리가 협력하여 몬스터들을 쓰러트리려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파티를 맺고 쭉 이 파티에 빌붙은 것이다.
파티의 실력은 출중했다.
트롤도 너끈하게 상대했으니 말이다.
앞선 전투에서 걸리번이 날린 파이어 볼이 트롤의 목숨을 끊기도 했다.
‘역시 난 실력이 있어.’
그렇게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운도 거기까지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걸리번이 비명을 내질렀다.
파티의 리더 격이던 학생은 팔이 씹히는 와중에 다급히 구슬을 깨트려서 영웅의 세계를 탈출했다.
끼에에에에엑!
거대한 몬스터가 귀가 찢어지는 듯한 괴성을 내질렀다.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거대한 거미 모습을 한 몬스터.
열 개의 다리 중 앞다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괴하게 꺾여 있다.
실을 내뿜는 몸통 부분은 기괴하게 으스러져 있었고 머리는 반쯤 뜯겨 나갔다.
반 시체나 다름없는 모습이지만 그 끔찍한 생물체는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끼에엑! 끼에에에엑!
“파, 파이어 볼!”
걸리번이 다급히 마법을 썼다.
화르르륵! 펑-!
거미의 얼굴에 파이어 볼이 직격당했다.
“하하하! 어, 어떠냐! 내 파이어 볼 맛이!”
걸리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파이어 볼의 연기가 가시고.
조금의 타격도 입지 않은 거미가 모습을 드러내자 걸리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으, 으아아아악!”
분노한 거미가 달려들자 걸리번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쳤다.
기사 학생들이 거미를 저지하기 위해 병장기를 움켜쥐었다.
퍼억-! 콰득!
“크억!”
하지만 거미의 힘에 여기저기 튕겨 나갔다.
거미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이, 이딴 걸 어떻게 이겨!”
한 학생이 발악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걸리번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푸른 구슬을 꺼냈다.
‘타, 탈출해야! 하, 하지만 누가 저걸 쓰러트리면 난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지도!’
거미를 쓰러트릴 마음도 없는 주제에 걸리번은 누군가 대신 물리쳐주기를 바라며 갈팡질팡했다.
그때였다.
“윈드 팽.”
뻐벅-!
끼아아아악!
하늘에서 떨어진 바람의 송곳니가 거미의 등에 꽂히며 검보라색 피가 튀었다.
치이이이익-!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괴물이군.”
플라이 마법으로 허공에 뜬 아바드가 낯을 찡그렸다.
화르르르륵-!
이번에는 불꽃이 떨어졌다.
불꽃은 이내 한 점으로 뭉쳤다.
레이피어에 불꽃의 오러를 모은 셀리아가 눈을 번뜩이며 레이피어를 내질렀다.
콰각!
끼아악!
머리가 꿰뚫린 거미가 비명을 내지르며 앞발을 휘둘렀다.
셀리아가 다급히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 바닥에 착지했다.
“쳇! 이것도 회복해?”
비명 소리를 듣자마자 곧장 달려온 셀리아와 아바드는 곧바로 거미에게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마법과 오러를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거미는 멀쩡하게 회복했다.
“처음 보는 종류의 몬스터군.”
“타르타로스의 마물일지도 모르지.”
아바드의 중얼거림에 셀리아가 플레임 스톰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이 시험의 과제이기도 한 것 같아.”
“흠? 과연. 저게 이 세계를 공략하는 열쇠였나?”
아바드의 입매가 곡선을 그렸다.
지팡이를 든 그가 룬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으로 바람의 마력이 넘실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흠칫한 셀리아가 오러를 일으켰다.
‘선수를 뺏길 줄 알고.’
거대 거미를 쓰러트리는 것이 시험 과제라면 수석을 위해서는 아바드보다 먼저 쓰러트려야 했다.
지금까지는 협력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경쟁 관계로 돌아갔다.
화르르륵!
셀리아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그와 함께 플레임 스톰의 끝으로 불꽃의 오러가 뭉쳤다.
검을 쥔 왼팔을 뒤로 잡아당긴 셀리아가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콰각-!
양발이 바닥을 파고든다.
‘프로미넌스!’
셀리아가 쓸 수 있는 최대의 공격력.
오러를 한점에 집중시켜 내지르는 찌르기!
푸확-!
홍염의 칼날이 쏘아졌다.
끼아악?
반쯤 뜯겨 나간 머리를 꿰뚫은 불꽃은 거미를 관통하여 그대로 엉덩이 쪽을 뚫고 나왔다.
“좋아! 아무리 회복력이 뛰어나도 이 정도면…….”
쿵-! 쿵-!
끼에에에에에엑!
“말도 안 돼!”
몸을 일으킨 거대 거미가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훌륭한 공격이야, 하지만…….”
허공에 뜬 아바드가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기사와 마법사의 파괴력은 명백하게 차이 나지.”
아바드가 양손을 벌리며 주문을 완성 시켰다.
“라팔.”
르왈린 가문의 비전 마법.
몰아친 돌풍이 거미 주변을 감싼다.
“으아아아아아?”
“이, 이게 우리 또래의 마법사의 주문이라고?”
돌풍에 휘말린 응시생들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끝.’
아바드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니?”
마법이 걷히고 거대 거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돌풍에 찢겨 온몸이 넝마가 되었다.
하지만 거대 거미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번 응시생 중 단연 최고의 공격력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바드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셀리아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떠올랐다.
‘이런 걸 어떻게 쓰러트리란 거야?’
***
“과연 제르딩거와 르왈린이 자랑하는 인재답군요! 저 나이에 저만한 위력의 공격이라니!”
보좌관이 감탄사를 내질렀다.
‘협력이 아닌 경쟁을 선택했군.’
두 사람을 보며 알비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은 나쁘지 않다.
셀리아와 아바드라면 그만한 실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과연 혼자만의 힘으로 그 괴물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무한하게 회복하는 괴물은 결정적인 한 방이 아니면 물리칠 수 없다.
응시생 중 저 괴물에게 유효한 공격이 가능한 건 셀리아와 아바드 뿐.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의 실력으로도 모자라다.
‘너희가 진정한 영웅의 재목이라면 그 시련을 이겨내 봐라.’
***
‘역시.’
셀리아와 아바드를 뒤따라온 레오의 눈이 번뜩였다.
‘거미 공주, 탈라투니아였어.’
트롤들의 시체를 봤을 때 예상했다.
그건 이 괴물의 식사 방식과 너무도 똑같았다.
마물 여왕 실라투나의 딸로서 저주받은 마물의 숲을 지배했던 괴물.
원래라면 혼자서 나라도 멸망시킬 수 있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몸은 짓이겨져 원래 형태를 간신히 유지했다.
전율스러운 마력을 내뿜던 머리는 반쯤 뜯겨 나갔다.
전성기와 비교한다면 보잘것없는 몬스터로 전락한 상태였다.
‘역시 알비의 왼쪽 눈에 깃든 건 요정왕의 마력이었어.’
요정.
머나먼 과거부터 엘프와 함께해온 고위 환수.
손바닥만 한 크기에 투명한 날개를 가진 요정들은 강력한 마력을 품은 존재였다.
요정의 계약자는 엘프뿐이었기에 인간계에서는 매우 보기 드물다.
탈라투니아는 5000년 전, 요정왕의 오른손을 먹어 치웠다.
루나는 고향을 엉망으로 만들고 맹약자의 오른손을 먹어 치운 탈라투니아를 용서하지 않았다.
단신으로 나라를 멸망시키던 거미 공주는 [성운의 시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수천 년이 지난 지금.
탈라투니아는 살아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뱃속에 있군.’
요정왕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반지.
무한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반지가 요정왕의 손과 함께 탈라투니아에게 먹혀 버린 것이다.
레오가 검을 고쳐 쥐었다.
투척 자세를 취하고는 그대로 던졌다.
쐐애애애액! 퍼억!
키아아악!
머리에 꽂힌 레오의 검에 탈라투니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셀리아 옆에 서며 말했다.
“힘들어 보이네?”
“너는 물러서, 레오. 오러를 다루지 못하는 네가 어떻게 할 상대가 아니야.”
하늘에서 몰아친 바람의 칼날이 탈라투니아를 덮쳤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탈라투니아가 허공을 노려보고는 괴성을 내지르며 점프했다.
어마어마한 도약력 덕분에 순식간에 아바드에게 닿았다.
“윈드 브레이크!”
다급히 뒤따라온 첼시가 캐스팅 해둔 마법을 발동시켰다.
콰가가가각-!
휘몰아친 바람의 칼날이 탈라투니아를 덮쳤다.
첼시의 방해로 아바드를 공격하는 데 실패한 탈라투니아가 지상으로 추락했다.
쿠웅-!
탈라투니아가 지상에 떨어지자 지축이 흔들렸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고마워, 첼시.”
동생에게 미소 지은 아바드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공중에 있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뒤따라온 다른 응시생들이 탈라투니아를 포위했다.
“저 괴물을 어떻게 쓰러트리지?”
아바드가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레오가 물었다.
“상처를 계속 회복해?”
“그래.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마법도 통하지 않았어.”
“내 공격도 마찬가지야.”
셀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간단하네.”
“뭐?”
“쓰러트릴 수 없으면 힘을 합쳐야지. 단순한 이야기잖아?”
“레오, 나랑 이 버터는 경쟁 관계야.”
“우리 오라버니가 왜 버터야!”
옆에 있던 첼시가 발끈했다.
“나도 이번만큼은 셀리아의 말에 공감이다. 먼저 저 괴물을 쓰러트리는 쪽이 수석을 차지할걸?”
셀리아와 아바드의 말을 들은 레오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못 쓰러트리면?”
“뭐?”
“저 괴물이 만약 무한하게 부활한다면? 그래서 너희의 오러와 마력이 먼저 동난다면?”
레오가 살기를 드러내기 시작한 탈라투니아를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시험 과제가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는 거라면 쓰러트리지 못한 시점에서 우리 전원은 탈락이야.”
“말도 안 돼! 오라버니와 셀리아 제르딩거가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우리 또래에서 저 괴물을 쓰러트릴 사람은 없어. 그건 시험이 잘못된 거야.”
첼시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반박했다.
하지만 셀리아와 아바드는 레오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확실히 저 괴물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탈락한다면 부조리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원래 부조리한 법이다.
“우리가 힘을 합친다 해도 저 괴물을 한 번에 죽일만한 공격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이 걸려.”
삼십 명의 응시생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데도 탈라투니아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오히려 응시생들이 밀려나고 있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셀리아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시간 동안 어떻게 누가 저 괴물을 저지해?”
아바드가 힐끔 동생 첼시를 보았다.
‘첼시도 역부족이야.’
까딱 잘못했다가는 목숨을 잃는다.
영웅의 세계는 가상의 세계.
하지만 이곳에서의 죽음은 현실에서 진짜 죽음으로 직결된다.
심각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내가 막을게.”
“뭐라고?”
“5분 정도는 막을 수 있어.”
“자살 행위야! 넌 오러도 쓸 수 없잖아!”
“그러니까 5분이 한계야.”
레오가 몸을 돌렸다.
“그러니 너희는 5분 동안 최대한 힘을 모아.”
“5분 동안 모은 공격이 실패한다면?”
아바드가 냉정하게 물었다.
그 말을 듣고 레오가 킥킥 웃었다.
“그럼 다 같이 탈락하는 거지. 그런데 못 쓰러트릴 것 같진 않네.”
“어째서?”
“불과 바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친구였어. 왜냐면 상성이 좋거든.”
여유롭게 말한 레오가 탈라투니아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셀리아가 말했다.
“준비해 아바드.”
“후우- 설마 이렇게 힘을 합치게 될 줄은 몰랐어.”
피식 웃은 아바드가 마력을 일으켰다.
***
터벅- 터벅-
“으으으.”
“괜찮냐?”
“가, 간신히! 근데 저 괴물을 어떻게…….”
“일단 5분 동안 내가 막아 보려고.”
“뭐?”
쓰러져 있던 기사 학생이 깜짝 놀라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잠깐 이것 좀 빌릴게.”
레오는 그가 쓰는 폴암을 들었다.
검과는 다른 묵직함이 느껴졌다.
저벅- 저벅-!
키에에에엑-!
원초적인 적의만 남은 탈라투니아는 레오를 향해 낮은 비명을 내질렀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레오가 싸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그 못생긴 쌍판대기를 작살 내주마, 벌레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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