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
레오가 폴암을 늘어트리고 탈라투니아에게 다가갔다.
‘저 녀석 검사면서 저런 무기를 다룰 수 있나?’
멀리서 마법으로 레오를 보좌할 준비를 하던 첼시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첼시가 보기에도 레오의 검술은 대단했다.
하지만 무기가 바뀐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차라리 다른 사람의 검을 빌리는 게…….’
첼시가 걱정하는 사이.
훙- 훙- 훙-
탈라투니아에게 다가가며 레오가 손가락을 굴려 폴암을 회전시켰다.
상당한 중량감이 느껴졌다.
레오 나이 또래에는 오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다루기 힘든 물건.
하지만 어릴 때부터 육체의 한계 이상으로 수련해온 레오에게는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중량감은 레오에게 있어 무기가 되었다.
훙-! 훙-! 훙훙훙훙훙훙-!
가볍게 회전하던 폴암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탈라투니아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확-!
원심력을 모으던 레오가 폴암을 손에서 미끄러트려 손잡이 끝을 잡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크게 휘둘렀다.
뻐억-! 철퍽!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악!
풀스윙으로 휘둘러진 폴암의 도끼가 탈라투니아의 머리에 꽂혔다.
폴암의 중량감과 회전 운동에서 얻어진 힘은 물리력이라는 파괴력이 되어 일순간 탈라투니아의 머리를 박살 냈다.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폴암을 회수한 레오가 그대로 점프를 했다.
그리고 양손으로 내려찍듯 등짝에 도끼를 꽂아 넣었다.
콰각-!
끼아아악!
귀를 찢는 비명 소리.
탈라투니아가 긴 앞발로 자신의 등을 찍었다.
화악-!
도약하여 빠르게 공격을 피한 레오가 가볍게 스텝을 밟았다.
‘오래 못 쓰겠군.’
빠르게 무기의 상태를 체크했다.
유효타를 먹이는 데 성공했지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무기가 상했다.
오러는 무기의 공격력을 강화시키기도 하지만 내구력을 보존하기도 한다.
“첼시!”
“으, 응?”
“바람 마법을 이용해 다른 응시생들의 무기를 나한테 날려 보내!”
탈라투니아의 공격을 피하며 레오가 소리쳤다.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섬세한 컨트롤은 불가능해! 잘못하다가는 다칠 수도 있어!”
“알아서 잡을 테니까 빨리 보내!”
“어, 어떤 무기?”
“아무 무기나 상관없으니까! 어서!”
레오의 재촉에 첼시는 응시자들의 무기를 받아 바람 마법에 실어 보냈다.
휘리리릭-!
날카로운 곡도와 묵직한 바스타드 소드가 레오에게 날아갔다.
“둘 중에 아무거나 편한 걸 써!”
뻐억-! 댕겅!
탈라투니아의 머리를 후려친 폴암의 도끼날이 부러졌다.
레오는 손잡이 부분을 뒤로 던지고 뒤로 물러서며 손을 뻗었다.
‘소리를 듣는다면 곡도랑 바스타드 소드인가?’
날아오는 소리로 무기의 종류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끼아아아악!
탈라투니아가 양 앞발로 레오를 찌르려 했다.
레오는 허공에 점프에 회전하며 공격을 피했다.
탁! 탁!
그와 동시에 두 무기를 정확하게 잡았다.
왼손에는 곡도, 오른손에는 바스타드 소드.
레오는 자신의 몸을 노리는 탈라투니아의 앞발 바스타드 소드의 검면으로 막아냈다.
쩡-!
엄청난 충격이 몸을 울렸다.
“큭!”
신음성을 참은 레오가 튕겨 나가며 왼손을 휘둘렀다.
서걱-!
끼아아!
그 짧은 순간에 탈라투니아의 앞발 하나를 잘라낸 레오가 튕겨져 나가며 자세를 정비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탈라투니아의 방어력 자체는 높지 않다.
오러가 깃들지 않은 무기라도 힘만 있으면 벨 수 있는 수준.
그런데도 다른 응시생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상처를 입히는 속도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생명의 반지가 이 정도로 귀찮은 물건이었나?’
헛웃음을 터트리며 레오가 빠르게 스텝을 밟았다.
온몸의 힘을 쥐어짜며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지난 시간 동안 한계를 계속 넘어 온몸이 레오의 의지에 반응한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레오의 움직임은 신기 그 자체였다.
그것을 보며 다른 응시자들이 입을 떡 벌렸다.
폴암.
곡도와 바스타드.
클레이모어.
단검.
롱소드.
창.
배틀 액스.
무기가 망가질 때마다 레오는 다른 응시자들의 무기가 차례차례 사용했다.
그리고 귀신같은 솜씨로 무기를 다루었다.
그 모습은 전율 그 자체였다.
무기의 종류에 상관없이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는 것 마냥.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탈라투니아와 맞섰다.
그 모습은 마치 무신을 연상시키는 듯했다.
‘기껏해야 우리 또래인데 저렇게 다양한 무기를 가지고 저런 전투를 하는 게 가능해?’
‘저 녀석은 대체 정체가 뭐야!’
기사를 목표로 하는 응시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레오를 보좌하던 첼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마법을 써서 도와줄 생각을 했다.
하지만 레오는 너무도 빠르게 움직였다.
함부로 마법을 쓸 수 없는 난전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레오는 혼자서 저 무시무시한 괴물에 맞섰다.
대영웅.
[용자] 아르온과 함께 최전선에서 몇 번이고 불가능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남자의 저력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작은 실수가 죽음으로 직결되는 전투임에도 레오는 거침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십오 년이 지나서 걱정했는데 이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군.’
숨이 턱 막혔다.
그럼에도 웃음이 나왔다.
쉬지 않고 탈라투니아를 몰아붙였다.
도중에 공격이 스쳐 살이 찢겨 나갔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앞으로!’
시련? 과거에는 매 순간이 시련이 아니었던가?
‘이따위 벌레 하나 못 막는다면 그 녀석들이 저승에서 비웃겠지!’
이런 건 시련 축에도 끼지 못한다!
쩌적-
“쳇!‘“
들고 있던 롱소드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무기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벌써 수십 가지의 무기가 망가졌다.
레오가 첼시에게 다음 무기를 부탁하려 할 때였다.
“레오! 준비 끝났어!”
귓가에 들려온 셀리아의 외침에 레오가 씩- 웃었다.
“흡!”
그리고 있는 힘껏 도약해 탈라투니아에게서 멀어졌다.
파앗-! 고오오오오오오-!
그와 함께 교체를 하듯.
미칠듯한 열기가 깃든 플레임 스톰을 치켜든 셀리아가 도약했다.
열기를 억누르고 있는 건 강대한 바람이었다.
“그만! 죽어! 이 벌레 자식아!”
콰아아아아아아!
검을 휘두르자 폭염을 품은 폭풍이 해방되었다.
강력한 폭풍이 탈라투니아의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
숨 막히는 폭염이 탈라투니아의 몸을 가차 없이 태웠다.
탈라투니아가 몸부림쳤다.
생명의 반지의 힘이 거미에게 무한한 생명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내 파괴의 힘이 회복의 힘을 뛰어넘었다.
화르륵-!
불꽃이 사그라들었고 탈라투니아는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툭-!
황금색 반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알비의 세계: 서장-마물의 숲이 공략되었습니다.]
눈앞에 문구가 떠올랐다.
셀리아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끄, 끝났다.”
고개를 젖히고 깊은 한숨을 내쉰 셀리아가 레오를 보았다.
온몸에 상처 입은 레오는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정말로 저 괴물을 5분 동안 막아냈어.’
경이로울 정도였다.
게다가 가장 고생했음에도 당당히 서 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셀리아가 웃으며 레오에게 다가갔다.
“레오! 수고 했…….”
“대단해! 정말 대단해! 영웅담에 나오는 영웅 같았어!”
첼시가 레오 앞으로 다가와 양손을 들며 폴짝- 폴짝 뛰었다.
“그러냐.”
“응. 나 배틀 메이지 지망이라서 근접 전투도 연습해야 하는데 혹시 루메른에 입학하면 가르쳐 주지 않을래?”
레오의 전투를 보고 시험 내에 있었던 앙금이 가신 첼시는 연신 흥분해서 떠들기 바빴다.
그 곁으로 다가간 셀리아가 말했다.
“르왈린의 여자에게 가르쳐 줄 기술 따윈 없어. 훠히- 훠히-”
“제르딩거가 왜 참견이야?”
셀리아와 첼시가 작은 말다툼을 했다.
그걸 무시한 레오가 몸을 움직였다.
온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하고 탈라투니아가 떨어트린 반지를 집었다.
그러자 반지에서 작은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한 요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오의 눈이 흔들렸다.
낯익은 요정.
요정왕의 후계자였던 실로드였다.
그는 말없이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야…… 실로드. 나 기억하냐?”
레오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루나가 죽은 이후 처음 만났다.
하지만 실로드는 대답 없이 한 번 웃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
레오가 쓰게 웃었다.
이곳은 영웅의 세계.
지금 나타난 실로드는 가짜였다.
‘무사히 요정왕이 된 모양이군.’
알비는 탈라투니아를 쓰러트리고 요정왕의 보물을 되찾아준 대가로 실로드에게 마안을 얻은 것이리라.
레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공략된 영웅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어쨌든, 끝이군.’
레오가 심호흡했다.
이윽고 환한 빛과 함께 세계가 붕괴했다.
그 찰나의 순간.
[공략 보상: 요정왕의 맹약]
“뭐?”
원래라면 주어질 리 없는 보상이 주어졌다.
***
대륙 중심부.
세계의 중심 도시 루메리아시티.
3000년 전 루메른과 함께 해온 역사적인 도시.
그 도시의 꼭대기에 노인이 턱을 쓰다듬었다.
“호오. 서부 지역 시험이 끝난 모양이군.”
“과연 알비 공. 벌써 끝났나 보군요.”
“그 친구야 일 처리가 빠르지.”
껄껄- 노인이 웃었다.
이미 백살이 훌쩍 넘은 노인이지만 이 세상에서 그를 무시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검성(劍星) 칼리안 베이드안.
검으로 정점에 오른 영웅 중의 영웅이었다.
“어디보자. 호오? 많이 뽑았군!”
“정말인가요? 알비 공 답지 않군요! 몇 명입니까?”
“마흔 명일세.”
“…….”
칼리안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 말에 여성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게…… 많은 겁니까?”
“물론. 많지. 난 열 명 정도 예상했다네.”
에레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서부 지역 입학자 마흔 명.
다른 지역에서는 백 명이 입학하는데 서부 지역만 마흔 명이다.
당장 서부 지역의 온갖 가문에서 항의가 빗발칠 게 불 보듯 뻔했다.
“너무 괴로워 말게. 열 명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긴. 그러네요. 열 명보다는 낫네요. 하하하.”
루메른 교장의 비서 에레나가 이를 악물고 웃었다.
“수석은 셀리아와 아바드. 둘 중 누가 차지했습니까?”
“공동 수석일세.”
“공동이요?”
“그래. 셀리아와 아바드 공동 수석.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고 하는군.”
“과연.”
에레나가 눈을 빛냈다.
“그리고 또 하나.”
“또 있나요?”
“신입생 대표 추천자가 있네.”
“그 알비 공이요?”
남에게 평가가 박한 알비가 무려 신입생 대표를 추천하니 에레나로서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셀리아 제르딩거와 아바드 르왈린 둘 중 누구인가요?”
보통 신입생 대표 추천은 수석 중에 나오기 마련이다.
흥미롭다는 듯 묻는 엘리나에게 칼리안이 대답했다.
“레오 플로브라고 하는군.”
“셀리아와 아바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가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에레나를 보며 빙긋 웃은 칼리안이 보고서를 내려다봤다.
<신입생 대표 추천서>
이름: 레오 플로브(15)
과목: 기사학.
사유: 영웅의 재목.
‘그 알비가 콕 집어서 영웅의 재목이라고 하다니. 어떤 학생일지 궁금하군.’
칼리안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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