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4화 (14/483)

【14】13

이틀 뒤 아침.

레오와 셀리아는 루메리아 호수의 선착장으로 향했다.

루메른 교복을 입은 두 사람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오? 루메른의 신입생들이다.”

“어머나, 풋풋하기도 해라.”

거리의 사람들이 웃으며 두 사람을 응원해주었다.

그때 과일가게 주인이 사과 두 개를 던져 줬다.

그걸 받은 레오가 웃으며 인사했다.

“고마워요!”

“그래, 힘내고 공부 열심히 해라!”

와삭-! 사과를 베어 물며 남은 하나를 건네자 셀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난 됐어.”

“루메른이 대단하긴 하네.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걸 보니 말이야.”

“우리는 미래니까.”

영웅은 대중의 인기가 매우 높다.

그리고 루메른의 학생들은 영웅 후보생이다.

세상에 위협이 닥칠 때를 대비하여 선대 영웅의 발자취를 좇는 이들.

사람들은 그런 영웅 후보생들을 응원했다.

“최근까지는 타르타로스의 움직임이 잠잠했다지만 언제 다시 위협이 될지 몰라. 그리고.”

셀리아가 걸음을 멈추고 턱을 치켜들었다.

“세이룬에 언제까지 지고 있을 수만은 없어!”

인간과 엘프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렇다 보니 엘프 영웅 사관 학교 세이룬과 루메른은 종족의 화합을 위해 친선 경기로 교류전을 자주 펼쳤다.

학생답게 퀴즈 대결을 시작으로 스포츠.

그리고 무력을 다투는 모의 전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실력을 겨루며 루세전이라 이름 붙었고 역사만 수백 년인 유서 깊은 교류전.

루세전은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켜 두 종족의 관계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종족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학생들은 목숨을 걸고 교류전에 임하곤 했다.

최근 수년 동안 루메른은 세이룬에게 밀리고 있었다.

“두고 봐. 내가 세이룬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테니까!”

“그래, 그래. 힘내라.”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주먹을 쥐는 셀리아를 보며 시큰둥하게 응원해준 레오가 와삭-! 사과를 베어 물었다.

선착장이 가까워지자 다른 신입생들도 보였다.

지팡이를 쥐고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소환수를 타고 다니는 건 기본이었다.

심지어 온몸을 각양각색의 무기로 무장한 학생도 있었다.

“못 튀어서 안달들이네.”

그 모습에 셀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옅은 주황색 머리카락의 소년이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거기 잘 어울리는 남학생, 여학생!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넌 뭐니?”

“내 이름은 칼 토마스야. 모이라 왕국 출신이지!”

“그런데?”

“딴 건 아니고.”

씩 웃은 칼은 품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능숙하게 레오와 셀리아에게 건넸다.

“무기부터 포션까지! 칼 상점입니다! 학과 생활을 할 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이용해 주세요!”

윙크한 그는 아하하하!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다른 학생을 향해 달려갔다.

“진짜 별의별 애들이 다 있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셀리아가 명함을 품에 갈무리하며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 신입생들 좀 만나고 올게.”

로드렌 제국은 대륙 서부의 강국이다.

그러다 보니 서부 입학생 중 제국 출신이 제법 많았다.

“갔다 와, 나는 구경 좀 하고 있을 테니까.”

“응. 나중에 선착장에서 만나.”

셀리아가 떠나고 레오는 느긋하게 걸으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선착장에는 신입생들 말고도 축하해주러 온 가족들이 가득했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모습은 레오에게 향수를 일으키게 하기 충분했다.

‘가드스론 같군.’

재앙의 시대 최후의 방어선으로 불렸던 도시.

그리고 리시나스를 필두로 카일이 에레보스를 향해 반격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시작의 도시이기도 했다.

추억을 회상하며 레오가 서 있을 때였다.

퍽-!

“억?”

책을 보며 걷던 금발 머리 여학생이 미쳐 레오를 발견하지 못하고 등에다 머리를 박았다.

“아, 미안. 앞을 안 보고 걸어서.”

“신경 쓰지 마.”

레오에게 사과한 그녀는 다시 책에 시선을 집중시킨 채로 걷기 시작했다.

‘저러면 또 누군가 부딪힐 텐데…… 응?’

바닥에 떨어진 카드 한 장이 보였다.

조금 전 여학생의 사진이 찍혀 있는 학생증에는 클로에 뮐러라고 쓰여 있었다.

주변을 살폈지만, 클로에는 이미 인파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중에 만나면 돌려주자.’

어차피 같은 신입생이라면 만나게 되어 있다.

“칼 상점입니다! 여기 명함 받으시죠!”

조금 전 봤던 칼이 다른 신입생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있었다.

그러다 레오와 눈이 마주친 그가 씩 웃으며 다가왔다.

“또 보네?”

“홍보는 잘 돼?”

“그럭저럭. 근데 콧대 높으신 귀족가의 도련님 아가씨들은 쳐다도 안 보더라고.”

“루메른은 평민보다 귀족 출신이 많아서 대부분 쳐다도 안 보지 않나?”

“그렇지. 크흐흐.”

어깨를 으쓱거리던 칼이 유쾌하게 웃었다.

“다시 소개할게. 칼 토마스야. 나이는 열다섯!”

“레오 플로브라고 해. 델라드 왕국 출신이고 나이는 너와 같아.”

“귀족이지?”

“응.”

“와, 그런데 내가 평민이란 거에 별로 신경 안 쓰는구나?”

신기하다는 듯 말하는 칼을 보며 레오가 웃었다.

“그나저나 델라드 왕국이면 서부 시험 아니야? 거기 시험 장난 아니었다고 하던데 거길 통과하다니 대단하다!”

“쉽지는 않았지.”

이후 레오와 칼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붙임성 좋은 칼 덕분에 순식간에 친해질 수 있었다.

“넌 전공으로 뭘 선택할 거야? 우리 집안은 대대로 연금술사였거든! 그래서 난 마법학과 지망이야.”

“나도 마법학과 들을 예정이야.”

“정말이냐? 그럼 앞으로 진짜 친하게 지내자, 레오!”

칼이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물론 레오는 마법학 뿐만 아니라 기사학, 소환학도 공부할 예정이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루메리아 호수에 낀 물안개를 헤치고 거대한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메른과 루메리아를 오가는 함선이었다.

“오오! 큰데!”

칼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잠시 후, 정박한 함선에서 제복을 입은 은발의 남성이 내렸다.

“신입생 모두 집합!”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신입생들이 남성 앞으로 모였다.

“인원 확인해.”

남성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마법 체크기를 이용해 학생들의 신분증을 확인했다.

학생증을 꺼내는 레오의 눈에 몸을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여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만.”

“응? 어디 가냐?”

칼이 뒤를 따라왔다.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던 클로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레오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응?”

“아까 떨어트렸어.”

“아, 고마워!”

레오가 건네주는 학생증을 받은 클로에가 밝게 웃었다.

“신세를 졌네? 내 이름은 클로에 뮐러야!”

“클로에 뮐러?”

칼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북부 시험 수석 클로에 뮐러?”

“응. 너희는?”

“난 레오 플로브고 이 녀석은…….”

“칼 토마스! 무기부터 포션까지! 학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취급합니다! 여기 명함 받으시죠!”

칼이 냉큼 클로에에게 명함을 건네며 빠르게 영업을 뛰었다.

그것을 받은 클로에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상점? 너 서포터로 주력 활동을 할 생각인가 보구나?”

“하하, 역시 수석은 다른데? 한 번에 알아채고 말이야.”

“마탑 선배들에게 주워들은 게 있거든.”

루메른 학생은 모두 영웅 후보생이라 불리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결국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영웅을 돕는 서포터로 전향한다.

전투 보조를 시작으로 물자 공급 등등.

말 그대로 영웅에게 필요한 존재지만 대부분 학생은 서포터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루메른에 입학한 이상 목표는 오직 영웅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은 일찌감치 서포터의 길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난 입학 성적도 턱걸이였으니까.”

“물건 괜찮으면 애용해줄게.”

“오오! 벌써 수석 중 한 사람이랑 선이 닿다니! 운이 좋은데?”

칼이 푸하하! 웃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우리 모두 마법학과니까!”

“마법학과?”

클로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야 그렇다 치지만 너도 마법학과야?”

“응.”

“기사학과가 아니라?”

수석을 차지한 실력자답게 레오가 오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꿰뚫어 본 클로에였다.

“복수전공 희망자거든.”

“뭐야! 너 마검사였냐? 대단하잖아!”

칼이 호들갑을 떨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두 개의 이능력 재능을 가진 이를 듀얼 클래스라고 한다.

실제 루메른에서도 상당수의 듀얼 클래스 학생이 있었다.

레오의 말에 클로에는 그러려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교직원이 다가와 세 사람의 학생증을 확인했다.

인원 체크를 끝낸 교직원들이 물러서자 제복을 입은 은발의 남성이 앞으로 나섰다.

“루메른의 교수 아인 엘랑듀다.”

“아인 엘랑듀? 빙해의 기사?”

“그 아인 엘랑듀라니.”

“사인받고 싶어!”

“정숙해라!”

아인이 흥분한 학생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루메른으로 이동한다. 모두 배에 탑승하도록.”

“예!”

***

입학식 전 신입생들은 갑판에서 풍경 구경을 하기 바빴다.

루메른 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배답게 갑판은 호화 그 자체였다.

갑판은 말 그대로 사교 파티 분위기였다.

일류 쉐프가 만든 다양한 나라의 전통 요리가 신입생들의 혀와 코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심지어 아인 교수는 갑판에 앉아 느긋하게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 은 종업원들은 부지런히 갑판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시중을 들고 있었고 귀족 학생들은 그 대우에 만족하며 하하호호- 웃으며 친목을 쌓기 바빴다.

“역시 루메른 아카데미는 다르네.”

“앞으로 학교생활이 기대되는걸?”

신입생들이 앞으로 펼쳐질 스쿨 라이프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 모습에 레오가 미간을 좁혔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

접시 한가득 음식을 가져온 칼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명색이 영웅 사관 학교인데 사교 파티 분위기라니.”

“입학식 전인데 뭐. 그것보다 레오! 내가 정보 물어 왔다.”

“정보?”

“그래! 저기 봐봐!”

칼이 씩- 웃으며 갑판 한쪽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는 옅은 갈색 피부의 몸집이 큰 남학생을 가리켰다.

“워레든 타이든! 남부 시험의 수석이고 전공은 소환학이라더라!”

“정령술사네.”

“맞아. 너도 사전에 좀 알아봤구나?”

알아봤다기보다는 한눈에 알아본 거지만 굳이 정정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저쪽은 동부 시험 수석 첸 시아!”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작은 체구의 여학생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다른 나라의 음식들을 맛보고 있었다.

“전공은 기사학이라던데 시험에서 경쟁자들을 주먹으로 다 때려잡았다더라?”

혀를 내두른 칼이 이번에는 반대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쪽이 중부시험 수석이지. 우리 왕국 셋째 왕자인 듀란 모이라. 기사학 전공.”

옅은 금발의 남학생은 와인 잔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그와 친분 있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칼이 레오 옆을 가리켰다.

“그리고 북부 수석.”

클로에는 우물우물 케이크를 먹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서부 수석은 둘인데 그 유명한 셀리아 제르딩거랑 아바드 르왈린이라고 하더라.”

“레오, 여기 있었구나?”

마침 셀리아가 다가왔다.

“어서 와, 셀리아.”

“셀리아? 헉! 설마 셀리아 제르딩거?”

“맞아.”

“레오 너랑 친한 여학생이 셀리아 제르딩거였어? 이거 대박인데?”

칼이 씩- 웃으며 셀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까도 소개했지만, 칼 토마스야!”

“흐응? 그새 친해진 모양이네? 셀리아 제르딩거야.”

칼의 손을 잡은 셀리아가 클로에 쪽을 보았다.

“그쪽은?”

“난 클로에 뮐러야.”

“클로에 뮐러라면 북부 수석?”

“맞아.”

클로에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잠시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던 셀리아가 레오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 생각했던 거랑 아카데미 이미지가 달라서.”

루메른은 최고의 인재를 선별해서 영웅으로 육성시키는 곳이다.

그런 만큼 학교생활은 엄청나게 힘든 것으로 유명했고 자퇴율도 엄청나게 높았다.

그런 곳에서 이렇게 호화로운 크루즈 여행을 시켜주고 있으니 의아할 따름이었다.

“아무리 루메른이라도 입학식도 하기 전에 학생들을 굴리겠어?”

“맞아. 네가 좀 지나치게 생각하는 거야.”

칼의 말에 셀리아가 동의할 때였다.

쿠웅-!

선체가 크게 흔들렸다.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네.”

“뭐, 뭐야?”

레오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호수에서 무언가 치솟았다.

촤아악!

“꺄아아아아악! 이게 뭐야!”

“서, 설마 크라켄?”

“갑자기 크라켄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냐고!”

갑판을 덮친 거대한 오징어 다리에 파티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학생들은 패닉에 빠졌다.

“아, 아인 교수님! 도와주세요!”

여학생 한 명이 다급히 아인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에 아인 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도와 달라? 내가 왜 그래야지?”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