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6화 (16/483)

【16】15

드넓은 루메른 아카데미의 한 가운데는 에레크라 불리는 거대한 연병장이 있었다.

학교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열리는 곳으로 대표적으로 입학식과 졸업식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곳 에레크에 루메른의 모든 학생이 모여 있었다.

“왔구나?”

“역시 쫄딱 젖었네?”

“푸하하하! 봐봐! 내가 멀쩡한 애들 몇 명 없을 거라 했지?”

고학년 학생 중 성격 나쁜 이들이 야유를 쏟아냈다.

자존심 강한 몇몇 신입생이 수치심에 몸을 떨었지만 발끈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 가운데 에레크 연병장 한가운데로 신입생들을 인솔한 아르티안이 말했다.

“각 지역별로 정렬하세요. 그리고 수석 학생들은 대표로 앞으로 나오세요.”

그 말에 학생들은 다섯 줄이 되어 오와 열을 맞춰 정렬했다.

당연히 서부 지방 학생은 눈에 띄게 적었다.

단상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교수들이 혀를 찼다.

“역시 알비 교수님이라고 해야 합니까? 서부 지방 학생들의 숫자는 너무하는군요.”

한 교사가 나무라듯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알비를 향해 말했다.

그러나 알비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레오는 가장 뒤쪽에 섰다.

“앗! 레오 오빠! 안녕!”

그때 입학시험 때 팀을 짰던 첼시 르왈린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정신없어서 이제야 보네!”

초롱초롱 빛내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첼시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빨리 줄부터 서.”

“응!”

레오 옆에 선 첼시가 재잘재잘 떠들었다.

“나 그때 레오 오빠가 싸우는 거 보고 너무 감동받아서 부전공으로 기사학과 수업을 들을까 생각 중이야.”

“흐음? 그러고 보니 배틀 메이지가 목표라고 했지?”

“응!”

즉답에 레오가 잠시 첼시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러면 일단 마법 수련에 더 매진해야겠네?”

“응? 나 마법은 충분한데? 왜 마법 수련에 더 매진해야 한다는 거야?”

조금 당황한 얼굴로 묻는 첼시를 보며 레오가 뭔가 말하려 할 때였다.

“지금부터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단상에 선 진행 교수의 말에 첼시가 입을 다물었다.

그와 함께 단상 가운데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입생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그 노인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현 인간 영웅 중 최고라 칭송받는 자.

검성, 칼리안 베이드안.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네, 햇병아리 제군들.”

칼리안이 노인답지 않은 기백을 드러내며 말했다.

“긴말하지 않겠네. 자네들이 걸어야 가야 할 길에 대해 알려주지!”

쾅-!

칼리안이 주먹으로 단상을 내리쳤다.

“그대들이 영웅을 꿈꾸는 자라면 언제나 자신을 걸어라! 그리고 한계를 넘어서라! 그렇지 않은 자는!”

검성의 일갈에 신입생이 숨을 삼켰다.

“루메른에 필요 없다.”

그 말을 끝으로 미련 없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잠시 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아!”

신입생들에게서 터질 듯한 함성이 쏟아졌다.

연설이라 부르기도 힘든 짧은 말에는 신입생들을 뜨겁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뒤돌아선 검성은 교수들을 향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V를 그렸다.

그 모습에 몇몇 교수들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교장 선생니이이임!’

‘계속 근엄하게 계셨으면 정말 멋있으셨을 텐데!’

‘흑흑, 루메른 교수 생활을 하면 할수록 검성에 대한 환상이 부서지는 느낌이야.’

교수들은 싫어도 알고 있었다.

모두가 동경하는 최고의 영웅 검성이 사실은 한없이 가벼운 노인네라는 사실을 말이다.

진행 교수 역시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신입생 대표의 연설이 있겠습니다.”

그 말에 에레크 연병장의 모든 이들이 진행 교사의 말에 집중했다.

신입생 대표.

천재들만 모인 루메른의 신입생 중 단연 최고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수백 명의 영웅 후보생 중에서도 강력한 영웅 후보!

맨 선두에 있던 수석들 역시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진행 교수가 입을 열었다.

“신입생 대표, 레오 플로브.”

“레오 플로브?”

“그게 누구야?”

“신입생 대표가 수석이 아니라고?”

신입생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웅성거렸다.

맨 앞에 앉아 있던 여섯 명의 수석들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입생 대표가 누구인지 몰랐던 교수들도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때 진행 교수가 말했다.

“레오 플로브 학생.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그 말에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첼시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런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저쪽에 다른 줄에 앉아 있던 칼이 입을 뻐금거렸다.

수석이 아닌 일반 학생이 대표가 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고학년들 역시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레오에게 꽂혔다.

‘내가 신입생 대표라고?’

레오도 의아함을 느꼈다.

입학시험에서 인상에 남을만한 활약을 한 건 분명했지만 점수는 셀리아와 아바드가 앞서리라 생각했다.

실제 시험에서 가장 활약한 건 두 사람이었고 그래서 공동 수석을 차지한 거다.

의문을 느끼며 단상에 오른 레오는 서부 시험의 감독관이었던 알비와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하던 알비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감독관의 추천인 모양이다.

의문을 접은 레오가 단상 위에 섰다.

단상 위에는 준비된 연설문이 있었다.

“존경하는 교수님들, 그리고 선배님들. 이렇듯 신입생인 우리를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신입생들은 이제부터 자랑스러운 루메른의 사람으로서…….”

레오는 긴장된 기색도 없이 연설문을 읽어나갔다.

그런 레오에게는 여러 감정이 담긴 시선이 닿았다.

수석들을 제치고 일반 학생이 대표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한 것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심.

“……신입생 대표, 레오 플로브.”

짝짝짝짝짝-!

연설이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좋습니다, 레오 학생. 그럼 신입생 대표로서 포부 한 마디 부탁합니다.”

진행 교수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신입생 대표로서의 포부.

이건 일종의 루메른 입학식의 전통이었다.

수많은 경쟁을 뚫고 신입생 대표를 차지한 만큼 학교 모든 사람에게 한마디를 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1학년들을 자극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충분히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애들에 대한 도발이란 건가?’

레오가 피식 웃었다.

항상 최고였던 만큼 이 자리를 탐내는 학생은 분명 많을 것이다.

몸을 돌린 레오가 신입생 전원을 내려다보았다.

“신입생 대표, 레오 플로브입니다.”

예의 바른 레오의 인사에 진행 교수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신입생 대표는 얌전한 학생이군요. 뭐, 우등생다운 포부도 나쁘지는 않죠.’

사실 한 성깔 하는 학생도 이 자리에 올려놓으면 말을 함부로 꺼내는 게 쉽지 않다.

‘올해는 무난한 입학식이 될 것…….’

“이 자리가 탐난다면 가져가세요.”

진행 교수가 눈을 부릅떴다.

다른 신입생들은 입을 쩍 벌렸다.

레오는 한 번 웃어 주고 단상을 내려갔다.

레오는 학교 측에서 의도한 바를 정확하게 캐치 하고 따라 줬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저건 심하잖아!’

진행 교사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고학년들 사이에서도 실소가 튀어나왔다.

“이번 입학식은 역대급인데?”

“아주 맹랑한 후배가 들어 왔어.”

모두의 시선이 레오에게 쏠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레오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단상을 내려왔다.

자리로 돌아갈 때 셀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물끄러미 레오를 바라보던 셀리아가 작게 코웃음을 치고 턱을 치켜들었다.

옆에 앉아 있던 아바드는 레오를 보며 빙긋 웃었다.

“와! 와! 레오 오빠가 대표였어?”

자리로 돌아오자 첼시가 호들갑을 떨며 작게 말했다.

“아바드가 안 된 게 아쉽지 않냐?”

“오라버니가 안 된 건 아쉽지만 나랑 오라버니는 레오 오빠가 싸우는 걸 직접 봤는걸?”

음음-!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첼시가 말했다.

“말은 안 했지만, 오라버니도 레오 오빠를 인정하고 있을 거야.”

“그러냐?”

레오가 앞 좌석에 앉아 있는 아바드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시간이 흐르고 입학식이 끝이 났다.

***

입학식 종료 이후 신입생들은 곧바로 기숙사로 안내받았다.

기숙사는 당연히 남녀로 나뉘어 있었다.

화려한 대저택처럼 생긴 각 기숙사는 나란히 세워져 있다.

중앙에는 정원이 있고 주변 부지에는 연무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신입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숙사 관리자 중 하나가 말했다.

“기숙사 배정은 1인 1실입니다. 그리고 통금 시간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외박이 허용됩니다. 단.”

기숙사 관리자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성의 기숙사에 함부로 들어가는 건 절대로 금하고 있습니다.”

기숙사 관리자의 얼굴이 엄하게 변했다.

“여러분이 이성에 관심을 가질 나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은 지켜주세요.”

“네~”

신입생들이 명랑하게 대답했다.

기숙사 관리자는 그 대답에 쓴웃음을 지었다.

대답은 이렇게 해도 혈기 왕성한 십 대들이라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꼭 이 학칙을 어기는 학생들이 있다.

‘물론 그다음부터는 절대 안 하지만.’

“자, 그럼 각자 짐을 찾아서 배정된 기숙사 방에 짐을 풀고 1시간 후에 다시 이곳으로 집합하세요.”

기숙사 관리자는 입학식을 하는 동안 배달된 짐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입생들이 친한 이들끼리 서로 떠들며 자신의 가방을 찾았다.

그리고 배정된 기숙사 방을 확인했다.

“오! 레오! 너랑 나랑 옆방인데?”

“그래? 그거 잘됐네.”

칼이 밝은 목소리로 말하자 레오가 웃었다.

“그나저나 놀랐어, 네가 학생 대표일 줄이야!”

“그러게, 나도 모르고 있었어.”

“시험에서 활약상이 대단했었나 봐?”

“시험관이 날 좋게 본 모양이야.”

레오와 칼이 짐을 들고 배정받은 2층으로 올라갔다.

다른 신입생들의 시선이 꽂혔다.

“쟤가 신입생 대표라고?”

“왜 수석들을 제치고 저 녀석이 대표가 된 거야? 혹시 빽이라도 있나?”

“빽 있다고 신입생 대표 할 수 있겠냐?”

‘첫날부터 주목받게 됐네.’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집합한 후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우선은 반 배정.

루메른은 기본적으로 전공 위주의 수업이 진행되지만, 공통 수업도 있다.

그 수업의 경우에는 클래스 메이트들과 함께 듣는다.

1학년의 경우에는 1반부터 10반까지 열 개의 반이 있다.

그중 레오는 첼시, 칼과 함께 5반에 배정받았다.

이후에는 루메른 아카데미 안에 있는 시설을 안내받았다.

세계에 존재하는 단 네 개뿐인 영웅 사관 학교답게 루메른의 아카데미 부지는 광활했다.

중요 시설을 견학하는데도 반나절이 걸렸다.

견학을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오자 기숙사 사감 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다. 1학년 기숙사 사감을 맡은 오벨리오라고 한다. 오늘 하루 고생 많았다. 내일부터는 일주일간 임시 수업이 시작된다.”

임시 수업기간 동안은 원하는 수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기사학 지망이라도 마법학, 소환학을 들을 수 있다.

그 와중에 학생 본인이 몰랐던 재능을 찾아내기도 했다.

“내일부터 바로 수업 시작이니 괜히 들뜨지 말고 오늘은 일찍 자도록.”

오벨리오 교수가 해산을 명령하자 학생들은 각자 기숙사 방으로 향했다.

“흐아~ 진짜 정신없는 하루였어!”

칼이 피곤하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내일부터 진짜 기대되네! 어쨌든 레오! 잘 자라!”

“그래, 잘 자.”

인사한 후 서로의 기숙사 방에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온 레오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들어갔다.

침대에서 느껴지는 안락함을 느끼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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