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0
“피리나씨와 계약을요?”
-그래. 레이나는 나와 엘런이 은혜를 갚겠다고 했을 때 거절했단다. 친구를 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지.
피리나가 빙긋 웃었다.
-제르딩거가 가진 힘의 원천은 피닉스의 불꽃. 소환사로서 자질을 가졌다면 피닉스의 계약자로서 이만한 자격도 없단다.
‘그렇다고 해도 피닉스가 직접 계약을 하자고 할 줄이야.’
자존심이 강한 피닉스는 절대 먼저 계약을 제안하는 환수가 아니었다.
-물론 지금 당장 계약하자는 건 아니야. 네가 소환사로서 성장을 하고…….
“지금 가능할까요?”
-응?
아무리 피리나에게 계약 의사가 있다고 해도 지금 레오의 힘으로는 계약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레오는 계약을 이루어 낼 자신이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재앙의 시대를 종결시킨 장본인이며 전생에 강력한 환수를 다루었다.
‘전생에도 피닉스와 계약을 맺은 적은 없었지.’
카일이던 시절에도 피닉스와의 계약을 맺고 싶었다.
강력한 환수와의 계약은 그 자체만으로 소환사로서의 그릇을 성장시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피리나는 난색을 보였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 너로서는 나와 계약을 맺을 수 없어. 함부로 시도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거다.
피닉스와의 계약은 특히나 고행이다.
그건 피리나로서도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자신 있어요.”
‘불가능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모습은 레이나를 똑 닮았구나. 하지만 그녀의 아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는 없지.’
고민하던 피리나는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계약해주마, 단. 너와 계약을 맺을 피닉스는 내가 아니란다.
“예?”
화륵-!
레오의 눈앞에 진홍색 불꽃이 일렁였다.
불꽃이 걷히고 주먹만 한 크기의 황금색 알이 나타나자 레오가 눈이 크게 떴다.
‘피닉스의 알?’
-그 알은 곧 부화할 나의 자식이란다. 이 아이를 테이밍해보거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피닉스의 알을 테이밍하면 자연스럽게 계약은 이루어진다.
아직 알인 상태이니만큼 계약을 시도한다 해도 위험에 처할 일은 없다.
하지만 테이밍 난이도는 최상위급 환수에 맞먹을 정도로 어렵다.
‘피닉스의 알이라. 불가능한 걸 시험으로 내네.’
황금색 알을 받은 레오가 웃었다.
‘보통 사람에게는 말이야.’
화르륵-!
레오가 영력을 일으키자 그에 반응한 피닉스의 알이 진홍색 불꽃을 뿜어냈다.
강력한 열기에 레오가 이를 악물었다.
‘미약하다고는 해도 피닉스의 불꽃, 어린 인간 소년이 감당할 힘이 아니야.’
피리나는 레오가 곧 포기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레오는 포기하지 않았고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이윽고, 눈을 떴을 때는 새카만 어둠이 보였다.
최상위급 환수에게 시험을 받게 되는 의식의 공간.
말 그대로 계약자의 가치를 정하는 시험의 세계였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피닉스의 세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타오르는 진홍색 불꽃뿐.
레오는 서슴없이 손을 뻗었다.
그에 반응하여 불꽃이 레오의 몸을 휘감더니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피닉스는 자기 몸을 불태워 강력한 화력을 내뿜는다.
그 과정에서 끝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 고통을 대가로 최강의 힘을 가진 환수로 칭송받는다.
환수와의 맹약은 유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피닉스와의 유대를 쌓기 위해서는 피닉스의 아픔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피닉스와의 계약이 특히나 힘든 이유였다.
“끄윽!”
온몸을 불타는 고통에 레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험을 이겨내는 건 오직 강대한 정신력뿐.
피리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설마……?
화르르르르륵-!
강렬하게 타오르던 불꽃이 황금색 알로 빨려 들어갔다.
쩌저적-!
알의 표면에 금이 갔다.
피리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공했다고?
화악-!
알이 모든 불꽃을 빨아들이자 레오가 눈을 떴다.
순간 레오의 붉은 눈이 진홍색으로 번뜩였다,
털썩-
탈진한 레오가 자리에 주저앉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은 땀범벅이었다.
하지만 얼굴은 확실하게 웃고 있었다.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아하하하!
피리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하구나! 대단해! 레오 플로브! 너는 천재로구나!
“천재라기 보다는…… 노력이죠, 뭐.”
-네 나이에 피닉스의 알을 테이밍 하는 소환사가 천재가 아니라면 뭐란 말이냐! 너는 사상 최강의 소환사 자질을 타고났어!
진심으로 기뻐하는 피리나를 보며 레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린 피닉스는 대체 어떻게 생겼지?’
카일 시절에도 어린 피닉스를 본 적이 없었다.
쩌저저적-!
-태어나는구나, 내 아이가.
알의 금이 표면 전체로 퍼졌다.
파칭-!
마치 유리공예품이 깨지듯 황금색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알을 깨고 나온 피닉스를 본 레오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병아리?’
이제 막 태어난 피닉스는 마치 병아리 같았다.
화르르륵-!
그때 불꽃과 함께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피리나가 레오의 손에서 자신의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피오라. 레오야. 계약은 했지만, 아직 어린아이란다. 그러니 당분간 내가 데리고 있으마.
“예, 그런데 제가 시험 때문에 계약한 환수를 교수한테 확인받아야 하거든요.”
-그럼 그 시간 동안은 네게 맡겨두마.
빙긋 웃은 피리나가 레오의 머리 위에 피오라를 올려 두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피닉스답게 생명력이 넘치는 피오라는 작은 부리로 레오의 머리를 몇 번 쪼아보았다.
그러고는 마음에 든 듯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거 피닉스 맞아? 아무리 봐도 병아리로밖에 안 보이는데?’
하지만 사랑스럽다는 듯 피오라를 바라보는 피리나의 면전에 대고 차마 병아리 같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감상을 속으로 묻어두기로 했다.
삐약-!
‘병아리 맞네.’
***
유라 교수가 품에서 시계를 꺼냈다.
주어진 세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미 대부분 학생은 테이밍 한 환수를 유라 교수에게 평가받은 상태였다.
그중에는 계약을 성공한 학생도 있었다.
‘어디 보자…… 남은 건 네 명이네?’
그리고 남은 학생들이 바로 유라 교수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쿵-! 쿵-!
그때 지축이 울렸다.
학생이 눈을 휘둥그레 뜰 때 수풀을 헤치고 거대한 푸른색 곰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악!”
“꺄악!”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 흩어졌다.
몇몇 학생이 푸른 곰의 정체를 알아보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유라 교수 앞으로 걸어간 푸른색 곰이 자세를 낮추었다.
등에 타고 있던 첸 시아가 폴짝 뛰어내렸다.
“ 교수님, 아직 시간 안 끝났죠?”
“그래.”
‘여기저기 교복이 찢어진 걸 보니 한 바탕 한 모양이군.’
“테이밍은 이론으로밖에 모른다고 하더니 중급 환수인 아쿠아 베어 새끼를 테이밍 해왔구나.”
“테이밍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절 따른다고 해야 할지.”
어색하게 웃으며 첸 시아가 볼을 긁적였다.
사실 완벽하게 테이밍 한 건 아니었다.
“이 정도로 따른다면 테이밍 공부만 조금 더 하면 테이밍이 완료일 거다.”
‘확 보쌈해서 소환학과 전공 시킬까 보다.’
아쿠아 베어의 새끼라면 테이밍 난이도를 완전한 중급 환수로는 볼 수 없지만 대단한 건 대단한 거다.
이 정도 능력자가 기사학 지망 수석이라니.
소환학 교수로서 통탄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유라 교수가 입맛을 다시는 사이 첸 시아는 아쿠아 베어를 숲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수풀에서 워레든이 나타났다.
그의 어깨에는 작은 까마귀 하나가 앉아 있었다.
“어떤 환수지?”
“수석 치고는 수수한 환수네.”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부교수 카를로와 조교들은 깜짝 놀랐다.
“호오? 쉐도우 크로우를 테이밍 하다니. 정령술이 주전공인데 대단하구나.”
자신 앞에 선 워레든을 보며 유라 교수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쉐도우 크로우는 아쿠아 베어와 같은 중급 환수지만 첸 시아와 다르게 이쪽은 성체였다.
게다가 쉐도우 크로우는 까다로운 환수라 테이밍 난이도만 본다면 상급 환수에 맞먹을 정도다.
‘환수 소환사로서의 재능도 최상급이군.’
“계약은 맺지 못했습니다.”
“충분해.”
중급 환수를 테이밍한 것만으로도 모든 학과를 통틀어 1학년 최상위권이다.
‘환수 소환술 과목에서는 엘리자가 1등이겠지만.’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잠시 후 엘리자가 돌아왔다.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수업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깔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엘리자는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유라 교수에가 다가갔다.
“환수는 어딨지?”
유라 교수의 물음에 훗- 하고 웃은 엘리자가 손을 펼쳤다.
소환진이 나타나더니 거대한 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쉬-! 쉬-!
“꺄악!”
“배, 뱀이다!”
사람도 한입에 집어삼킬 것 같은 거대한 흰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자 여학생들이 기겁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허어…… 고르곤 스네이크와 계약하다니.”
“저희 집안에는 없는 환수라서요. 이참에 계약을 맺었답니다.”
고르곤 스네이크.
중급 환수로 매우 귀한 환수였다.
‘과연 헤르긴 가문의 후계자답군.’
“매우 훌륭하다! 엘리자!”
“감사합니다.”
엘리자는 우아하게 교복 치맛자락을 살짝 들며 인사했다.
‘으흐흐흐. 올해는 풍작이네, 풍작이야.’
속으로 웃던 유라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레오 플로브는 아직 멀었나?’
이제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환수를 데려오던 아웃이다.
갈증을 느낀 유라 교수가 말했다.
“물 좀 줘.”
“예, 교수님. 여기 있습니다.”
부교수 카를로가 건네주는 물통을 열며 유라 교수는 시간을 확인했다.
때마침 레오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났다.
“레오 도령. 어서 오세요.”
첸 시아가 웃으며 손을 흔들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이밍은 힘이 동반될 때가 많다.
그래서 엘리자를 제외하고 모든 학생의 교복이 찢어지거나 흙먼지가 묻은 상태였다.
하지만 레오의 몰골은 그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교복 여기저기는 모두 타서 그을렸다.
겉모습만 본다면 뭔가 대단한 환수를 데려와야 할 것만 같은데 보이는 거라고는…….
‘병아리?’
레오의 하얀 머리 위에 빨갛고 작은 새가 삐약- 삐약- 늠름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풉! 지금 병아리를 테이밍 해온 거야?”
“대박! 학년 대표가 병아리라니!”
“야야, 웃지 마, 들리겠다! 키키킥-”
학생들이 웃음을 참았다.
“레오 학생은 아까 그리폰을 다룰 데는 기대가 됐는데. 생각보다 실망스럽네요.”
카를로가 실소를 터트리며 유라 교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푸웁-?! 커억! 쿨럭! 쿨럭! 케헥!”
그리고 사레가 들린 유라 교수가 내뿜는 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카를로 교수가 울상을 짓는 사이 가까스로 진정한 유라 교수가 경악한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저 미친놈이 지금 피닉스를 테이밍 해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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