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3
“아하하하하하하!”
시작의 관에 있는 카페 테라스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배를 잡고 웃던 셀리아가 히끅- 히끅- 경련하더니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그래서? 한 문제 겨우 풀고 마법 수업을 나온 거야?”
“다 웃었냐?”
뚱한 표정을 지은 레오가 과일 주스를 마셨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마법전공 수업은 들어도 소용없다고 했지?”
웃음을 진정시킨 셀리아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제르딩거 사람이라면 검술에 매진해야지.”
“난 제르딩거가 아닌데.”
“피닉스 브레스를 익히고 있는 사람이 제르딩거 사람이 아니면 대체 뭐니?”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레오를 한 번 본 셀리아가 차를 홀짝였다.
“어쨌든 오후 수업 전까지는 한가하지? 나랑 훈련이라도 할래?”
“그럼 체력 단련이라도 할까?”
“……!”
셀리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레오의 체력 단련은 고문에 가까웠다.
플로브 가에서 지옥 같은 일주일이 떠올리며 셀리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난 검술 수련을 할…….”
“설마 빼지는 않겠지?”
레오가 생긋 웃었다.
“지스 삼촌이 네가 체력 단련이 무서워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야! 마법 수업 가자고 놀린 걸 이렇게 복수하기냐, 이 치사한 놈아!”
사악한 미소 짓는 사촌을 보며 셀리아가 치를 떨었다.
“자, 우리 열심히 훈련하자.”
“싫어. 이거 놔.”
뒷덜미를 잡고 연무장으로 가는 레오를 향해 셀리아가 기겁하며 버둥거릴 때였다.
“야! 레오!”
칼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무슨 일인데? 수업은 어쩌고?”
“렌 교수님이 너 찾으신다.”
셀리아의 얼굴이 화색을 띠었다.
“교수님이 찾으신다잖아, 레오. 빨리 가봐.”
“날 왜 찾으시는데?”
“너 마법 이론 시험 1등이야.”
“뭐?”
레오와 셀리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헥헥- 숨을 몰아쉰 칼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수업 난리 났어! 1등 한 애가 수업 안 들어왔다고 교수님 엄청나게 화나셨어!”
***
칼이 레오를 데리고 대강의실에 돌아왔을 때 강의실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의 시선이 강의실 문으로 들어오는 레오에게 꽂혔다.
그 시선에 레오가 순간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 왜 이래?’
“레오 학생, 대체 수업에 안 들어오고 어디 갔던 겁니까?”
렌의 부교수 안나가 조용히 묻자 레오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카페에 있었는데요.”
“시험이 끝나면 바로 수업 시작한다고 했잖아요? 왜 카페에…….”
짝- 짝- 짝- 짝-
그때 느닷없이 박수 소리가 들렸다.
렌 교수가 웃으며 다가왔다.
“레오 학생! 너의 천재성에는 정말 탄복했다. 쉬운 문제에는 일절 손도 대지 않고 가장 어려운 문제만 쏙 골라 푼 다음 수업을 나가다니. 하하하! 하긴, 천재에게는 내가 낸 시험이 시시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군. 기사학 전공자니 더더욱 그럴 수 있겠어!”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기사와 마법사는 오래전부터 경쟁 관계를 형성해 왔다.
당장 인간의 나라 중 최강대국 중 하나인 로드렌 제국만 봐도 제르딩거와 르왈린을 필두로 기사 파벌과 마법 파벌이 나뉘어 정치를 하고 있다.
루메른 학생 중에도 자기 분야를 최고로 여기는 극단주의자가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기사학과 지망으로 알려진 신입생 대표가 마법 전공 수업에 들어와서 제일 어려운 문제 하나를 제외하고 백지를 제출한 건 오해의 소지를 만들기 충분했다.
거기다 레오는 나간 후 수업에 돌아오지도 않았다.
레오가 다급히 말했다.
“교수님,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오해?”
“전 제가 시험에서 탈락했다고 생각했습니다. 1등을 한지도 몰랐어요.”
그 말에 미간을 좁힌 렌 교수는 빤히 레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루메른 교수 중 단연 젊은 축에 속하는 렌 교수지만 이제 입학한 신입생이 속아 넘길 정도로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 하지만 왜 다른 문제는 풀지 않은 거지?’
“레오 학생과는 잠시 면담을 해야겠어. 안나 부교수. 나 대신 수업을 맡아 줘.”
“알겠습니다, 교수님.”
안나 교수가 고개를 숙이고 교단에 섰다.
렌 교수는 강의실 뒤편에 수업 준비실에 레오를 데려갔다.
“왜 다른 시험 문제를 풀지 않았지?”
“그게…….”
레오가 머뭇거렸다.
“문제가 너무 쉬워서 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건가?”
“그게 아니라…… 그…….”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레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쪽팔려. 십대 애들도 푸는 걸 전생에 대마법사급이었던 내가 못 풀었단 사실을 내 입으로 말해야 해?’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학교생활이 꼬일 수도 있었다.
결국 레오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못 풀겠던데요?”
“뭐라고?”
제일 어려운 문제를 풀어 놓고 다른 문제들은 어려워서 못 푼다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제가 집에서 독학으로 마법 술식을 공부했는데 집 안에는 아주 오래된 마도서들 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옛날 수식만 공부했어요. 요즘 마법 술식이 그렇게 복잡할 줄 몰랐습니다. 교수님 말처럼 너무 안일한 마음으로 마법 전공을 들은 것 같아 창피해서 수업에 못 들어왔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뒤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제가 1등이란 건 대체 무슨 소리죠? 전 한 문제만 겨우 풀었는데요?”
‘그러니까, 발동 술식은 구조를 몰라 합산 문제에 손을 못 댄 거고…… 결국 풀다가 포기하고 마지막 문제만 풀었다는 건가?’
설명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확실히 옛날 마법서로 독학했다면 발동 수식을 모를 수도 있다.
발동 수식은 최신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역사가 깊은 술식은 아니다.
‘술식 해석 공부만 해왔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군.’
렌 교수는 분필을 들고 준비실에 있는 간의 칠판에 마법 술식을 썼다.
“이걸 풀어보도록. 그럼 레오 학생의 말을 믿어주지. 그리고 왜 레오 학생이 1등을 했는지도 가르쳐주마.”
분노가 가라앉으니 흥미가 갔다.
어린 세대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발동 수식은 이미 어린 마법사들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아서 트렌드가 아닌 주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오는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세대 마법사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강점이 있다.
‘그건 튼튼한 기본기지. 마법의 기본은 결국 술식 해석 능력이니까.’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성장이 늦더라고 결국 크게 자란다.
렌 교수는 레오가 이미 ‘자신만의 마법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술식 해석은 정답은 하나지만 정답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개다.
요즘 세대에서는 보기 드문 타입의 학생이 어떤 생각으로 술식 풀이를 하는지 흥미가 강하게 생겼다.
술식 풀이 과정을 보면 그 마법사의 마법 철학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어디 어떤 해석 방식을 가졌는지 한 번 볼까?’
눈을 빛내며 칠판 앞에 선 레오의 뒷모습을 보았다.
레오는 말없이 렌 교수가 낸 문제를 보면서 칠판에 손을 뻗었다.
타악-! 탁! 탁!
분필 소리가 울릴 때마다 렌 교수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정답을 다 쓴 레오가 고개를 돌렸다.
렌 교수는 레오의 풀이 방식을 볼 수 없었다.
“다 풀었는데요?”
레오가 복잡한 마법 술식을 암산으로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
‘이 양반이 왜 안 나오지?’
안나 부교수는 의아한 얼굴로 강의 준비실 쪽을 보았다.
주의 조치 아니면 퇴실 조치.
어떤 결과든 빨리 결론이 날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루메른 마법 교수 중 마법에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사람이 바로 렌 교수였다.
비록 대외적으로 유명하진 않지만 마법학계에서는 천재라고 칭송받는 남자다.
안나 역시 그의 마법 논문을 읽고 존경하게 되어 부교수로 지원했다.
‘부교수가 된 후 이미지가 깨지긴 했지만.’
평소에는 점잖은 양반이 마법만 관련되면 온갖 기행을 다 펼쳤다.
쾅-!
그리고 안나의 걱정에 부응하듯 강의 준비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학생들이 화들짝 놀랐다.
렌 교수의 얼굴을 확인한 안나 부교수는 천장을 보며 개탄했다.
‘발작병 또 도졌네. 제발 신입생들 앞에서는 추태를 안 부려야 할 텐데.’
하지만 다행히 렌 교수는 곧바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레오는 천천히 강의 준비실에서 나왔다.
“교수님이 뭐라고 했나요, 레오 학생?”
“수업 들으라고 하시던데요.”
“네, 자리에 앉으세요. 다시 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안나 부교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분필을 들었다.
학생들의 얼굴이 기묘해졌다.
첫 수업부터 갑자기 강의실을 뛰쳐나가는 교수나 그런 교수에게 전혀 개의치 않는 부교수나.
뭔가 이상했다.
그런 학생들과 다르게 레오는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물론 레오도 렌 교수가 왜 저러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근데 마법사들이 또라이 짓 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누구보다 마법사라는 생물체에 대해 잘 이해하는 레오였다.
***
쾅-!
마법동 교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집무를 보던 교수들이 고개를 들었다.
렌 교수의 얼굴을 확인한 그들은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다시 자기 일에 집중했다.
“선배님!”
알비 교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은 제게 엄청난 선물을 주셨습니다!”
달려오는 후배의 면상을 틀어쥔 알비 교수가 쓰레기 치우듯 옆으로 치워 버렸다.
그리고 미련 없이 교무실을 나갔다.
렌 교수와 엮여 봤자 피곤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바닥에 쓰러졌던 렌 교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알비 교수의 뒤를 따라 나갔다.
“오늘은 왜 저래?”
“냅둬, 하루 이틀이니.”
동료 교수들도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선배님! 조만간 제가 한턱을 내겠습니다.”
“호들갑을 떠는 이유라도 듣고 싶군.”
뜬금없이 감사를 표하는 후배를 향해 알비 교수가 묻자 렌 교수가 씩- 웃었다.
“선배가 학년 대표로 추천한 레오 플로브.”
“그 애가 왜?”
“레오 학생은 마법 천재입니다.”
“……? 그 애는 기사학과다만?”
“아뇨. 레오 학생은 마법학과에 와야 합니다.”
렌 교수가 양팔을 벌렸다.
“그런 마법 천재가 기사학과? 오우. 오우. 농담도 그런 농담이 없군요. 그 아이는 쇠붙이나 휘두르고 있을 그릇이 아닙니다. 그런 학생을 기사학 전공으로 보내는 건 마법에 대한 모독입니다, 선배.”
이후 렌 교수는 첫 수업 때 있었던 일을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 알비 교수 역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 그 레오 학생은 독학으로 5학년 수준의 술식 해석 능력을 익힌 겁니다! 이게 천재가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내게 원 하는 게 뭐냐?”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렌 교수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레오 학생이 확실하게 마법학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선배님이 힘 좀 써 주십시오.”
“학과 선택은 학생의 자유다, 그리고 그만한 인재라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마법학을 선택하겠지.”
“하긴 그렇겠군요.”
렌 교수가 납득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한 재능을 가지고도 마법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건 괴짜일 테니까요.”
“네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
신입생들이 입학하고 시간이 훌쩍 지났다.
어느덧 임시 수업일도 마지막 날이 되었다.
방과 후.
학생들은 각자 교실에 앉아 있었다.
이제 학생들은 전공을 선택하고 본격적으로 수업에 임하게 된다.
학생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미 반별로 담임도 배정된 상태였다.
임시 수업 기간 동안 학생 통솔을 맡은 조교가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학과 선택과 수강 신청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미 설명했지만 1학년 1학기는 선택 교양 수업은 없어요. 모두 필수 과목으로 시간표가 채워지죠.”
전투, 영웅학 같은 영웅으로서 필요한 수업부터 언어, 수학, 역사, 예절, 도덕까지.
반 학생들끼리 듣는 과목은 총 일곱 개였고 시간표는 정해져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전공 수업을 신청해야 했다.
5반 학생들은 빠르게 학과 신청 서류와 수강 신청 시간표를 채워나갔다.
조교는 교탁에 서서 학생들이 가져오는 서류를 꼼꼼히 체크 했다.
그리고 마지막 서류를 받아들고는 일순간 멈칫했다.
“레오 학생?”
“네 조교 선생님.”
“전공을 잘못 적었군요. 전공을 세 개나 적었네요.”
조교는 친절하게 웃으며 서류를 돌려주었다.
그 서류를 다시 조교에게 내밀며 레오가 말했다.
“아뇨, 제대로 신청했는데요.”
“네?”
“전 전공 세 개 다 들을 겁니다.”
순간 클래스 메이트들의 시선이 레오에게 쏠렸다.
레오는 덤덤히 말했다.
“전 올 클래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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