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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5화 (25/483)

【25】24

시작의 관의 교수 휴게실에 올해 1학년 수업을 맡은 교수들이 모여 있었다.

본격적인 학기 시작에 앞서 교수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자리였다.

“올해 신입생들은 전체적으로 우수한 것 같군.”

“아아. 그러고 보니 기사학과에는 수석이 셋이나 있었죠?”

아인 교수의 말에 렌 교수가 빙긋 웃었다.

“부럽습니다, 마법학은 수석이 두 사람뿐인데 말입니다.”

“너 지금 소환학과 놀리냐? 렌?”

유라 교수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하, 그럴 리가요!”

“어느 학과가 우세할 거라는 건 학기가 시작돼 봐야 알 일이지. 입학 수석이라고 계속 최고의 학생이란 법은 없지 않나? 그리고…….”

말을 멈춘 아인 교수가 와인잔을 살살 흔들었다.

“이번 기수 수석 중에 학년 대표가 없지 않나?”

그 말에 동의하듯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 교수가 입에 와인을 털어 넣었다.

“뭐, 학년 대표도 기사학 지망이긴 하지만 말일세.”

‘이번 기수는 무조건 기사학과가 최고다.’

아인 교수는 가소롭다는 듯 두 교사를 바라보았다.

“이거이거. 말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셨으면서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선배님.”

‘착각도 자유군요. 아인 선배님. 그 레오 학생은 우리 마법학과로 올 건데 말입니다.’

렌 교수가 겉으로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속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이야. 조금 재수 없어지려고 하네.”

‘웃기고 있네, 레오 플로브는 소환학과거든? 학과 신청서 본 후 표정 볼만 하겠네.’

유라 교수는 겉으로는 코웃음을 치며 속으로 조소했다.

그때 조교들이 학과 신청서를 가져왔다.

“교수님들, 학과 신청서 가져왔습니다. 주말 동안 조교들끼리 분류 작업해놓겠습니다.”

“고생했네. 이거라도 좀 들게.”

교수들이 조교들에게 음식과 술을 권했다.

그 와중에 아인 교수와 유라 교수, 렌 교수는 5반 신청서 쪽으로 향했다.

‘왜 5반 신청서 쪽으로 따라오는 거지?’

‘관심 있는 학생이라도 있나?’

‘이분들이 왜 이러는 거죠?’

서로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던 세 교수는 5반 신청 서류 맨 위에 있는 레오의 사진을 발견했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학과 신청서>

이름: 레오 플로브.

클래스: 5반.

신청 전공: 기사학, 마법학, 소환학.

세 교수는 동시에 생각했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찰싹- 찰싹- 찰싹-

“왜 때려?”

기숙사 앞 공원에서 셀리아가 레오를 붙잡고 등짝을 때렸다.

“너 지금 여자 기숙사에 소문 다 났어! 올 클래스니! 뭐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했다면서?”

“왜 말이 안 돼? 전공서도 다 샀고 임시 수업 때도 전공 수업 다 들었는데.”

“너 그거 참고서로 산 게 아니라 전공서로 쓰려고 샀던 거야?”

“당연하지.”

“아악-! 야 이 계획적으로 미친놈아!”

셀리아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방방 뛰었다.

“올 클래스란게 말이나 되는 소리니? 학과 신청을 그렇게 장난식으로 하면 어떤 교수님이 널 좋게 보겠어!”

루메른에서 교수의 권한은 막강하다.

다른 전공 교수의 눈 밖에만 나도 학교생활이 확실하게 꼬인다.

전공 교수에게 찍히는 순간 퇴학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전공 교수들은 자기 전공에 자부심이 강하다.

좋게 보여도 모자랄 판에 신성한 학과 선택 때 장난을 친다?

모든 전공 교수한테 찍혀도 할 말 없다.

기껏 루메른에 입학해서 학년 대표까지 됐는데 일주일 만에 대형 사고를 쳤으니 셀리아로서는 속이 타들어 갔다.

근데 당사자는 무슨 문제냐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열불이 날 수밖에 없었다.

“너! 빨리 교무실로 가서 교수님들에게 사과하고 와!”

“싫어. 난 모든 전공 들을 거야.”

“얘가 진짜 왜 이래? 올 클래스란 게 말이 되냐!”

흥분한 셀리아에게 레오가 왼손바닥 펼쳐 보였다.

손바닥 위로 오러가 흘러나오나 싶더니 그 위로 타오르듯 마력이 터져 나왔다.

그걸 본 셀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레오의 손을 영력이 휘감았다.

“너, 너, 너?”

“어머니랑 아버지도 아직 모르는 거야.”

힘을 거둔 레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셀리아는 입을 뻐끔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능력은 교수님들이 모두 확인했어. 절대 장난이 아니란 걸 알 거야.”

“너 대체 정체가 뭐니?”

“정체가 뭐긴.”

레오가 씩- 웃었다.

“네 사촌이지.”

***

“전대미문이야. 루메른 개교 이래, 아니. 다른 영웅 사관 학교를 포함해서 최초겠군.”

올 클래스.

기나긴 세계의 역사에 그런 영웅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영웅은 히어로 레코드라는 영웅의 역사서가 있는 지금 세상에서는 허구의 영웅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다섯 번째 대영웅, 카일.’

그런데 허구 속에만 있던 영웅과 같은 올 클래스가 나타났다.

이미 아인 교수, 유라 교수, 렌 교수가 칼리안과 면담을 하고 갔다.

면담 내용은 레오에게 확실한 주전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 교수는 레오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어떻게 할까요, 교장 선생님?”

“이 경우에는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맞겠지.”

비서 에레나의 물음에 칼리안이 빙긋 웃었다.

“학생이 원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게 학교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

루메른의 주말은 한가로운 편이다.

평일 학과 일정이 빡 샌 만큼 주말에는 철저하게 휴식을 보장했다.

자유시간인 만큼 루메리아로 놀러 갈 수도 있고 원한다면 외박 신청도 가능했다.

“이런 화창한 주말에 연병장에 오는 게 말이 되냐?”

칼이 툴툴거리자 첼시가 말했다.

“오늘 레오 오빠에게 검술 지도를 받기로 했거든.”

첼시는 움직이기 편한 활동복을 입고 있었다.

배틀 메이지.

말 그대로 최전방에서도 싸울 수 있는 마법사를 의미한다.

듀얼 클래스인 마검사와는 달랐다.

마검사의 경우 오러와 마력을 모두 사용하지만 배틀 메이지는 마력만을 사용했다.

육체 능력을 보조 마법으로 상승시키고 고속 영창과 다중 영창을 위주의 대인 마법을 주력으로 익힌다.

일반 마법사가 후방에서 화력을 담당한다면 배틀 메이지는 유사시에 적진 한가운데로 침투해 진형을 휘젓는 역할이었다.

숙련된 배틀 메이지는 난전에 거침없이 뛰어들어서 수많은 변수를 창출하곤 했다.

첼시는 입학시험 때 오러도 사용하지 않고 탈라투니아를 막아낸 레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게다가 첼시는 레오의 가르침이 더욱 기대되었다.

‘레오 오빠도 마법사였다니.’

마검사와 배틀 메이지는 유사한 점이 많은 만큼 순수한 기사보다 마검사에게 지도를 받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되었다.

첼시를 훈련 시켜준다는 말에 따라 나왔던 셀리아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가벼운 생각으로 왔으면 그만두는 걸 추천 할게,”

“난 진지하거든?”

“어머? 그래, 레오의 훈련은 절대 쉽지 않을 텐데.”

어려서부터 앙숙 관계였던 첼시가 고생할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졌다.

“그나저나 셀리아. 너랑 레오는 무슨 관계길래 그렇게 친한 거야?”

칼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직 둘의 관계에 대해 모르는 첼시도 귀를 쫑긋거렸다.

“어디 가서 소문내지 마. 나랑 레오는 사촌이야.”

“뭐?”

“엑? 레오 오빠 제르딩거 사람이었어?”

“정확하게는 제르딩거는 아니야. 자세한 건 집안 사정이니까 묻지 말아 줘.”

셀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귀족가는 집안 사정이 복잡하단 걸 아는 첼시와 칼은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레오가 칼에게 말했다.

“칼. 너도 같이해 볼래?”

“관심이 가긴 하는데 아쉽네! 난 조금 있다가 루메리아로 가야 하거든!”

“놀러 가?”

“아니! 포션 재료를 사러 가! 피로 회복 포션이 생각 이상으로 잘 팔리더라고! 하하하하!”

그 말에 셀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금술사 가문이라더니 완전 장사치네.”

“연금술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단 말씀!”

칼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씩- 웃었다.

“어때? 내가 멋진 마법검이나 마법지팡이를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우리 집안 가보보다 멋진 거 만들 수 있어?”

“죄송합니다, 몰라뵙습니다.”

영웅 명가 앞에서 검과 지팡이를 논하다니.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셀리아가 쿡쿡- 숨죽여 웃었다.

“레오 오빠, 뭐부터 할까?”

“몸 움직이는 건 익숙한 편이야?”

“물론. 나 체력 좋아! 몸도 이렇게 유연하지롱!”

첼시가 발레리나처럼 다리를 I자로 쭉 들어 올렸다.

유연성과 중심 잡는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동작이다.

그 밖에 첼시는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자신의 가벼운 몸놀림을 레오에게 보여주었다.

기본이 충실하니 배틀 메이지로서 숙달되기만 한다면 어지간한 기사학과 학생은 근접전에서 첼시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확실히 배틀 메이지를 지망하는 이유가 있군.’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배틀 메이지가 있거든.”

“진짜?”

첼시가 눈을 반짝였다.

‘정확하게는 배틀 메이지는 아니지만. 그때는 그런 개념이 없었으니까.’

난전 속에서도 고속으로 이동하며 다중 영창을 시전하는 루나는 어찌 보면 배틀 메이지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었다.

‘뭐, 배틀 메이지뿐만 아니라 현대 모든 마법사의 원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레오가 팔짱을 꼈다.

“첼시, 넌 배틀 메이지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응? 음…… 어디 보자…… 고속 영창 능력이랑 다중 영창 능력, 그리고 무술 능력?”

일반적인 마법사들과 차별되는 것들을 꼽는 첼시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아니. 배틀 메이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제일 중요한 건?”

“체력이야.”

벤치에 앉아 지켜보던 셀리아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 가자.”

“응? 어딜?”

“루메리아로 간다면서.”

“아직 시간 남았어. 그리고 넌 안 가는 거 아니었냐?”

“나도 급한 볼일이 생겨서 가야 할 것 같…….”

“셀리아. 너도 앞으로 주말마다 나랑 체력 단련해.”

“싫어!”

“이미 지스 삼촌에게 편지를 썼어. 꼭 그렇게 하라고 하시더라.”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한 거야!”

셀리아가 레오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잘 들어. 첼시.”

“응.”

“배틀 메이지는 끝없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해. 그러려면 절대 지치지 않은 강철 같은 체력이 필요하지. 버프 마법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안 돼.”

‘우리 집안 배틀 메이지들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르왈린 가문의 배틀 메이지들도 체력 단련이 일상이다.

“어차피 셀리아는 나랑 훈련해야 하는 운명이거든.”

“그딴 운명 싫다고!”

셀리아는 울부짖었지만, 레오는 귓등으로 듣지 않았다.

“나랑 훈련하겠다고 한 순간부터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영웅으로 만들 거야.”

“응! 레오 오빠! 같이 영웅을 목표로 힘내자!”

레오의 말을 단순히 서로 힘내자는 의도로 받아들인 첼시가 주먹을 꼭 쥐며 대답했다.

“그럼 앞으로 나랑 훈련한다는 거지?”

“응!”

훗날 첼시는 생각했다.

이때 도망쳤어야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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