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6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남학생들이 연병장으로 향했다.
드넓은 연병장에 에는 5반 외에 다른 반이 더 있었다.
전투학 수업이 겹치는 반은 모두 연병장에 나와 있었다.
물론 규모가 엄청난 연병장 덕분에 활동 반경이 겹치는 일은 없었다.
흙바닥에 옹기종기 모인 학생들의 앞에 나선 건 세나 교수였다.
할린드는 뒤에서 세나의 수업을 참관했다.
“전투학 수업에서는 여러분의 능력을 응용할 수 있는 훈련을 합니다. 질문 있는 학생?”
일리아나가 손을 들었다.
“네, 일리아나 학생.”
“능력 응용 훈련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요? 전공과목에서 하는 훈련과는 다른 건가요?”
“다르지요. 마법을 예로 들어 볼까요? 일리아나 학생, 파이어 볼을 만들어 보세요.”
마검사 듀얼 클래스 지망인 일리아나는 어렵지 않게 주먹만 한 크기의 파이어 볼을 만들어냈다.
“자! 일리아나 학생은 그 파이어 볼을 어떻게 응용해서 효율을 극대화시킬 건가요?”
“음! 일단 술식 구성에 마력을 많이 주입하겠어요. 그리고 대미지 부스팅 술식과 주문 복사 술식을 더하면!”
화르륵! 화르륵!
파이어 볼의 크기가 커지더니 두 개로 늘어났다.
“이렇게 파이어 볼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어요!”
“그게 끝인가요?”
“네? 어음…… 그러니까. 여기서 어떤 술식을 더…….”
당황하는 일리아나를 보며 세나 교수는 상냥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다음은 첼시 학생?”
“네, 교수님.”
“여기서 파이어 볼의 효율을 더 극대화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저도 일리아나가 말한 것 외에 다른 방법이 더 떠오르지 않아요.”
“알겠어요. 그럼 다음은…….”
마법 전공 학생들이 슬금슬금 눈을 피했다.
반 최고의 마법 우등생도 대답 못 한 걸 자신들이 어찌 안단 말인가?
“레오 학생?”
“예.”
“여기서 파이어 볼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컨트롤입니다. 위력을 올려도 맞출 수 있어야 효율을 끌어낼 수 있죠.”
“정답이에요! 레오 학생에게 질문 점수 5점을 줄게요.”
너무 간단한 대답에 학생들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은 능력을 훈련할 때 컨트롤 보다는 위력을 올리는데 더 신경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학생은 능력 컨트롤이 서툰 편이죠.”
컨트롤이 서툴다는 말에 학생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일 능력을 사용하는 자신들이 컨트롤이 서툴다니?
“여기서 문제.”
세나 교수가 바람의 정령 실프 하나를 소환했다.
“여러분 중 이 실프를 사로잡을 수 있는 학생이 있다면 가산점을 주겠어요. 여러분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도 상관없습니다.”
학생들이 의욕을 불태우며 실프 잡기에 도전했다.
하지만 빠르지도, 그렇다고 강력한 바람을 내뿜는 것도 아닌 실프를 잡는 학생은 없었다.
실프가 신들린 무빙을 선보이며 학생들의 손길을 피해 다녔기 때문이다.
조금 뒤에는 여러 학생이 동시에 달려들었지만 그래도 잡는 데 실패했다.
“허억-! 허억! 저거 실프 아닐지도 몰라!”
칼이 바닥에 대자로 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헥헥! 그럼 뭔데!”
첼시가 주저앉으며 되물었다.
“내가 어떻게 아냐?!”
허공에 뜬 실프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에헴! 하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화르륵-!
화염의 오러가 휘몰아쳤다.
가만히 있던 레오가 실프에게 달려든 것이다.
실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도망가려 했다.
레오가 속도를 올려 실프와 거리를 좁히며 손을 뻗었다.
실프가 샥-! 하고 손을 피했다.
레오의 손등에서 화염의 오러가 치솟더니 실프의 이동 경로를 차단했다.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 실프는 허공에서 선회했다.
하지만 벽 모양의 오러가 순식간에 밧줄이 되어 실프를 좇았다.
거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실프가 당황했다.
그리고 갑자기 속력을 올려 밧줄이 자신을 감싸기 전 하늘 높이 도망가 버렸다.
“이런, 실프! 그건 반칙이야!”
세나의 말에 실프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놀란 나머지 허락된 이상의 힘을 사용한 모양이다.
“어쨌든 훌륭해요, 레오 학생.”
세나가 손뼉을 쳤다.
“지금 본 것처럼 레오 학생은 큰 힘을 쓰지 않았답니다. 전투학은 이런 식의 응용을 전투에 접목하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5반 학생들은 컨트롤이 서툴다는 세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뒤에서 수업을 지켜보던 할린드 교수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아인 녀석이 침을 질질 흘릴만하군.’
오러 컨트롤 능력만 놓고 본다면 1학년 중 단연 원탑으로 예상되었다.
“후후, 엘레강스하지 못하군.”
파지직-!
스파크가 튀는 소리와 함께 황금색 오러의 섬광이 휘몰아치며 실프를 덮쳤다.
텁-!
실프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 하나에 잡혔다.
타악-!
바닥에 착지한 남학생, 듀란이 레오를 노려보았다.
짝! 짝! 짝!
“역시 듀란 학생! 수석다운 아주 뛰어난 실력이군!”
“과찬이십니다.”
듀란이 중년 교사에게 말했다.
“어라라? 이상한걸? 루메른에서 가장 존경받는 교수인 할린드, 자네가 맡은 반 학생들은 그 누구도 실프를 잡지 못했는데 우리 1반 학생은 간단하게 잡아 버렸군, 그래.”
할린드는 피곤하다는 얼굴로 화려한 옷을 입은 중년 교사를 바라보았다.
“아하! 그러고 보니 5반은 평균이 가장 떨어지는 반이었던가? 이런, 이런. 내가 그걸 깜빡하고 실례되는 말을 한 것 같군.”
“수업 안 하나? 세드젠?”
과장 된 동작으로 사과하는 세드젠 교수를 보며 할린드가 한숨을 쉬었다.
“하고말고! 수업을 하려고 왔지!”
세드젠 교수가 양팔을 펼쳤다.
“1반과 5반! 반 대항전을 신청하는 바이네! 설마 피하지는 않겠지? 물론 피해도 탓하지는 않겠네! 우리 엘레강스한 1반에는 수석 학생이 무려 세 명이나 있으니까! 하하하하하하하!”
듀란을 포함해 1반 학생 중 맨 앞에 있는 세 사람을 가리키며 세드젠 교수가 유쾌하게 웃었다.
레오는 그중 두 학생에게 말했다.
“안녕? 엘레강스하고 아리따운 1반 학생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셀리아와 클로에가 고개를 들고 무시무시한 눈으로 레오를 노려보았다.
물론 그런 것에 눈 하나 까딱할 레오가 아니었다.
“부담임 교수님. 저 교수님은 왜 저러시는 거예요?”
첼시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저분은 세드젠 교수님이에요. 할린드 교수님과 교직 동기이신 교수님이죠.”
“세드젠 교수님이라면 할린드 교수님만큼이나 유명하신 분이시잖습니까?”
“루메른 최고의 명교수로 이름이 높은 분이죠.”
실제 악명이 자자한 할린드와 다르게 세드젠은 많은 학생이 가르침을 원하는 교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졸업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교수 1등은 할린드고 2등은 세드젠이었다.
그 때문에 세드젠은 할린드에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게 세나의 설명이었다.
설명을 들은 5반 학생들은 온갖 말로 할린드를 도발하는 세드젠을 보았다.
‘할린드 교수님은 눈 하나 까딱 안 하시네.’
‘세드젠 교수님, 왠지 애처로워 보여.’
온갖 도발에도 무시로 일관한 할린드에게 매달리는 세드젠을 보다 못한 세나가 말했다.
“세드젠 교수님. 오늘은 첫 수업이라 갑작스러운 반 대항전은 조금…….”
“오오! 세나 틸리아 학생…… 아니! 세나 부교수!”
세드젠 교수가 양팔을 벌리며 세나에게 다가갔다.
“이게 얼마 만인가! 그대 걱정을 많이 했네! 부교수가 된 당신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르는군!”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어쨌든 세나 부교수! 첫 수업이라도 상관없다! 루메른 학생인 이상 돌발 상황은 얼마든지 일어나니까!”
“그래도…….”
“우리 자랑스러운 1반 학생들은 언제든지 반 대항전 준비가 되어 있지!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역시 엘레강스해!”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세드젠의 말에 칼이 킬킬 웃으며 1반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임시 수업기간 동안 친해진 1반 학생들을 향해 깐족거렸다.
“정말 엘레강스하네! 1반 학생들!”
“죽고 싶냐?”
“놀리지 마라?”
셀리아와 클로에를 포함한 1반 학생 몇몇이 칼에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칼의 깐족거림은 계속되었다.
“무슨 종목으로 대항전을 하자는 건가?”
“후후후! 역시 자네는 도망치지 않는군! 정말 괜찮겠나? 5반 학생들은 패배할 게 분명한데?”
“승패에는 관심 없다.”
할린드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요한 건 어떤 결과든 학생들이 배울 게 있다는 점이지.”
“그렇다면 자네 학생들은 패배감을 배우겠군!”
“패배감을 배워도 딛고 일어나는 법을 가르치면 된다. 그리고…….”
할린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반대로 승자의 여유를 배울 수도 있지.”
멋지게 받아치는 할린드를 보며 5반 학생들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세나 교수님의 말은 사실이었어!”
“말은 무섭게 하셔도 담임 교수님은 우리를 엄청나게 아끼시는 게 분명해!”
“존경합니다! 교수님!”
세드젠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러면 내기를 하지. 지는 반이 벌칙으로 1학년 교실동 화장실 청소를 한 달 동안 할 것. 그리고 진 쪽 교수가 이긴 쪽 반에게 음료수를 살 것!”
“상관없다.”
그 대답에 5반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악!”
“그런 걸 대뜸 받아들이시다니!”
“저기, 아름다운 아가씨들?”
실컷 깐족거리던 칼이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인데 봐주실 거죠? 적당히 비기는 방향으로 간다던가?”
“무조건 이길 건데?”
“맞아, 엘레강스하게.”
셀리아가 싸늘하게 웃으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고 클로에는 손가락 관절을 풀며 악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레오! 첼시! 너희만 믿는다! 우리 반을 구해줘!”
칼은 곧바로 울상을 지으며 레오와 첼시에게 매달렸다.
5반에서 수석들에게 대항할 만한 학생은 학년 대표 레오와 서부 시험 차석 첼시뿐이었다.
“질 생각은 없어.”
“맞아. 르왈린가의 마법사가 패배 따위를 배울 리 없지.”
레오가 느긋하게 말했고 첼시는 훗! 하며 팔짱을 꼈다.
“그래서? 어떤 종목으로 승부를 정할 거지?”
“후후후! 루메른 전투학 수업의 전통적인 종목이 있지 않나?”
할린드의 물음에 세드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건가.”
작게 한숨을 내쉬는 할린드.
5반과 1반 사이에서도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설마…… 그거?”
“직접 하게 될 줄이야.”
“나는 해 본 적 있어.”
학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레오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꽤 과격한 종목인가 봐?”
“장난 아니야. 다른 영웅 사관 학교들이랑 교류전 할 때도 하는 정식 종목이지.”
첼시도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의 자존심을 교류전에서 정식 종목이라면 상당히 치열한 종목일 게 분명했다.
짝-!
세드젠 교수가 손뼉을 치자 1반의 부담임이 무언가를 세드젠에게 내밀었다.
그건 주먹만 한 크기의 투명한 공이었다.
“루메른 전투학의 전통 중 하나! 바스테라로 승부를 가리는 거다!”
‘진지하게 분위기 다 잡아 놓고 기껏 한다는 게 공놀이냐?’
레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