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5
“운이 좋네, 첫 번째라니.”
레오가 피식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기사학의 실기시험 내용은 단순했다.
바로 대련을 통해 5승을 하는 것.
5승을 하는 순간 시험은 통과였다.
물론 대련 상대와 대련 내용에 따라 세부 점수가 채점 되기에 승패는 절대적인 점수의 요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승리를 해서 빨리 시험을 통과하는 게 중요했다.
당연하게도 레오의 목표는 무패 전승이었다.
“첫 번째라서 운이 좋다고? 나는 안중에도 없나 보군!”
레오의 첫 번째 상대인 하울이 웃으며 말했다.
하울 스네프.
대륙 남부 지방의 툴 왕국의 영웅 명가 출신이다.
제르딩거에 비하면 명성은 낮은 편이지만 그래도 영웅 명가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변화무쌍한 창술인 스네이프 스피어를 구사했다.
실제로 1반 기사학 학생 중 셀리아, 듀란에 이어 세 번째로 평가받는 실력자였다.
혓바닥을 날름거린 하울이 아공간 팔찌에서 창을 꺼냈다.
일반적인 창보다 1.5배는 긴 장창이었다.
그걸 본 레오도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사전에 이야기 한 대로 상대를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쪽이 승리다. 실제 전투라고 생각하고 대련에 임하도록.”
간략하게 설명을 끝낸 아인이 물러섰다.
장외 판결 같은 건 없었다.
말 그대로 연병장 전체가 대련 장소였다.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하울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기대되는군. 학기 초 전투학 수업에서 너희 5반에 진 이후로 갚아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걸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냐?”
레오가 피식 웃으며 묻자 하울이 차갑게 웃었다.
“네이프 가문의 사람은 굴욕을 잊지 않거든.”
“화장실 청소가 그렇게 싫었냐!”
“크윽! 다른 반 녀석들이 얼마나 놀린 줄 아나!”
하울이 주먹을 콱 쥐었다.
“그때의 굴욕을 갚아 주마! 레오 플로브!”
촤악-!
창을 고쳐 쥔 하울이 자세를 낮추었다.
마치 뱀의 공격 자세를 연상시키는 준비 자세였다.
그런 하울을 보며 레오가 검을 늘어트렸다.
“레오. 네가 입학시험 때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지는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
하울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지만 넌 출발선부터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확실히 뒤처져 있다! 입학시험 때도 오러를 각성시키지 못했다고 들었지! 그런 네가 과연 이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
콰악-! 쉭-!
하울의 창끝이 레오의 가슴팍을 노렸다.
엄청난 속도!
보통 창의 찌르기는 일직선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빨라도 예측만 하면 피하기가 쉽다.
‘하지만 스네이프 스피어는 그때부터 시작이지!’
네이프 가문의 창술 찌르기는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창끝이 움직인다.
그렇기에 함부로 피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피하는 순간 너는 구석에 몰리는 거다!’
어지간한 학생은 첫 합을 내준 순간 아무것도 못 하고 하울에게 패배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레오는 어지간한 범주를 벗어난 학생이었다.
텁-!
“……!”
하울이 눈을 부릅떴다.
레오가 자신에게 닿기 직전 창대를 잡은 것이다.
“다른 애들한테 내 이야기 들었다면서 같은 반인 셀리아에게는 내 이야기 안 들었냐?”
레오가 서늘하게 웃었다.
화악-!
“헉?”
레오가 하울을 창대째로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들어 올렸다.
오러에 대비하고 있던 하울은 순수한 완력으로 자신을 들어버리는 레오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힘이 세다고 말이야!”
화악-! 쾅-!
레오가 그대로 하울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물론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 오러 아머를 이용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자세를 잡은 하울이 흐흐 웃었다.
“당연히 들었지. 예상보다 힘이 강해서 조금 놀랐을 뿐이야.”
우웅-!
창대가 녹색으로 빛났다.
“하지만 네 완력이 강하다고 해서 근본적인 약점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
하울의 녹색 눈이 번뜩였다.
레오가 빠르게 창에서 손을 뗐다.
치익-!
하울이 디딘 땅에서 작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포이즌 오러? 특이 특성이군.’
레오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기전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오러 특성이었다.
저렇게 자신만만한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아직 멀었어.’
“내 약점을 운운하는데 말이야.”
레오가 피식 웃었다.
“약점은 극복하라고 있는 거 아니겠어?”
화륵-!
레오의 몸에서 일어난 불꽃 오러가 하울의 포이즌 오러를 밀어냈다.
그걸 보고 하울이 히죽- 웃었다.
‘확실히 불꽃 특성을 지닌 오러는 나에게 있어 약점이지! 하지만 셀리아 정도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상성을 뒤집을 수 있어!’
화악-!
하울의 몸에서 더욱 강력한 독성이 뿜어져 나왔다.
그에 따라 레오도 화력을 올렸다.
‘소용없다니까! 셀리아 정도가 아니라면!’
화아악-!
화르르륵!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독기가 강해질 때마다 불꽃의 화력은 더욱 거세져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울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셀리아…… 정도가 아니…… 라…… 면?’
어느새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하울의 시선이 레오의 붉은 눈에 닿았다.
‘말도 안 돼! 셀리아 수준의 화력이라고?!’
레오가 두각을 나타냈던 건 학기 초의 이야기.
게다가 종합적인 전투력을 평가하는 대련에서는 제대로 실력을 선보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1학년 전체적인 실력이 빠르게 올라간 이번 시험대련에서 대부분은 하울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레오는 강력한 불꽃 오러로 하울을 압박했다.
바깥에서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던 셀리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언제 저렇게?’
셀리아는 레오의 승리를 점쳤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레오가 이 정도까지 불꽃 오러의 화력을 올렸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듀란이 피식 웃었다.
“하울 녀석으로는 부족해 보이는군.”
“아직 하울이 진 것도 아닌데 단정하는 거 아니냐?”
1반의 기사학과 학생이 나무라자 듀란이 비웃음을 날렸다.
“네 눈은 장식이냐? 가뜩이나 상성에서 불리한데 힘 싸움에서 완전히 밀렸다. 하울이 가망성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고 해도 하울에게는 스네이크 스피어가 남아 있잖아. 오러의 상성은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요소가 아니야.”
“흥! 하울이 기술로 레오 플로브를 압도할 수 있다고 보나?”
“우리 반 넘버4잖아.”
“하울이 우리 반에서 네 번째로 강하든 말고는 관계없어.”
듀란의 몸에서 파지직- 스파크가 튀었다.
“놈을 이기는 건 나다.”
“네가? 안 될 것 같은데?”
옆에 있던 셀리아가 비웃음을 날렸다.
“평소에 어울린다고 편드는 건가? 셀리아 제르딩거.”
“편드는 게 아니야. 레오를 이기는 건 나야. 넌 나한테도 안 되잖아?”
“헛소리하는군. 당장 누가 우위인지 가르쳐주지.”
“좋아. 박살을 내줄게.”
파지직!
화르륵!
자신 위에 누군가가 있다면 꺾으려 드는 듀란과 최고라는 자부심이 강한 셀리아는 사이가 극도로 나빴다.
“야야야! 우리끼리 싸우면 어떻게 해! 하울을 응원해야지?! 응? 야야! 오러 일으키지 말라니까!”
1반 학생이 기겁하며 둘을 말렸지만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지금 싸웠다가는 단순히 반성문으로 안 끝날 텐데요?”
그때 첸 시아가 웃으며 두 사람을 만류했다.
그 말에 듀란이 코웃음을 치며 다른 쪽으로 가버렸고 셀리아는 우아하게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1반은 투쟁심이 넘치네요.”
“딱히 투쟁심 같은 게 아니야. 단지 재수 없는 저 자식의 면상을 묵사발 내고 싶은 것뿐이지.”
“그게 투쟁심 아닌가요?”
세드젠 교수는 같은 반 학생들끼리의 결투를 금했기에 셀리아와 듀란이 승부를 가를 일이 없었다.
“그러는 시아. 너도 레오와 싸워보고 싶으면서 잘도 그런 말을 하네.”
“확실히 레오 도령과 싸워보고 싶긴 해요. 하지만 난 레오 도령만 목표인 게 아니에요.”
“그럼?”
“셀리아 양과도 싸워보고 싶고 듀란 군과도 싸우고 싶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을 쓰러트리는 게 목표랍니다.”
“결국 네가 투쟁심이 제일 강하잖아.”
검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는 첸 시아를 보며 셀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기사학과 상위권 학생들의 신경전을 긴장된 얼굴로 바라보던 주변 학생들이 아무 일 없이 넘어간 걸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레오는 인기가 많네.”
넬라가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자 옆에 있던 일리아나가 고개를 저었다.
“난 저런 인기라면 사양할래.”
***
“하압!”
레오가 휘두르는 화염의 오러에 하울이 다급히 오러 스텝을 밟았다.
어떻게든 거리를 벌려야 했다.
하지만 레오는 하울이 거리를 벌리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저지해야 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레오를 향해 포이즌 오러가 담긴 창을 휘둘렀다.
화르륵-!
하지만 레오의 오러는 하울의 독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상성에 뒤지는 것도 모자라 위력에서도 밀렸다.
명백한 열세였다.
“큭!”
상대에 대한 완벽한 오판에서 오는 당혹감이 하울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낮추었다.
‘예상 밖이지만 마냥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하울의 눈이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변했다.
‘이미 대책은 마련해 뒀잖아!’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하울은 입학시험 당시에 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분함은 느끼지 못했다.
‘워레든 타이든! 그 괴물 녀석이 있었으니까!’
남부 지방 출신 중 워레든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 전율스러운 힘은 천재를 넘어 괴물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기사학과 중에서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올해 1학년 기사학과생 중 최고의 실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강을 논할 수는 없었다.
‘셀리아 제르딩거! 첸 시아! 듀란 모리아!’
같은 기수 중 최고라 불리는 세 명.
세 사람이 자신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무술에 관해서는 항상 최고였던 하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특히 셀리아의 경우에는 절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실력도 모자라 상성으로까지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첸 시아나 듀란을 상대로는 전략이라도 세울 수 있었어! 하지만 셀리아를 상대로는 무력감만 느낄 뿐이었지!’
학기 초만 해도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피나는 노력 끝에 셀리아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셀리아와의 대련을 대비해 숨겨 두려 했지만! 오히려 잘 됐어!’
하울의 눈이 번뜩였다.
‘신기술을 시험해볼 만한 좋은 상대다! 그리고 레오 플로브! 너에게만큼은 질 수 없다!’
휘리리릭-!
화려하게 창을 돌렸다.
‘셀리아와 가깝게 지내는 너한테만큼은!
이미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사람과 동급으로 바라보았다.
‘단순히 음침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제법 괜찮은 눈을 가졌잖아?’
신중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자신을 꺾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었다.
‘불리한 상성을 이겨내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한 모양이지?’
하울은 눈은 분명 자신을 보고 있었지만, 자신의 뒤로 보이는 또 다른 무언가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셀리아인가.’
어렵지 않게 간파한 레오가 씨익 웃었다.
눈앞의 소년은 도전 정신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도전. 받아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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