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5
“아무도 없어. 우리 둘뿐이야.”
“상황을 종합해보자. 원래라면 우리는 다른 조원들과 같이 구출대의 일원으로 퀘스트 알람을 받았어야 해. 하지만…….”
클로에가 자신에게만 보이는 영웅의 세계 알람을 바라보았다.
[공략 목표: -]
공략 목표의 공란.
그건 레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상 사태란 거군.”
“맞아.”
상황을 분석해서 설명해 준 클로에의 말을 들은 레오는 망설임 없이 오른쪽 관자놀이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히어로 레코드로 구성된 영웅의 세계는 언제든지 바깥과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바깥과 연락하게? 그럼 감점이잖아.”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야.”
정신을 집중하자 검지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레오 플로브입니다. 다른 조원들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질문에도 불구하고 대답은 없었다.
“……아무도 대답 안 하는데?”
“뭐? 그럴 리가?”
놀란 클로에도 다급히 바깥과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말도 안 돼…… 이게 영웅 던전도 아니고……!”
당황하는 클로에에게 레오가 물었다.
“클로에. 입장할 때 이상한 거 느끼지 못했어?”
“이상한 거라니?”
“입장 메시지가 이상했다던가.”
“아니, 배운 거랑 똑같았는데.”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 클로에가 머리에 손을 올렸다.
“하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일단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발을 동동 굴리던 클로에가 흠칫했다.
“설마 지금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자는 건 아니지?”
“맞아.”
“불가능해. 원래 열 명에서 한 조가 되어도 공략하기 힘든 영웅의 세계야! 공략 조건을 달성할 수 없을 거야!”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게 더 위험하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30년 전 타르타로스가 체드머더스 사건을 일으킨 이유는 미래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이 숲 전체가 타르타로스가 파놓은 덫이다.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 더욱 공략하면 안 되지! 어차피 곧 시험은 중단될 거야.”
“중단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중단했겠지. 영웅의 세계를 해제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데 여전히 우리는 영웅의 세계에 있어. 바깥에서 영웅의 세계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해.”.
“설마…….”
“그래. 지금 이 세계는 영웅 던전이 된 상태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영웅 던전.
히어로 레코드 페이지의 폭주.
“소실된 페이지가 아니라 히어로 레코드에 있는 영웅의 페이지가 영웅 던전화가 되었다는 사례는 들어 본 적 없어.”
“하지만 영웅 던전 말고는 지금은 설명할 길이 없잖아?”
클로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영웅 던전을 해제하는 방법이 하나뿐이란 건 너도 알고 있지?”
그 방법이란 공략이었다.
레오가 유추해낸 가설은 매우 타당성이 있었다.
그런데도 클로에는 머뭇거렸다.
아무리 우등생이라고 해도 클로에는 이제 15살의 소녀였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움직이기에는 경험이 부족했다.
“너랑 나는 1학년 중 최고잖아? 작전만 잘 짜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어.”
웃으면서 말하는 레오를 보며 클로에가 주먹을 꽉 쥐었다.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중간고사를 통해 레오를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레오는 또다시 아득히 앞서 나가 있었다.
‘거기다 레오는 작전까지 짰다고 했어. 난 패닉에 빠져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클로에가 입술을 꽉 깨물고 물었다.
‘이 차이는 대체 뭐지…….’
“작전이 뭐야?”
“현재 우리가 전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고 공략 조건을 달성할 수 없기도 해.”
체드머더스 사건의 공략 조건은 두 개.
[위기에 빠진 1학년들을 구출]과 [1학년들의 안정 보장]
클로에가 공략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위기에 빠진 1학년들을 구출]이라는 조건은 어떻게든 충족할 수 있어도 [1학년들의 안전 보장]이라는 조건은 둘 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러니 가장 먼저 파티의 전력부터 보강해야 해.”
“전력 보강? 영웅 던전이라면 외부에서 출입은 불가능해. 어떻게 전력을 보강하겠다는 거야?”
“지금 이 숲에 루메른은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
레오의 말을 듣고 클로에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30년 전 선배들과 힘을 합하자는 거야?”
“그래. 숲을 탈출하면 안전 보장 조건은 달성할 수 있어.”
“그렇긴 해. 하지만 이 숲에는 마족들이 곳곳에 매복해 있어. 우리 둘이서 감당하기 힘든데 전투를 치르면서 과연 선배들과 합류 할 수 있을까?”
클로에의 말대로였다.
레오의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타르타로스의 포위진을 돌파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확실히 전투는 리스크가 커. 특히 마족과의 전투는 더더욱. 그러니까 최대한 싸움을 피할 거야.”
“가능하겠어?”
“가능해. 나만 믿어. 그러니까.”
레오가 빙긋 웃으며 클로에에게 등을 보여주며 무릎을 꿇었다.
“응?”
“업혀.”
“뭐?! 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넌 마법사라 기동성이 떨어지잖아? 내가 업고 달리는 게 훨씬 빨라. 게다가 마법사는 이런 상황에서 체력을 최대한 아껴둬야 하거든.”
마법은 전장의 흐름을 뒤바꿀 일발 역전의 카드였다.
“아, 아무리 그래도 업히라니? 그러면 네 등에 닿…… 닿!”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지체할 시간 없어. 빨리.”
“…….
시뻘게진 얼굴로 머뭇거리던 클로에가 어쩔 수 없이 레오의 등에 업혔다.
“어깨 잡지 말고 목을 끌어안아. 안 그러면 떨어질 거야.”
클로에가 레오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럼 간다.”
콰악-!
오러 스텝을 밟으며 레오가 엄청난 속도로 도약했다.
뒤에서 레오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클로에가 생각했다.
‘이러면 결국 레오에게 의지하는 꼴이잖아.’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레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화아악-!
한편, 레오는 정신을 집중했다.
원래라면 기동성을 살린다고 해도 전투를 거의 하지 않고 타르타로스의 포위망을 뚫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레오에게는 그걸 가능케 하는 한 가지 수단이 있었다.
레오의 몸속에 오러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관자놀이와 몸 곳곳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온몸의 잔털이 곤두섰고 감각은 평소의 몇 배 이상으로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몇 배로 크게 들려왔다.
‘초감각.’
오러를 미세하게 조작하여 온몸의 감각 기관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는 대영웅 아르온의 기술.
물론 원본과 비교하자면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잡했다.
‘녀석의 초감각은 단순히 감각만 날카로워지는 게 아니라 미래까지 예측하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헤쳐나가기에는 충분한 기술이었다.
콰악-!
나뭇가지를 밟은 레오가 엄청난 속도로 숲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
3m에 가까운 거대한 몸집을 가진 거한은 숲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타르타로스에서 영웅의 싹을 처리하기 위해 파견된 마족, 츄바른이었다.
그는 허공에 떠오른 여러 개의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숲 곳곳에 퍼진 타르타로스의 감시망에 루메른 1학년들이 보였다.
목표물을 물색하는 가운데 한 화면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벌써 구출대가 온 건가.”
츄바른은 곧 두 사람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방해하는 자는 배제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찾아서 처리하라는 명령은 없었다.
목표는 단 하나.
‘미래의 위험분자가 될 영웅 후보생들을 처리하는 것.’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가 움직이려 할 때 몬스터와 조우한 레오가 막 전투에 돌입하고 있었다.
레오와 클로에는 방해자일 뿐.
원래라는 목표물이 바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츄바른의 시선은 레오와 클로에에게 고정되었다.
정확하게는 오러와 마법, 정령을 소환하는 레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츄바른의 눈에는 명백한 적의와 증오가 타오르고 있었다.
레오를 노려보던 츄바른이 씹어 내뱉은 듯 소리쳤다.
“카일!”
***
“전방에 오크 무리 발견.”
“알았어.”
가급적 전투를 피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경우였다.
클로에가 주문을 외워 순식간에 마법을 완성시켰다.
세 개의 얼음송곳은 직선 궤적을 그리며 레오가 가리킨 방향으로 날아갔다.
퍼버벅-!
“크아아아아악!”
얼음송곳에 관통당한 오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다섯 마리의 오크가 절명했다.
하지만 아직 다섯 마리의 오크가 남아 있었다.
꾸아아악!
오크들이 조잡한 무기를 휘두르며 분노했다.
가장 후미에 있는 오크가 허리춤에서 뿔피리를 꺼냈다.
클로에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막아야 해! 막지 않으면 오크들이 몰려올 거야!’
급하게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그보다 레오가 한 템포 빨랐다.
클로에의 허벅지를 받치던 손 중 오른손을 풀어 검을 뽑았다.
스릉-!
그리고 검을 역으로 쥐고 그대로 투척했다.
쐐애애액! 퍽-!
“꿱?”
뿔피리와 함께 오크의 목이 관통당했다.
즉사한 오크에게 접근한 레오가 검 손잡이를 쥐며 말했다.
“미안, 피 튈 수도 있어.”
푸확!
거칠게 검을 뽑으며 뒤를 향해 휘둘렀다.
부악! 서걱! 콰득!
레오의 검이 섬뜩한 궤적을 그렸다.
검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오크들이 굳은 듯 서 있었다.
레오는 오크들을 뒤로하고 도약했다.
푸확-!
그러자 오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빨라.’
영웅의 세계에 들어오고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있었던 전투는 총 일곱 번.
‘원래라면 전투 횟수가 스무 번도 넘었어야 해.’
물론 레오는 최단 거리를 달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레오와 클로에에게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온전하게 30년 전의 1학년들과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레오는 확실하게 전력을 보존하고 있었다.
심지어 일곱 번의 전투에서 마족과의 전투는 한 번도 없었고 클로에가 레오의 등에서 내려오는 일도 없었다.
강한 몬스터를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레오는 가장 최적화된 움직임으로 전투 효율을 극대화 시켰다.
클로에가 한 거라고는 레오의 지시대로 마법을 쏜 게 전부였다.
이게 가능하나 싶을 정도였다.
클로에가 레오의 뒷모습을 힐끗 보았다.
지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실전에서 이 정도로 차이가 나다니.’
클로에가 입술을 앙다물 때였다.
“찾았다.”
“어?”
클로에가 레오가 바라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정체불명의 괴한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저건……!”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괴한.
“마족?”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음울한 기운을 감지한 클로에가 얼굴을 굳혔다.
“클로에.”
“응.”
“지원 부탁해.”
레오가 클로에의 허벅지를 받치던 손을 풀었다.
클로에가 재빠르게 비행 마법인 플라이를 외웠다.
그걸 확인한 레오는 지체없이 오러를 활성화시키며 몸을 하강시켰다.
루메른과 대치하고 있던 선두의 마족이 소리쳤다.
“각오해라, 증오스러운 영웅 후보생이여.”
부왁-!
마족의 머리 위로 은색 섬광이 번뜩였다.
푸확-!
정수리부터 갈라진 마족이 피를 흘리며 모래가 되어 사라졌다.
“오랜만이네. 마족들을 사냥하는 건.”
갑작스럽게 난입한 레오를 보며 마족들이 당황했다.
“뭐 하는 놈이냐!”
“나?”
레오가 싸늘하게 웃었다.
“네놈들을 죽일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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