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6
“지원인가요?”
“맞아.”
갈색 머리 여학생의 질문에 짧게 대답한 레오가 땅을 박찼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마족에게 돌격했다.
마족은 급하게 손바닥을 레오 쪽으로 펼쳤다.
우웅!- 푸가가가가각-!
레오의 앞에 흑색 소환진이 만들어지더니 그 속에서 사람 머리 크기의 검붉은색 거머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앗! 위험해요!”
여학생이 다급히 소리쳤다.
‘고르고로스 거머리군.’
몸에 들러붙어 피를 빨아 먹는 마수로 근접 공격을 하는 기사에게는 상성이 좋지 않은 마수였다.
그렇다고 함부로 베어버리면 산성의 피가 쏟아진다.
‘보통이라면 상대하기 까다롭지, 보통이라면 말이야.’
화르르륵-!
레오의 검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제르딩거의 불꽃은 순식간에 고르고로스 거머리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위험을 알렸던 여학생가 감탄했다.
“괴, 굉장해!”
‘고르고로스의 거머리를 쓰는 걸 보면 그다지 높은 계급의 마족은 아닌 모양이군.’
마족의 경우에는 사용하는 기술을 보면 그 계급을 알 수 있다.
지금 마수는 병졸급 하위 마족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들.
‘큰 위험은 없다. 지금은 빠르게 공격을 하는 게 나아.’
머릿속으로 빠르게 전력을 분석한 레오가 지체없이 거리를 좁혔다.
서걱-!
마수술사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순식간에 두 명이나 처리하다니!”
갈색머리 여학생이 주먹을 꽉 쥐었다.
우웅-!
그때 하늘에서 있던 클로에 역시 마법을 완성시켰다.
“아이스 불렛.”
다량의 얼음 탄환이 마족들을 향해 쏟아졌다.
파바바바바밧-!
다급히 몸을 날려 얼음 탄환 세례를 피한 마족들이었지만 그로 인해 진형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좋아! 나도 간다!”
이번에는 대치하고 있던 남학생 한 명이 창을 고쳐 쥐고 돌격했다.
“하압!”
콰득!
“커헉!”
가슴이 꿰뚫린 마족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실력 좋네.’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한 레오가 갈색 머리 여학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양손을 맞댄 채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지잉-!
닿은 손을 떼자 그곳에서 작은 빛의 구슬이 여러 개 생성되었다.
“아 크 레이!”
키기기기깅!
마법이 완성되자 빛의 구슬이 사방으로 요란한 궤적을 그리며 마족들을 향해 쏟아졌다.
그 마법의 정체를 파악한 레오가 감탄했다.
‘별의 마법.’
1학년이라도 전생의 기억이 있는 레오와 여학생은 완전히 달랐다.
‘엄청난 마법 센스군.’
레오가 감탄하는 사이 빛의 구슬에 직격당한 마족 하나가 흔적도 없이 찢겼다.
남은 마족의 숫자는 여섯.
동료 잃은 마족들은 다시 진영형을 짜기 시작했다.
‘마족 병졸은 힘은 약하지만, 연계가 좋단 말이지.’
처음에 기습으로 진형을 파괴했지만, 다시 저렇게 진형을 구축했다면 상대하기 까다롭다.
레오가 품속에서 예비용 무기로 준비한 단검을 네 자루를 꺼내 오른손에 쥐었다.
그리고 마족들을 향해 돌격했다.
“어리석은 놈.”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공격해오는 레오를 보며 마족들이 비웃음을 날렸다.
우웅-!
하지만 오른손에 마법진이 떠오르는 순간 안색이 돌변했다.
“마검사인가!”
마족들이 경계하는 사이 레오가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투척했다.
그 단검을 피한 마족들이 마법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마법이 날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곧바로 공세로 전환했다.
“위협용이었나?”
“얕은 술수를 쓰는군.”
선두의 마족 네 명이 레오를 포위하듯 감쌌다.
하지만 기민하게 움직이던 그들의 움직임은 순간 무언가에 붙잡힌 듯 멈췄다.
“아니?”
마족들이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레오가 던진 단검은 정확하게 그들의 그림자에 꽂혀 있었다.
그림자를 붙잡는 마법, 쉐도우 홀드였다.
어둠 속성 마법은 마족들에게 위력이 반감된다.
실제로 마족들이 인지하는 순간 마법은 곧바로 해제되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은 레오에게 충분히 많은 시간이었다.
화르륵-! 콱! 콰드득! 푸확!
“크악?!”
“커헉!”
레오의 검이 불꽃의 궤적을 그리며 마족들을 참살했다.
슈악-!
그때 바닥에서 검은 칼날이 치솟으며 레오를 덮쳤다.
후방에 있던 마족들이 사용한 흑마법이었다.
레오의 입에서 순식간에 룬어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흑마법이 힘을 잃고 흩어졌다.
“흑마법을 디스펠?”
갈색 머리 여학생이 깜짝 놀랐다.
콰가가가각-!
무방비가 된 마족들을 차디찬 얼음 바람이 덮쳤다.
쩌저저적-!
얼어붙은 마족들에게 다가간 레오가 툭-하고 밀었다.
챙그랑-!
유리가 깨지듯 산산조각이 난 마족의 몸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훌륭했어, 클로에.”
“…….
“왜? 할 말 있어?”
“어째서 마족들에게 어둠 속성 마법을 쓴 거야?”
“아, 그거?”
레오가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었다.
“마족들은 어둠 속성 마법에 거의 대비하지 않거든. 그래서 간단한 마법으로도 허를 찌를 수 있어.”
“흑마법을 피하지 않고 디스펠 한 건? 자칫 잘못했으면 위험했어.”
“그렇긴 한데. 그 정도 흑마법은 피하는 것보다 디스펠할 수 있으면 하는 게 더 안전 하거든. 흑마법은 마법 체계는 달라도 결국에는 술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간단한 흑마법이라면 빠르게 디스펠 할 수 있어. 너도 할 수 있는 기술이야.”
‘그걸 실전에서 빠르게 해낼 수 있는 건 이야기가 다르잖아!’
전생에 마족들과 질릴 정도로 싸워 왔던 레오에게는 숨 쉬듯 당연한 것들이지만 15살의 소녀 입장에서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압도적인 경험치였다.
‘대체 몇 수를 앞서 예상하고 움직인 거야?’
클로에의 눈이 흔들릴 때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갈색 머리 소녀가 쾌활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구출대 분들이시죠?”
“그래.”
“갑작스럽게 마족이 출몰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구출대가 왔다니 안심이네요!”
활짝 웃는 여학생의 얼굴을 확인한 클로에의 얼굴이 굳었다.
클로에가 다급히 말했다.
“미안한데요. 잠깐 동료랑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네? 아, 네.”
클로에의 말에 소녀는 당황하며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왜 그래?”
“저 여학생, 알리아 제르온이야!”
“알리아 제르온이라면 설마?”
“그래, 맞아.”
영웅의 세계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공략자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실제 역사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30년 전 사건 당시 몬스터 토벌에 여러 1학년 파티가 투입되었다.
1학년 중간고사 시험 과제는 그 파티들을 구조하는 것.
“너도 알겠지만 알리아 제르온이 소속 된 파티는.”
클로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체드머더스 사건에서 절대 구할 수 없는 파티야.”
***
“하필 만난 게 알리아 파티라니.”
클로에가 발을 동동굴렸다.
알리아 파티가 전멸을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다크 워리어 츄바른. 놈은 절대 목표를 바꾸지 않아.”
츄바른.
30년 전 사건 당시 알비에게 토벌되기 전까지 임무를 받은 일곱 개의 파티 중 네 개의 파티를 혼자서 전멸시킨 마족이었다.
그 츄바른의 첫 번째로 노린 파티가 바로 알리아 파티였다.
‘정확하게는 알리아 제르온을 노린 거지만.’
클로에가 힐끗,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알리아를 바라보았다.
알리아 제르온.
루메리아 3대 영웅 명가 제르온의 직계이자 당시의 학년 대표였다.
그리고 마안의 마법사 알비의 동생이기도 했다.
그 뛰어난 재능 덕분에 30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교수들 사이에서 언급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뛰어난 재능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타르타로스에서 체드머더스 사건을 일으킨 이유는 바로 미래의 영웅의 싹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가장 첫 번째 타겟이 된 것이 알리아 제르온이었다.
이것이 바로 알리아 파티가 전멸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영웅의 세계가 시작되면 츄바른은 가장 먼저 알리아 파티부터 전멸시키기 때문이었다.
“시험 과제를 공지했을 때 담임 교수님의 말씀 기억나지?”
클로에의 말에 레오는 할린드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너희의 실력으로는 절대 나이트 계급의 마족을 이길 수 없다. 만약 츄바른과 만난다면 무조건 도주해라. 도주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시험을 포기해라. 그렇다면 정상참작이라도 해주겠다. 만약 이 명령을 어기고 전투를 하는 멍청이가 있다면.’
마지막에 할린드는 진심으로 살기를 담아 엄포했다.
‘누가 되었든 바로 퇴학시켜주마.’
“지금 우리 실력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저들을 내버려 두자는 소리야?”
“나도 찝찝해! 하지만 레오! 지금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때야. 여기는 영웅의 세계고 현실에서 저 사람들은…….”
머뭇거리던 클로에가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은 죽었어. 지금 우리가 처지가 죽은 사람들을 도와줄 만한 상황이 아니잖아.”
“그렇긴 해. 그런데 클로에.”
“레오! 정신 좀 차려! 그래! 너 대단해! 잘났어! 인정한다고!”
갑작스러운 외침에 레오가 눈을 크게 떴다.
클로에는 있는 힘껏 레오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모한 짓 할 때가 아니야! 그러니 내 말을 좀 들어! 영웅 행세 같은 건 나중에 해도……!”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던 클로에가 말을 멈췄다.
어느새 레오의 검지가 클로에의 입술에 닿아 있었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클로에.”
“뭐? 무슨 말.”
“영웅 행세라던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돼.”
“어째서?”
“넌 영웅 후보생이니까.”
클로에가 숨을 들이켰다.
“영웅을 꿈꿔서 루메른에 들어온 거잖아? 그러니까 이건 영웅 행세가 아니야.”
레오가 빙그레 웃었다.
“영웅이 되는 과정이지.”
레오의 말대로였다.
영웅이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사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목표를 잊고 있었다.
‘따라가기 급급해서…… 그런 걸 떠올릴 시간이 없었어.’
어두운 감정이 가슴속에 타올랐다.
“그리고 이미 역사는 어긋났어.”
“뭐?”
“절대 구할 수 없는 저 애들을 구할 길이 생겼다는 뜻이야.”
“구할 길이 생겼다니?”
“잘 생각해봐. 클로에. 벌써 해가 지고 있어. 이상하지 않아?”
“해가 지고 있다고? 아!”
무언가를 깨달은 클로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 원래라면 알리아 파티는 이미 츄바른의 손에 당했을 시간이야.”
이미 역사의 톱니바퀴는 어긋난 상태였다.
“우린 이미 영웅의 세계에 들어온지 3시간이나 지났어. 츄바른이 다른 파티를 공격했다면 다 전멸하고도 남을 시간이야.”
영웅 던전에서 공략 조건 달성을 실패하면 그대로 영웅의 세계에 고립된다.
선택의 기로였다.
츄바른의 목표에서 벗어난 알리아 파티를 데리고 숲을 탈출하여 [안전 보장] 조건을 달성한다는 선택지.
아니면 기존의 공략 루트대로 다른 파티를 찾는 선택지.
갈등하던 클로에가 이를 악물었다.
“네 판단에 맡길게.”
“알았어.”
레오는 알리아 파티를 바라보았다.
“알리아 파티와 탈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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