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7.
알리아는 멀리서 이야기를 나누는 레오를 보며 생각했다.
‘오빠랑 닮았네.’
성격과 분위기는 달랐지만, 사람이 내뿜는 느낌은 매우 비슷했다.
“조금 이상하지 않아?”
창을 쥔 소년, 테야드가 미간을 좁혔다.
“뭐가?”
“구출대라고 했잖아? 근데 고작 두 명이 전부야?”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혹시 타르타로스의 함정 같은 게 아닐까?”
파티원인 마검사 디나와 소환사 루이스도 테야드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기사학과 벨락이 고개를 저었다.
“적이라면 우리와 힘을 합쳐 마족과 싸울 리 없잖아.”
“맞아. 저 사람들은 적이 아니야.”
알리아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자 테야드가 뚱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확신해?”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 들지 않아? 게다가…….”
“게다가?”
“조금 멋있기도 하고.”
얼굴을 살짝 붉히는 알리아를 보며 테야드가 당황했다.
“멋있어? 야! 야! 알리아! 정신 차려! 너 입학 이후로 남자에게 눈길 한 번 준 적 없잖아!”
“안 줄만 하지. 우리 동기 중에 알리아랑 어울릴 만한 애가 누가 있냐? 게다가 알비 선배의 동생이니 눈도 높을 테고.”
“야 그래도 저런 사람이 뭐가 멋있다고!”
“확실히 멋있는데?”
“디나? 너까지!”
테야드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들이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클로에와 이야기를 끝낸 레오가 다가왔다.
“소란스럽네.”
“앗! 죄송합니다! 위급 사태 때 쓸데없이 들떠서!”
“뭐라 하는 거 아니야. 그냥 어느 기수나 1학년은 소란스럽다 싶어서.”
“어느 기수나? 혹시 우리 학교 학생이신가요?”
눈을 반짝이며 묻는 일리아에게 대답한 건 클로에였다.
“네. 지금은 아니지만요.”
“아!”
일리아는 두 사람이 자퇴한 선배라고 착각하고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는 말을 해서…….”
“괜찮아요.”
“지금 상황에 대해 먼저 설명해 줄게.”
“설명까지 필요 있습니까? 지금 이 숲에 마족들이 나타난 상황이잖아요.”
레오의 말에 테야드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단순한 마족 출현이라면 설명할 이유는 없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숲에는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마족이 있다.”
“얼마나 강한 마족이길래 호들갑이십니까?”
“레벨 3급이야.”
“뭣!”
“레, 레벨 3?”
“1학년 수준으로 해결 가능한 등급이 아니잖아요!”
디나가 다급히 물었다.
“다른 애들은요? 우리 말고 다른 파티는 무사한가요?”
“무사해. 너희만 이 숲을 빠져나가면 돼. 그러니 앞으로는 내 지시를 따라 줬으면 좋겠어.”
디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테야드가 물었다.
“당신은 레벨 3급의 마족을 쓰러트릴 힘이 있는 겁니까?”
레벨 3의 마족.
하나의 연대를 전멸시킬만한 힘을 가진 높은 등급의 위협이었다.
“아직 내 힘으로는 레벨 3의 마족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는 장담하지 못해.”
“그럼 우리가 당신 지시에 따라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하지만 레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 이유가 뭡니까?”
“너희를 데리고 무사히 빠져나갈 실력은 있기 때문이야.”
“뭐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네, 알았어요. 지시에 따를게요.”
“야, 알리아!”
테야드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전 너도 이 사람이 싸우는 걸 봤잖아. 게다가 상황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훨씬 잘 파악하고 있을 거야.”
알리아가 파티원을 설득했다.
“레벨 3의 마족은 확실히 지금 우리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그러니 지금은 어설프게 움직이는 것보다 경험이 많은 구출대를 따르는 게 옳다고 파티장으로서 난 생각해.”
알리아의 설득에 파티원들이 서로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리아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이때까지 네 말을 들어서 나쁜 일은 없었으니까.”
“하아! 진짜!”
테야드가 벅벅 머리를 긁으며 레오를 노려보았다.
“대신! 조금이라도 미덥지 않으면 당신 지시는 절대 안 따를 테니까 그렇게 알아두십쇼!”
“기대에 부응할 테니 걱정하지 마.”
***
“히어로 레코드의 영웅 던전화에 대한 사례를 찾아!”
루메른 아카데미의 실질적인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영웅의 탑에서는 교수들과 조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환학 실기시험 당시의 마수 출현으로 민감한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히어로 레코드의 영웅 던전화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까지 발생하니 루메른은 비상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영웅의 탑 꼭대기 층에 교장실에서 칼리안은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히어로 레코드가 펼쳐져 있었다.
“아직까지 입장할 수 없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라고 봐야 하겠지?”
“예.”
알비는 폭주하고 있는 자신의 히어로 레코드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영웅 던전은 앞선 입장자가 있으면 추가 입장이 불가능하다.
즉, 레오와 클로에는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의미했다.
“두 학생이 영웅 던전에 들어가고 벌써 세 시간이 지났네. 영웅의 세계 속은 이미 밤이겠군. 알비 군, 자네가 30년 전 츄바른을 쓰러트렸던 때가 언제였지?”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과거의 자네에게 모든 걸 맡길 수밖에 없다는 건가.”
칼리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교장실로 칼리안의 비서, 에레나가 들어왔다.
“교장님, 리우 학생에게 마수 소환 촉매를 판매한 자를 찾았습니다.”
“누구지?”
알비의 눈이 번득였다.
보고를 하러 온 에레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왼쪽 눈에 핏발이 섬과 눈동자에 기형학적인 마법진이 떠올랐다.
요정의 마법이었다.
30년 전.
마족에 의해 동생을 잃은 알비는 그 누구보다도 타르타로스에 대한 강한 증오심을 가진 남자였다.
“진정하게, 알비 군.”
칼리안의 말에 알비의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머리 좀 식히고 오겠습니다.”
그 말을 남긴 그는 그대로 교장실을 떠났다.
“알비 공은 언제 봐도 위험한 분이군요.”
“알비는 증오심으로 영웅의 자리에 오른 남자니까.”
30년 전.
시체는커녕 유품조차 남기지 못한 동생의 죽음을 마주한 그는 그날로 루메른을 자퇴하고 마족 사냥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신들의 인정을 받은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타르타로스와 연관된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다닌 덕분에 주변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 덕에 대중들 사이에서 알비는 찬양의 대상이 아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알비 공이 교수직을 수락했다는 게 아직 믿기지 않습니다.”
“그래도 알비 군이 내 말은 듣는 편 이거든.”
쓰게 웃은 칼리안의 안색이 돌변했다.
“그래, 어떤 놈이지?”
“올해 루메리아 시티의 뒷거리에 자리 잡은 장물아비입니다. 고학년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1학년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모양입니다. 그중 몇몇 1학년이 이 상인에게 물건을 샀습니다. 그중 마수 소환 촉매가 섞여 있었습니다.”
“타르타로스의 첩자가 루메리아 시티에 잠입해 있었단 말인가?”
“조사해봤는데 타르타로스와 관련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타르타로스가 그쪽으로 물건 몇 개를 흘린 건 분명합니다.”
“……이해할 수 없군.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그 이유까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이건 장물아비의 거래 명부입니다.”
칼리안이 명부를 건네받고 페이지를 넘겼다.
팔락-! 팔락-!
명부를 넘기던 칼리안의 손이 멈칫했다.
‘클로에 뮐러 : 검은 마도서.’
빤히 그 항목을 바라보던 칼리안이 말했다.
“에레나 양. 지금 당장 교장실로 세드젠 교수와 렌 교수를 불러주게. 클로에 학생과 관련되어 물어볼 게 있다고 말일세.”
“알아내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없네. 다만 감이 왔네.”
“감이요? 감에 의지해 움직이겠다는 겁니까?”
당황하는 에레나를 보며 칼리안이 빙그레 웃었다.
“에레나 양, 난 늙었네. 검성이라는 명성도 이제는 허울 좋은 옛 영광에 불과하지. 하지만 말일세.”
옛 검성의 눈이 번뜩였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감은 아직까지 여전하다고 자부하고 있네.”
***
해는 완전히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조금 전 전투를 끝낸 일행은 모두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잠시 휴식하자.”
레오의 말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들 체력적으로 거의 한계군. 영웅의 세계에 들어온 지 세 시간 정도 지났나?’
앞선 다른 조들의 클리어 시간은 1시간 정도 되었다는 걸 감안 한다면 세 배나 걸린 셈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조들은 위험에 빠진 파티를 구출하는 것만으로도 클리어 조건을 충족했지만, 레오와 클로에는 달랐다.
클로에는 알리아 파티의 [안전 보장] 조건을 츄바른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최단 루트로 숲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레오와 클로에가 기동력을 살려 전투를 피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전투가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거의 다 왔어.’
한숨을 쉬던 레오는 머리가 지끈거림과 동시에 눈앞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젠장, 초감각을 너무 오랫동안 썼나?’
감각을 극대화 시키는 초감각은 평소보다 배 이상의 주변 정보를 뇌가 소화하는 기술이었다.
그런 만큼 정신적인 피로도 누적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버티자.’
눈을 감고 레오가 심호흡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알리아 파티가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지친 기색 하나 없지?”
“실력이 대단하긴 한가 봐.”
“풉! 테야드는 저런 사람에게 ‘지시를 따라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라고 물어본 거야? 난 창피해서 얼굴도 못 들 것 같은데!”
“시끄러!”
파티원들이 자신을 놀리자 테야드가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한편, 나무 밑에 앉은 클로에는 품에서 검은 마도서를 꺼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알리아가 다가왔다.
“클로에님. 이야기 좀 할래요?”
“무슨 이야기요?”
“레오님에 관한 거요.”
알리아가 빙긋 웃으며 클로에 옆에 앉았다.
“클로에님은 레오님과 무슨 관계에요?”
“무슨 관계라뇨?”
“혹시 연인 사이?”
“아니거든요?!”
당황한 클로에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반응 보니까 확실히 아닌가 보네요!”
클로에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30년 전 입학한 까마득한 선배도 1학년은 1학년이구나.’
마치 같은 반 여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반의 여학생들은 대부분 연애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건 왜 물어봐요? 래오에게 관심 있어요?”
“있기는 하죠. 보면 두근두근하니까요.”
“첫눈에 반했나 보네요.”
30년 전 우등생도 별수 없다고 생각하며 클로에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반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두근두근하기는 한데. 그 두근두근하는 느낌이 누군가랑 많이 닮았거든요.”
“누구요?”
“우리 오빠요.”
“오빠라면 알비 제르온?”
“네. 물론 레오님과 오빠를 비교 하면 레오님이 훨씬 멋있죠. 우리 오빠는 덤벙대는 편이고 매사에 실수도 잦거든요.”
순간 클로에는 귀를 의심했다.
‘덤벙대고 실수가 잦다고? 누가? 그 마안의 마법사가?’
대중이 무서워하는 유일한 영웅인 마안의 마법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다.
“하지만 동화 속 영웅 같은 사람이에요.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고 결국 이루어내는 사람이요. 그래서 난 오빠를 동경해요.”
“불가능한 일에 망설임 없이 도전한다라…… 확실히 레오와 닮았네요.”
클로에의 눈이 가라앉았다.
“레오는 대단해요. 언제나 사람들을 잘 이끌고 있죠. 성적도 좋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척척 해내는 완벽한 사람이에요. 알리아씨의 말대로네요. 레오는 영웅 같은 사람이에요.”
클로에가 실소를 터트렸다.
“레오랑 무슨 관계냐고요? 처음에는 친구이자 라이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질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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