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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49화 (49/483)

【49】48

“…….

클로에가 검은 마도서를 꼭 쥐었다.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길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래서…… 제 힘이 아닌 다른 이의 힘을 빌렸어요.”

클로에가 원래 준비하고 있던 고유마법은 빙결계 필드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마법으로는 레오를 시험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꺼지지 않는 불꽃을 준비했다.

그건 클로에가 만든 마법 술식이 아니었다.

‘이 마도서에 적힌 마법 술식을 바탕으로 구현했을 뿐이야.’

클로에조차도 마법의 발동 원리를 알지 못했다.

그저 고유마법이기에 자신만의 특별함이라고 얼버무린 것에 불과했다.

누군가 마법에 관해 물었을 때 필요 이상으로 날카롭게 반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시험 날 발표했고 꺼지지 않는 불꽃은 예상대로 레오를 이겼다.

그 순간만은 무척 기뻤다. 드디어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걸 따라잡았다고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이를 악물던 클로에가 실소를 터트렸다.

‘이 사람에게 하소연해서 뭐 해.’

3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 되는 천재 소녀.

‘나와는 다른 사람이야. 레오처럼 특별하겠지.’

이런 사람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해 봤자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오히려 비웃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클로에를 말없이 바라보던 알리아가 웃었다.

“역시 클로에님은 나랑 닮았네요.”

“네?”

“사실 말이에요. 나도 우리 오빠 엄청나게 질투했거든요.”

알리아가 빙긋 웃었다.

“멍청하게 생긴 게 뭐든 척척 해내는 게 재수 없다는 생각 엄청 많이 했어요. 이건 비밀인데요. 내 고유마법의 기본 체계는 사실 우리 오빠가 만든 거예요. 난 기존에 있는 마법을 쓰는 능력은 뛰어나도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건 젬병이거든요. 사실 루메른 입학시험도 두 번이나 떨어졌고요.”

알리아가 무릎을 가슴팍에 모았다.

클로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회자 되는 비운의 마법 천재라고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한때는 오빠를 진짜 싫어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질투해서 미워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동경의 대상으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 말에 클로에가 검은 마도서를 내려다보았다.

‘동경의…… 대상?’

***

눈을 감고 휴식하던 레오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레오님. 무슨 일입니까?”

벨릭의 물음에 레오가 숲 한쪽을 보았다.

“모두 전투 준비해!”

레오의 초감각에 무언가 잡혔다.

그 순간 상대 역시 이쪽을 인지했다.

“레오, 무슨 일이야?”

“놈이야.”

클로에가 숨을 들이켰다.

“설마……?”

“그래.”

레오가 검을 뽑았다.

쿵-! 쿵-!

지축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수풀에서 이형의 거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3m는 될법한 키.

칠흑같은 검은 피부.

사진에서 본 모습과 같았다.

“츄바른……!”

클로에가 이를 악물었다.

츄바른이 검붉은색 눈을 굴려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찾았다. 증오스러운 대영웅과 같은 자질을 가진 영웅의 싹!”

그 말에 레오가 눈을 꿈틀거렸다.

마족은 상위 계급의 명령을 우선시하는 생물.

그리고 체드머더스 사건에서 츄바른이 받은 명령은 영웅의 싹을 제거하는 것.

그래서 츄바른은 공략자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녀석은 명백하게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어.’

가장 큰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알리아가 코앞에 있음에도 반응이 이상했다.

‘게다가 지금 분명 대영웅의 싹이라고…….’

“크워어어어어어!”

츄바른이 포효를 내지르며 레오를 향해 돌격했다.

번뜩-! 콰앙-!

츄바른의 손에 들린 흉악한 형태의 도끼가 바닥을 후려갈겼다.

하지만 레오는 일찌감치 츄바른의 공격 범위를 벗어난 후였다.

화르륵-!

레오의 검에 불꽃 오러가 맺혔다.

카가각-!

레오의 검이 츄바른의 목을 베었다.

하지만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씨익-!

레오의 얼굴을 본 츄바른이 흉측하게 웃었다.

“어리석은 놈!”

츄바른이 손을 뻗어 레오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레오는 피식 웃었다.

“그건 네 착각이고 등신아.”

“뭐…….”

콰가각-!

클로에가 쏜 강력한 설풍이 츄바른을 덮쳤다.

차가운 얼음 바람에 츄바른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 틈을 이용해 츄바른의 손을 피한 레오가 몸을 회전시켰다.

휘리리릭-! 콰아아아악!

불꽃의 오러가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콰학-! 푸확!

“베었다!”

“좋았어!”

일행이 쾌재를 내질렀다.

회전력을 이용해 위력을 더한 검이 츄바른의 목을 베어낸 것이다.

하지만 레오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뼈를 베지는 못했어.’

마족은 일반적인 생명체와 다르다.

에레보스가 만들어낸 이형의 종족.

이 정도는 치명상이 될 수 없다.

레오는 곧바로 츄바른의 머리를 걷어차며 그 반동을 이용해 거리를 벌렸다.

‘일단 그래도 공격은 통하는군.’

심호흡을 하며 츄바른을 바라보던 레오가 눈을 크게 떴다.

츄바른의 상처에서 분수처럼 치솟던 피가 갑자기 멎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쏟아졌던 피가 갑자기 상처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뚜둑- 뚜둑-

“흐- 제법 괜찮은 공격이군.”

츄바른이 목을 좌우로 까닥거리며 히죽 웃었다.

그걸 보고 테야드가 경악했다.

“말도 안 돼! 무슨 회복 능력이……!”

“저건 회복 능력이 아니야.”

“예? 그럼 뭔가요?”

“저주야.”

저주는 마족이 가진 특수 능력 중 하나였다.

하위 마족이 쓰는 저주는 상대의 힘을 약화하는 정도였지만 상위 저주는 현실의 법칙조차 뒤틀어 버렸다.

“[무효]. 공격을 없었던 걸로 만드는 성가신 저주지.”

레오가 어깨에 검을 걸쳤다.

“호오? 잘 알고 있군.”

“레벨 3의 마족이 쓰기에는 과분한 저주 아니야?”

“흐- 말을 몹시 건방지게 하는구나. 하지만 네 말이 맞다. 이 저주는 마물 여왕 실라투나님의 은혜지.”

마물 여왕이라는 이름에 1학년들이 공포에 떨었다.

마물 여왕 실라투나.

재앙의 시대부터 살아남은 타르타로스의 군단장이자 에레보스의 심복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재수 없는 이름이군.”

레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공격이 무효가 된다면…… 대체 어떻게 이겨야 하죠?”

알리아가 공포에 질려 물었다.

“무효 저주도 만능은 아니야. 거기다 놈은 저주를 쓴 주체가 아니지. 여러 번 사용하면 저주가 사라져.”

“흐- 저주가 사라질 때까지 네놈들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 말과 함께 수풀을 헤치고 츄바른의 부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서 뼈자 나갈 생각은 버려라. 대영웅의 잔재인 네놈은 여기서 죽는다.”

“대영웅의 잔재?”

레오가 피식 웃었다.

“내가 카일과 같은 올 클래스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거야?”

“닥쳐라! 그 증오스러운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마라!”

격한 반응을 보이는 츄바른을 보며 레오는 알리아 파티가 어떻게 츄바른에게서 벗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숲 곳곳에 마족이 펼쳐둔 감시망이 있었지. 나나 클로에는 어차피 공격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레오가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은 그 감시망을 통해 내가 올 클래스라는 사실을 안 거야. 그래서 계속 나를 좇았던 거고.’

초감각을 이용해 마족들을 피해 다닌 레오는 본의 아니게 츄바른과 술래잡기를 했던 셈이다.

실라투나 같이 재앙의 시대부터 살아남은 대마족들은 건재하다.

그렇다면 마족들은 카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타르타로스의 창조주를 처치한 카일이야 말로 마족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원수일 테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잊었는데 마족들은 날 기억하다니. 아이러니하군.’

상황 파악을 끝낸 레오가 검을 다잡으며 말했다.

“준비해.”

“애송이에 불과한 네놈들이 나를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물론이지.”

“흐- 대단한 자신감이군. 하지만 네놈의 동료들도 너와 같을까?”

츄바른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뒤를 돌아보자 일행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만용을 가진 건 네놈뿐. 네놈 동료들은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한계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계속된 전투를 통해 일행 모두 지쳐 있었다.

“크큭.”

하지만 츄바른의 말에 레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지? 실성이라도 한 거냐?”

“아니. 그냥 네놈이 루메른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말이야.”

“뭐라?”

“루메른은 영웅을 꿈꾸는 녀석들이 입학하는 학교야.”

영웅 후보생들의 시선이 레오의 등에 닿았다.

저벅- 저벅-

레오가 걸음을 옮겼다.

영웅 후보생들의 떨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눈에는 서서히 의지가 돌아왔고 오러와 마력, 영력이 휘몰아쳤다.

실제 역사에서 이들은 죽었다.

하지만 이들이 손 놓고 츄바른에게 학살당한 건 결코 아니었다.

‘츄바른에게 [무효] 저주가 있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어. 그 말은 즉. 츄바른은 첫 번째 싸움에서 [무효] 저주를 모두 소모했다는 뜻이야.’

죽었을지언정 누구 한 명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마치 오래전 에레보스에게 목숨을 잃은 대영웅들처럼.

“그래서 항상 이 말을 기억하고 있지.”

모든 루메른 학생들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교훈.

영웅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

“한계를 넘어서라고 말이야.”

타앗-!

레오가 땅을 박차고 나가자 테야드와 벨락이 창과 검을 치켜들고 함께 돌격했다.

“어리석은 놈들! 소원이라면 네놈들부터 죽여주마!”

츄바른이 포효하며 도끼를 휘둘렀다.

“저놈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너희는 병졸들을 처리해.”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마!”

레오가 츄바른을 향해 돌격했다.

쾅-!

츄바른의 도끼가 바닥을 후려갈겼다.

흙의 파편이 검은 송곳이 되어 레오에게 쏟아졌다.

‘피오라를 소환할 수 있다면 조금 나았을 텐데.’

일반적인 영웅의 세계라며 모를까.

폭주로 인해 바깥과 완전히 단절되는 영웅 던전에서 환수술사는 환수를 소환할 수 없었다.

정령술이 모든 정령에게 힘을 빌리는 일종의 조약이라면 환술은 소환사와 환수 사이의 1:1 계약이었다.

그래서 환수술사들은 영웅 던전에 진입할 때 미리 환수를 소환해서 함께 영웅 던전에 들어가야 했다.

‘정령술로는 츄바른에게 타격을 입히기 힘들어. 그렇다면.’

화악-!

레오의 모습이 여러 개로 늘어났다.

“아니!”

츄바른이 경악했다.

환영 마법, 신기루.

검은 송곳들이 허무하게 레오의 환영을 꿰뚫었다.

그런 가운데 추가적인 레오의 공격이 이어졌다.

오른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자 그 끝에 빛의 입자가 모였다.

키이잉-!

“아 크 레이!”

파지지직! 번쩍-!

작은 빛의 구슬이 탄환이 되어 날아갔다.

별의 마법 중 가장 기본적인 공격 마법.

그것을 본 마검사 다니가 경악했다.

“저 사람! 마검사 였어? 게다가 신기루랑 아 크 레이? 둘 다 별의 마법이잖아!”

콱-!

“큭?”

[아 크 레이]에 직격당한 츄바른이 눈을 부릅떴다.

별의 마법은 루나가 마족을 토벌하기 위해 만든 마법.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마족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마법이었다.

“인간이 이 증오스러운 마법을 쓴단 말이냐!”

“미안한데, 별의 마법 사용자는 나뿐만이 아니거든?”

“아 크 레이.”

알리아도 주문을 해방시켰다.

이번에는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빛의 구슬이 츄바른에게 쏟아졌다.

퍼버버버벅!

“놈!”

몸에 빛의 구슬이 박히자 츄바른이 고함을 내질렀다.

고오오오오-!

[무효] 저주가 발동해 츄바른의 몸의 상처가 모두 사라졌다.

“쯧.”

레오가 혀를 찰 때 클로에가 소리쳤다.

“레오! 조금만 버텨 줘!”

“걱정 마. 그게 내 역할이니까.”

레오의 대답에 클로에가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현대의 마법사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뉘었다.

전방 라인에 자리 잡는 전투형 마법사.

어느 라인이든 자리 잡는 만능형 마법사.

후방 라인에 자리 잡는 전통형 마법사.

그중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형태가 바로 클로에와 같은 전통형 마법사였다.

‘전통형 마법사는 주문을 외울 동안 무방비해지니까.’

주문이 긴 만큼 동료들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장점 역시 뚜렷했다.

그건 바로 다른 마법사들과는 비교를 거절하는 절대적인 파괴력이었다.

현재 파티에서 알리아는 만능형 마법사다.

강력한 마법을 연속에서 사용할 순 있어도 절대적인 한 방이 부족했다.

‘우리 중 츄바른에게 치명타를 먹일 만한 사람은 나뿐이야. 레오에게만 기댈 수 없어. 나도…… 나도 무언가를 해야 해.’

클로에의 머릿속으로 츄바른의 저주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 마법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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