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54화 (54/483)

【54】53.

“그럼 여러분. 우리 반은 엘살베키아로 가는 것으로 정해진 거죠?”

“예!”

세나의 물음에 5반 전원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파티가 있은 다음 날.

레오를 포함한 5반 학생 모두가 주말임에도 교실에 와 있었다.

5반뿐만 아니라 다른 반 역시 모두 주말 아침부터 수학여행 장소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기 바빴다.

넬라와 함께 앞에 나와 반의 의견을 모은 레오는 5반의 여행지를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페어리 포레스트가 있는 도시로 가기만 하면 되겠군.’

“반장이 가자고 했으니 이유가 있겠지~”

“맞아. 반장의 선택이라면 믿을 만해.”

5반이 엘살베키아로 가게 된 이유는 레오의 영향이 가장 컸다.

“빨리 정해져서 좋군.”

교실 앞 구석에 앉아 학급 회의를 지켜보던 할린드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반장, 부반장. 이 프린트를 나눠주도록.”

그의 가방에 있던 프린트 다발이 두 사람에게 날아갔다.

레오와 넬라가 그걸 반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어디 보자.”

“준비물?”

“우리가 따로 준비해야 하는 건가요?”

학생들이 프린트를 보며 의문을 토하자 할린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준비할 시간은 이번 주 주말뿐이다. 그러니 학급 회의가 끝나면 각자 준비하도록. 학급회의는 이거면 되겠지? 해산해라.”

드르르륵-!

학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장 부반장은 남도록.”

그 말에 자리로 돌아가려던 레오와 넬라가 멈칫했다.

“지금 당장 루메리아 시티로 가자!”

“오케이!”

“엘살베키아라면 1년 내내 추운 나라지? 나 겨울옷 보러 갈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5반 학생들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레오 오빠. 넬라 언니! 우리는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빨리 와라.”

첼시와 칼도 손을 흔들고 반을 나섰다.

반에는 네 사람만 남게 되었다.

할린드는 자신 앞에선 레오와 넬라에게 말했다.

“다들 들뜬 분위기다만 반장과 부반장인 너희까지 수학여행을 가벼운 마음으로 갈 생각은 아니겠지?”

단도직입적인 할린드의 물음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면 좋겠지만 루메른이 그런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니까요.”

그 대답에 할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다면 너희에게 한 가지 묻도록 하지.”

“어떤……?”

“원래 여행을 갈 나라가 정해지면 일정은 내가 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문득 너희에게 맡겨봐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그래. 반장과 부반장인 너희가 일정을 잡아 보지 않겠나? 물론 부담스럽다면 예정대로 내가 하도록 하지.”

‘반 전체 일정을 나랑 레오 둘이서? 할린드 교수님이 나랑 레오를 믿어준 거긴 하지만 괜찮을까?’

넬라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레오는 슬그머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거 잘됐는데?’

페어리 포레스트가 목적인 레오에게 있어서는 잘된 일이였다.

“하겠습니다.”

즉답에 넬라는 물론이고 세나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잘 할 수 있겠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꺼내신 거 아닙니까?”

당돌한 말에 할린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넬라 카븐. 네 의견은?”

“반장을 보조하는 건 부반장의 책무니까요.”

가볍게 한숨을 쉰 넬라가 특유의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다. 그럼 기대하도록 하겠다. 매일 밤 세나 부교수에게 정기적으로 보고를 올리도록.”

그 대답을 듣고 레오와 넬라가 인사를 하고 반을 나섰다.

“상당히 파격적이시네요.”

“레오 플로브의 역량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을 뿐이다.”

할린드가 출석부를 펼쳐 레오 사진을 보았다.

“이번 1학년 세대는 남다른 면이 있지.”

“확실히 우수하긴 하죠. 셀리아, 듀란, 첸 시아, 아바드, 클로에, 워레든, 엘리자. 모두 학년 대표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실력자들이니까요.”

뛰어난 재능만 모이는 루메른이라지만 한 세대에 이만한 인재가 포진하기는 쉽지 않다.

“그 중에도 레오 플로브는 특별해.”

“올 클래스니까요.”

“단순히 그런 것 때문에 특별하다는 게 아니다.”

“그럼요?”

“영웅의 재목이라는 알비 교수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는 소리지.”

세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할린드는 학생을 평가하는 눈이 그 누구보다도 정확한 교수였다.

‘그 할린드 교수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실 정도라니.’

할린드가 출석부를 덮었다.

‘싫든 좋든 레오 플로브는 주변을 자극시킨다. 그것에 영향을 받은 학생들은 큰 진보를 이루고 있어.’

주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

그런 자를 영웅이라 부른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저력은 확실히 놀라워.’

거기까지 생각한 할린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학여행 일정에 관한 건 너에게 위임하겠다.”

“역시 이번 중간고사 사건 때문에 바쁘신 거죠?”

“그 이상은 묻지 마라. 정식 교수가 아닌 이들은 알면 안 되는 이야기니까.”

그 말에 세나는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

루메리아 시티의 메인 스트레이트인 쿠라주 거리 입구에 도달한 후 일리아나가 제의했다.

“일단 2인 1조로 세 팀으로 나누자!”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것보다 그게 효율적이겠네.”

넬라가 웃으며 동의하자 테이드가 물었다.

“조는 어떻게 정할래?”

“가위바위보를 해서 같은 걸 내는 사람끼리 하지 뭐.”

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위, 바위, 보!”

몇 번의 가위바위보 끝에 레오와 첼시. 칼과 넬라. 일리아나와 테이드로 팀이 정해졌다.

“자 그럼 이제 각자 살 물건을 정하자.”

레오와 첼시는 식료품.

칼과 넬라는 장비류.

일리아나와 테이드는 포션류를 구매하기로 했다.

식료품, 장비류, 포션류.

이것들이 모두 학생들에게 준비하라고 공지한 물건들이었다.

심지어 학생별로 자금도 주어졌다.

프린트를 확인하며 일리아나가 턱을 쓰다듬었다.

“마치 원정 임무를 준비하는 것 같네.”

“루메른의 학과 행사잖아. 2학기부터 있을 임무 체험 같은 걸 하지 않을까?”

“호오! 그럴 수도 있겠는데?”

첼시의 말에 일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3시간 후에 여기 모여서 점심 먹는 걸로 하고! 일단 해산!”

그렇게 조별로 헤어졌다.

의욕 좋게 출발하려던 첼시가 멈칫했다.

“근데 식료품 같은 건 어떻게 구해야 하지?”

영웅 명가의 엘리트 귀족 아가씨인 그녀에게는 의외로 상당한 난관이었다.

“따라와.”

“응?”

첼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쫄래쫄래 레오를 따라갔다.

레오는 익숙하다는 듯 쿠라주 거리 시장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원정에 필요한 식료품을 사기 시작했다.

보존 식품을 시작으로 식재료를 샀다.

식품 저장용 아공간을 들고 왔기에 식료품을 저장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능숙하게 필요한 것들을 사는 레오를 보며 첼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지막으로 과일가게에 들렀다.

입학식 날 레오와 셀리아에게 사과를 던져 줬던 주인이 있는 가게였다.

가게로 다가가자 역시나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둘을 맞이했다.

“오! 루메른 학생이군! 몇 학년인가?”

“1학년이요.”

“호오? 1학년? 이름이 뭔가?”

“레오 플로브요.”

“레오 플로브? 설마 1학년 대표 레오 플로브?”

과일 가게 주인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레오 오빠를 알아요?”

“당연히 알지! 학생! 이걸 보라구!”

“우리 학교 신문부가 낸 신문이네요.”

레오는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신문을 받았다.

[전대미문의 올 클래스 1학년 레오 플로브가 화제이다.]

레오에 대한 기사가 쓰여 있었다.

“이거 엄청난 영광이군? 하하하하! 악수 한 번 해주겠나?”

‘엄청 호쾌한 아저씨군.’

손을 잡고 악수하며 레오가 생각했다.

“에잇! 기분이다! 싸게 해주지!”

“고맙습니다.”

레오가 씩- 웃었다.

“나도 한때 영웅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재능도 없었거든!”

이마를 탁 치며 껄껄 웃은 과일 가게 주인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자네 같은 학생들을 보면 괜히 부럽기도 하고 잘해주고 싶기도 해. 자네들은 이 세상의 미래가 아닌가?”

그 말을 들은 첼시가 살짝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할 수 있는 게 응원밖에 없는 평범한 아저씨이지만 말일세.”

“그 응원이 우리에게는 힘이 되어 줄 겁니다.”

“응?”

“영웅이란 그런 존재거든요.”

레오가 빙긋 웃었다.

절망의 시대에.

몇 번이고 좌절하려 했던 원정대를 몇 번이고 일으켰던 건 자신에게 희망을 걸고 응원해준 사람들이었다.

레오의 말을 듣고 과일가게 주인이 눈을 크게 뜨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많은 루메른 학생을 보아 왔지만, 자네는 뭔가 특별하군! 좋아! 오늘부터 나는 자네의 팬이야!”

껄껄 웃은 과일가게 주인은 레오와 첼시에게 사과를 쥐여주었다.

“레오 오빠는 이런 일이 엄청 능숙하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아.”

사과를 와삭- 베어 물며 첼시가 물었다.

“이런 걸 몇 번 해본 적이 있었거든.”

전생에는 보급품이 매우 중요했다.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지.’

과거 일을 떠올리며 사과를 베어 물었다.

“시간이 많이 남았네. 남은 시간 동안 뭘 하지?”

첼시가 검지를 물며 고민에 빠졌다.

“난 가볼 때가 있어.

“어디? 나도 같이 가 줘?”

“개인적인 볼 일이야.”

레오의 말에 첼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있다가 약속 장소에서 만나.”

“응.”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첼시를 보며 피식 웃은 레오가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여기 어디쯤이라고 했는데.’

뒷골목은 살피던 레오는 잠시 후 루테크라는 가게 앞에 멈추게 되었다.

“여기군.”

겉으로 보기에는 뒷골목에 있는 평범한 잡화점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다름 아닌 클로에에게 마신기를 판매했던 곳이었다.

가게 문고리를 돌렸지만 잠겨있었다.

레오가 장금장치 해제 마법을 외웠다.

철컥-! 끼익-!

안으로 들어가니 가게는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다.

“라이트.”

간단한 빛 마법으로 내부를 환하게 비추었다.

‘조사는 벌써 루메른에서 끝마쳤겠지만…….’

엉망이 된 가게 내부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마신기와 연관된 곳이야. 무언가를 남겨 뒀을지 몰라.’

레오가 가게 내부를 천천히 조사했다.

그러나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남은 물건 역시 진열대 구석에 박혀 있는 낡은 곰인형 뿐이었다.

‘잠깐. 곰인형이라고?’

이곳은 이미 루메른이 철저하게 조사를 했던 장소다.

가게에 물건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조사를 위해 가져갔을 터.

그런데 곰인형이 웬 말이란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레오가 흠칫했다.

‘인지 저하 마법?’

그렇게 생각한 순간.

고오오오-

곰인형의 눈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꾸륵! 꾸륵! 으적! 으적!

검은 기운을 흩뿌리던 인형이 이내 살점 덩어리가 되어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마족!’

번뜩-!

살점이 한가운데 거대한 눈이 튀어나와 꿈틀거리더니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콰드득-!

동시에 살점이 뻗어 나와 레오를 노렸다.

우직끈!

가게 바닥이 주저앉았다.

화르륵-!

레오가 오러의 불꽃을 일으켰다.

콰앙-!

마족의 몸이 불타올랐다.

하지만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키키킥. 키히히힉!]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에 레오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 목소리는……!’

레오가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마물 여왕…… 실라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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