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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56화 (56/483)

【56】55.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고 수학여행 당일이 밝았다.

루메른 텔레포트 게이트 앞에 1학년들이 반별로 모여 있었다.

“오늘은 좀 많이 덥네.”

“이 더위에 추운 지방으로 가다니, 이거 어떻게 보면 피서 아니야?”

오늘부터 하계 교복 시즌이라 학생 모두가 여름 교복을 입고 있었다.

춘추복을 벗고 하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유독 더운 날씨에 넬라가 손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리자 일리아나가가 쾌활하게 말했다.

그렇게 5반이 떠들고 있을 때 1반쪽에서 셀리아가 다가왔다.

“레오. 왜 너희 반은 엘살베키아로 가는 거야? 가장 추운 나라잖아.”

하얀색 반팔 블라우스.

붉은색 리본 타이에 붉은색과 검은색이 조화된 체크무늬 교복을 입고 무릎 아래까지 오는 양말을 신은 셀리아는 더운 날씨임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루메른은 정해진 교복의 요소만 충족하면 어떻게 꾸며 입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 주의였다.

한참 자신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 10대들인 만큼 개성껏 교복을 꾸며 입곤 했다.

당장에 교복 여기저기에 보석을 주렁주렁 단 남학생이라던가 교복을 개조해서 여기저기 무기를 수납한 학생.

혹은 군복처럼 말끔하게 각을 잡는 학생.

심지어 마법사 로브처럼 리폼한 학생도 있었다.

덕분에 의외로 셀리아처럼 번듯하게 교복을 입는 학생은 드문 편이었다.

영웅 명가로서 용모단정이 셀리아의 모토였다.

“너희 반은 갈 수 있는 곳 중 가장 따뜻한 곳으로 가잖아.”

“당연하지. 난 추운 건 딱 질색이니까.”

레오의 물음에 셀리아가 딱 잘라 말했다.

“뭐. 세이룬에 갈 수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즐겁게 웃는 셀리아를 보며 칼이 물었다.

“근데 셀리아. 엄청 기분이 좋아 보인다?”

“듀란 녀석은 추운 곳을 가고 싶다고 했거든. 그래서 어떤 곳에 가느냐로 그 자식이랑 승부를 겨루었어.”

셀리아가 우쭐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결과는 보다시피 나의 승리였지만.”

“기사학과 1등과 2등의 대결이라…… 엄청난 빅매치인데! 왜 난 몰랐지? 어떤 종목으로 겨룬 거야?”

“가위바위보.”

“…….”

“그 자식이 주먹을 냈을 때 표정이란! 오호호호호!”

“셀리아. 가위바위보로 반의 여행지를 정한 건 자랑이 아니거든? 조용히 해주면 안 될까?”

클로에가 민망하다는 얼굴로 뜯어말렸다.

“따뜻한 곳이면 그만큼 인간들과 마주칠 일도 많을 거야. 조심해.”

“나는 오히려 그런 놈들이랑 만나고 싶은데?”

레오의 말에 셀리아가 히죽 웃었다.

인간은 엘프 영역에 출입할 수 없다.

엘프 영역에 있는 인간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 엘프 영역을 침범한 인간 대부분은 도적이었다.

“나쁜 짓을 하면서 종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놈들에게는 본때를 보여줘야지.”

“몬스터와 인간은 달라.”

“알아. 내가 방심 같은 걸 할 사람으로 보여?”

셀리아가 빙긋 웃자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야. 인간의 악의를 무시하지 말란 소리야.”

셀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오빠가 걱정돼서 하는 소리야.”

“거, 걱정 같은 거 필요 없거든? 그리고 왜 네가 오빠야! 내가 누나지!”

당황하던 셀리아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조심해! 페어리 포레스트는 몬스터 출현 지역이잖아!”

셀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준 레오가 클로에에게 말했다.

“클로에 너도 조심하고.”

“응. 열흘 뒤에 봐, 레오. 칼.”

클로에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두 사람과 헤어지자 이번에는 첸 시아가 인사를 하러 왔다.

“레오 도령. 열흘 후에 봐요.”

“너도 조심히 다녀와.”

“예.”

간단하게 담소를 나누는 사이 담임 교사들이 나타났다.

“레오, 넬라. 인원 체크 하도록.”

“모두 집합해.”

할린드의 말에 레오가 5반을 통솔했다.

담임 교수가 할린드인 만큼 5반 학생은 모두 빠릿빠릿하게 좌우로 정렬해 섰다.

“전원 모두 집합했습니다.”

“그래.”

5반 앞에 선 할린드는 특유의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학여행 역시 수업의 일환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는 녀석은 없길 바란다.”

“예!”

절도 있게 대답하는 5반을 보며 할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1반부터 차례차례로 워프 게이트에 탑승했다.

“목적지, 엘살베키아와의 게이트가 연결되었습니다.”

“5초 후에 마법이 발동됩니다.”

“5, 4, 3, 2, 1. 텔레포트.”

화악-!

밝은 빛과 동시에 시야가 바뀌었다.

화악-!

바뀐 시야와 동시에 보인 것은 눈보라였다.

“끄아아아아!”

“이게 뭐야아!”

“겁나 추워어어어어어!”

5반 학생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허겁지겁 겨울 외투를 꺼내 입기 시작했다.

“최소한 건물 안 일 줄 알았는데!”

칼이 기겁하며 말했다.

5반이 텔레포트 해온 텔레포트 게이트는 바로 야외였다.

“왜들 그렇게 호들갑이야?”

눈보라를 정면으로 맞으며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레오를 보며 첼시가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레오 오빠, 안 추워?”

“추운데.”

“근데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 있어?”

“호들갑 떨면 쪽팔리잖아.”

“와, 박력.”

첼시가 감탄했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반장은 외모는 엄청 미소년 스타일인데 상남자 같은 구석이 있다니까.”

“맞아! 특히 눈이 날카로워지면 진짜 무서워.”

“근데 그때가 또 뭔가 위험해 보이면서도 제일 멋있지 않아?”

여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우리도 레오처럼 근엄이라도 떨어 볼 걸 그랬나?”

“그래 봤자 우리에게 돌아오는 대답이야 똑같지 뭐.”

“그래 개폼잡는다고 하겠지.”

남학생들이 우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 떠들었으면 정렬해라.”

할린드의 말에 5반이 정렬했다.

레오 역시 천천히 겨울 코트를 입었다.

“다들 예고했던 대로 우리가 온 곳은 엘살베키아의 수도, 베르키아다. 그럼 베르키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볼 녀석 있나?”

틈새 질문에 몇몇 학생이 손을 들었다.

할린드는 가장 먼저 손을 든 첼시에게 턱짓했다.

“베르키아는 성운의 시조인 루나의 제자 중 한 사람! 페어리 나이트 베르키아 에르사르의 이름을 따 세워진 도시입니다! 그리고 베르키아의 후손인 에르사르 가문이 엘살베키아 의회의 수장을 맡고 있습니다!”

“잘했다. 5점 주마.”

첼시가 주먹을 꼭 쥐었다.

“첼시 르왈린의 설명대로다. 엘프 국가는 우리와 달리 군주가 존재하지 않는 공화정이다. 그리고 그 공화정을 구성하는 가문은 모두 명문 가문들이지.”

할린드의 잠시간의 수업을 들으며 레오는 생각했다.

‘그 건방진 내숭쟁이 애송이가 지금은 페어리 나이트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군.’

재앙의 시대 이전까지 엘프는 단 하나의 왕이 다스렸었다.

페어리 나이트는 그런 엘프 왕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던 수호 기사였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역사상 마지막 페어리 나이트가 바로 베르키아였다.

베르키아.

대영웅들이 재앙의 시대를 종결시킨 후 엘프의 부흥을 이끌었던 위인 중 한 사람이었다.

세간에는 루나의 제자라고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루나와 아르온, 그리고 카일의 공동 제자였다.

‘루나와 아르온한테는 실컷 내숭 떨었으면서 나한테서는 건방지게 굴곤 했지.’

전혀 귀엽지 않던 제자를 떠올릴 때였다.

저벅- 저벅-

눈보라 너머로 발소리가 들렸다.

“기다리고 있었네. 할린드 교수.”

그리고 나타난 것은 연한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엘프였다.

“저분은 대체 뭐 하는 분일까? 엄청난 미남분이신데.”

일리아나가 소녀의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테이드가 웩-! 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물론 그러다 옆구리에 일리아나의 주먹을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나이는 상관없어? 최소한 70살은 되어 보이는데.”

일리아나가 픽 웃었다.

“어머? 반장이 질투를 다 하네? 저 얼굴이 어떻게 70살이야?”

다른 학생들도 동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질투를 왜 해. 그리고 엘프는 장수하는 데다가 잘 늙지도 않는다는 건 알잖아?”

엘프의 유년기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청년기와 중년기는 매우 길다.

전체적인 수명은 인간의 평균 수명보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이상 높으며 아무리 늙어도 중년 정도의 외모를 유지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저 남자의 나이가 70 이상이라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인간은 보통 엘프의 외모로 나이를 알아맞히기 힘들다.

“무례를 삼가라! 이분이 누구인지 알고 함부로 떠드느냐!”

함께 왔던 엘프들이 화가 난 목소리로 레오 쪽에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은발의 엘프가 빙긋 웃었다.

“활달한 학생들이군. 할린드 교수가 데려온 학생들은 언제나 군기가 선 모습이었는데 말이야.”

“아직 1학년이라 철이 없습니다.”

“후후후. 어딜 가나 1학년들은 활달한 게 보기 좋지. 자네들도 손님들에게 무례하게 굴지 말게.”

“죄송합니다!”

엘프들이 입을 모아 사과했다.

할린드는 은발의 엘프를 학생들 앞에 세웠다.

“이분의 성함은 룬 에르사르. 엘살베키아의 의회장이시다.”

“헉!”

“의, 의회장님?”

엘살베키아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등장에 5반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모두 차렷.”

넬라의 말에 학생들이 빠릿빠릿하게 섰다.

“룬 의회장님께 인사.”

“안녕하세요! 의회장님.”

“예의 바른 아이들이군. 반갑네. 자네들 같은 영웅 후보생들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군. 그래. 혹시 궁금한 거라도 있나?”

껄껄 웃는 룬을 보며 일리아나가 머뭇머뭇 손을 들었다.

“그래. 거기 학생.”

“저기…… 혹시…… 연세가……?”

“올해로 97세라네.”

우지지직!

“저 얼굴이 97세? 관리를 잘하셨네.”

레오가 감탄했다.

하지만 일리아나는 문화 충격을 받아 멍한 표정을 지은 상태였다.

그때 할린드의 서늘한 시선이 닿았다.

레오는 발끝으로 툭툭- 일리아나의 발을 차자 화들짝 정신 차린 일리아나가 빠릿빠릿한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짓던 룬이 말했다.

“오늘부터 자네들이 머물 숙소로 안내해주겠네. 모두 날 따라오게.”

룬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잠시 걷자 눈보라가 그치고 도시의 풍경이 보였다.

그걸 보고 5반 학생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지나가던 엘프 행인들 역시 신기하다는 듯 5반을 보았다.

“할린드 교수. 첫날 일정은 어떻게 되나?”

“자유시간을 줄 예정입니다.”

“허. 자유시간? 자네가?”

룬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귀여운 1학년 제자들이라 조금은 풀어주는 모양이군.”

이해한다는 듯 말하는 룬을 보며 할린드가 고개를 저었다.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번 일정을 짠 게 저 학생이라서요.”

할린드가 힐끗, 레오를 돌아보았다.

그런 할린드의 시선을 따라 레오를 본 룬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흠. 하긴. 자네는 학생들의 의사를 잘 존중 해주곤 했지. 일정을 짠 게 저 학생인 게 다른 학생들로서는 다행이겠군.”

“글쎄요.”

할린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제가 일정을 짠 게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 일주일 동안 레오가 짜온 일정을 보며 할린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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