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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59화 (59/483)

【59】58

“깜짝이야.”

방문을 닫고 몸을 돌리던 레오는 기척 없이 서 있는 룬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설마 지금까지 에이란과 이야기를 나눈 건가?”

“그런데요.”

“오오오……!”

룬이 감격한 표정을 짓더니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저 아이가 누군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게 얼마 만인지!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할아버지의 얼굴로 감격하는 룬을 보며 레오가 혀를 찼다.

“일이 바쁘신 건 알겠는데 손녀에게도 신경을 많이 쓰시죠.”

“그러고 싶네만 용무가 무척 바빠서 말일세…… 내 아들과 며느리도 사고로 목숨을 잃어 미처 손녀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네.”

씁쓸하게 웃던 룬이 웃었다.

“저 아이에게 자극을 주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자네에게 마음을 많이 연 모양이군. 그래! 자네에게 보답을 하고 싶은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뭐든 해주겠네!”

“……한 나라의 대의회장이 그런 약속을 함부로 해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건 또 뭔가!”

‘이 엘프 은근히 팔불출이네.’

“딱히 원하는 건 없는데요.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젊은이가 욕심이 없군. 게다가 겸손하기까지! 마음에 들어!”

룬이 탁탁! 레오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하지만 이건 할애비로서 자네에게 작은 보답을 해주고 싶은 거라네. 원하는 게 없다면 자네에게 도움이 될 법한 마법 아이템이라도 선물하고 싶군. 한 가지 덧붙이자면 레오 군. 엘프 사회에서는 선물을 거부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네.”

“그럼 감사히 받죠.”

룬은 정말로 즐거운 듯 웃어 보였다.

“우리 가문의 보물고로 가세나.”

‘부잣집 친구네 할아버지한테 선물 받는 기분이군.’

레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룬의 뒤를 따랐다.

레오를 저택 지하실로 안내한 룬은 마법 문을 열고 레오를 안으로 인도했다.

엘프 최고의 명문 가문답게 보물고 내부는 호화로웠다.

“가보급 물건은 선조님들의 영웅의 세계를 여는 열쇠인 만큼 자네에게 줄 수 없지만…… 이런 물건들은 충분히 자네에게 선물할 수 있네.”

룬은 보물고 초입 부분에 비치된 진열장 안의 마법 아이템들을 가리키며 웃었다.

다들 대단한 물건이었다.

레오는 감탄하며 물건들을 차근차근 구경했다.

그러다가 문득 주먹만 한 크기의 푸른 보석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건…….’

“그건 1000년 전 선대 가주님께서 얻은 물건이라네. 요정의 힘이 깃든 보옥이지. 귀한 물건이긴 하지만 용도는 알 수 없네. 그게 마음에 드나?”

룬이 조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상당히 아름답네요.”

“그래. 보석 내부에 있는 요정의 조각이 아름답지.”

룬의 말대로였다.

보석 내부에는 작은 요정이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린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잠이 든 것 같았다.

“이걸로 할게요.”

그 말에 룬이 놀랐다.

“괜찮겠나? 그건 귀한 물건이긴 하지만 그 이상의 용도는…….”

“괜찮아요. 이게 마음에 듭니다.”

“자네가 마음에 든다면야.”

룬은 고개를 끄덕이고 진열장에서 보석함을 꺼내 레오에게 건넸다.

레오는 그걸 받고 보옥을 만지작거렸다.

‘확실해. 조각이 아니야.’

레오가 속으로 웃었다.

‘이건 진짜 요정이야.’

***

에르사르 가문에서 돌아온 레오는 일단 저녁을 먹었다.

‘보옥의 봉인을 풀면 요정과 계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머릿속에 요정과의 계약으로 꽉 차 있었다.

저녁을 다 먹은 후 할린드와 세나가 숙소를 방문하여 전달 사항을 이야기했다.

“전달 사항이다. 모두 알겠지만, 수학여행 역시 교육의 일환이다.”

할린드가 힐끗- 담당 학생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설마 단순히 놀러 왔다는 안일한 생각을 지닌 학생이 우리 반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다.”

그 말에 몇몇 이들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내일부터 기상 시간은 새벽 여섯 시다. 아침에 일어나서 각자 식사 및 개인 정비를 마치고 일곱시 반에 페어리 포레스트에 가서 개인 훈련을 한다.”

“개인 훈련이요?”

“이미 학교에서 충분히 하고 있는 건데.”

몇몇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가 학과 수업에 맞춰 개인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수학여행기간 동안은 너희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중점적으로 보완할 계획이다. 페어리 포레스트에는 몬스터가 있으니 실전 훈련도 가능하겠지.”

“아.”

“그렇다면야.”

“오전 훈련이 끝나면 오후에는 임무 실습을 할 계획이다.”

“임무 실습이요?”

“그래. 베르키아 주민들의 곤란한 점을 해결해주는 역할이지.”

“오오!”

“전달 사항은 이상이다.”

의욕에 불타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할린드는 레오와 넬라를 불렀다.

“애들 관리 잘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할린드 교수님.”

이후 할린드와 세나는 숙소를 나섰다.

“넬라, 미안한데. 나는 조금 피곤해서 오늘 일찍 올라가도 될까?”

“응? 알았어.”

레오는 부반장인 넬라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그때 칼이 따라왔다.

“레오, 일찍 자게?”

“응. 나한테 볼 일 있어?”

레오의 물음에 칼이 씩 웃으며 품에서 슬쩍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짠! 이것 봐라, 엘프의 벌꿀주야.”

칼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곳까지 왔는데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 칼을 보며 레오가 손을 내밀었다.

“안 돼. 그건 내가 맡아 둘게.”

“헉?”

“1, 2학년은 음주가 금지인 거 알잖아?”

“너무 야박한 거 아니야? 어떻게 학생이 교칙을 따박따박 지키고 사냐? 가끔은 이런 일탈도 있어야지.”

울상을 짓는 칼을 보며 레오가 웃었다.

“수학여행 초반이니까 참아. 괜히 초반에 걸리면 무슨 꼴을 당하려고? 이건 마지막 날까지 보관하고 있을 테니 그때 먹자.”

괜히 맡겨 뒀다가 할린드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출발 전에도 몇몇 학생을 지정해 소지품 검사를 했던 할린드다.

그 대상에는 칼도 포함되어 있었다.

레오는 할린드가 신뢰를 보내고 있었기에 소지품 검사에서 피해 갈 수 있었다.

“쳇, 할 수 없지. 그러면 마지막 날에 한잔하기다?”

“알겠어.”

칼이 아쉽다는 얼굴로 레오에게 벌꿀주를 맡겼다.

숙소로 돌아온 레오는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룬에게 받은 보옥을 꺼내 영력을 흘려보냈다.

웅-! 황금색으로 빛나는 보옥을 보며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요정왕의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군.’

에르사르 가문에서 이 봉인을 단순히 요정의 힘이 깃든 보옥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요정왕의 마법.

재앙의 시대 이후 요정왕의 계약자는 자취를 감추었다.

엘프들 역시 요정왕의 마법을 접할 기회가 사라졌고 결국 요정왕의 마법 역시 기록에서 사라진 것이다.

‘요정왕의 마법과 요정의 마법은 다르니까.’

요정의 마법은 요정왕의 마법에 파생된 한 갈래에 불과하다.

‘괜히 요정왕, 피닉스 로드, 엘더 페가수스가 최강의 삼 환수로 불리는 게 아니지.’

게다가 보옥에서 느껴지는 힘은 레오에게 매우 익숙한 이의 힘이었다.

‘실로드의 마력.’

재앙의 시대 당시 요정왕의 후계자였던 요정.

루나의 맹약자로서 레오도 몇 번이나 보았던 요정이다.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요정왕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요정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 요정은 왜 날개도 없이 봉인된 거야?’

레오는 봉인된 요정에게 의문을 느꼈다.

요정왕이 직접 봉인했다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되는 건 역시나 ‘죄인’ 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레오는 더욱 많은 영력을 흘려보냈다.

레오는 정신을 집중해 보옥에 깃든 영력을 움직였다.

마치 자물쇠를 풀듯.

영력을 이용해 실로드의 마법을 풀어나갔다.

요정왕의 마법에 대해 알고 있는 레오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잠시 후.

우웅-!

보옥의 표면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1단계는 풀었는데.’

표면에 떠오른 마법진을 보며 레오가 혀를 내둘렀다.

‘지금의 내 힘으로는 봉인을 푸는 게 힘들 것 같군.’

지식은 있다고 해도 봉인을 풀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혀를 내두르던 레오는 자신의 오른손이 빛나는 걸 보았다.

놀란 눈으로 손등을 보니 그곳에는 요정의 언어로 이루어진 소환진이 떠올랐다.

‘요정왕의 맹약?’

입학시험 당시, 영웅의 세계의 공략 보상으로 얻었던 요정왕의 맹약이 반응했다.

화악-!

보옥이 강력한 황금빛을 발했다.

“큭?”

그 빛에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물러섰다.

잠시 후 빛이 가시가 눈을 뜬 레오가 보옥을 보았다.

까드득-!

마치 알이 부화하듯 보옥의 표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봉인이 풀렸어?”

지잉-!

보옥이 허공에 떴다.

그리고 갈라진 파편이 계속 아래로 흘러내렸다.

퍼석-!

그와 함께 유리구슬이 깨지듯 보옥이 깨졌다.

보옥에 웅크리고 있던 요정이 스르륵- 몸을 폈다.

인간으로 치자면 레오보다 살짝 어린 외모의 요정 소년이 ‘끄으으응-!’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황금색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드디어 아버지께서 봉인을 풀어주신 건가?]

어딘지 모르게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 요정은 레오를 발견하고는 팔짱을 꼈다.

[웬 인간 나부랭이가 이 몸 앞에 있는 거지?]

“넌 뭐야?”

[이 몸?]

레오의 물음에 요정이 픽-! 하고 비웃음을 날렸다.

[훗. 하찮은 인간 나부랭이여. 이 몸의 정체를 알려고 하다니. 무엄하구나. 하지만 봉인에서 풀려나 기분이 좋으니 말해주마. 아마 이 몸의 정체를 알면 까무러칠 거다.]

“정체가 뭔데.”

[이 몸은 위대한 금빛의 요정왕 실로드의 첫 번째 아들이자 요정왕의 후계자! 은빛 요정 키르안님이다!]

근엄한 얼굴로 말한 키르안은 턱을 치켜들었다.

[놀란 눈치로구나. 하긴! 하찮은 인간이니 어쩔 수 없지. 엘프들도 감히 함부로 요정왕의 보지 못하는 시대에 나 같은 요정왕의 후계자의 존안을 보았으니 얼마나 놀…….]

퍽-!

[꾸엑!]

“실로드도 나한테 정중하게 대했는데 그 아들이란 놈이 왜 이렇게 건방져?”

레오가 인상을 쓰며 손바닥으로 파리 잡듯 키르안을 후려쳤다.

처참하게 테이블 위로 추락한 실로드가 발끈하여 고개를 들었다.

[감히 요정왕의 후계자인 이 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거냐! 네놈을 절대 가만두지…….]

퍽-!

[컥!]

이번에는 아까 꺼내둔 교과서로 키르안을 후려갈겼다.

마침 소환학 교과서였다.

“건방진 소리 할래?”

[이! 이! 무례한! 페어리 프린스인 이 몸에게 두 번이나 폭력을 행사……!]

퍽-!

[요정들이 네놈을 용서치 않……!]

퍽-!

[후환이 두렵지 않……!]

퍽-!

[가만두지 않……!]

퍽-! 퍽-! 퍽-! 퍽-!

어느새 키르안은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었다.

“뭔 놈의 애가 이렇게 건방져? 진짜 실로드 아들 맞아?”

레오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기절한 키르안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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