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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60화 (60/483)

【60】59

[핫!]

깊은 새벽.

키르안이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깼냐?”

[아, 악독한 인간!]

키르안이 기겁하며 엉덩이를 질질 끌고 물러섰다.

그런 키르안을 보며 레오가 턱을 괴었다.

“일단 네가 요정왕의 후계자란 건 인정 해주지.”

[뭐, 뭐라고?]

“맹약이 강제로 이행되었더라고.”

레오가 미간을 좁히며 오른쪽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은빛 소환진이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키르안이 경악했다.

[마, 말도 안 돼! 그대가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맹약자라는 건가!]

‘실로드가 말한 맹약자? 역시 그 봉인은 맹약자를 만나는 순간 풀리게 되어 있었군.’

레오의 경우에는 실로드의 의지와 상관없이 완전히 다른 루트로 맹약을 얻었지만 어쨌든 맹약에 의해 계약이 강제 이행된 건 사실이다.

“그렇겠지.”

[믿을 수 없어! 아버지가 하찮은 인간을 맹약자로 삼을 리 없어!]

발끈하여 삿대질을 하던 키르안은 소환학 교과서를 들어 올리는 레오를 보며 허둥지둥 말했다.

[새, 생각해보니 인간과 계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군!]

“어쩌다 실로드에게서 너 같은 아들이 태어난 거야?”

[흥! 인간인 그대가 뭐라고 아버지와 친한 듯 이야기를 하는 거지?]

“너보다 내가 더 실로드에 대해 잘 알걸?”

재앙의 시대 레오와 실로드는 수많은 전장을 함께 헤쳐나갔다.

비록 실로드는 루나의 계약자였지만 레오와의 유대감 역시 못지않았다.

“실로드는 매우 온화한 성격이지. 너처럼 종족 차별주의적 성향도 가지고 있지 않고.”

레오가 턱을 괴었다.

“애초에 너. 큰 죄를 저지르고 실로드에게 봉인된 거잖아?”

키르안이 움찔 몸을 떨었다.

“로열 페어리의 날개는 여섯 장이야. 그 날개를 박탈할 수 있는 건 요정왕 뿐이고. 큰 잘못을 저지르고 페어리 랜드에서 추방당한 게 뻔하지.”

[어, 어떻게 인간인 그대가 그런 사실들을 자세히 알고 있는 건가!]

“말했잖아. 너보다 실로드에 대해서 잘 알 거라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레오를 보며 키르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로 그대가 요정왕의 맹약자란 말인가? 아버지를 직접 만나 봤다고?]

“그래.”

정확하게는 전생에 만났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미, 믿을 수 없군.]

“그래서. 어쩌다가 추방당한 거지?”

[그대가 맹약자인 이상 숨길 필요는 없겠군.]

키르안은 우수에 찬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날도 지금처럼 별이 빛나는 밤이었지.]

키르안은 요정왕의 첫째 아들로서 페어리 랜드의 모든 요정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원하는 건 뭐든지 하며 살던 키르안은 망나니짓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날 이 몸을 시기한 자들은 나를 모함했고 결국 나는 아버지의 미움을 받고 말았지.]

“그러니까. 온갖 사고를 다 치다가 실로드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게 아버지 속 썩이다가 쫓겨난 주제에 어디서 억울하다는 듯 개폼을 잡고 있어?”

[히익?]

소환학 교과서를 휘두르는 레오를 보며 키르안이 기겁하며 도망쳤다.

친구의 성격을 잘 아는 레오로서는 오죽했으면 그 실로드가 아들에게 특단의 조치를 취했나 싶었다.

“쯧. 어쨌든 봉인이 풀렸으니 페어리 랜드로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는 거지? 가서 실로드를 불러 줘.”

[그럴 순 없다.]

“왜?”

[이 몸은 페어리 랜드로 돌아가지 못한다. 여섯 장의 날개를 모두 찾아야만 돌아갈 수 있지.]

“…….”

[아무래도 그대는 다시 아버지와 만나지는 못하는 모양이군. 하긴 인간이 다 그렇지.]

픽- 하고 레오를 깔아 보듯 본 키르안이 팔짱을 꼈다.

[뭐, 인간이라는 점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단 아버지에게 인정받은 인간이니 참도록 하지! 그대에게 이 몸이 날개를 되찾는 걸 도울 영광을 주도록 하겠다! 일단 첫 번째 날개는 과거 우리 요정의 터전이었던 페어리 포레스트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대는 어서 빨리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길 바란다.]

우쭐한 표정을 짓는 키르안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덮쳤다.

‘실로드, 아무래도 네 아들이 나한테 온 건 운명이 모양이다.’

퍽-! 퍽-! 퍽-! 퍽-!

[커헉! 사, 살려……! 커헉!]

‘내가 잘 교육해서 돌려보내 줄게.’

아들 때문에 고생했을 친구를 떠올리며 레오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

“추워!”

다음 날 아침.

페어리 포레스트 초입 부분 공터에 온 5반은 비명을 내질렀다.

겨울 교복으로 갈아입고 최대한 따뜻하게 입었지만 페어리 포레스트의 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심지어 북부 지방 출신 학생조차 추위에 떨었다.

같은 북부라도 엘프들의 영역은 훨씬 더 북쪽에 있는 만큼 인간들이 살아가는 곳보다 추웠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이 오들오들 떠는 와중에 할린드가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가 부족한 점을 이야기해 주겠다.”

세나는 사전에 준비한 종이를 반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그걸 받아든 반 학생들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굳어갔다.

“검술과 마법이 조화롭지 못하다고? 내가?”

일리아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환수의 활용 능력 부족?”

테이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첼시. 넌 뭐가 문제래?”

“바람 마법에 대한 이해 부족. 칼은?”

“엉? 나야 마력 부족이라 이해가 되는데 넌 진짜로 그게 문제점이야?”

첼시의 말에 칼이 깜짝 놀랐다.

대다수 학생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과제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첼시가 손을 들었다.

“교수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 바람 마법은 우리 반을 떠나 학년 최고 수준인데 왜 제 단점이 바람 마법에 대한 이해 부족이죠?”

“그렇게 생각하나?”

“네! 바람 마법에 대해서는 오라버니만큼 이해도가 높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주 속성인 영웅 명가의 사람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첼시뿐만이 아니었다.

할린드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부분은 모두 5반 학생들 개개인이 자신의 ‘장점’ 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다른 학생보다 특출 나다고 자신하는 분야.

그 분야에 기술 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니 자연스럽게 반발심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반응에 할린드가 말했다.

“너희가 너희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겠나?”

“그렇습니다!”

첼시가 살짝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할린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첼시 르왈린. 앞으로.”

갑작스러운 호명에 첼시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레오 플로브. 앞으로.”

이어서 레오가 호명되었다.

“지금부터 두 사람은 바람 마법만 이용해 결투에 임하도록.”

“……!”

“학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면 지금 여기서 네 기술을 증명해봐라.”

“교수님. 아무리 레오 오빠라도 바람 마법만으로 결투를 한다면 제가 이길 게 뻔하잖아요.”

다른 학생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첼시 르왈린이 이긴다면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소리겠지. 그렇게 되면 수학여행 기간 동안 너희 마음대로 자율 시간을 보내도록.”

할린드의 말에 5반 학생 전체가 눈을 부릅떴다.

‘그 말은…….’

‘이 추운 날 아침부터 나와서 이 고생을 안 해도 된다는 소리잖아?’

‘첼시가 반장만 이기면!’

“대신 레오 플로브가 이긴다면 내 말에 군말 없이 따르도록.”

“옙!”

“첼시 파이팅!”

“반장을 뭉개버려!”

“첼시! 너만 믿는다!”

졸지에 반 전체가 적으로 돌아서자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날 응원하는 녀석이 한 명도 없어?”

“미안하다, 레오! 이번만큼은 널 응원할 수 없어!”

칼의 말에 레오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레오가 공터 중앙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그러고 보니 마법으로 너와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

“응, 그러네.”

매주 첼시의 훈련을 도와주며 대련을 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 체술 훈련.

이런 식으로 마법을 이용한 대련을 한 적은 없었다.

‘바람 마법만 사용하는 결투에서 레오 오빠에게 진다고 생각되지 않지만.’

첼시가 힐끗 레오와 할린드를 번갈아 보았다.

‘할린드 교수님이 괜히 그런 말을 꺼내시진 않았을 거야.’

첼시가 자리에서 통통 뛰며 몸을 풀었다.

“아무리 레오가 대단해도 이건 무리지.”

“맞아.”

“할린드 교수님이 무리하신 것 같아.”

모두가 태평한 표정을 지었지만, 칼은 긴장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첼시가 너무 유리해. 하지만 레오는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어 왔어. 비장의 수단이 있을지 몰라.’

“시작해라.”

할린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첼시가 영창을 외웠다.

“윈드 브레이커!”

“윈드 브레이커.”

첼시의 영창과 동시에 레오 역시 영창을 했다.

피할 것이라 예상했던 첼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콰가가각!

바람의 칼날이 서로 맞부딪히며 상쇄되었다.

파앗-!

물론 미처 상쇄시키지 못한 첼시의 윈드 브레이커의 파편이 레오를 덮쳤다.

“윈드 쉴드!”

퍼버버벙-!

강렬한 폭풍의 칼날이 레오가 만든 바람의 방패를 날려 버리고 레오의 몸에 생채기를 냈다.

“……!”

“마,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는 일리아나를 보며 테이드가 당황했다.

“뭐? 왜? 첼시가 유리한 거 아니야?”

“이 바보야! 첼시의 고속 영창은 1학년 중 최고 수준이야! 그런데 레오는 첼시와 똑같은 주문으로 받아쳤다고! 그게 뜻하는 게 뭐겠어!”

‘레오 오빠의 주문 속도가…… 나보다 빠르다는 소리야.’

레오는 최신 마법 트렌드라 할 수 있는 발동 술식에 약점을 보여왔다.

‘레오 오빠라면 그 약점을 빨리 극복했어도 이상할 게 없어. 하지만 바람 마법의 영창 속도가 나보다 빠르다는 게 말이 돼?’

첼시의 고속 영창 능력은 1학년에서 단연 원탑이다.

클로에와 아바드조차도 이 영역에서는 첼시가 앞섰다.

레오의 고속영창 주문 보다 첼시의 고속영창 주문의 위력이 압도적으로 강하기는 했다.

그렇다 해도 속도가 늦었다는 건 첼시에게 있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주문 속도가 전투의 승패를 바꾸지는 않아!’

빨라도 미묘하게 빠를 뿐!

큰 차이는 없다.

‘게다가 난 레오 오빠 보다 훨씬 다채로운 마법을 고속 영창으로 쓸 수 있어!’

“윈드 체인!”

차르륵-!

윈드 브레이커가 일직선상의 적을 쓸어 버리는 마법이라면 윈드 체인은 바람의 사슬을 이용해 적을 제압하는 마법이다.

첼시의 마법이 자신을 노리자 레오가 주문을 완성했다.

“윈드.”

‘역시 레오 오빠는 주문의 다양성은 떨어져!’

회심의 미소를 지은 첼시가 소리쳤다.

“바람 마법만으로는 절대 날 못 이겨!”

그 말에 레오가 웃었다.

“첼시 너랑 처음 만난 날 내가 했던 말 기억나?”

“뭐?”

“바람 마법은 그렇게 쓰는 거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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