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5.
다음 날 아침.
어젯밤 루메른 학생들이 세이룬에 초대되었던 만큼 수업은 루메른의 숙소에서 진행되었다.
숙소에 온 세이룬 학생들의 반응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루메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머? 이곳에서 잔다고요?”
“혹시 루메른 재정이 어려운 게 아닐까?”
“이곳에서 잘 수 있어?”
거부감을 드러내는 그들을 보며 팔짱을 낀 일리아나가 고개를 저었다.
“철없는 도련님 아가씨들이로군.”
“불과 이틀 전에 쟤들이랑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네가 할 말은 아닌…… 커헉?”
태클을 걸던 칼이 일리아나에게 옆구리를 맞고 고꾸라졌다.
그렇게 루메른과 세이룬 학생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필기구를 챙겨 들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그때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응? 뭐가 궁금한데요.”
붙임성 좋은 칼이 웃으며 묻자 세이룬 여학생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여러분은 루메른 1학년 중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뭐, 학생마다 천차만별이지.”
5반 학생들이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세이룬 남학생 한 명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천차만별이라니? 상급반 중급반 하급반을 따로 나누지 않은 건가?”
“네. 성적별로 반 등급을 나누는 세이룬과 달리 루메른은 모든 학생이 평등하게 교육받아요.”
“루메른은 그런 시스템인가. 그럼 조금 실망스럽겠군.”
첼시의 설명에 세이룬 남학생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 첼시의 눈이 꿈틀거렸다.
“뭐가 실망스럽다는 거죠?”
“제가 실언을 했군요.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레이디. 하지만 우리는 세이룬의 상급 1반입니다. 그에 걸맞은 수업을 진행하고 있죠. 모든 학생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준다는 루메른의 이념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과연 우리가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수업인지 의문이 드는군요.”
몇몇 세이룬 학생이 그 남학생에게 눈을 흘겼다.
하지만 대다수 세이룬 학생들은 그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와, 말하는 거 진짜 재수 없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오, 레이디.”
그 모습에 일리아나가 발끈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 너희가 그렇게 잘났으면 한 번 붙어볼래!? 세이룬은 1학년 때부터 결투 평가를 한다지?”
“앉아. 일리아나.”
“알았어. 반장.”
물론 레오의 말에 바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5반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살벌했다.
세이룬 학생은 그런 5반을 보며 오만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평소에 얼마나 대단한 수업을 듣는지 모르겠는데.”
레오가 앞으로 나섰다.
“난 너희 상급 1반이라는 애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는데?”
“루메른의 학년 대표라도 그 발언은 너무 경솔한 거 아닌가요?”
세이룬 학생들이 발끈했다.
레오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어제 그 녀석이랑 붙어 보니 그다지 대단하다고 생각되지 않았거든.”
레오의 말에 말을 함부로 했던 세이룬 남학생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물들었다.
어제 레오와 붙었다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남학생이었다.
“그리고 경솔한 발언은 너희가 먼저 한 거 아닌가?”
레오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세이룬 학생들을 보자 그들이 흠칫했다.
그렇게 묘한 긴장감이 흐를 때였다.
“흐아아! 추워. 응? 무슨 일이죠?”
문을 열고 루니아가 나타났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루니아를 보며 루카가 쓴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말다툼이 조금 있었어.”
“루, 루카! 말다툼이라니!”
“그냥 의견 충돌일 뿐이야.”
몇몇 학생이 허둥지둥 루카를 말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말해 볼래요, 루카?”
상냥한 목소리로 묻는 루니아를 보며 루카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줬다.
“흐응~”
눈을 게슴츠레 뜬 루니아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루메른 학생분들. 우리 쪽에서 말실수한 것 같네요. 제가 나중에 잘 이야기할 테니 너그러이 이해해 줄 수 없을까요?”
다소곳한 목소리로 말하는 루니아를 보며 5반 남학생들이 헤벌쭉한 미소를 지었다.
“아뇨! 그럴 수도 있죠!”
“루니아 양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하하하! 우리 기분 전혀 안 나쁩니다!”
5반 여학생 몇몇이 찌릿- 그들을 노려보았다.
칼이 혀를 내둘렀다.
“어제 그렇게 살벌한 기세를 내뿜더니 같은 사람 맞나?”
“그러게나 말이다.”
레오는 조용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우등생 연기 어렵지 않게 하는 루니아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루니아는 상급 1반 학생들을 보며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여러분!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건 좋지만 학교의 대단함은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얼굴까지 예쁜데 성격도 상냥하기까지 해!”
“와! 저게 이상적인 엘프지!”
“우리 학교 1학년 중에는 저런 미녀가 왜 없냐?”
완전히 콩깍지가 쓰인 반 친구들이 루니아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는 모습에 일리아나가 고개를 저었다.
“어휴, 등신들. 그저 예쁜 여자라면 아주 사족을 못 쓰네.”
“일리아나, 너도 입만 다물고 있으면…….”
“앙? 내 입이 뭐?”
“살려주세요! 누님! 안 까불게요!”
칼이 괜히 깐족거리다 일리아나에게 멱살을 잡히는 사이.
루니아의 얼굴을 본 세이룬 상급 1반 학우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루메른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루니아의 얼굴은 살벌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된 가운데.
레오가 자기 옆을 지나가는 루니아에게 작게 말했다.
“내숭이 대단한데?”
“시끄러워.”
눈을 흘긴 루니아가 세이룬 학생들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할린드와 헤르디움이 숙소에 들어왔다.
헤르디움이 한쪽에 서서 참관하는 가운데 할린드가 수업을 시작했다.
“오전에는 루메른의 전공 수업 강의를 하겠다. 기사, 마법, 소환. 전공과목대로 각자 모이도록.”
그 말에 루메른 학생들이 전공대로 흩어졌다.
하지만 세이룬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쭈뼛쭈뼛했다.
“루메른 선생님.”
“루메른에서 선생이라는 직함은 없다, 교수로 부르도록.”
할린드의 말에 손을 들었던 루카가 멈칫하더니 말했다.
“루메른 교수님. 세이룬 학생들은 전공이 없는데요.”
“알고 있다. 세이룬 학생은 각자 주력으로 삼는 이능 쪽을 선택하면 된다.”
그제야 세이룬 학생들이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세이룬도 비슷비슷하게 나뉘었다.
기사와 마법사가 가장 많았고 소환은 가장 적었다.
‘할린드 교수님 혼자서 수업을 진행하시려는 건가?’
‘아무리 할린드 교수님이라도 전공 수업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할 텐데.’
“첼시, 넬라, 테이드.”
할린드의 호명에 세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업은 너희가 진행하도록.”
“예?”
“저, 저희가요?”
“아무리 그래도 교수님 저희가 수업을 하는 건…….”
“배운 내용을 복습한다고 생각해라. 너희는 각 학과에서 우수한 학생들이다. 너희가 루메른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설명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고 본다만?”
그 말에도 넬라와 테이드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첼시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섰다.
영웅 명가 특유의 당당함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학생들의 수업이라. 재미있군요.’
헤르디움이 눈을 빛냈다.
‘학년 대표라는 저 학생이 나오지 않은 건 조금 의아하지만…… 어디 루메른의 각 학과 우등생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감상해 볼까요?’
헤르디움이 흥미를 보이는 가운데 교류회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수업이 진행될수록 세이룬 학생들은 충격을 받았다.
“으음! 저, 저런 접근이 가능하구나!”
첼시의 수업을 듣던 남학생이 놀라며 필기를 했다.
“으윽! 이, 이런 건 세이룬에서도…… 아니! 좀 더 심도 깊을지도…….”
넬라의 수업을 듣던 여학생도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아하! 루메른에서는 소환진 해석을 이렇게 하는군요?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도 운용이 가능할까요?”
“네, 아. 그, 그렇죠.”
소환학 쪽에서도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루니아 역시 스펀지처럼 루메른의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할린드가 피식 웃었다.
‘다른 종족의 시선으로 접근하면 새로운 방식에 눈을 뜨게 되지.’
세이룬 뿐만이 아니라 루메른도 마찬가지였다.
‘각 학교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마찰도 있겠지만…… 그걸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 반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지.’
헤르디움 역시 눈을 빛냈다.
‘과연. 세 학생 모두 우수하군. 상급반이 되어도 전혀 아쉬울 게 없는 수준이야. 특히 마법사 쪽 여학생이 뛰어나군. 과연 르왈린의 직계라는 건가. 이번 루메른의 세대. 만만치 않겠어.’
세이룬 학생 중에는 자존심 때문에 애써 부정하는 이도 있었지만 헤르디움은 어린 학생들과는 달랐다.
상급 1반을 담당한다는 것 자체가 세이룬 선생 중에서도 매우 우수한 선생이라는 걸 의미한다.
단순히 자존심만 앞세워 다른 학교 학생의 역량을 폄하할 인물이라면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훗, 경쟁자가 우수하면 승리하는 보람도 큰 법. 난 우리 학생들을 믿습니다!’
턱을 쓰다듬으며 자화자찬하는 사이 수업이 끝났다.
“점심시간을 먹고 이번에는 세이룬의 수업을 듣도록 하죠.”
점심은 세이룬의 숙소에서 하게 되었다.
세이룬 학생들은 심각한 얼굴로 식사를 했다.
수업 내용에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루메른의 수업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상당했다.
몇몇 학생은 배운 것을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루메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대다수 세이룬 학생은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렇게 오후 세이룬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루메른 학생 여러분! 오전의 수업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께 세이룬의 수업을 선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루메른의 수업 방식이 선택과 집중이라면 세이룬의 수업 방식은 밸런스였다.
오러, 마법, 소환.
이 세 개의 학문이 단 하나의 수업에서 진행되었다.
잘못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수업이 될 수 있었지만, 선생으로서 헤르디움의 역량은 압도적이었다.
기사학과 학생들은 마법과 소환에 대한 이해를 높여 대응 방법에 대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학과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신 놀라움에 탄성을 내지르는 루메른 학생들을 보며 헤르디움도 신이 났다.
‘마치 신학기 때 우리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분이군요!’
배우는 쪽이 열정이 넘치면 가르치는 쪽도 기분이 좋아졌다.
‘새로운 지식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루메른 학생들의 장점이군요. 이건 우리 세이룬 학생들이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수업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헤르디움은 제자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점심 직후라 집중력이 떨어지고 졸릴 법도 한데도 루메른 학생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수업을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후아아암- 이크.”
자신도 모르게 하품을 하던 레오가 다급히 입을 막았다.
하지만 올 클래스인 레오 입장에서는 수업이 지루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아는 내용,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헤르디움 보다 더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을지 몰랐다.
‘저, 저저저저저저! 저놈이! 감히이이이이!’
모두가 집중하는 가운데 단 한 사람만 지루함을 내비친다면 바로 눈에 확 띌 수밖에 없었다.
루메른의 학년 대표에게 내심 기대를 하고 있던 헤르디움은 상당한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저런 학생이 루메른의 학년 대표란 말인가! 다른 열정적인 학생들이 있는데!’
“이제 별의 마법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래! 별의 마법에 대해 배우면서도 네놈이 지루한 표정을 짓나 보자!’
루메른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강의였다.
실제로 마법학과 학생뿐 아니라 다른 학과 학생들 역시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열정적인 모습에 헤르디움은 힐링이 되는 걸 느끼고 칠판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건 세이룬의 1학년들이 배우는 모든 과정입니다.”
탁-! 타악! 스으으윽-!
분필 소리가 차분하게 울렸다.
별의 마법 술식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을 본 레오가 미간을 좁혔다.
‘뭐야, 왜 틀린 해석으로 마법진을 그린 거야? 저러면 마법이 발동될 턱이 있나?’
루나가 특히나 즐겨 사용하던 마법이었기에 레오로서는 칠판에 그려진 해석 방식이 거슬렸다.
마법진을 다 그린 헤르디움이 뒤돌아서자 레오가 손을 들었다.
그걸 본 헤르디움이 속으로 훗-! 하고 웃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별의 마법에는 관심을 가질 수 밖…….’
“선생님. 해석이 틀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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