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1
“아까 조사할 게 있어서 숙소를 빠져나오셨다고 했는데 레오님과 루니아 양은 무얼 조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건가요?”
에이란의 물음에 레오가 대답했다.
“페어리 포레스트에서 일어난 이변에 대해 조사하려고.”
“이 밤에요? 선생님들께 따로 임무를 받으신 건가요?”
“그건 아니야. 난 이 녀석이 멋대로 움직이는 걸 보고 따라온 거야.”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레오 군이라고 부르던 루니아는 에이란 앞에서는 내숭을 하지 않기로 한 모양인지 레오를 편하게 불렀다.
“그럼 저도 도울게요! 여긴 대대로 조상님들이 지켜온 땅이니까요!”
에이란이 주먹을 꼭 쥐었다.
엘살베키아 대의회장의 손녀이자 마지막 페어리 나이트인 베르키아의 후손인 만큼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 에이란을 보며 루니아가 레오에게 다가가 작게 소곤거렸다.
“에이란 앞에서는 괜히 확실하지도 않은 말 꺼내지 마.”
라우타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안 레오가 피식 웃었다.
“알았어.”
그렇게 말한 레오가 페어리 포레스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밤이 되니까 저주의 힘이 강해지는군.’
낮에서는 숲 중심부에서만 느껴지던 저주의 기운이 지금은 입구 부근까지 느껴졌다.
물론 매우 은밀한 힘이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숲 중심에 다가가게 된다면 루니아와 에이란 역시 저주의 힘을 느낄 게 분명했다.
“준비를 조금 하고 가야겠군.”
“응? 무슨 준비?”
의아한 표정을 짓는 루니아를 보며 레오가 손바닥을 펼쳤다.
“맹약자의 이름으로 부르노니.”
화르륵-!
레오의 손바닥 위에 불꽃의 소환진이 생성되었다.
잠시 후 소환진을 통해 붉은색 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아하게 날갯짓한 피오라는 나름 근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삐약-!
물론 입에서 나온 울음에 힘겹게 그러모았던 근엄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피오라가 자신의 자태를 레오에게 뽐내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나 어때?’ 라고 묻는 듯했지만 정작 레오는 시큰둥했다.
우아하게 날갯짓하든 근엄한 분위기를 뿌리든 레오의 눈에 피오라는 그저 빨간 병아리였다.
그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피오라는 불만스럽게 삐약거렸다.
덕분에 더 병아리처럼 보였다.
“귀여운 환수네요. 저건 무슨 환수인가요, 루니아 양.”
귀여운 피오라의 외모에 에이란이 감탄하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이 없자 옆을 보았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루니아를 보고 당황했다.
“루니아 양?”
“피이오라아!”
삐약-?
엄청난 기세로 달려오는 루니아를 보며 기겁한 피오라가 다급히 레오의 머리 위로 피신했다.
“이렇게 아름답게 태어나다니! 피오라! 나야! 나! 루니아 언니야! 기억나지? 그치?”
양손을 맞잡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루니아를 보며 피오라가 경계 어린 반응을 보였고 그 모습에 루니아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알일 때 일을 얘가 기억하겠냐?”
혀를 찬 레오가 품에서 쿠키 몇 조각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삐약-
피오라가 레오의 손바닥 위로 날아와 부리로 우아하게 쿠키의 초콜릿만 쪼아 먹었다.
초콜릿을 골라 먹은 후 남은 쿠키를 쳐서 손바닥 위에서 떨어트리는 피오라를 보며 레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날이 갈수록 편식이 심해지네.”
초콜릿만 쪼아 먹은 피오라는 더 달라는 듯 삐약거렸다.
“나도 간식 있어!”
루니아가 급히 품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그러자 냉큼 루니아의 손바닥으로 날아가 초콜릿을 쪼아먹기 시작했다.
“하웅!”
남은 손으로 볼을 감싼 피오라가 말했다.
“이 고운 자태! 관록이 느껴지는 움직임! 아아! 아름다워!”
‘아무리 봐도 영락없는 병아리인데 유라 선생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요즘 소환사들은 눈이 삐었나?’
피오라를 보고 헤롱거리는 루니아를 보며 에이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레오님. 이 환수는 뭔가요?”
“피닉스야.”
“피, 피닉스? 레오님! 피닉스의 계약자였나요?”
“어쩌다 보니.”
놀라는 에이란을 보며 빙긋 웃어준 레오가 또 다른 환수를 소환했다.
“맹약자의 이름으로 부르노니.”
하지만 소환진이 생성되었음에도 환수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 나오냐?”
레오의 물음에 소환진에서 무언가 툭 튀어나왔다.
매우 작은 쪽지에는 [추워]라고 쓰여 있었다.
레오는 망설이지 않고 소환진에 손을 집어넣어 키르안을 강제로 끄집어냈다.
[이 몸은 페어리 프린스야! 이런 무례! 용납이 될…… 푸헙!]
정신 못 차리고 헛소리를 하던 키르안을 눈밭에 팽개쳐지고 레오가 잘근잘근 짓밟혔다.
“요정? 레오님! 요정과도 계약을 하셨나요?”
“어쩌다 보니.”
“대, 대단해요!”
‘1학년이 피닉스와 요정의 맹약자라니!’
에이란의 눈에 선망의 감정이 차올랐다.
“요정이라고?”
피오라를 보며 꺅! 꺅! 거리던 루니아가 키르안 앞에 쪼그려 앉았다.
가까스로 레오에게서 탈출한 키르안은 그런 루니아를 보며 훗- 하고 웃었다.
[뭐야? 이 몸의 자태를 보고 넋을 잃은 거야?]
“……변종 요정이야? 날개가 없네.”
[변종이라니! 이 몸에게 그런 무례한 발언을!]
“레오. 요정도 피닉스에 버금가는 최고위 환수이니 계약해서 나쁠것 없지만. 그래도 이런 변종이랑 계약은 조금 아니지 않아? 우리 피오라의 품위에 손상이 갈지 몰라.”
[웃기지 마! 그 병아리가 오히려 내 품위를 손상을 시킬 거라고!]
“뭐래니?”
삐약- 삐약-
‘왕자병에 팔불출에 어린애에. 개판이군.’
예상치 못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셋을 보며 한숨을 쉰 레오가 말했다.
“그만 떠들고 다들 준비해. 이제 이동할 거니까.”
그 말에 피오라와 키르안이 레오의 어깨에 자리 잡았다.
루니아는 활동하기 편하게 붉은색 장발을 포니테일로 묶었고 에이란은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아공간에서 검과 방패를 꺼냈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거야?”
머리를 정리한 루니아의 물음에 레오가 숲을 노려보았다.
“숲의 최중심부.”
***
삐약! 삐약!
[욱! 이게 무슨 냄새야!]
날개로 부리 끝을 막은 피오라와 손으로 코를 막은 키르안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걸 보며 에이란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요정님. 왜 그러시나요?”
에이란의 호칭이 마음에 드는지 키르안이 우쭐한 반응을 보였다.
[예의가 바른 엘프군. 내가 왜 이러냐고? 지금 이 숲에 퍼진 악취 때문이지.]
키르안이 툴툴거렸다.
[과거 페어리 랜드가 있었던 이곳이 이렇게까지 죽음의 기운에 물들다니. 말세야, 말세.]
걸음을 옮기던 레오가 멈추었다.
“왜 멈춰?”
루니아의 물음에 레오가 말했다.
“준비해.”
푸확-! 푸화하학-!
땅속에서 하얀 뼈들이 치솟기 시작했다.
딱- 딱- 딱-
갑자기 등장하는 스켈레톤을 보며 루니와 에이란이 급히 전투 준비를 했다.
“전부 스켈레톤 나이트군.”
“뭐?”
루니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데스나이트급은 아니지만, 스켈레톤 나이트도 엄연히 상급 언데드다.
‘그런데 이 열 마리가 전부 스켈레톤 나이트라고?’
당황하던 루니아가 갑옷을 입고 중무장한 스켈레톤들을 보며 긴장했다.
일반적인 스켈레톤들과 달리 스켈레톤 나이트들은 일사불란하게 진영을 짰다.
고오오-!
철컥! 철컥!
암흑 기운을 내뿜으며 거리를 좁혀 오는 스켈레톤 나이트들을 보며 루니아가 혀를 차고 주문을 외울 때였다.
“여긴 저한테 맡겨 주세요.”
에이란이 앞으로 나섰다.
그걸 보고 루니아가 멈칫했다.
“레오님과 루니아 양은 힘을 보존해야 하잖아요?”
빙긋 웃은 에이란이 검과 작은 방패를 고쳐 쥐고 마력을 일으켰다.
에이란의 몸이 은빛으로 빛나더니 이내 갑옷의 모양으로 변했다.
레오의 눈을 크게 떠졌다.
그런 레오를 보고 루니아가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저게 바로 에르사르 가문에 내려오는 오러와 마력을 융합시킨 마법!”
“아니무스의 갑옷.”
“어? 알아?”
“유명한 기술이니까.”
다름 아닌 베르키아가 만들어낸 기술이다.
최전방에서 수많은 적을 막아내기 위해 카일의 도움으로 만든 베르키아만의 고유 마법.
그 마법이 전승되고 전승되어 지금까지 이어 온 것이다.
빛의 갑옷으로 무장한 에이란이 망설이지 않고 돌격했다.
암흑 기운으로 무장한 스켈레톤의 검이 에이란을 베어내기 위해 휘둘러졌다.
콰가각-!
스켈레톤의 공격이 허무하게 튕겨져 나갔다.
쿵! 콰드득-!
방패로 스켈레톤 나이트의 머리를 후려친 에이란이 빠르게 검을 뒤로 휘둘렀다.
그 모습은 마치 베르키아를 연상시켰다.
순식간에 스켈레톤 나이트를 쓰러트린 에이란이 다가오자 루니아가 웃었다.
“역시 에이란! 대단해.”
루니아의 칭찬에 에이란이 수줍게 웃었다.
그러고는 레오를 보며 손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레오님이 보시기에는 어, 어땠나요?”
그 물음에 레오가 빙긋 웃었다.
“마치 베르키아 같았어.”
에이란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마치 베르키아님을 직접 본 것처럼 말하네.”
“이야기 속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잖아.”
“여, 영광이에요.”
레오의 칭찬에 에이란이 뺨을 물들였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에이란을 보며 레오가 웃었다.
푸드득-!
그때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았다.
새의 눈이 붉은색으로 빛났다.
레오가 바닥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튕겼다.
퍽-! 파삭-!
“……!”
“……!”
작은 돌멩이는 그대로 새의 머리를 맞췄고 새는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사역마?”
“적이 아무래도 우리의 존재를 안 것 같네. 더 많은 언데드들이 습격해 올 거야.”
루니아도 에이란도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계속 가자.”
***
“아무래도 꼬리를 밟힌 모양이군.”
“뭐라고?”
후드를 뒤집어쓴 데스나이트, 카르고르의 말에 소환진을 그리던 라우타가 얼굴을 구겼다.
“그게 무슨 소리야?”
“침입자가 나타났다. 영웅 후보생인 것 같군.”
그 말에 라우타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 기사단이 처리하면 되잖아. 그걸 위해 이곳에 온 거 아니었어?”
“흐흐.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애송이. 위대한 사령왕의 기사단을 하인 취급하는 거냐?”
불쾌감을 드러내는 카르고르를 보며 라우타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위대한 사령왕이 나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잊은 모양이군!”
라우타가 손을 들어 올려 검은색 반지를 보여주었다.
“에레보스의 힘이 담긴 마신기지! 나를 영웅으로 이끌기 위해 너희의 우두머리가 나에게 준 물건이다.”
후드 속에서 카르고르의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알았으면 잔말 말고 침입자들이나 처리해.”
“흐.”
낮게 웃음을 터트린 카르고르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걸 보고 라우타가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냄새 나는 언데드 같으니라고.”
그렇게 말한 그는 소환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두고 봐. 곧 더러운 타르타로스놈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끝이다!’
지난 방학 당시.
잠재 능력을 끌어낸다는 반지를 손에 넣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그것이 마신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절망했다.
‘나는 끝장났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건 기회였어!’
스스로를 전설 속의 전율스러운 군단장, 사령왕 헬 카이저라 밝힌 의문의 마족은 직접 라우타에게 마법을 전수했다.
바로 지금은 소실되고 사라진 마법 술식이었다.
라우타는 이를 영웅이 되기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보다 빛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놈들을 이용하는 거야!’
라우타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이 너머에…… 시조의 힘만 손에 넣는다면! 그 누구도 이 나를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