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77.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칼의 중얼거림에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잖아. 하루아침 만에 언데드와 관련된 사건이 마무리되고 합동 수업을 계속한다는 게.”
“그럴 수도 있지.”
“게다가 말이야. 그날 마침 너랑 저쪽 세이룬 아가씨들이 하루 동안 근신을 당했었거든. 이거 냄새가 난단 말이지?”
히죽히죽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칼을 보며 레오가 속으로 웃었다.
‘눈치는 빠르군.’
“칼 학생. 이 마법 술식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발표해 보겠습니까?”
“허걱!”
그러다 헤르디움의 지적을 받고 급히 교과서를 보면서 일어났다.
이미 며칠째 진행된 합동 수업이었기에 양측 학생 모두 수업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이 마법 술식을 발동할 때는 오망성을 사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흠. 나쁘지 않군요.”
헤르디움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엘프 학생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노트에 필기를 했다.
합동 수업은 확실히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었다.
‘우리 학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바로 저 학생이지만.’
뿌듯한 얼굴로 세이룬 학생을 바라보던 헤르디움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레오의 존재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세이룬 학생들에게 충격이었다.
모두들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세이룬 학생들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별의 마법에 대한 이해도에서 레오를 따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레오 학생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배우려는 학생들도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 학생도 있지. 하지만 세상이 넓다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가치가 있는 일이야.’
고개를 끄덕인 헤르디움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루메른의 1학년들이 부럽군.’
단순히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학생이기 때문이 아니다.
‘뛰어난 학생은 얼마든지 있어. 하지만 주변에 성장이 될만한 자극을 주는 학생은…… 몹시 드물지.’
수업을 계속 진행하며 입맛을 다시던 헤르디움이 교과서를 덮었다.
“수업은 이것으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합동 수업에서 얻어가는 것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헤르디움의 말을 끝으로 학생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저마다 수업에 관한 것을 토론하기 위해 모이는 가운데 헤르디움이 말했다.
“레오 학생.”
“예.”
“잠시 나와 이야기 좀 하겠습니까?”
레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헤르디움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수업 마지막 날 헤르디움 선생님이 왜 레오를 보자고 한 거지?”
“별의 마법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거겠지. 레오 오빠를 특히 예뻐하셨잖아?”
첫날에는 험악한 분위기였지만 레오가 루나의 마법을 해석해준 뒤로 헤르디움은 레오에게 큰 호의를 보냈다.
“뭐, 어쨌든.”
칼이 호기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응? 어디가.”
“오늘 저녁 뒤풀이에 세이룬 애들도 초대할까 하고.”
씩- 웃는 칼이 루니아에게 다가갔다.
필기도구를 정리하던 루니아는 칼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오늘 저녁에 우리 숙소에서 뒤풀이 할 건데. 관심 있는 세이룬 애들도 부를까 해서 놀러 올래?”
“뒤풀이?”
“그래. 이렇게 만나서 같이 수업한 것도 기념인데. 마지막 날은 서로 편하게 놀자.”
“저, 저도 가도 될까요?”
“오우! 에이란. 당연하지.”
“애들한테 공지해 둘게.”
“오케이!”
칼이 씩- 웃었다.
칼이 자리로 돌아오자 첼시가 말했다.
“아무튼 넉살 좋은 건 알아줘야 해.”
“훗. 새침데기 귀족님들이랑은 다른 점이지.”
***
“짧은 시간이었지만 레오 학생과의 수업은 즐거웠습니다. 선생 이전에 별의 마법을 공부하는 마법사로서 나 역시 인상 깊은 수업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잘 지도해주신 덕분이죠.”
사실 레오에게 크게 도움이 안 되는 수업이었지만 다른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레오의 말을 듣고 빙긋 웃던 헤르디움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헤르디움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래서 묻는 건데 레오 학생.”
“예.”
“조상 중에 엘프 없습니까?”
“…….”
“몇 대 거슬러 올라가면 엘프라던가. 아니면 가문 내력에 엘프와 연관이 있다던가.”
“없는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혹시 세이룬으로 전학 올 생각 없습니까?”
“…….”
느닷없는 스카우트 제의에 레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헤르디움 선생님. 이러면 곤란합니다.”
둘의 대화를 들은 할린드가 한숨을 쉬며 다가와 헤르디움을 끌고 갔다.
할린드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와중에 헤르디움은 말했다.
“레오 학생! 세이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관심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아니면 교환 학생이라도!”
공허한 메아리를 들으며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
그날 저녁.
루메른 학생들이 뒤풀이 준비가 한창일 때 숙소로 세이룬 학생들이 찾아왔다.
모든 학생이 온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찾아왔다.
이들 모두가 루메른의 수업에 관심을 크게 가진 학생이었다.
“생각보다 많네.”
“사람 많으면 즐겁고 좋지! 첼시! 올라가서 남은 간식 다 꺼내오자!”
“응.”
넬라의 말에 일리아나가 쾌활하게 말했다.
첼시와 일리아나가 과자를 가지러 간 사이 세이룬 학생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 레오님이 안 보이네요?”
“레오라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어요.”
조심스럽게 묻는 에이란을 보며 넬라가 웃으며 말했다.
“레, 레오님이 직접 해준 요리……!”
에이란이 얼굴을 붉히며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했다.
“뭐라도 도와줄까요, 넬라 양?”
루니아의 물음에 넬라가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손님에게 일을 거들게 할 순 없죠. 그냥 즐겁게 즐겨주세요.”
5반 제일의 미녀인 넬라의 웃음에 몇몇 세이룬 남학생들이 얼굴을 붉혔다.
“흐흐- 어딜 가든 남자들은 똑같군.”
“넬라는 엘프들 기준으로 봐도 굉장한 미녀잖아.”
칼이 음흉하게 웃었고 테이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잠시 후 일리아나와 첼시가 방에서 남은 간식을 모두 가져왔다.
엘프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들의 과자에 엘프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에이란 언니. 에이란 언니. 이리 좀 와 보세요.”
같은 취미를 공유한 덕분에 금새 친해진 첼시가 웃으며 에이란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요. 첼시 양.”
“이것 좀 보세요.”
첼시는 빵 봉지를 에이란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왜요?”
“이걸 이렇게 뜯고 안을 보면.”
첼시는 빵 봉지를 열고 안에서 작은 카드를 꺼냈다.
“짠!”
“헉! 빵 안에 왜 카드가 있죠?”
“요즘 저희 쪽에서 유행하는 거예요. 유명한 영웅님의 카드가 이렇게 빵이랑 같이 들어 있어요. 어디 보자…… 오! 엘프 영웅이네요?”
“슬리아나의 바람, 레기니아님이군요! 신기해요!”
“이런 식으로 랜덤으로 들어있어요. 대영웅님들 카드도 있어요.”
에이란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컬렉터인 에이란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아이템이었다.
다른 엘프들도 거기에 흥미를 보였다.
모두가 영웅을 꿈꾸는 만큼 영웅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관심이 깊었다.
“이거 잘하면 돈 좀 되겠는데.”
칼이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빛냈다.
그러는 사이 레오가 주방에서 나왔다.
“뭐야, 다들 와 있었네.”
레오는 주방에 있는 접시들을 마법으로 날랐다.
그렇게 음식이 나왔다.
“자 다들 컵에 음료 따르자!”
일리아나가 쾌활하게 소리치자 학생들이 컵에 음료를 따랐다.
“자, 그럼 우리 자랑스러운 학년 대표님들. 학교를 대표해서 한마디씩 해주실까?”
그 말에 루니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헴.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앞으로 이런 식으로 서로 경쟁하며 교류하며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으면 해요.”
“모범생다운 아주 좋은 말이군! 다음 반장!”
루니아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인 일리아나가 레오를 가리켰다.
“다들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놀 때는 즐겁게 놀고 해.”
“우리 반장은 은근히 적당주의라니까.”
일리아나가 히죽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자! 그럼! 이 만남을 기념하며! 건배!”
“건배!”
잔을 들어 올리며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서먹서먹했지만 루메른과 세이룬 학생 모두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으하하하! 술 마실 사람?”
그때 칼이 위층에서 술병들을 가지고 내려왔다.
“할린드 교수님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오늘 할린드 교수님은 대의회장님이랑 약속 때문에 못 오신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해뒀지.”
“역시 칼! 이럴 때 제일 믿음직하다니까!”
일탈을 저지르는 루메른 학생들을 보며 루니아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무서운 교수님이 담임인데 잘도 저런 시도를 하네.”
“우리 학교 애들은 바보거든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 첼시가 성큼성큼 다가갔다.
“너희! 학생이 술이 뭐야! 술이! 세이룬 학생들 보는데 쪽팔리지도 않아? 당장 안 치워?”
첼시의 말에 야유가 쏟아졌다.
“우우!”
“담임의 앞잡이!”
첼시가 빙긋 웃으며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으악!”
“야! 피해!”
기겁하며 흩어지려 할 때 칼이 나섰다.
“첼시. 이런 날 작은 일탈 정도는 괜찮잖아?”
“절대 안 돼.”
“괜찮아 어린애인 너한테 마시라고 강요는 안 할 테니까. 우하하하하.”
가장 싫어하는 어린애라는 말에 첼시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술병 하나를 뺏은 첼시는 뚜껑을 열고 술 주둥이 부분을 냅다 칼의 입에 넣었다.
“커헉? 커헉?”
“그러면 어른인 네가 다 마시셔.”
칼이 괴로워하는 와중에 레오가 나섰다.
“첼시. 오늘 정도는 괜찮잖아? 이것도 추억이고.”
레오의 말에 첼시가 한숨을 푹 쉬었다.
“레오 오빠가 그렇게 말한다면.”
“만약 사고 치면 내가 잘 처리할게.”
레오의 웃음에 술을 환영하던 학생들은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자제하면서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술 몇 병이 뒤풀이에 나타났다.
세이룬 학생 중 몇몇도 루니아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더니 이내 술 몇 잔을 홀짝였다.
레오도 혼자 앉아 술을 홀짝이며 피식 웃었다.
“저…… 그, 레오님. 여기. 안주와 같이 드세요.”
에이란이 술만 마시는 레오에게 안주로 먹을만한 걸 가져왔다.
“고마워.”
레오가 빙긋 웃자 에이란이 얼굴을 붉혔다.
그런 레오를 보며 머뭇거리던 에이란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레오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응? 뭐가?”
“저 레오님을 만나서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에이란이 뺨을 물들이며 말했다.
“페어리 포레스트에서 레오님이 선조님 같다고 하셔서…… 그 말이 용기가 되었어요. 저…… 세이룬에 다시 돌아갈래요.”
“그래? 다행이다.”
레오가 빙긋 웃었다.
그런 레오를 보며 에이란이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사실 다시 학교에 갈 용기가 생긴 이유는 하나의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레오님의 영웅담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어.’
불가능에 서슴없이 도전하던 레오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에서만 봐 왔던 대영웅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 모습에 매료된 에이란은 생각했다.
‘레오님의 뒤를 쫓고 싶어.’
선망은 동경으로, 동경은 목표로.
“저! 학교 교류회라던가 교환학생 시즌 때 꼭 루메른으로 갈게요! 그때 되면 또 같이 공부해요!”
“그래, 그때까지 학교생활 잘하고 있어.”
의욕을 보이는 에이란을 보며 피식 웃은 레오가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에이란이 얼굴을 감싸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루니아가 다가왔다.
“흐응. 잘 어울리고 있네.”
“넌 어때?”
“이런 뒤풀이도 나쁘지 않네.”
행사는 무조건 화려한 세이룬 학생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준비하고 즐기는 이런 뒤풀이가 신선했다.
“요 며칠. 유익한 시간이었어. 루메른 학생들이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도 알았고 얼마나 뛰어난지도 알았어.”
레오보다 주황빛이 도는 붉은색 눈에 호승심이 일었다.
“그리고 루메른에 너 같은 녀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말이야.”
페어리 포레스트에 있었던 일로 깨달았다.
또래라고는 하지만 레오가 자신을 뛰어넘는 실력자란 걸.
솔직히 다른 학교라고 해도 같은 학년에서 절대로 실력으로 뒤진다고 생각한 적 없었던 루니아이기에 레오의 존재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좌절할 그녀가 아니었다.
“난 절대 안 질 거야. 실력을 쌓아 올려서 널 뛰어넘겠어!”
“기대하고 있을게.”
“그래, 긴장하고 있어.”
빙긋, 아름답게 웃던 루니아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말이야.”
“응?”
“합동 수업 첫날 네가 해석한 시조님의 마법…… 대체 어떤 마법이야?”
“헤르디움 선생님이 이야기 안 해 주셨어?”
“돌아가면 전 학년 공동 수업에서 발표하실 거라고만 이야기해 주셨어.”
귀한 시조의 마법인 만큼 모든 이들이 보는 자리에서 발표하겠다는 게 헤르디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루니아로서는 너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법을 해석한 본인에게 물으려는 것이었다.
레오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우웅-!
따스한 빛과 함께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어?”
활기찬 생화를 보며 루니아가 당황했다.
“아? 어, 그러니까. 이건…….”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루니아가 살짝 수줍게 웃으며 꽃을 받았다.
“갑자기 꽃은 왜 주는 거야?”
“꽃을 피우는 마법이야.”
“응?”
“내가 해석한 마법은 꽃을 피우는 마법이라고.”
“…….”
“혹시 내가 꽃을 줬다고 착각했어? 귀엽네.”
루니아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게 졌다.
“이 자식이! 너 나 지금 놀리냐!”
눈에 불똥이 튄 루니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레오의 멱살을 잡고 악악거리는 루니아를 보며 루메른과 세이룬 학생이 기겁했다.
“싸, 싸움 났다!”
“말려! 말려!”
베르키아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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