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79.
수학여행의 흥분과 피로가 채 가시지도 않은 다음 날.
루메른의 학과 일정은 어김없이 진행되었다.
대부분 1학년이 분위기에 적응 못 하고 붕 뜬 상태에서 수업을 받았다.
그런 가운데 점심 전 마지막 수업이 끝날 무렵.
“모두 주목, 전달할 사항이 있다.”
역사 교수 드레이곤 교수가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학생들이 집중하자 드레이곤 교수가 입을 열었다.
“오늘 오후 수업 일정이 변경되었다. 전공 합동 수업이 진행되니 점심 식사 후 영웅의 탑 대강당에 모이도록, 예외는 없다.”
드레이곤 교수가 나가고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전공 합동 수업? 이때까지 전공 수업이 합동으로 진행된 적은 없었잖아?”
칼이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학과 이벤트의 냄새가 나지 않냐?”
씩 웃는 칼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그렇겠지. 우리 학교는 학생들을 가만히 안 내버려 두잖아.”‘
“레오 오빠! 오늘은 영웅의 탑 주변 카페에서 점심 먹자!”
“그럴까?”
“첼시! 아바드가 너 찾아왔어.”
“응?”
교실 뒷문 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첼시가 아바드에게 다가갔다.
잠시 후 돌아온 첼시가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미안, 아무래도 점심은 오라버니랑 먹어야 할 것 같아.”
“알았어. 남매끼리 오붓한 시간 잘 보내.”
“점심 맛있게 먹어.”
첼시가 아바드와 점심을 먹으러 가자 칼이 말했다.
“자, 그럼 우리도 영웅의 탑 쪽으로 이동할까? 그쪽은 선배님들이 많아 은근히 부담스러운데 말이야.”
두 사람이 교실동을 떠나 영웅의 탑으로 향했다.
루메른 학교부지에는 학생식당 외에도 다양한 카페와 매점, 식당이 즐비해 있었다.
물론 학생식당과 달리 돈을 내야 하지만 맛없는 곳이 없고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어 학생들이 자주 애용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우리 학교에 입점하려면 엄청 치열하다더라고.”
칼이 영웅의 탑 주변 식당들을 보며 말했다.
“레오, 오늘은 남부 요리 어때?”
“그러자.”
“좋았어! 사실은 영웅의 탑 주변에 엄청 맛있는 남부 레스토랑이 있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거든!”
레오는 칼을 따라 유명하다는 맛집으로 향했다.
과연 칼의 말대로 손님으로 가득했다.
마침 한 자리가 있었기에 레오와 칼은 그곳으로 가려고 했다.
“실례.”
“엇?”
그때 한 무리의 학생들이 새치기해 냉큼 자리에 앉았다.
“저기요. 우리가 먼저 앉으려고 했는데요?”
“응?”
레오의 말에 학생들이 눈을 크게 뜨더니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얘가 지금 1학년 주제에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 우리한테 대들겠다는 거? 귀엽네.”
“잠깐, 하얀 머리에 붉은색 눈동자…… 이 녀석 레오 플로브잖아?”
새치기를 한 건 다름 아닌 소환학과 2학년들이었다.
다른 학과에 비해 기수 간의 서열 문화가 강한 소환학과 2학년들은 소환학 수업을 들으면서 선배들에게 얼굴도 비추지 않는 레오를 아니꼽게 보고 있었다.
물론 선배들이 어떻게 보든 눈 하나 까딱할 레오가 아니었다.
“소문대로 건방지네.”
“뭐? 학년 대표면 뭐라도 되는 줄 아냐?”
험악한 분위기를 내뿜는 2학년들을 보며 칼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아닙니다. 저희 그냥 다른 데 가서 먹을게요. 가자, 레오.”
“어쨌든 이래서 촌놈들이랑 평민 출신이 안 된다니까? 예의가 없어. 예의가.”
“하하.”
칼이 넉살 좋은 웃음을 지었다.
“레오, 그냥 가자. 괜히 선배들이랑 트러블 있어 봤자 좋은 거 없…….”
툭-!
“억?”
콰당-!
소환학과 2학년이 칼의 발을 걸었다.
누가 봐도 고의로 넘어트린 그는 테이블 위에 있던 물 주전자로 칼의 머리에 물을 따랐다.
“너도 처신 잘해라. 친구처럼 될 수 있으니까.”
“야, 그건 심했다. 다른 학과 앤데.”
“마법 학과 애들이 저런 이름도 없는 평민 챙기겠냐? 어차피 1학기도 못 버티고 자퇴 권고 당할 애인데 뭐.”
자신들 끼리 킬킬 웃었다.
“실례.”
레오가 서빙을 멈추고 머뭇거리는 종업원을 향해 미안한 미소를 지은 후 종업원이 가지고 있는 쟁반 위의 스프를 집어 들었다.
퍼억-!
“커억?”
그리고 망설임 없이 뜨거운 스프 그릇을 칼을 넘어트렸던 2학년 얼굴에 처박아 버렸다.
“어, 죄송해요. 손이 미끄러졌네요.”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말한 레오가 2학년 얼굴에 스프 그릇을 문댔다.
“끄아아악!”
졸지에 뜨거운 스프를 끼얹게 된 2학년이 얼굴을 부여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너 미쳤냐!”
“감히 1학년이 하극상을 해?”
다른 2학년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하극상이 딱히 교칙 위반은 아닐 텐데.”
레오는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순간 레오의 기세에 앞도 된 2학년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내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너 따라 나와. 감히 2학년에게 시비를 건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였다.
“그쯤 해 둬.”
모두의 시선이 레스토랑 구석으로 향했다.
레오에게 시비를 걸었던 2학년 학생들이 허둥지둥 차렷 자세를 취했다.
“우, 울타 선배님!”
그는 창백한 피부에 연한 금발의 창백한 5학년 남학생이었다.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그는 2학년들을 보며 말했다.
“시비는 너희들이 먼저 걸었잖아? 이 이상 소란을 피우면 학과 선배로서 지켜볼 수 없어. 그러니 그쯤에서 그만두면 안 될까?”
“헙! 예, 옙!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미안했다. 이쯤 하자.”
태세를 전환한 소환학과 2학년들이 급히 사과하고 허둥지둥 레스토랑을 떠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울타는 칼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워줬다.
“소환학과를 대표해서 사과하마. 미안하다.”
“아닙니다.”
칼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울타는 마지막으로 레오를 보았다.
“끼어들어서 미안하게 됐다. 아무리 못났어도 후배들이 1학년에게 묵사발 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플 것 같아서 참견했어.”
의미심장하게 웃어 준 울타는 그대로 식당을 빠져나갔다.
“누구야?”
“울타 레그디션 몰라? 5학년 차석이잖아? 5년 내내 리스 제르딩거와 라이벌이었던 남자! 임무를 나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언제 돌아왔데?”
칼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레오가 피식 웃었다.
‘과연. 확실히 5학년 차석이라면 페가수스의 계약자인 게 납득이 되네.’
울타는 피닉스, 요정과 더불어 3대 환수라 불리는 페가수스의 계약자였다.
***
점심을 먹고 영웅의 탑 대강당으로 향하던 레오에게 셀리아가 다가왔다.
“레오.”
“안녕. 셀리아. 수학여행 잘 다녀왔어?”
“물론이지.”
레오의 물음에 셀리아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훗- 하고 웃었다.
“엘프 영역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도적놈들을 쓸어 버리고 왔지.”
가슴을 활짝 펴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셀리아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뭐, 너희 5반에 비하면 소소한 편이었지만.”
수학여행에서 세이룬과 합동 수업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5반은 1학년 전체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가서 세이룬 1학년 학년 대표도 만났다면서? 어땠어?”
세이룬의 1학년 대표인 루니아가 피닉스의 힘을 다루는 룬드아 가문의 사람이라는 걸 아는 셀리아는 큰 호기심을 보였다.
“우악스러웠어.”
칼이 옆에서 킬킬 웃으며 대답했다.
“엘프가 우악스러워? 이미지가 연상이 안 되네?”
셀리아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수학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대강당으로 조교들이 들어왔다.
“자! 여러분! 학과별로 집합하세요.”
조교들의 말에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반별로 모이는 게 아니라 학과별로 모이는 건가요?”
“예. 오늘부터 학과대항전 준비가 시작됩니다.”
“……!”
“……!”
1학년들의 안색이 돌변했다.
학과대항전!
루메른 매년 학년별로 최고의 학과를 뽑는다.
학과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학년을 가리지 않고 학과대항전은 언제나 치열한 양상을 보였다.
“레오! 이리 와!”
셀리아가 레오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허! 잠깐! 레오를 왜 데려가는 거야?”
칼이 다급히 레오를 붙잡았다.
“왜 데려가긴? 레오는 기사학과 거든?”
“레오가 왜 기사학과야? 엄밀히 따지면 마법학과에 가깝지! 레오가 이번에 수학여행에서 성운의 시조의 마법을 해석한 거 너도 들었잖아?”
“알게 뭐야?”
그때 냉큼 첼시가 달려왔다.
“왜 레오 오빠를 마음대로 데려가!”
“레오의 외가가 어딘지는 알지?”
“그렇다고 레오 오빠가 제르딩거인 건 아니잖아?”
셀리아와 첼시 사이에서 오랜만에 불똥이 튀었다.
그러는 와중에 모두의 이목이 레오에게로 집중되었다.
‘레오 플로브…….’
‘기사학, 마법학, 소환학 모두에서 학과 탑급의 실력을 발휘하는 전력…….’
‘어떻게든 끌어들여야 해!’
학과 사이에 레오의 거취를 두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레오 도령은 누가 봐도 기사학과잖아요?”
“그건 기사학과 주장일 뿐이잖아.”
첸 시아가 웃으며 말하자 클로에가 고개를 저었다.
“레오 플로브. 내 라이벌이라면 라이벌답게 기사학과에 합류하도록.”
“레오 오빠가 언제부터 댁 라이벌이 됐는데?”
듀란이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하자 첼시가 콧방귀를 꼈다.
“다 필요 없고 레오는 나랑 같은 학과거든?”
“기사학과에는 이미 너를 포함해서 첸 시아와 듀란까지 입학 수석이 세 명씩이나 있잖아? 학년 대표까지 합류시키는 건 불공평하다고 보는데?”
“입학 수석이 두 명이나 있는 마법 학과에서 할 말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워레든! 당신도 뭐라 말 좀 하세요!”
셀리아와 아바드, 엘리자가 관심 없다는 듯 방관하고 있는 워레든을 보며 신경질을 부렸다.
“레오! 선택해! 어느 학과로 갈지!”
결국 셀리아가 레오에게 선택권을 맡겼다.
그 이야기를 들은 레오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해결법은 간단하네.”
***
1학년들이 학과별로 집합이 끝냈다.
대강당에 소란스러움이 이는 와중에 단상 위로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깐, 토루아 선배님 아니야?”
“저건 자무아 선배님?”
“아아! 울타 선배님이시다!”
5학년 학과별 최고들.
그들이야말로 영웅에 근접한 진정한 의미의 영웅 후보생들이었다.
평소에 보기 힘든 거물들의 등장에 1학년 전체가 흥분감에 휩싸였다.
그러는 와중에 토루아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지금 1학년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기사학과, 마법학과, 소환학과, 그리고 공허하게 혼자서 넓은 구역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얘, 레오 군. 넌 왜 혼자 따돌림당하고 있니?”
“정정해주세요, 토루아 선배님.”
레오가 피식 웃었다.
“학년 전체를 따돌리고 있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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