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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81화 (81/483)

【81】80.

세 교수가 영웅의 탑 복도를 걷고 있었다.

바로 1학년들의 학과 담당 교수인 아인, 렌, 유라 교수였다.

루메른에서도 마이페이스가 강하기로 유명한 세 교수는 보기 드물게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학과대항전과 관련된 공지를 하기 위해 전 1학년을 소집시켰다.

만약 다른 학년들이었다면 이렇게 긴장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1학년은 달랐다.

바로 어떤 학과를 선택하든 각 학과의 전력 균형을 깨트려 버릴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레오 플로브,’

전대미문의 올 클래스이면서도 각 클래스 능력치가 최상급인 학과대항전 최대의 변수.

말 그대로 레오가 어떤 학과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번 학과대항전의 판도가 뒤집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 교수는 레오가 자신들의 학과를 고를 것이라 확신했다.

‘레오 플로브는 제르딩거 가문과 연관 깊다. 당연히 기사학과를 고르겠지.’

레오가 사용하는 불꽃 오러를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아인은 확신했다.

‘레오 학생은 압도적인 마법 재능을 가진 학생. 이번에 수학여행에서도 성운의 시조가 남긴 마법을 해석했지. 당연히 레오 학생이 올 곳은 마법 학과뿐이지.’

레오의 마법적 소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렌은 레오가 마법학과를 선택하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피닉스랑 계약한 애인데 걔가 가긴 어딜 가.’

유라는 가소롭다는 듯 두 교수를 바라보았다.

마음 안 맞기로 유명한 세 교수가 보기 드물게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세 교수의 얼굴은 강당에 도착하자마자 일그러졌다.

“레오 학생은 왜 혼자 앉아있지?”

“자기 혼자서 학년 전체를 따돌리고 있데요.”

렌의 물음에 대답한 건 토루아였다.

“모두 공지는 들었겠지? 오늘은 학과대항전을 위해 이렇게 너희들을 불렀다.”

그 말에 1학년 전체의 집중도가 단숨에 올라갔다.

“그 전에 여기 있는 너희 선배들이 이 자리에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겠다. 우선 자무아부터.”

아인의 말에 자무아가 성큼 나섰다.

“반갑다! 후배들! 리 자무아라고 한다!”

우렁차게 소리친 리 자무아는 씩- 웃었다.

“너희 중 듀얼 클래스도 있을 거라는 거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앉은 순간 너희는…….”

자무아의 거대한 덩치에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기사다! 듀얼 클래스인 학생들도 주력으로 삼을 클래스를 기사로 선택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몇몇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순수하게 자신의 육체로 온갖 고난과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자를 의미한다! 스스로 단련하는 것이야말로 기사의 근본! 단련을 게을리하는 자는 기사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한 달간 너희와 함께 수련을 할 것이다! 잘 부탁한다!”

그 말을 듣고 기사학과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자무아 선배와 수련할 수 있다고? 대박이잖아?”

기사학과 학생들이 흥분된 반응을 보였다.

존경하는 선배 중 한 사람과 한 달 동안 수련한다고 하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자무아의 소개가 끝나고 나선 것은 토루아였다.

“안녕, 1학년들. 토루아 얀이라고 해. 난 거짓말을 싫어하니 솔직하게 말할게.”

토루아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혀를 빼물며 말했다.

“너희는 마법사로서 형편없다고 생각해.”

느닷없는 말에 학생들이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가 중간고사 기간까지 제출했던 마법 논문들을 모두 읽어 봤어. 그중에는 흥미로운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 판에 박힌 내용들이었어”

토루아의 물음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저희가 제출한 모든 논문을 읽어 보셨다고 했는데 그러면 ‘불꽃 속성의 마나를 빛 속성으로 전환 시키는 효율적인 방법에 대한 고찰’ 이라는 논문도 기억하시나요?”

“응. 총 17페이지로 이루어졌던 논문이지? 열에너지를 이용해 출력을 높이자는 흔한 내용이었지.”

“…….”

즉답이 나오자 학생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후에도 몇 번의 질문이 오갔지만 토루아는 태연하게 논문에 대한 대답을 완벽하게 해냈다.

그 많은 논문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법학과 학생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토루아가 입을 열었다.

“마법은 탐구 창의력이 필요한 학문이지. 자신만의 개성이 확실해야 성장할 수 있지만 요즘 시대에는 그게 힘들어. 선대 마법사 영웅들이 쌓아 올린 강력한 마법을 계승하기만 하면 되거든. 근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해. 마법사 영웅들의 것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완전히 재해석해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지.”

토루아는 빙긋 웃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나는 너희들의 멘토로서 너희 마법적 가치관을 확장 시켜줄 거야.”

“토루아 선배님에게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건가요?”

“난 가르치지는 않아. 그냥 보는 눈높이를 바꿔줄 뿐이지.”

마법학과 학생들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어쨌든 토루아의 능력을 본 이후이기에 굉장히 분위기가 올라가 있었다.

토루아 이후에 나선 것은 울타였다.

“후배들아. 너희는 소환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뭐라고 생각하니? 앞에 있는 두 사람이 이야기해 볼래?”

울타의 물음에 엘리자가 턱을 치켜들었다.

“환수를 부릴 수 있는 카리스마라고 생각해요.”

“틀렸어.”

자존심 강한 엘리자의 눈이 꿈틀거렸다.

“압도적인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레든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틀렸어.”

이번에도 고개를 저으며 두 사람의 말을 부정한 울타는 양팔을 벌렸다.

“소환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 그건 바로 사랑이다.”

“…….”

“…….”

상상도 못 한 말에 엘리자와 워레든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소환사는 정령과 환수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야말로 포용이 극대화된 감정!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인가!”

마치 연극배우라도 된 것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사랑에 대해 일장 연설하는 울타를 지켜보던 토루아가 말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쟨 너무 괴짜인 것 같아.”

“우리 기수 넘버 투 괴짜인 네가 평범해 보일 정도지.”

“근육뇌.”

“마법 바보.”

자무아와 토루아가 유치하게 서로를 디스하는 사이 유라가 한숨을 쉬며 나섰다.

“이 녀석의 말을 해석해주자면 정령과 환수의 진실 된 모습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야.”

“아~”

소환학과 학생들이 가까스로 이해했다.

“그래! 후배들아! 나는 한 달 동안 너희에게 사랑에 대해 가르칠 거다!”

울타의 외침에 소환학과 학생들이 기묘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그럼 여기서 문제.”

유라 교수가 히죽 웃으며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왜 너희 선배들이 멘토로서 한 달간 너희의 수업을 도와주는 걸까? 정답을 맞히는 학과에 점수를 주겠어.”

느닷없이 시작된 학과대항전에 학생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거기, 마법학과 녀석.”

“학과대항전을 위해서요!”

“땡. 다음!”

“후배들의 능력 향상을 위해서입니다!”

“틀렸어!”

무수한 대답이 쏟아졌다.

그중에는 학과 탑들의 신중한 대답도 있었지만 정답은 없었다.

더 이상 손을 드는 학생이 없어졌을 때쯤 레오가 손을 들었다.

“레오. 대답해 봐.”

대다수 학생이 기대하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어지간한 대답은 다 나왔기에 레오라도 별수 있겠냐는 마음이기 때문이었다.

“영웅의 세계 때문입니다.”

교수들과 5학년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선배님들께서 강조하신 기사의 단련, 마법사의 탐구와 창의성, 소환사의 포용력. 이 세 가지는 모두 각 클래스의 근본입니다.”

레오는 덤덤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루메른 학생들은 히어로 레코드를 통해 선대 영웅들의 힘을 계승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1학년 모두가 레오의 말에 집중했다.

“힘을 계승했을 때 그 힘에 휘둘리지 않도록 선배님들께서 노하우를 전수해주기 위해 수업을 도와주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답이야.”

유라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렌이 물었다.

“아인 선배님, 저렇게 완벽한 대답을 하는 1학년 본 적 있습니까?”

“없다.”

아인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영웅의 힘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의 대답이군.’

“레오 플로브의 말대로다. 이 세 사람은 던전 공략의 최전선에 있지. 그만큼 다양한 영웅의 세계를 공략했고 얻은 공략 보상 역시 상당해.”

학생들이 눈을 빛냈다.

히어로 레코드를 통한 힘의 계승!

대다수 학생이 오랫동안 꿈꾸는 것이었다.

루메른 입학생들은 이걸 위해 루메른에 입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영웅의 힘을 다루는 노하우는 너희에게 꼭 필요하다. 이들은 앞으로 한 달간 너희에게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해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교수님. 학과대항전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학과대항전은 매년 종목이 달랐다.

체육 대회 형식으로 다양한 종목에서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평가하기도 하고 공성전과 수성전을 치르는 경우도 있었고 영웅의 세계 공략이 종목으로 정해지기도 했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우리도 아직 들은 바가 없다.”

아인이 한숨을 쉬며 대답하자 학생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1학년뿐만 아니라 5학년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 안정해졌습니까?”

“사랑이 부족하군.”

“사랑 타령 그만해. 이 변태야.”

자무아의 물음에 울타가 애석한 표정을 지었고 토우라는 가차 없이 태클을 걸었다.

“교장 선생님이 오늘 발표하신다고 했다. 곧 오실 거야.”

아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강당 문이 열리며 교장, 칼리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답지 않은 강대한 기백을 내뿜는 칼리안을 보며 1학년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반갑다, 1학년 애송이들.”

단상 위에 선 칼리안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보고 1학년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교장 선생님은 언제봐도 긴장된다니까.”

칼의 중얼거림에 클로에는 일전에 면담했던 칼리안을 떠올렸다.

‘그때는 옆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너희 학과대항전 종목 선정 때문에 꽤 고심했지.”

피식 웃은 칼리안이 1학년들을 쓱 훑어보았다.

마지막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레오였다.

그런 레오를 향해 칼리안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올해 1학년 학과대항전은 다른 기수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학과대항전이 아니라 개인전이 될 수도 있지.”

1학년들이 웅성거렸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교수들 역시 당황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칼리안이 탕-! 하고 단상을 내려쳤다.

“올해 1학년의 학과대항전 종목은…… 배틀 로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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