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84.
갑작스러운 알비의 등장에 학생들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이 양탄자에서 내려온 토우라가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알비 교수님.”
“뭐 하는 짓이지?”
“귀여운 후배들이 하늘 같은 선배인 저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어요.”
‘심부름 값 주고 부려 먹고 있었잖아요!’
1학년들이 속으로 소리쳤다.
물론 당당하게 입 밖으로 낼 용기를 가진 학생은 없었다.
알비는 무표정한 얼굴로 엉망이 된 실습장을 보더니 한 차례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끝에서 퍼져 나온 마력이 토루아의 명령에 의해 엉망이 된 실습장이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되돌렸다.
학생들이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물 역행 마법!’
사물의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으로 시간 침범 개념이 담긴 고난도 마법이다.
그걸 영창도 없이 사용하다니.
“모두 집합.”
알비의 말에 1학년들이 빠릿빠릿하게 집합했다.
토루아는 칼이 건네준 파라솔 밑에 앉았다.
수업을 도와주러 온 입장이기에 딱히 저기에 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비 제르온이라고 한다.”
알비의 짤막한 소개에 학생들이 긴장했다.
‘왜 오신 거지? 지나갈 일이 있어 들리신건가?’
‘혹시 새로운 마법을 여기서 시험해보기 위해 여기에 온 건가? 그럼 엄청 행운인데.’
보통 교수가 강의장에 나타나면 수업을 예상지만 1학년 중 그 누구도 알비가 수업을 해줄 것이라 예상하는 학생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비는 수업을 하지 않는 교수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교수가 된 것은 어디까지나 루메른 교수가 가지는 특권 때문일 뿐.
타르타로스를 토벌하러 다니기에 학교에 있는 경우가 드문 교수였다.
실제로 루메른 교수가 된 지 오래되었음에도 강의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두가 영웅으로 이름 높은 알비의 마법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눈을 반짝일 때였다.
“오늘부터 렌 교수의 요청으로 너희 수업을 돕게 되었다.”
“……?”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학생들은 알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파라솔 밑에 있던 토루아 얀이 달려왔다.
“잠깐만요. 알비 교수님이 강의를 하신다고요?”
“문제 있나? 토루아 얀.”
“문제는 없는 데 저를 포함해 후배들이 몇 번이고 특별 강의를 요청했을 때는 안 해주셨잖아요!”
알비는 인간의 몸으로 요정의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다.
인간 중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희귀한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마법학과생이라면 누구나 알비의 강의를 듣고 싶어 했다.
토루아도 1학년 때부터 꾸준히 건의 사항으로 알비의 강의를 요청했었다.
정규 강의가 아니라면 특별 강의라도 해달라고 했다.
그것이 받아들이지 않자 매일같이 마법학과실에 들락거리다 쫓겨난 적도 있었다.
심지어 부학생회장이 된 이후에는 학생회 권력까지 이용하려다가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했음에도 들을 수 없었던 강의를 1학년들에게 해준단다.
“바빴다.”
“…….”
짤막한 말 한마디에 토루아가 주먹을 꾹 쥐었다.
그때 마법 실습장으로 렌 교수와 안나 부교수가 들어왔다.
“선배, 와 계셨군요.”
렌이 알비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학생들은 새삼 알비의 위상을 느꼈다.
젊음에도 불구하고 렌은 루메른 마법학과 뿐만 아니라 마법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마법사였다.
마법 연구에만 관심이 있어 히어로 레코드에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실력은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전투 마법사들 못지않은 실력자였다.
렌이 저런 식으로 깍듯이 대하는 교수는 알비를 제외하고는 1학년 1반의 세드젠과 5반의 할린드 밖에 없었다.
“모두들 주목하도록! 여기 알비 교수님은 내가 너희 1학년을 위해 특별히 초청한 분이다! 모두 박수로 맞이해주길 바란다!”
렌의 외침에 1학년들에게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토루아, 넌 왜 1학년들 사이에 앉아서 박수를 치고 있지? 앞으로 나와라. 넌 도우미로 이번 수업에 참여한 거잖아.”
“응애. 나 새내기 1학년. 알비 교수님 특별 강의 들을래요.”
“안나 부교수, 당장 끌어내.”
렌은 예상했다는 듯 가차 없이 말했고 안나는 익숙하다는 듯 토루아에게 다가갔다.
“토루아 양. 어서 나와요.”
“싫어요! 나 들을래! 알비 교수님 강의 들을래!”
토루아가 버둥거렸지만 끝내 안나에 의해 앞으로 끌려 나왔다.
뿌루퉁한 표정을 짓는 토루아를 무시하며 렌이 말했다.
“오늘 알비 선배님을 특별 초청한 이유는 마법 전투 때문이다.”
그 말에 학생들이 서로를 보며 웅성거렸다.
“학과대항전의 종목은 배틀로얄. 쉽게 말하면 서바이벌 생존이다. 그리고 마법사는 그러한 분야에서 가장 불리한 클래스라고 할 수 있지.”
렌 교수의 말에 마법학과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첼시 같은 배틀 메이지가 아닌 이상 다른 클래스와의 일 대 일 대결에서 마법사가 불리한 건 사실이다.
“알비 선배님은 혼자서 수많은 전선을 넘어오신 분. 내가 아는 한 마법 전투에 관해서 선배님보다 뛰어난 분은 없다. 알비 선배님의 조언은 학과대항전을 앞둔 너희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렌의 말에 학생들이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뭐가 됐든 알비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건 행운이지.”
칼이 씩 웃으며 말하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기대돼.”
“토루아 역시 지금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던전 공략자인 만큼 너희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1학년들의 눈이 빛났다.
말 그대로 오늘부터 호화스러운 실습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렌이 물러서자 알비가 앞으로 나섰다.
“너희는 마법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지?”
알비의 물음에 학생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이번 기회에 영웅이자 명성 높은 제르온 가문의 사람인 알비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기, 대답해 보도록.”
“2반의 에미오 루찬입니다!”
중간고사에서 마법학과 성적 3위를 차지한 에미오 루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력입니다!”
“틀렸다. 다음. 거기.”
“어?”
의욕 있게 소리쳤던 에미오가 당황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첼시가 대답했다.
“영창 속도요!”
“틀렸다. 다음.”
학생들이 각자 중요시 여기는 부분을 발표했다.
하지만 알비가 생각한 정답은 없는 듯 맞추는 이는 없었다.
무슨 대답이든 오답처리가 되자 나중에는 1학년 모두가 쉽게 손을 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러자 토루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내려!”
물론 렌 교수에 의해 강제로 손을 내리게 되었다.
모두가 대답을 못 하고 있을 때 레오가 손을 들었다.
“대답해 봐라, 레오 플로브.”
“기동성이요.”
“정답이다.”
“쳇. 내가 먼저 손들었는데.”
“1학년들이랑 경쟁하려고 하지 마! 넌 오늘 가르치는 입장이라고!”
토루아가 꽁알거리자 렌 교수가 이마를 부여잡았다.
젊은 카리스마 교사 렌에게도 토루아는 골치 아픈 학생이었다.
“교수님. 이해가 안 갑니다! 물론 기동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마법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마법에서 기동성 문제는 극복된 분야지 않습니까!”
‘마법학과도 아닌 놈에게 밀릴까 보냐!’
에미오가 발끈하고 나섰다.
“기동성 문제의 극복이라면 윙 마법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윙 마법.
10년 전 발명 된 공중 부양 마법이다.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플라이 마법보다 훨씬 간단하게 익힐 수 있고 더욱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일종의 상위호환 격인 마법이었다.
가장 큰 특징은 사물에 비행 능력을 부여한다는 것.
범용성이 뛰어난 플라이 마법도 사물에 비행 능력을 부여하여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윙 마법과 비교하면 효율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윙 마법은 마법사들의 상대적인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기동성 극복에 큰 기여를 해서 세기의 마법으로 평가 받는 마법이기도 했다.
에미오의 말에 알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름이 뭐지?”
“에미오 루체입니다.”
“에미오 루체, 앞으로 나오도록.”
에미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너희 중 윙 마법 전용 마도구가 없는 학생 있나?”
그 물음에 학생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대 마법사에게 윙 마법은 필수적으로 익히는 마법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 보니 하늘을 날기 위한 윙 마법 전용 마도구는 필수였다.
물론 학과 필수 준비 품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주 사용하는 만큼 꼭 필요한 물건이다.
마법학과생으로 이게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의 예상과 달리 두 학생이 손을 들었다.
레오와 클로에였다.
클로에는 무안한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반면 레오는 당당했다.
“레오 플로브, 앞으로.”
레오가 앞으로 나서자 에미오가 적대감을 드러냈다.
‘내가 학교생활을 잘못했나?’
그걸 본 레오가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너희 둘은 지금부터 공중전을 시작한다.”
알비가 저 멀리 보이는 영웅의 탑 꼭대기를 가리켰다.
“먼저 목표지점을 찍고 돌아오는 쪽이 승리다. 레오 플로브. 넌 이걸 사용하도록.”
알비가 아공간에서 빗자루를 꺼냈다.
“왜 하필 빗자루죠?”
“내가 자주 쓰는 마도구다.”
어이없다는 듯 묻는 레오를 보며 알비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학생들이 부럽다는 얼굴로 레오를 보았다.
겉으로는 볼품없는 빗자루이지만 알비가 쓰는 만큼 대단한 마도구일게 분명했다.
레오를 부럽다는 얼굴로 바라보던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공중 기동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서 뜬금없이 왜 시합이지?’
하지만 빗자루를 본 몇몇 학생의 안색이 돌변했다.
“말도 안 돼. 너무 불공평하잖아?”
“왜?”
“저건 공중 전용 마도구가 아니야! 그냥 청소용 마도구 빗자루라고!”
“뭐?”
“재미있겠네요.”
토루아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안나가 한숨을 쉬었다.
“재미있긴 하지만 과연 경쟁이 될지.”
레오와 에미오가 출발선에 섰다.
안나가 손을 들어 올렸다.
“두 학생 모두 준비됐죠?”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나가 손을 내렸다.
“출발!”
“나의 수족이 되어라, 윙!”
순식간에 영창을 끝낸 에미오가 보드처럼 생긴 마도구 위에 타고 순식간에 가속했다.
‘알비 교수가 레오에게 어떤 마도구를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최고급 중의 최고급 마도구야! 게다가 난 매일매일 윙 마법을 연습했어!’
에미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레오 녀석은 한 번도 연습하러 온 적 없지! 이 대결은 나의 승리야!’
바람을 맞으며 에미오가 승리를 확신할 때였다.
화악-!
“……!”
순간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옆에 따라붙었다.
“뭐야?”
다름 아닌 레오였다.
“미안 먼저 간다!”
“이 자식이! 가게 내버려 둘까 보냐!”
눈에서 불똥이 튄 에미오의 지팡이를 꺼냈다.
파지직-!
“라이트닝 볼트!”
등 뒤에서 날아오는 마법에 레오가 급히 방향을 틀어 피했다.
“뭐야? 왜 공격해?”
“지금 이건 시합이 아니라 공중전이야! 상대를 공격해도 상관없어!”
레오를 앞지른 에미오가 비웃음을 날렸다.
그 말에 레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호오? 후회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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