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86.
“으헉! 힘들다!”
마법 수업이 끝나고 칼이 앞으로 엎어졌다.
“으아! 플라이 마법 수업 장난 아니야! 진짜! 막노동 급이라고!”
“그게 뭐가 힘들다고 그래?”
첼시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하자 칼이 한숨을 푹 쉬었다.
“에효. 단번에 시험 통과해서 알비 교수님에게 간 네가 우리 고충을 어떻게 알겠어? 토루아 선배 장난 아니야! 막 우리를 잡아먹을 듯이 갈궈!”
첼시는 플라이 마법 테스트를 프리 패스로 통과한 네 명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 네 명은 레오를 포함해 클로에, 아바드, 첼시였다.
“내가 도와줄까?”
“뭐?”
“플라이 마법 잘 쓸 수 있게 내가 연습 도와줄 수 있는데.”
“진짜?”
“응, 우린 친구잖아.”
칼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반 마법학과 애들은 내가 연습 도와줄게.”
“크흑! 첼시! 고맙다!”
‘들들 볶이겠군.’
“너희 엘레나 선배에 대해 알아?”
레오의 물음에 칼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엘레나 선배에 대해 아냐고?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하잖아?”
“유명해?”
“유명한 정도가 아니야! 엘레나 선배는 3학년 학년 대표라고!”
“그래?”
“가끔 보면 레오 오빠는 학교 일에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 내가 가르쳐줄게.”
첼시가 에헴! 하고 헛기침을 했다.
“엘레나 제르온. 나이 18세. 현재 3학년. 그 실력은 현재 마법학과 전체 2위야. 3학년인데도 토루아 선배 다음이지.”
“대단한데?”
“대단한 정도가 아니야. 2학년 때 던전 공략자가 된 천재 마법 소녀라고!”
칼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한 번쯤 만나면 좋을 텐데!”
살짝 몽롱한 표정을 짓는 칼을 보며 레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기가 좋나 봐?”
“응. 굉장한 미인이야. 별명은 여왕.”
“여왕?”
“4, 5학년 선배들도 함부로 못 하는 데다가 추종자가 많거든. 덕분에 3학년인데도 강력한 차기 학생회장 후보야.”
“알려 줘서 고마워.”
레오가 첼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헤실헤실 웃던 첼시가 물었다.
“그런데 엘레나 선배에 대해서는 왜 묻는 거야?”
“그냥, 만나야 할 일이 생겨서.”
“다음 주까지 파견 중이라 지금 학교에는 없어. 뭐, 학교 내에 있다고 해도 유명인사라서 얼굴 보기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레오 오빠는 학년 대표니까. 원한다면 만날 수도 있을 거야.”
첼시의 말에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 넌 다음 소환학 수업 바로 들어가야 하지?”
“응.”
“그럼 나중에 기숙사에서 보자.”
두 사람과 헤어진 레오는 소환학 수업 장소로 향했다.
‘오늘은 다 야외 수업이네.’
오늘 소환학 수업 장소는 첫 수업을 했던 환수의 섬이었다.
선착장 쪽에 도착하자 다른 소환학과 학생들이 호수를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오도 플라이 마법을 쓰려 할 때였다.
“누구게요?”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와 누군가 눈을 가렸다.
“17살이나 돼서 이런 장난은 조금 유치하지 않아?”
피식 웃으며 레오가 손을 치우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첸 시아가 서 있었다.
“어차피 레오 도령은 날 연상 취급도 안 하잖아요.”
어깨를 으쓱한 첸 시아가 말했다.
“이제 환수의 섬으로 가려는 거죠? 같이 가실래요?”
“그래.”
첸 시아는 물을 향해 뛰어들었다.
“호잇.”
물 위로 첸 시아가 발자국을 남겼다.
자연스럽게 물 위를 걷는 첸 시아를 보며 레오는 플라이 마법으로 공중에 몸을 띄웠다.
보통 소환학과 학생들은 하늘을 나는 환수나 수중 이동이 가능한 환수, 혹은 바람과 물의 정령을 이용하여 호수를 건넌다.
하지만 레오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눈 때문에 계약한 환수를 함부로 소환할 수 없었고 첸 시아는 정령술로 이동하는 것 보다 오러 스텝을 쓰는 게 빨랐기에 쓰지 않았다.
“레오 도령, 환수의 숲까지 누가 먼저 도착하나 시합할래요?”
“지는 쪽이 밥 사기로 할까?”
“좋아요.”
첸 시아가 자세를 낮췄고 레오는 마력을 일으켰다.
“그럼 준비, 출발!”
푸확! 콰아아아악-!
두 사람 다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나갔다.
물보라가 치솟아 파도치는 선착장을 보며 소환학과 학생 한 명이 중얼거렸다.
“학과대항전에서 쟤들 만나면 무조건 피하고 보자.”
다른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콰가가가각-!
‘단순히 오러 스텝을 이용하는 건 아닌 모양이네.’
레오는 자신 앞서 달려가는 첸 시아를 보며 레오가 눈을 빛냈다.
‘정령술인가?’
레오가 더욱 가속했다.
“엘리자. 이, 이 녀석들 정말 우릴 공격 안 하는 거지?”
“흥. 루리의 지배 능력을 의심하는 건가요?”
“설마! 그럴 리가!”
호수 위에서 돌고래 등에 탄 엘리자가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손톱을 정리하며 코웃음을 쳤다.
“우리 루리는 아직 어리긴 해도 엄연한 델피누스. 제 능력으로 지배 능력을 강화했으니 이 정도 몬스터들은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어요.”
델피누스.
돌고래 형태를 한 최상위 수중 환수였다.
소환학과 1학년에서 1, 2위를 다투는 실력자이자 소환 명가 헤르긴의 후계자인 엘리자이기에 다룰 수 있는 환수였다.
삐액-!
“그래요, 루리. 돌아가면 최상급 소고기를 잔뜩 줄게요.”
매사에 주변에 차갑게 대하는 엘리자는 델피누스의 울음에 부드럽게 웃으며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우리한테도 저렇게 친절히 대해주지.’
엘리자 파벌의 학생들이 쓴웃음을 지을 때였다.
“응?”
몬스터 등에 타 있던 한 명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건 뭐야? 웬 물보라?”
학생들이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에, 엘리자! 뭔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 어서 피하자!”
“흥! 대체 뭐라고 호들갑을 떠는……?”
소환수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엘리자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콰가가가가가각-!
그리고 엄청난 물보라가 엘리자를 덮쳐 버렸다.
삐애액! 삐액!
파도에 휩쓸려 호수에 가라앉은 엘리자를 그녀의 소환수 루리가 다급히 끌어 올렸다.
“푸확! 방금 뭐였죠!”
눈을 치켜뜬 엘리자가 날카롭게 소리치자 같이 파도에 휩쓸린 파벌 학생 중 한 명이 다급히 말했다.
“레오 플로브랑 첸 시아였어!”
“레오 플로브!”
엘리자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감히 나에게 이런 무례를 저질러?! 루리! 따라가세요!”
삐애애액!
콰가가가가각-!
“으악! 엘리자!”
“우리도 데려가!”
덩그러니 남겨진 엘리자 파벌 학생들이 당황했다.
크르르르-!
그리고 델피누스의 통제를 벗어난 수중 몬스터들이 살기를 드러냈다.
“야! 빨리 처리해!”
“으악! 운디네 도와줘!”
“꺄아악! 저리 가!”
호수 한복판에서 갑작스럽게 몬스터와 싸우게 된 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환수의 섬 선착장에 먼저 도달한 건 레오였다.
“내가 이겼네.”
“허억- 허억- 아쉽네요.”
간발의 차로 늦은 첸 시아가 숨을 몰아쉬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라가 박수를 쳤다.
“훌륭하군! 근데 기왕이었으면 순수하게 소환술만 썼다면 더 칭찬해줬을 텐데.”
선착장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던 유라 교수가 툴툴거렸다.
“특히 레오 너! 소환학 수업을 오면서 마법을 쓰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버르장머리냐! 감점 10점이야.”
유라가 으르렁거리자 레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제 환수를 소환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완벽한 논리군! 감점은 없던 걸로 해주지.”
“대체 감점의 이유는 뭐고 또 설득당한 이유는 또 뭔가…… 커헉?”
옆에서 유라에게 태클을 걸던 부교수 카를로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은 유라가 선착장 쪽을 보았다.
“또 누가 왔군.”
해일이 일 듯 거대한 파도가 레오를 덮쳤다.
“레오 플로브으으으으으!”
퍼엉-!
물보라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물대포를 간단하게 방어한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공격이야? 그리고 왜 그렇게 쫄딱 젖었어?”
“이게 누구 때문인데요! 당신이 일으킨 물보라 때문이잖아요!”
“아, 지나오는 길에 있었어? 미안.”
“미안? 이게 미안으로 끝날 일인가요?! 감히 헤르긴 가문의 후계자인 나에게 이런 무례를 저지르다니!”
분노하는 엘리자를 보며 첸 시아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엘리자 양. 물보라를 일으킨 건 레오 도령이 아니라 저예요.”
“시아, 당신 때문이라고요?”
“네.”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첸 시아를 보며 엘리자가 우읏-! 하며 물러섰다.
1학년 최연장자 중 한 사람이자 성격이 좋은 첸 시아는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그렇다 보니 항상 오만한 엘리자도 첸 시아 앞에서는 한풀 꺾였다.
“그래, 그래. 다 같은 소환학과 학생들끼리 친하게 지내야 하는 법이야.”
“전 소환학과 아닌데요.”
“저도요.”
“어쭈? 이것들 봐라?”
유라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뭐. 다른 사람들 신경 안 쓰고 시합한 건 나니까 첸 시아 잘못만 있는 건 아니야. 미안해.”
레오가 진심으로 사과하자 빤히 레오를 바라보던 엘리자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사과하는데 용서하지 않는 것도 속 좁은 일이죠. 좋아요. 그 용서를 받아들이겠어요, 레오 플로브.”
“사과의 뜻이라고 하기는 뭣 하지만 옷 젖은 건 내가 말려 줄게. 여자애가 쫄딱 젖어 있는 것도 보기 민망하니까.”
레오가 마력을 일으켰다.
수분을 제거하는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순식간에 젖은 엘리자의 옷이 말랐다.
갑자기 수분이 사라지자 엘리자의 머리카락에 정전기가 일어났다.
“풉!”
“큭!”
첸 시아와 유라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품에서 거울을 꺼내 머리를 확인한 엘리자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찰랑거리던 머리가 부스스하게 부풀어 올라 엉망이 되어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 엘리자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레오를 노려보았다.
“금방 정리해 줄게. 빗 있어?”
한숨을 쉰 레오가 엘리자에게서 빗을 받아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
환수의 숲에 1학년들이 모였다.
소환학과 1학년 전체는 묘하게 흥분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학과와 마법 학과에서 학과대항전을 대비해 특훈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교내 전체에 쫙 퍼진 것이다.
소환학과 학생들 역시 오늘 학과대항전을 대비한 훈련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수업 역시 환수의 섬에서 진행되었다.
모두가 열의에 찬 얼굴로 유라를 보는 가운데 유라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 자식 왜 안 오는 거야?”
“교수님, 누구를 기다리나요?”
테이드가 손을 들고 묻자 유라가 한숨을 쉬었다.
“오늘 수업은 너희도 예상했겠지만 학과대항전를 대비한 특훈을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울타가 특별 수업을 건의했지.”
“울타 선배가요?”
“그래. 딱 좋은 훈련 방법이 생각났으니 환수의 섬에서 수업을 진행 하자나 뭐라나.”
학생들이 감탄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소환학과의 울타.
학생 최강이라 평가받는 리스 제르딩거의 라이벌이자 페가수스의 맹약자로 명성 높은 최강의 소환술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괴짜로 이름 높기도 했다.
실제 학과대항전 발표 날에 사랑을 운운하며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한 훈련을 시키진 않겠지.’
학생들 애써 불안감을 떨칠 때였다.
“울타 선배님이다.”
학생 한 명이 선착장 쪽에서 걸어오는 울타를 발견하고 말했다.
“야! 너 왜 이렇게 늦었어!”
“죄송합니다, 유라 교수님.”
울타가 연극배우처럼 우아하게 인사했다.
“1학년들에게 줄 준비물이 좀 늦게 배달 와서요.”
“준비물?”
따악-!
울타가 손을 튕기자 하늘에서 거대한 독수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악-! 쿵-!
거센 바람을 일으킨 독수리는 울타 옆에 천으로 감싼 짐을 놔두고 활공해서 사라졌다.
“방금 그건 윈드 이글?”
“바람의 상급 환수를 단순한 운반용으로 쓰다니…… 과연 울타 선배야!”
학생들의 얼굴이 선망의 눈으로 울타를 보았다.
“대체 1학년들에게 어떤 훈련을 시키려고 준비물씩이나…….”
짐을 풀어 내용물을 확인하던 유라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너 이걸로 1학년들에게 뭘 시키려는 거야?”
울타가 준비해 온 건 다름 아닌 잠자리채였다.
“교수님도 들으셨을 겁니다. 지금 이 환수의 섬에!”
울타가 양팔을 활짝 벌렸다.
“요정이 출현했다는 걸!”
“요정?”
“설마?”
1학년들이 눈을 부릅떴다.
유라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1학년들을 시켜서 요정을 잡겠다?”
“맞습니다.”
“맞습니다는 얼어 죽을, 처맞는 소리 하고 있네. 이 미친놈아! 학과대항전 준비로 바빠 죽겠는데 이딴 쓸데없는 짓을 벌여? 너 오늘 나한테 좀 맞아 봐라! 아니 그냥 죽어어어어!”
잠자리 채로 울타의 머리를 낚아챈 유라는 자신에게로 잡아당기며 고함을 질렀다.
카를로와 학생들이 기겁하며 유라를 말렸다.
한편 레오는 머리를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 자식이…… 얌전히 있을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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