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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88화 (88/483)

【88】87.

“교수님. 환수의 섬에서 요정이 발견되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엘리자가 손을 들고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깡패처럼 울타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유라가 한숨을 쉬며 멱살을 놓아주었다.

“이틀 전에 이곳에서 실습을 하던 2학년 애들 사이에서 목격담이 있긴 했어.”

그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물론 다 헛소리야! 내가 교사 생활은 물론 학생 시절까지 포함해서 환수의 섬에 요정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

확신에 찬 어조로 외치던 유라가 멈칫하고는 레오를 보았다.

‘잠깐. 생각해보니 원래 피닉스도 환수의 섬에 없었다고 알려진 환수잖아.’

그런데 어느 날 덜컥 어떤 1학년이 계약을 해왔다.

‘그것도 어린 피닉스로 말이야.’

유라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진짜 요정도 있는 거 아니야?’

그런 의구심을 느낄 때.

유라의 손에 벗어난 울타가 교복을 단정하게 정리하며 소리쳤다.

“후배들이여! 너희들도 소환술사라면 3대 환수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을 테지!”

1학년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왜 없단 말인가?

소환사라면 한 번씩 꿈꾼다! 3대 환수와 계약을 한 자신의 모습을!

물론 요정은 대체로 엘프와 계약을 맺는 환수이지만 그렇다고 기나긴 역사 속에 엘프 이외에 요정의 맹약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강대한 소환수와 만날 수 있는 기회!

그런 기회라면 불구덩이건 심해 속이던 가리지 않고 들어가고 보는 게 소환사라는 이들의 습성이었다.

“보고 싶지 않나! 요정을!”

“보고 싶어요!”

“야!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로 1학년들 선동하지 마!”

생각에 잠겨 있던 유라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발끈했다.

그런 유라를 보며 울타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교수님 실망스럽습니다. 제가 1학년일 때 부교수였던 교수님은 꿈이 넘치시는 분이셨잖습니까!”

“……너도 루메른 정교수로 3년 찌들어 봐라. 어떻게 되는지.”

“아아! 현실과 타협하는 나약한 어른이 된 모습을 보니 저는 매우 슬픕니다! 그렇게 꿈도 없이 팍팍한 현실을 사니까 성격이 점점 나빠지는 거 아닙니까!”

유라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파앗-!

울타에게 달려들려는 유라를 붙잡은 카를로가 소리쳤다.

“교, 교수님!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죽이게 해줘……! 저 뚫린 입을 아무렇게나 놀리는 저 건방진 놈을 죽이게 해줘!”

5학년이라도 교수 앞에서 저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 건 울타가 유일했다.

손에 힘줄이 돋아난 유라를 보며 1학년들이 겁에 질렸다.

잠시 후 가까스로 진정한 유라가 물었다.

“그래, 울타. 학과대항전이 눈앞이다. 단순히 요정 찾기 놀이 같은 걸 할 생각은 아니지?”

그 말에 울타가 피식 웃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화사하게 미소 짓는 울타를 보며 여학생들이 꺅- 하고 비명을 질렀다.

“후배들아. 내가 너희에게 강조했던 소환사로서 기본 마음가짐이 뭐라고 했지?”

“포용력이요.”

“아니, 사랑이다.”

1학년 모두가 유라를 보았다.

“알아서 잘 걸러 들을 수밖에 없어. 그래도 실력은 확실한 놈이니 조언으로서 도움은 될 거야.”

1학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메른에 와서 그래도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1학년들이기에 그러려니 했다.

“나와 계약한 소환수만을 사랑하라는 게 아니야. 모든 소환수를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조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어야 하지! 그래! 소환수가 내가 되고 내가 소환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 자연과의 조화! 그것이 진정한 소환수를 향한 사랑인 것이다!”

1학년들이 울상을 지으며 유라를 보았다.

유라의 말대로 걸러 들으려고 했지만 1학년들의 레벨로는 아직 울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유라가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러니까…… 해석하자면 친화력을 높여서 계약을 하지 않은 소환수와도 교감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 야! 정상적으로 말해! 정상적으로!”

폭발한 유라가 고함을 지른 후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 네 뜻은 잘 알겠어. 그렇게 하잔 말이지? 1학년 애송이들에게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유라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치 고양이 같은 그 미소에 1학년들이 순간 불안감을 느꼈다.

그녀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어김없이 불길한 일이 터지곤 했다.

“아인 선배도 그렇고 렌 건방진 그놈도 그렇고 다들 1학년들을 빡세게 굴리니까. 우리도 그만큼 해야겠지.”

“그렇죠.”

“그런데 그러려면 일단 서류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닌데…….”

“다 해뒀습니다.”

서류 뭉치를 내미는 울타를 보며 유라가 호오-! 감탄을 터트렸다.

“역시 울타야. 훌륭해.”

“과찬이십니다.”

조금 전까지 죽이네마네 하던 두 사람이 죽이 잘 맞자 1학년들은 더더욱 불안감을 느꼈다.

사실 유라 역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루메른 교수 중 가장 괴팍한 인간이다.

유라가 히죽 웃었다.

“1학년들. 너희는 지금부터 3일 동안 특별 수업을 위해 환수의 섬에 머문다! 너희 선배가 기숙사에 외박 신청서 받아 놨으니 아무 문제 없어!”

“네?”

“어차피 내일부터 주말이잖아.”

“내, 내일 루메리안에서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 잡아 놨는데요?”

“주말에는 쉬어야 하잖아요!”

학생들의 항의에 유라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딴 거 내가 알까 보냐. 너희도 방금 전 까지 요정 찾는 거 좋다면서.”

“그,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엘리자, 뭐라고 말 좀 해봐. 유라 교수님이 그래도 네 말은 들어주시잖아!”

소환학과 최고 학생은 워레든이지만 교수에게 가장 신임을 받는 학생은 엘리자다.

웨레든은 학과 일에 관심이 조금도 없는 반면 엘리자는 성실하게 학과 일을 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자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교수님과 울타 선배님이 제안한 일인 만큼 우리를 위한 일이겠죠. 편안한 잠자리와 질 좋은 식사만 제공된다면 난 괜찮아요.”

엘리자의 말에 학생들이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유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아? 엘리자 헤르긴. 무슨 소리야? 편안한 잠자리와 질 좋은 식사? 그딴 게 어딨어?”

“네?”

이번에는 엘리자도 살짝 당황했다.

“너희들이 경험할 건 야생이다.”

팔짱을 낀 유라가 야성미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한 대자연에서 살아남는 것! 그게 오늘부터 너희가 할 일이야!”

“뭐라고요?”

“저 숲에서 3일 동안 지내라고요?”

“단순히 숲에서만 3일을 지내는 게 아니지.”

울타가 빙긋 웃었다.

“3일 동안 소환술을 금지하겠어. 물론 오러와 마법을 쓰는 것도 금지. 순수하게 너희 힘으로 저 숲에서 생존해라.”

“에에엑?”

“그게 말이 돼요! 환수의 섬에는 온갖 환수와 정령들이 살고 있잖아요!”

계약이 되지 않은 상태의 환수와 정령은 매우 위험한 존재다.

특히 인간에게 적대적인 성향을 지닌 환수나 정령을 잘못 만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 야생 환수와 정령이 득실거리는 섬에서 3일 동안 살아남으라고 하니 1학년들로서는 질릴 수밖에 없었다.

“소환술사라면 테이밍을 하지 않고도 소환수를 다룰 수 있어야 하는 법이야.”

“그, 그런!”

“물론 하기 싫은 사람은 포기해도 돼.”

유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난 포기한 녀석에게는 학과대항전 동안 아무 특훈도 시키지 않을 거야. 그대로 기사학과와 마법학과 애들과 차이가 벌어지게 되겠지.”

소환학과 학생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첫 수업 때 말했지? 다른 학과 학생들이랑 똑같을 수 없다고.”

학생들이 주먹을 쥐었다.

“너희가 앞으로 다뤄야 할지도 모르는 환수나 정령들을 생각하면 이런 건 위험 축에도 못 끼어. 내가 너희를 아무 생각 없이 위험한 곳으로 몰아넣는 것 같아?”

“아, 아닙니다.”

“그럼 이번 훈련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네?”

유라의 물음에 학생들이 침묵했다.

그 누구도 섣부르게 이야기를 하지 못할 때였다.

“요즘 어린 소환술사들은 소환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 아닌가요?”

모두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유라가 히죽 웃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돈만 있으면 손쉽게 소환에 필요한 매개를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영웅의 세계를 통해서도 강력한 소환수와 계약할 수 있고요.”

레오가 울창한 숲을 바라보았다.

“많은 소환술사가 강력한 소환수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본질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직접 소환수를 찾아가 계약을 맺었을 때 보이는 풍경도 있는 법이니까요.”

“너무도 고리타분한 말이구나, 후배여.”

울타가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정답이지.”

유라가 피식 웃었다.

“레오의 말이 맞아. 매개를 통해 소환수와 계약을 하면 물론 손쉽게 강력한 환수를 손에 넣을 수 있지. 하지만 소환수의 능력을 제대로 끌어내는 건 힘들어.”

유라가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 소환술사는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특별한 존재들과 소통하는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연의 일부분에 순응하는 한편 지배를 하고 있기도 해.”

모두가 유라의 말에 집중했다.

“울타가 너희에게 포용력을 이야기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야. 너희 중 너희가 다루는 소환수의 본질을 목격한 소환술사가 몇 명이나 될까?”

유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직접 그들의 본모습을 보고 계약을 맺었어? 다들 편하게 가문에서 구해 준 매개나 수업 시간 때 편하게 얻은 환수들 아니야?”

그 물음에 대답을 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는 진정한 소환술을 쓸 수 없어. 자연을 경험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환수와 정령들을 더욱 깊게 이해해야 해. 그건 소환사로서 더욱 높은 단계로 오르는 길 중 하나야.”

유라가 히죽 웃었다.

“이래도 따뜻한 잠자리와 식사가 그리워?”

“아닙니다!”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지?”

“그렇습니다!”

“좋아! 그 기세야!”

유라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 그럼 각자 쓸 단도 정도는 나눠 줄게.”

“그리고 이 잠자리채도 나눠주마.”

울타가 웃으며 말했다.

“……너 정말 그걸로 요정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유라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난 가끔 네가 소환학과 최고의 학생이란 사실이 부끄러워.”

유라는 진심을 담아 말했지만 울타는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

환수의 섬은 루메리아 호수에서 가장 큰 섬 중 한 곳이었다.

크기로만 본다면 루메른 학생들이 있는 아카데미 본섬보다 더 훨씬 거대했다.

그런 만큼 중심으로 깊게 들어가면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져 있었다.

느닷없이 대자연 속으로 내던져진 소환학과 학생들은 모두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소환술을 쓰지 못하는 만큼 어떤 상황에서든 대비해야 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묘한 기대감도 품고 있었다.

울타가 말했던 요정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학생들이 각자 3일 동안 지낼 잠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 훈련은 학과대항전 때의 배틀 로얄도 대비한 만큼 개인전이라는 전제가 붙었다.

‘서로 싸우는 건 금지야. 위급 상황에서는 협력도 가능해. 하지만 잠자리나 식사는 각자 알아서 해결해.’

학생들을 숲속에 보내기 전 유라가 한 말이었다.

‘이번 훈련은 실기 시험을 겸할 테니 잘 하도록!’

‘은근히 소환술 수업이 제일 하드코어 하단 말이야.’

레오가 식사 준비를 위해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찾을 때였다.

“요, 요정이다! 요정!”

저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외침에 주변 학생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레오 역시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도착했을 때 소환학과 남학생 한 명이 이빨을 가진 꽃 모양의 식물에 머리가 물린 채 초점을 잃은 눈으로 외치고 있었다.

“요정이야! 요정!”

“……저 바보 지금 식물형 환수도 못 알아보고 함부로 접근했다가 잡힌 거야?”

“으이구! 멍청아!”

몇몇 학생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동기를 구해주기 위해 다가갔다.

“혹하고 달려온 내가 바보 같네요.”

엘리자가 인상을 쓰며 말하고 획 돌아갔다.

그렇게 학생들이 다시 흩어질 때였다.

레오가 나무 위를 보았다.

그곳에는 배를 부여잡고 나뭇가지 위를 뒹굴고 있는 철없는 페어리 프린스가 보였다.

‘한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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