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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89화 (89/483)

【89】88.

키르안은 신이 나서 숲을 날아다녔다.

심보 나쁜 이 요정은 학생들을 놀리는 게 재미있었다.

[하하하! 바보! 내가 그런 허접한 잠자리채 따위에게 잡히겠냐?]

또 다른 1학년을 잔뜩 약 올린 키르안이 콧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어떤 바보를 노려볼까?]

화악-!

[……?]

순식간에 날아든 그물망이 키르안을 낚아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허접한 잠자리채에 잡힌 키르안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허억?]

레오와 눈이 마주친 키르안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얌전히 있으라고 이리로 보냈지, 사고 치라고 이리로 보낸 줄 아냐?”

[오, 오해야! 오해라고! 내가 이런 데는 이유가…… 꾸엑!]

키르안을 움켜쥔 레오가 물었다.

“이유가 뭔데?”

[이 섬에 이변이 생긴 것 같아서 조사하고 있었던 거라고!]

“뭐?”

레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날 밤.

해가 진 후 레오는 섬 곳곳에서 구한 과일을 먹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환수의 섬의 환수들이 난폭해졌고 그걸 조사하기 위해 너에게 탐문을 시켰다는 거야?”

[맞아.]

“그런 것 치고는 루메른 학생들을 놀리는 것 같았는데?”

비록 페어리 프린스로서 힘을 잃었지만 키르안은 요정이다.

게다가 날개 한 쌍을 얻어 힘을 어느 정도 되찾은 상태였다.

1학년들은 물론이고 2학년들도 찾을 수 없는 환수다.

그런데 키르안이 환수의 섬에 온 다음 날 요정에 관한 소문이 쫙 퍼졌다.

[그건!]

“그건?”

[이 몸을 발견하고 호들갑을 떠는 학생들의 반응이 재미있었으니까!]

“결국 원래 목적을 까먹고 놀고 있었단 소리잖아?”

키르안을 넝쿨에 묶어 모닥불 위에 거꾸로 매달아 버린 레오가 생각에 잠겼다.

‘환수의 섬에 이변이 일어났다고?’

현재 이 섬은 피리나의 영역이나 마찬가지다.

섬에 일어난 이변을 눈치 못 채지 못할 리가 없다.

“피리나씨는 어쩌고 널 보낸 거야?”

[그 피리나라는 피닉스는 현재 이 섬에 없어! 풀어줘! 풀어줘!]

버둥거리던 키르안이 다급히 말했다.

“섬에 없다고?”

[그래! 삼 일 전에 네가 이곳에 우리를 보냈을 때부터 없었어! 편지로는 며칠 전에 자신의 맹약자에게 잠시 돌아간다고 했었……! 으갹!]

화륵-!

키르안의 몸에 불이 붙었다.

가까스로 탈출한 키르안이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숲에 이변이 생겼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피오라가 그러던데?]

“피오라가?”

레오가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피리나의 딸인 피오라는 이 환수의 섬에서 2인자 격에 속하는 환수다.

아직 어리고 힘은 약해도 숲에 일어난 변화 정도는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하필 피리나가 부제 중일 때 이변이 발생한게 과연 우연일까?’

눈을 가늘게 뜬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피오라를 찾아야겠네.’

소환을 하면 가장 간단하겠지만 현재 수업 실기 중이다.

아무도 소환술을 쓰지 않는 상황에서 영력을 사용하면 바로 걸릴 게 분명했다.

‘피오라의 정체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귀찮아.’

현재 루메른에서 레오가 피닉스의 계약자라는 사실을 아는 건 고작해야 소환학 교수 유라와 칼리안 교장뿐이다.

레오가 정신을 집중하고 피오라를 불렀다.

‘피오라.’

고위 환수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맹약자인 만큼 정신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오의 부름에도 피오라는 대답이 없었다.

‘피오라? 들리면 대답해.’

“이 녀석 지금 뭐 하길래 대답을 안 하는 거야?”

묵묵부답의 피오라의 반응에 레오가 미간을 좁혔다.

레오 옆으로 날아온 키르안이 깍지 낀 손을 뒤통수에 대며 말했다.

[어디 한 눈 팔려서 부르는지도 모르는 거 아니야?]

“…….”

상당히 그럴듯한 이야기다.

의젓한 척을 해도 호기심 왕성한 어린아이인 만큼 피오라는 한눈을 매우 잘 팔았다.

“……맹약자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애들이니.”

[자기도 애면서.]

툴툴거리는 키르안의 말에 한숨을 쉰 레오가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피오라의 힘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직접 찾아갈 수밖에.’

***

피오라의 힘이 느껴지는 방향은 서쪽 끝이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섬의 동쪽이니까 반대쪽이로군.’

한숨을 쉰 레오는 점점 숲의 깊숙한 곳을 향해 들어갔다.

그곳에서 야생 체험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소환학과 학생들은 야생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벌레가 나타났다며 비명을 지른다거나 독버섯을 잘못 먹고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상황이 속출했다.

소환학과의 에이스인 엘리자도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내일부터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본격적인 생고생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고전 중인 학생들을 보며 레오가 혀를 찼다.

물론 모든 학생이 그런 건 아니었다.

“야밤에 바쁘군, 플로브.”

모닥불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던 거대한 체구의 학생, 워레든이 말했다.

기척을 죽이고 이동하다 우연히 만났다.

그런데도 워레든은 눈도 뜨지 않고 말을 걸었다.

“바쁜 일이 있어서 말이야.”

레오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말에 워레든이 눈을 뜨고 나무 위를 바라보았다.

기사학과 중에서도 워레든와 비슷한 체구를 가진 학생은 몇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터프한 전투를 할 것 같지만 사실 워레든은 상당한 두뇌파 학생이었다.

‘전공 이외의 일반 과목 필기시험 성적이 전체 2등이었었지?’

1등은 클로에였다.

뿐만 아니라 마법에 대한 지식 역시 웬만한 마법학과생 보다 해박했다.

‘마법을 정령술에 결합시키는 센스까지. 확실히 대단하긴 해.’

“이번 배틀 로얄, 기대하고 있겠다. 플로브.”

“그 말은?”

“너를 쓰러트리겠다는 말이다.”

워레든의 무덤덤한 선전포고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기대하고 있을게.”

그 대답을 들은 워레든이 눈을 감았다.

레오가 나뭇가지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오러를 사용할 수 없지만,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이용해 재빠르게 숲속을 주파했다.

중간에 야생의 환수들과 몇 번 조우했지만, 덤비는 일은 없었다.

레오의 어깨에는 키르안이 있었기에 때문이다.

환수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강한 환수에게 덤비려 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빠른 속도로 숲을 가로지른 레오는 서쪽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환수의 섬 서쪽에는 자갈밭이 펼쳐져 있었다.

[와, 예쁜데?]

달과 별이 비치는 아름다운 호수 풍경에 키르안이 감탄했다.

레오는 물가에 쪼그려 앉아 뭔가를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는 피오라를 발견했다.

찰박-!

물에서 작은 자갈 하나를 집어 든 피오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에 잡힌 돌을 달빛에 비추며 탄성을 내질렀다.

투명한 수정 형태의 마석이었다.

“예뻐, 예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마석을 이리저리 살피던 피오라가 합-! 하고 마석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사탕처럼 입에 굴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더니 다시 쪼그려 앉아 마석을 찾기 시작했다.

“……너 뭐하냐?”

“웅? 데오, 여킨 어천 이이에혀.”

“입에 있는 거 다 먹고 말해.”

피오라는 입안의 마석을 오독오독 씹어 삼킨 후 물었다.

“레오, 여긴 어쩐 일이에요?”

“어쩐 일이기 이전에…… 너 이 자갈밭에 있는 마석을 모조리 찾아서 먹고 있었어?”

이곳은 원래 학생들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갈밭은 자연적으로 마석이 생성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환수와 정령들의 생태계 주변에는 마석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지역이 있다.

그들이 내뿜는 힘이 바닥으로 스며들어 특정 장소에 모이는데 그곳에서 마석이 대량으로 자연 발생하는 것이다.

그 마석을 어린 정령과 환수들이 흡수하여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

환수의 섬은 이 자갈밭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학생들이 마석을 채취해 갈까 봐 출입을 막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마석을 피오라가 다 찾아서 먹고 있는 중이었다.

피오라가 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원래 어릴 때는 많이 먹는 법이에요.”

[우리 같은 최고위 환수들은 성장하는데 마석 같은 거 필요 없잖아.]

그 말대로 피닉스 같은 최고위 환수에게 마석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맛있는 별미는 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지배하는 영역의 환수들이 먹어야 할 마석을 다 먹는 게 잘하는 짓은 절대 아니었다.

“너 설마 다른 환수나 정령들을 다 쫓아내고 너 혼자 마석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

아직 힘은 약하지만, 피닉스의 기운을 느낀다면 다른 환수와 정령들이 겁을 먹고 다가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까지는 안 했어요. 난 사이좋게 나눠 먹으려 했어요!”

피오라가 항변했다.

[피닉스의 힘으로 위협하면 사이좋게 나눠 먹을 수 있을 리 없잖아. 이 병아리……! 아니! 돼지야!]

“누구더러 돼지란 거예요!”

[흥! 여전히 허접한 공격이군!]

발끈한 피오라가 자갈을 집어 던지자 키르안이 코웃음을 치며 피했다.

“둘 다 시끄러. 피오라 너 섬에 무슨 일이 일어나서 키르안에게 동쪽 지역을 탐색하라고 했다며.”

“아차!”

탐색 도중 마석을 먹느라 그 사실을 깜빡한 피오라가 화들짝 놀랐다.

[야! 너 나한테는 엄청 심각한 얼굴로 말한 주제에 정작 넌 까먹냐?]

잘못이 있는 피오라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쩔쩔댔다.

[아앙? 이거 완전 기억력이 병아리 수준 아니야! 앙?]

“미, 미안해요.”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한 키르안이 거만한 얼굴로 피오라의 머리를 탁탁 때렸다.

[용서해주지! 대신 앞으로 이 몸을 왕자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대하…… 쿠헉!]

“너도 조사하는 거 까먹고 학생들한테 장난치고 있었잖아.”

레오가 손바닥으로 키르안을 후려치며 말했다.

“그래서, 정확하게 어떤 이변이 생겼다는 거야?”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다만 엄청 불쾌한 기운이 섬에서 희미하게 느껴져요.”

‘불쾌한 기운?’

레오가 미간을 좁혔다.

정화의 힘을 지닌 피닉스가 불쾌하다고 느꼈다면 부정한 힘이 면분명했다.

‘중간고사 때 타르타로스에서 소환학과에 마수를 뻗친 적이 있어. 설마 그것과 관련 있나?’

거기까지 레오가 생각한 순간.

고오오오-!

갑자기 물안개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레오가 다급히 피오라와 키르안을 데리고 자갈밭을 벗어나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물안개가 아니었다.

게다가 물안개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레오도 알고 있는 기운이었다.

소환학과 중간고사 실기 시험 중 느꼈던 흑마력.

‘그때 마수술사.’

레오가 눈을 부릅떴다.

찰박-

자갈밭 위에 모습을 드러낸 마수술사가 손을 휘저었다.

우웅-!

자갈밭 곳곳에 있던 마석들이 반응했다.

터무니 없이 부족한 마석 숫자에 마수술사가 멈칫했다.

“뭐지? 왜 마석의 숫자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거지?”

[돼지가 다 먹었으니까.]

키르안의 말에 피오라가 도끼눈을 뜨고 키르안의 목을 졸랐다.

“그만 싸우고 준비해.”

레오가 영력을 일으켰다.

주말 동안 영력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온다!”

지잉-!

레오가 있던 바닥에 거대한 소환진이 생성되었다.

레오가 높이 도약했다.

그오오오오-! 카득!

거대한 마수가 입을 벌리며 레오가 있던 자리를 집어 삼켜 버렸다.

휘리릭-! 탁-!

레오가 바닥에 착지하고 마수 술사를 보았다.

“아무래도 네놈은 우리와 악연이 깊은 모양이구나, 레오 플로브.”

싸늘한 마수술사의 말에 레오가 살기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전생부터 내려온 아주 엿 같은 악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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