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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95화 (95/483)

【95】94.

학과대항전의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외부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한 곳에서 소란이 일었다.

“설마…… 마안의 마법사 알비 제르온?”

“학과 일정에 참여하다니 놀랍군.”

관중석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알비를 보며 외부 인사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알비의 주변으로 다가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영웅으로서 명성만큼 그를 두려워하는 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숙부님이 이런 행사를 관람하다니. 의외네요.”

품에 간식거리를 잔뜩 앉은 여학생이 태연한 얼굴로 다가와 알비의 옆에 앉았다.

그 모습에 외부 인사들이 웅성거렸다.

현재 부제 중인 제르온 가문의 가주 대리인이자 마법의 천재로 명성 높은 엘레나 제르온이었다.

‘저게…… 오만한 천재 엘레나인가.’

외부 인사들이 흥미를 담아 시선을 보낼 때였다.

약관의 미청년이 자신 있게 엘레나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레이디 엘레나.”

“누구시죠?”

“내 이름은 알락 투르카. 투르카 왕국의 왕자입니다.”

투르카 왕국.

서부 지방과 중부 지방의 경계에 위치한 교역의 중심지였다.

알락은 그 왕국의 왕세자였다.

‘과연 소문대로 아름답군.’

가까이서 엘레나를 본 알락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가까이서 본 엘레나는 숨이 턱 하고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왕족으로서 온갖 미녀들을 접해 온 알락으로서도 이런 외모의 여인은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엘레나는 강력한 영웅 후보에 배경 역시 엄청났다.

결혼 적령기인 알락으로서는 탐이 나는 상대였다.

‘일단 친분부터 다지는 게 좋겠지. 내 신분이라면 무시하지 못할 터.’

엘레나의 교복 치마를 힐끗힐끗 바라보면서 알락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명성 높은 레이디 엘레나를 뵙게 되어 몹시 영광입니다. 부디 저에게 레이디 엘레나를 에스코트할 기회를 주시길.”

예를 취한 그는 무릎을 꿇고 서슴없이 엘레나의 손을 잡으려 했다.

엘레나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알락이 속으로 쾌재를 부를 때였다.

알락의 몸에서 핑크빛 마력이 일렁였다.

“헉?”

엘레나는 눈길도 주지 않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휘익! 콰직!

“커억!”

알락이 관중석에 처박혀 박혔다

“감히!”

분노한 알락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누군지 알고!”

“화나셨어요?”

엘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발작하던 알락의 눈이 순간 몽롱하게 변했다.

“아, 아닙니다!”

“그렇죠? 화나신 거 아니죠?”

“물론입니다! 이 정도로 화가 나다니요! 하하하하!”

“그렇다면 불쾌하니까 눈앞에서 꺼져주실래요?”

“알겠습니다!”

일국의 왕세자에게 하기에는 대단히 무례한 말.

하지만 알락은 전혀 개의치 않고 개처럼 엘레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엘레나는 품에서 향수를 꺼내 허공에 뿌렸다.

주변 외부 인사들이 질렸다는 눈으로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과연 엘레나 제르온……!’

‘외교적인 결례를 아무렇게 일으키다니!’

‘루메른의 마녀!’

엘레나는 여왕이라는 별명 이전에 마녀라고도 불리는 여자였다.

“그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알비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자 엘레나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숙부님도 보셨잖아요? 그쪽이 먼저 절 지저분한 눈길로 쳐다 보는걸.”

엘레나가 코웃음을 쳤다.

어릴 때부터 강력한 배경과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던 엘레나 사람들의 욕망 어린 눈빛에 익숙했다.

아무리 본심을 숨긴다 하더라도 그러한 기색을 쉽게 눈치챘다.

“그리고 딱히 마력을 쓴 것도 아닌데 이 정도 힘에도 저항 못 하는 쪽이 무능한 거 아닌가요?”

엘레나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힘은 타고난 외모와 카리스마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었다.

어릴 때는 단순히 주변 사람을 쉽게 따르게 만들었던 능력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눈빛만으로 사람을 홀릴 수 있는 마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나저나 정말로 숙부님 여기에는 웬일이신가요?”

“관심 가는 학생이 있어서 보러 왔다.”

“관심 가는 학생이요?”

“영웅에 어울리는 학생이지.”

과자 봉지를 뜯던 엘레나가 멈칫했다.

‘영웅에 어울리는 학생? 나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없는데?’

“레오 플로브를 말하는 건가요?”

“그래.”

엘레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제르온 가문의 후계자로서 엘레나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영웅과 영웅 후보생을 만나왔다.

그런 엘레나의 눈에 알비 만큼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는 없었다.

‘아버지조차도 말이지.’

그랬기에 엘레나는 은연중 알비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엘레나는 한 번도 알비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 숙부님께서 인정한 학생이라고?’

엘레나의 서늘한 시선이 멀리 있는 레오에게 향했다.

‘재미있겠네.’

***

[자리를 빛내주신 귀빈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학과대항전의 진행을 맡게 된 세드젠입니다.]

에레크 연병장 전체에 세드젠의 목소리가 울렸다.

웅성거리던 관중들이 떠드는 걸 멈추고 세드젠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군들! 미리 공지한 대로 이번 학과대항전은 배틀 로얄이다! 너희의 실력과 전략, 그리고 생존 능력을 겨루어 영광스러운 최후의 1인이 되면 이번 학과대항전은 끝나게 된다! 그리고 그 최후의 1인이 소속된 학과가 바로 우승 학과가 되는 것이지!]

“배틀 로얄이라.”

“전혀 본 적 없는 방식이군.”

“학과대항전보다는 개인전이 된 느낌이군요.”

외부 인사들이 눈을 빛냈다.

꽤 특이한 방법이라 흥미가 당겼다.

‘특히 올해는 우수한 학생이 많다고 했지.’

‘유망한 학생들을 후원해서 장래에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 해.’

세드젠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너희에게는 너희의 몸 상태를 체크하는 아티팩트가 지급된다! 이 아티팩트는 생명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 되면 즉시 이곳으로 텔레포트 되도록 설정되어 있지!]

세드젠은 마법 팔찌를 꺼내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바꿔 말하면…… 죽지 않을 수준에서 상대를 괴롭히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악용하는 학생이 없도록.]

세드젠 답지 않은 차가운 시선이 학생들에게 향했다.

1학년들이 흠칫했다.

[아울러 귀빈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세드젠이 관중석을 보며 진지한 목소리 말했다.

루메른에서도 명성 높은 세드젠 교수의 말에 모든 이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이번 학과대항전의 주요 관람 포인트는 바로 엘레강스 한 1학년 1반 학생들의 멋진 활약입니다! 모두들 1반 학생들이 나오면 주의 깊게…….]

“끌어내.”

느닷없이 편애를 시작하는 세드젠을 보며 할린드가 가차 없이 말했다.

그 말에 대기하고 있던 아인과 렌이 단상 위로 올라가 세드젠을 끌어냈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자네들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학창 시절에 그렇게 잘해줬거늘! 이익! 놔라! 놔! 이 할린드의 앞잡이들아!”

세드젠 교수가 처절하게 단상에서 끌려 내려오는 걸 보고 관중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1반! 엘레강스한 활약을 기대할게!”

장난스럽게 소리치는 칼을 시작으로 1학년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뚜벅- 뚜벅-

하지만 풀렸던 분위기도 단상 위에 오른 단 한 남자 때문에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바로 학생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교수, 할린드였다.

[학과대항전에 앞서 한 가지 공지하겠다. 이번 학과대항전은 기말고사 실기 시험도 겸하고 있다]

“네에에에엑?”

“이게 기말 실기 시험이라고요!”

[학과대항전은 순수하게 생존하는 게 목적이지만 기말고사는 아니다. 너희의 모든 행동은 너희에게 지급되는 팔지에 고스란히 기록된다. 일찍 탈락한 학생이 늦게 탈락한 학생보다 얼마든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하도록. 이상이다.]

할린드의 말을 들은 레오가 피식 웃었다.

‘머리 좋네.’

학과대항전의 승리를 위해 같은 학과끼리 편을 먹고 상대편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또한 학과를 위해서라면 개인 희생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말 실기 시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학과만을 위해 행동을 했다가 자칫 잘못해서 시험을 망칠 수 있어. 이렇게 되면 전략을 어떻게 짜느냐가 더 중요해지겠어.’

레오가 눈을 빛내고 있는 사이 할린드가 말했다.

“지금부터 10분 뒤에 학과대항전이 시작된다. 준비하도록.”

조교들이 와서 팔찌를 지급했다.

“후! 긴장되는데?”

칼이 굳은 얼굴로 말하자 레오가 피식 웃었다.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칼.”

“당연하지. 레오 너도 조심해. 널 노리는 녀석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걱정 마.”

레오와 칼이 주먹을 맞댔다.

“아앗! 나도! 반장 좋은 기운 좀 나눠 주라!”

일리아나가 와서 똑같이 주먹을 맞댔다.

그걸 시작으로 5반 학생들이 너도나도 레오에게 다가왔다.

“레오 오빠, 파이팅.”

“너도 힘내.”

첼시와 마지막으로 주먹을 맞대자 할린드가 말했다.

[준비 시간은 끝났다. 지금부터 학과대항전을 시작하겠다.]

우웅-!

그 말과 동시에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학교 측에서 예고한 대로 텔레포트를 통해 한 번에 네이그랑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화악-!

그렇게 밝은 빛이 시야를 덮쳤다.

휘오오오오오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꺄아아아아아아악!”

“이, 이게 뭐야아아악!”

“마법을 쓸 수 없잖아?”

1학년 전체가 비명을 내지르며 추락하고 있었다.

레오는 떨어지기 전 폐허가 된 네이그랑 도시 전체를 눈에 담았다.

‘도시 전체가 온갖 저주로 도배 되어 있군!’

이곳이 왜 버림받은 땅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주가 발동과 해제를 반복하고 있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지역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저주가 없는 지역은…….’

레오의 눈에 중앙에 있는 거대한 성이 보였다.

‘성터!’

화악-!

레오가 자세를 잡아 공기 저항을 최소화시키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단 성으로 가는 게 중요하겠군!’

지상에 다다랐을 무렵.

아티팩트에 내장된 부유 마법이 레오를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시켜 주었다.

타닥-!

레오가 자세를 잡았다.

폐허가 된 도시는 말 그대로 수풀이 잔뜩 우거져 있었다.

관리가 되지 않은 인간의 문명은 자연에 의해 허무하게 바스러져 있었다.

‘아직 이 지역은 저주가 발동되지 않았군. 그럼 재빨리 성으로…….’

“헉! 레오 플로브!”

뒤늦게 바닥에 착지한 마법학과 남학생이 레오를 발견하더니 흠칫했다.

“응? 넌?”

“뭐, 뭐야! 지금 나랑 싸울 거냐!”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짓는 남학생은 레오도 익히 알고 있었다.

‘이름이 제빈이었나.’

중간고사 직전까지 클로에에게 빌붙어있던 마법학과 학생이었다.

“딱히 당장 싸울 생각은 없는데?”

레오가 무시하자 긴장하던 제빈이 히죽 웃었다.

“그래? 근데 어쩌지? 난 널 잡을 건데!”

“뭐?”

제빈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더니 허공을 향해 마법을 쐈다.

키이잉! 펑-!

레오가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돌렸다.

“우리 학과뿐만 아니라 널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애들이 제법 많더라?”

비릿한 미소를 지은 제빈이 지팡이를 레오에게 겨누었다.

“그래서 마음이 맞는 애들끼리 모여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지. 너랑 만나면 힘을 합쳐 가장 먼저 쓰러트리자고.”

여기저기서 빠르게 기척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고! 협력도 전략 중 하나니까!”

“아니, 딱히 억울하진 않은데.”

레오가 피식 웃었다.

“뒷감당할 자신은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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