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9.
“여기도 허탕이군.”
네 번째 호수에 도착한 레오가 투덜거렸다.
루미너스가 잠든 호수를 찾아 헤맸지만 네 번 모두 허탕이었다.
‘성터에 있는 호숫가 마지막인가?’
이미 레오는 시가지 지역에서 몇 시간이나 허비를 한 상태였다.
그리고 시가지 지역을 돌아다니며 저주에 몇 번이나 걸렸다.
다른 학생들 같았으면 진즉에 탈락했을 만큼 다양한 저주에 걸린 레오였지만 매우 멀쩡했다.
‘다 아는 저주니까.’
레오는 주변에 발동된 또 다른 저주에 피식 웃었다.
전생에 저주란 저주는 지겹도록 경험한 레오였기에 온갖 저주의 해주 방법을 다 알고 있었다.
지금 저주는 신경계를 교란하는 저주였다.
‘이건 뭐 풀 필요도 없지.’
왼팔이 움직이면 오른발이 움직이고 오른팔을 움직이면 왼다리가 움직이는 저주.
신경계 저주는 매우 까다롭기에 까탈스러운 저주 중 하나지만 레오는 교란된 신경을 모두 파악하여 그에 맞춰 움직였다.
‘어차피 이런 저주는 시간만 지나면 알아서 풀리니까.’
비록 힘은 약해졌다고 해도 대영웅으로서의 경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여유롭게 저주에 대응한 레오는 성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슬슬 저쪽으로 가볼까? 다른 녀석들은 신나게 싸우고 있겠지?”
아마 대부분 학생은 이미 시가지 지역을 벗어나 성터 쪽에서 본격적인 학과대항전을 하고 있을 터였다.
“응?”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카로운 감각에 무언가 포착되었다.
‘광역 저주?’
레오가 미간을 좁혔다.
새로운 저주였다.
‘범위를 본다면 네이그랑 전체인데?’
몹시 강력한 엄청난 규모의 저주였다.
‘저주를 받은 건 땅 그 자체야.’
이상함을 느꼈다.
영웅 던전의 영향으로 네이그랑이 저주받은 땅이 된 건 이미 오래전의 일.
학생들을 괴롭히는 건 이미 기존에 걸려 있던 저주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새로운 저주라니. 게다가 이 저주는…….’
저주의 정체를 파악한 레오가 얼굴을 굳혔다.
‘단절의 저주.’
타르타로스가 대규모 전투에서 즐겨 쓰던 저주였다.
저주 자체는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효과는 외부와의 단절.
즉, 특정 지역 전체를 고립시키는 강력한 결계형 저주였다.
“젠장!”
루메른 내에 배신자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레오는 지금 사태를 단번에 이해했다.
‘빨리 다른 녀석들이랑 합류해야 해!’
레오가 오러를 일으키며 바닥을 박찼다.
콰앙-!
주변에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키며 레오가 성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그 무렵.
왕성에 있던 학생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했다.
학과대항전 중 탈락한 학생이 루메른으로 이동되지 않고 큰부상을 입었다.
성 주변에는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모여들었고 성 내부에는 마수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윈드 팽.”
크워어어어어어!
바람의 송곳이 무참하게 미노타우로스를 꿰뚫어 버렸다.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미노타우로스가 마구잡이로 배틀액스를 휘둘렀다.
“꺄아악?”
주변에서 미노타우로스를 막고 있던 기사학과 학생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걸 본 아바드가 주문을 외웠다.
“윈드 브레이커.”
콰가가가각! 쾅!
끄륵-!
칼날 바람에 휩쓸린 미노타우로스는 건물 벽에 처박히더니 단말마를 내지르고 즉사했다.
사아아아아!
“고, 고마워! 아바드!”
여학생이 얼굴을 붉히며 아바드에게 인사했다.
그런 여학생에게 손을 들어 준 아바드가 심각한 얼굴로 성벽 바깥을 바라보았다.
‘완전 이상 사태야. 학과대항전이 아니라 힘을 합쳐 수성 해야 할 지경이라고.’
하지만 이대로 성벽을 사수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마수는 성벽 내에서도 나타났다.
‘지금쯤 학교 측에서도 사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겠지만…… 외부와 통신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당장에 도움은 기대하기 어려워.’
아바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언제까지 버텨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전력은 너무 분산되어 있어.’
거기까지 생각한 아바드가 고개를 돌렸다.
폐허가 된 왕궁의 내성이 보였다.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내성은 입구가 하나뿐이다.
전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입구가 곧 출구이기에 도망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딜 가든 도망칠 곳은 없어.’
이 저주받은 땅에서 성을 버리는 순간 끝장이다.
‘지금은 전력을 집중시킬 때야.’
“모두 내성으로 가자.”
“뭐?”
“전력이 분산된 상태야. 한 곳으로 집결해야 해.”
“하, 하지만 아바드! 내성에서 수성하는 건 최후의 방법이잖아.”
“그건 일반적인 공성전일 때의 이야기야. 그리고 지금을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지.”
아바드가 지팡이를 치켜들어 내성 쪽을 향해 신호탄 마법을 쏘았다.
피잉-! 펑-!
내성 위에 밝은 빛이 터졌다.
“이러면 눈치가 빠른 애들은 내성으로 올 거야! 모두 최대한 침착하게 후퇴해!”
아바드의 말에 학생들이 내성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아바드는 최전방에 남아 학생들의 후퇴를 도우며 뒤로 물러섰다.
아바드의 생각대로 내성으로 향할 생각을 한 건 그뿐만 아니었다.
각 성문을 지키던 리더급의 학생들도 끝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쏘아진 아바드의 신호를 기점으로 남은 학생들 모두가 빠르게 내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모두 들어오자 내성 성문을 지키던 학생들이 다급히 성문을 틀어막았다.
끼이이이익-! 쿵!
“마법사들! 마법으로 성문을 보강해 줘!”
마법으로 성문이 단단하게 봉쇄됐다.
“방공망 형성해! 처음 보는 와이번 형태의 마수가 있었어!”
“기사학과 애들은 성벽 위를 사수해줘!”
아직 십 대 중반 소년 소녀들이지만 그들 모두가 영웅 후보생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빠르게 힘을 합쳐 수성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성벽 앞으로 학생들이 모였다.
“뭐야? 레오는 어디 있어?”
셀리아가 당황한 얼굴로 묻자 첸 시아가 말했다.
“레오 도령이라면 중앙이 아니라 외곽 지역으로 갔었어요.”
“왜 그쪽으로 간 거지?”
아바드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엘리자가 혀를 찼다.
“뭔가 자신만의 생각이 있겠죠.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탈락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얄미울 정도로 잘 도망 다니는 사람이니까요.”
그 말에 다른 학생들이 동의했다.
“그래도 걱정되네. 이곳에 합류하려면 저 몬스터 부대를 뚫어야 한다는 소린데.”
아바드의 중얼거림에 첼시가 말했다.
“걱정 마요, 오라버니. 레오 오빠는 알아서 잘 올 거예요.”
“맞아, 일단 레오 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상황 파악부터 하자. 일단 서로의 정보부터 공유하자.
셀리아의 말에 학생들은 각자 아는 정보를 공유했다.
정보를 공유한 후 쥬레든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결국 이상 사태로 네이그랑 한복판에 고립되었다는 거잖아? 게다가 몬스터와 마수들의 공격을 받고 있고.”
주변 학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기사학과 학생 한 명이 손을 들고 말했다.
“이상 사태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학교 차원에서 준비한 돌발 사태로 볼 수도 있지 않아?”
“이벤트 같은 거면 좋겠지! 하지만 단순히 학교 차원에서 준비한 돌발 상황이라고 보기에는 부상 당한 애들의 상태가 심각해! 원래라면 탈락자는 루메른으로 텔레포트 되어야 하는데 여기 있다고!”
힐러들을 돕고 온 칼이 소리쳤다.
전문적인 서포터 지망인 만큼 칼은 부상자에 대한 응급 치료 공부 역시 열심히 해 왔다.
칼의 말에 소환학과 여학생이 말했다.
“그것 역시 우리의 돌발 상황에 대한 대응 능력을 시험하는 거일 수도 있지 않나요? 사실 이번 학과대항전부터 이상했어요! 배틀 로얄 같은 걸 시키질 않나. 그리고 당일 날 갑자기 기말 시험이라고 하질 않나.”
그 말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외부 손님들도 잔뜩 왔잖아요? 그래서 준비한 이벤트일 확률이 높아요.”
“확실히 여기서 활약하면 여러 나라의 실권자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는 거지.”
그 말에 몇몇 학생들이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에 칼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너희들! 부상당한 애들 봤어?”
“안 봤는데요.”
“넬라가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를 애들이 한 둘이 아니야! 아무리 루메른이 예고 없이 사건을 터트려도 이렇게까진 안 해! 진지하게 좀 생각해!”
“뭐라고요?”
소환학과 여학생이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야! 실제 상황이든 학교에서 의도한 상황이든 심각한 건 맞아! 그러니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대응해야 해! 일단 작전이 우선이야.”
셀리아의 말을 듣고 클로에가 손을 들었다.
“일단 최대한 성벽의 이점을 살려서 수비하는 게…….”
“아니. 지금은 공격할 때라고 보는데.”
에미오가 클로에의 말을 잘랐다.
“모두 힘을 합치면 성에 모여든 몬스터와 마수들을 토벌할 수 있을 거야.”
“섣부르게 공격하는 건 절대 안 돼.”
클로에가 고개를 젓자 에미오가 발끈했다.
“어째서? 여기 틀어박혀서 방어만 하는 것보다는 그냥 먼저 쓸어 버리는 게 상황을 빨리 끝낼 수 있잖아? 너희 생각은 어때?”
몇몇 학생이 에미오의 말에 동의했다.
그 모습을 본 듀란이 비웃음을 날렸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못 한 상태에서 성벽의 이점을 버리면 교수들이 잘도 좋은 평가를 내리겠군.”
“맞아. 지금 상황에서는 공격보다는 수비가 올바른 선택이야.”
셀리아도 클로에의 의견에 동조하자 에미오가 이를 갈았다.
‘같은 반이라고 편드는 거야, 뭐야?’
에미오가 클로에를 노려보았다.
‘시험 과제나 베끼는 녀석이 나보다 뭐가 잘났다고! 연구만 하는 마법사는 전장에서 쓸모없어!’
마법학과에서는 클로에가 제대로만 했으면 에미오가 3등을 할 일은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조롱 섞인 이야기가 돌았다.
그래서 에미오는 클로에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은 수비하는데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일단 팀을 나눠서 역할을 분담해야 해.”
현재 부상자를 제외하고 전투가 가능한 학생은 모두 96명.
“다섯 개로 나뉘어서 성문과 성벽을 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너희 생각은 어때?”
셀리아의 말에 모든 이들이 동의했다.
“그럼 어릴 때부터 지휘 교육을 받아 온 학생 손 들어 봐.”
그 말에 셀리아를 포함한 네 사람이 손을 들었다.
네 사람 모두 영웅 명가의 사람으로 정식으로 지휘 교육을 받은 이들이었다.
“한 명이 비네. 혹시 조장할 사람.”
“내가 해볼게.”
“내가 하겠어.”
클로에와 에미오가 동시에 손을 들었다.
“손 내려라. 클로에.”
“실력은 클로에가 더 좋잖아.”
셀리아의 말에 에미오가 코웃음을 쳤다.
“클로에는 마탑 출신이야. 어려서부터 마탑에 틀어박혀서 공부만 클로에 보다 군인 집안 출신인 내가 지휘에 더 어울린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네가 조장을 해. 에미오.”
클로에가 웃으며 양보했다.
손을 든 건 지원자가 없기 때문이었기에 순순히 물러났다.
에미오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고 셀리아는 한숨을 쉬었다.
조장이 정해지자 조를 짰다.
수성 준비가 완료되자 셀리아가 얼굴로 당부했다.
“너희들 명심해. 우리 목적은 어디까지나 버티는 거지 절대 성벽 밖으로 나가서 몬스터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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