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01.
화르륵-! 치이이익-!
레오의 팔에 불타오르던 오러 불꽃이 꺼지고 연기가 치솟았다.
“키르안.”
레오의 말에 작은 소환진이 열리며 키르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휴! 이게 무슨 무식한 짓이야!]
키르안은 레오의 왼팔을 보며 질렸다는 표정을 짓더니 치유 마법을 외웠다.
은은한 은빛이 도는 치유의 빛이 화상을 입은 레오의 팔을 치료했다.
[레오! 요정 마법의 치유 마법은 만능이 아니야! 네 체력이 한계에 도달하면 효과가 없어!]
“알고 있어.”
팔을 회복한 레오는 가볍게 손목을 돌려보았다.
[그나저나 저게 기간테스야? 웩! 더럽게도 생겼군!]
키르안이 혀를 내밀며 대놓고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상위 환수인 요정에게 있어 기간테스는 말 그대로 상극이나 마찬가지인 마수였다.
기간테스의 등에 꽂힌 불꽃이 꺼졌다.
쿵-!
기간테스가 몸을 일으켰다.
크르르르-!
살기 어린 시선이 레오를 향했다.
기간테스가 입을 쩍 벌렸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
보라색 빛이 아른거렸다.
치이이이이이익-! 번쩍!
광선처럼 뿜어져 나온 브레스가 땅을 긁으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다.
레오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화악-! 보라색 브레스가 아슬아슬하게 레오를 스치고 지나갔다.
콰가가가가가강-!
브레스에 직격당한 곳이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궁-!
외성벽이 무너졌다.
‘한방이라도 스치면 끝이겠군.’
전율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레오는 덤덤히 오러를 일으켰다.
마치 실처럼 얇게 오러를 뿜어낸 레오가 그걸 주변 건물에 걸쳤다.
그리고 힘을 주어 뒤로 물러섰다.
마치 활에 걸린 화살 마냥 최대한 뒷걸음질 친 레오가 반발력이 최대치에 다다른 순간 다리에 준 힘을 풀었다.
화악-!
레오가 마치 화살처럼 기간테스를 향해 날아갔다.
워어어어어!
기간테스가 분노하여 주먹을 쥔 손을 치켜들었다.
그걸 본 레오가 몸을 회전시켰다.
카일의 오러 스킬, 볼텍스였다.
거기에 더해 제르딩거의 오러를 더하자 불꽃의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푸화하하학!
꺼어어어어어어!
참격과 불꽃으로 기간테스의 오른팔을 무참하게 베어 버린 레오가 그대로 내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콰득-!
내성벽 위에 착지하자 발바닥이 움푹 파고들어 갔다.
몸을 일으킨 레오는 기간테스를 향해 당당하게 서 있는 클로에를 보며 말했다.
“제법 그럴듯해졌잖아, 클로에.”
“뭐?”
“지금 모습. 마치 영웅 같아.”
“……!”
그 말에 클로에가 살짝 당황하며 뺨을 살짝 붉혔다.
“그, 그냥 누구 흉내 좀 내 본 것뿐이야.”
“그게 누구 흉내일까나?”
짓궂은 레오의 말에 클로에가 지팡이로 레오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야! 지금까지 어디 있었어!”
“좀 개인적인 볼 일이 있었거든.”
그워어어어어어어!
그때 레오에게 당한 팔을 회복한 기간테스가 포효를 내질렀다.
학생들이 흠칫했지만, 레오는 덤덤했다.
“냅둬. 저 괴물도 바보는 아니야. 지금 섣부르게 덤빈다면 자기도 위험하단 걸 알아.”
“뭐?”
“체력을 회복하려 할 거야.”
“체력을 어떻게 회복한다는 거야?”
클로에의 물음에 레오가 턱짓했다.
쩌억!
키아아아악!
크앙!
입을 벌린 기간테스가 도망치는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학생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오 오빠!”
“레오!”
첼시와 칼을 포함한 5반 학생들이 달려왔다.
“클로에! 레오! 여기 마나 포션.”
칼이 다급히 마나 포션을 건네자 레오와 클로에가 그걸 마셨다.
“상황은?”
레오가 묻자 칼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성에 들어온 이후로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단지…….”
칼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기간테스를 보았다.
“저 괴물 때문에 모두가 겁에 질렸어.”
“그럼 해결 방법은 간단하네. 저걸 쓰러트리는 거야.”
“뭐?”
태연한 레오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고 레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들 놀라? 당연한 거잖아.”
“아, 알아! 알고 있는데……!”
셀리아가 대답하며 이를 악물었다.
평소에 당당하던 셀리아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셀리아 뿐만 아니다.
대부분 학생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영웅 후보생이다 뭐다 해도 다들 결국에는 십 대 애들이니까.’
가공되지 않은 원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였다.
“또 다른 선택지는 있어.”
모두가 레오의 말에 집중했다.
“도망치는 거야. 저 괴물이 아무리 강력해도 백여 명이 한꺼번에 도망치면 다 잡지는 못하겠지.”
“그, 그렇지!”
“맞서 싸우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물론 여기 있는 대부분은 죽겠지만.”
레오의 말에 학생들이 숨을 들이켰다.
“흩어지는 순간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거야. 그걸 원하는 녀석은 가도 좋아. 안 말려.”
그 누구도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었다.
분위기가 무겁게 짓누르는 가운데 레오가 말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레오가 팔짱을 꼈다.
“너희 나한테 지휘를 맡겨 볼 생각 없어?”
“뭐?”
“쓰러트릴 거거든. 저 괴물을.”
모두가 아연실색하고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런 레오를 보며 첸 시아가 말했다.
“전 레오 도령의 말을 들어 볼래요.”
“나, 나도!”
첼시도 레오 곁으로 왔다.
클로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흥! 또 혼자 잘난 척이군요, 레오 플로브.”
엘리자가 코웃음을 쳤다.
“뭐, 그래도 도망치는 건 성미에 안 맞으니까요. 대신! 당신 다음으로 명령권을 가진 건 내가……!”
“잔말 말고 합류해라. 엘리자 헤르긴.”
“자, 잠깐! 워레든! 무례하게 무슨 짓이죠!”
워레든이 무표정한 얼굴로 엘리자를 레오 쪽으로 떠밀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워레든을 보았다.
평소에 개인플레이를 하는 걸로 유명한 워레든이 망설임 없이 레오의 말에 목숨을 거는 건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다.
동급생들이 놀라는 가운데 엘리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만불손한 당신이 어쩐 일로 남의 말에 따르는 건가요?”
“저 괴물을 쓰러트려야 하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쓰러트릴 자신이 없기 때문에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지. 나 역시 마찬가지고.”
워레든이 레오를 보았다.
“그렇다면 쓰러트릴 자신이 있는 녀석의 지휘를 따르는 게 옳지. 너 역시 그렇기 때문에 이 녀석에게 목숨을 건 게 아닌가?”
“흥. 헤르긴 가문으로서 저 증오스러운 마수를 보고 도망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엘리자가 표독스러운 눈으로 기간테스를 노려보았다.
듀란 역시 레오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지휘 실력을 기대 하겠다, 레오 플로브.”
“실망하지는 않을 거야.”
레오는 마지막으로 셀리아와 아바드를 보았다.
“입학시험 때랑 똑같군.”
아바드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도 넌 불가능한 싸움에 망설임 없이 임했지.”
비록 탈라투니아를 쓰러트린 건 셀리아와 아바드였지만 그 싸움의 승리를 이끌어 낸 건 레오였다.
“조금은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바드는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중얼거렸다.
“아직. 멀었군. 셀리아. 어차피 너도 그때와 같지?”
“시끄러, 버터.”
셀리아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레오가 하자는데 내가 거절할 리 없잖아.”
1학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멤버 전원이 힘을 뭉쳤다.
그걸 본 칼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저 멤버라면 쓰러트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앙숙처럼 으르렁거리던 1학년 최강들이 힘을 합하니 보이지 않는 길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우, 우리는?”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묻자 셀리아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저 괴물에게 유효타를 먹일 만한 학생은 우리 아홉 명뿐이니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줘.”
그 말에 학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진형은 어떻게 짤 생각이야?”
아바드의 물음에 레오가 진형을 짜고 작전을 이야기했다.
작전회의가 끝나고 각자 무장을 점검한 아홉 명의 학생이 성벽 위에 섰다.
레오가 성벽 난간에 발을 걸쳤다.
저벅-
“자, 그럼.”
기간테스를 전방에서 저지할 인원은 레오와 첸시아, 듀란, 워레든 이었다.
지속적인 데미지를 입히는 중앙 포지션 역할은 빠른 공격 속도와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셀리아와 아바드.
첼시와 엘리자는 전방과 중앙이 긴밀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포터를 맡았다.
그리고 마지막, 최후방 메인 딜러는 클로에가 맡았다.
레오는 아직까지 몬스터들을 유린하고 있는 기간테스를 보며 소리쳤다.
“가자!”
그 말에 전방의 네 사람이 일제히 달려 나갔다.
그워어?
몬스터를 씹어먹고 있던 기간테스의 붉은 안광이 네 사람을 향했다.
“첼시 르왈린. 나를 최대한 높이 띄워라.”
“뭐?”
갑작스러운 워레든의 말에 첼시가 당황했지만, 재빨리 마법을 이용해 워레든을 높은 상공에 띄웠다.
허공에 높이 뜬 워레든의 몸에서 강력한 영력이 뿜어져 나왔다.
쿠구구구-!
솟아오른 바위가 갑옷처럼 워레든의 몸을 감쌌다.
화악-!
마치 유성이라도 된 듯 워레든의 몸이 중력에 의해 엄청난 속도로 기간테스를 향해 내리꽂혔다.
콰앙!
그워어어어어어!
워레든의 몸이 기간테스의 머리에 꽂히자 기간테스가 괴성을 내지르며 휘청거렸다.
“정령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무모할 수가 있죠?! 아니! 그 전에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엘리자가 경악했다.
‘스피릿 아머드?’
레오는 워레든을 보며 감탄했다.
스피릿 아머드.
말 그대로 정령을 몸에 빙의시켜 정령의 힘을 육체에 담을 수 있는 상위 정령술이었다.
그걸 본 레오도 영력을 일으켰다.
‘키르안.’
[응.]
‘전위 네 사람에게 가호를 부탁해.’
[알았어.]
키르안이 눈을 감고 양팔을 벌렸다.
그와 함께 레오를 포함해 첸 시아, 듀란, 워레든에게 요정의 가호가 깃들었다.
요정은 생명의 힘을 가진 환수.
그리고 요정의 가호는 대상자에게 지치지 않는 체력을 부여한다.
요정의 가호가 깃들자 세 사람이 움찔하더니 레오를 보았다.
그들 모두가 몸이 가벼워진 걸 느꼈다.
[하하! 어떠냐! 애송이들! 페어리 프린스의 가호를 받을 걸 영광으로 알고 저 기분 나쁜 덩어리를 처리해…….]
레오는 어깨에서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는 키르안을 붙잡았다.
[왜?]
“정신 사나우니까 잠깐 물러나 있어.”
키르안을 떼어낸 레오는 다시 몸을 일으키는 기간테스를 보며 마력을 일으켰다.
콰악-!
땅을 박찬 레오가 기간테스를 향해 날아갔다.
그걸 본 기간테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워어어어어어!
거대한 팔뚝의 핏줄이 울컥 솟아났다.
기간테스가 흉악한 힘으로 팔을 휘둘렀다.
후웅-!
허공을 가르며 우악스러운 손바닥이 레오를 덮쳤다.
기간테스의 공격이 레오에게 닿기 직전.
우웅-!
레오의 몸이 수십 개로 나뉘었다.
신기루.
별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레오의 환영에 기간테스가 움찔했다.
레오가 검을 치켜들자 이내 수십 개의 오러 불꽃이 생겨났다.
수십 개의 오러 불꽃을 본 기간테스가 레오의 환영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팔을 휘둘렀다.
“어딜 보는 거냐. 덩어리.”
황금색 번개의 오러를 휘감은 듀란의 검이 한눈을 팔던 기간테스의 왼쪽 무릎을 그어 버렸다.
쿵-!
기간테스가 무릎 꿇었다.
거대한 거구가 꺾이자 얼굴이 지면에 가까워졌다.
그 순간.
그때 건물 지붕 위에 서 있던 셀리아와 기간테스가 눈이 마주쳤다.
화르르륵!
홍염이 셀리아의 검 끝에 어렸다.
제르딩거의 화염을 극한까지 일으킨 셀리아의 등에 날개 형상의 불꽃이 생성되었다.
슥-!
셀리아가 찌르기 자세를 취하자 불꽃이 검 끝으로 빨려 들어갔다.
‘프로미넌스!’
번쩍-! 콰각-!
홍염이 기간테스의 머리를 꿰뚫었다.
머리가 반쯤 날아간 기간테스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셀리아가 코웃음을 치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우득! 우드드득!
그러나 재생되기 시작하는 머리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기간테스의 가공할 만한 생명력은 머리가 반쯤 날아갔음에도 건재했다.
셀리아가 빠르게 오러 스텝을 밟아 기간테스의 공격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콰가가각-!
기간테스가 거칠게 팔을 휘두르자 셀리아가 서 있던 자리가 초토화되었다.
그걸 본 1학년들은 생각했다.
‘쓰러트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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