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105.
“네가 올 클래스의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저도 학교에 가서 알았어요, 아버지.”
저녁 만찬에서 아버지, 데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며 태연하게 말했다.
“내 아들이지만. 참 어쩌다 이런 무지막지한 애가 나왔는지.”
레이나도 혀를 내둘렀다.
아들에게서 천재적인 기사의 자질을 꿰뚫어 봤던 레이나도 설마하니 레오가 올 클래스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귀를 의심했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즐기며 레오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두 사람에게 말해주었다.
“그리운 이름이 많네.”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레이나가 환하게 웃었다.
“아인, 걘 여전히 무뚝뚝해?”
“아인 교수님을 아세요?”
“응. 내 동기인걸?”
태연하게 말하는 레이나를 레오가 감탄했다.
“생각해보니 두 분 동갑이군요.”
“응. 그나저나 아인이라…… 킥킥.”
“왜 웃으세요.”
“아니. 2학기 때 학부모 참관 행사 때 만나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아니다! 당장 할린드 교수님이 이번 방학 중에 온다고 하셨지? 놀려 드려야지!”
학창 시절로 돌아간 레이나가 소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즐거워했다.
“할린드 교수님을요? 옛날 제자들도 주눅 들어서 꼼짝도 못 하는데 함부로 놀려도 돼요?”
“응? 왜 주눅이 들어? 할린드 교수님이 얼마나 친절하신데.”
“…….”
루메른의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할린드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친절’ 이라는 단어에 레오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레오야 할린드 앞에서 주눅 들일이 없다만 레오 빼고 다른 1학년은 할린드 앞에서 벌벌 떨었다.
아니, 다른 고학년이나 교수들도 떤다.
‘뒷감당은 알아서 하시겠지, 뭐.’
레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오랜만에 먹는 집밥을 즐겼다.
데이드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피리나씨도 만났어요.”
“응? 피리나?”
레이나가 깜짝 놀랐다.
“피리나가 왜 루메른에 있어?”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래요.”
“그래?”
“그리고 저 피리나씨의 딸이랑 계약을 맺었어요.”
레이나가 입을 쩍 벌렸다.
“뭐? 피닉스랑 계약했다고?”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기에 레이나와 데이드는 깜짝 놀랐다.
그 반응을 보며 레오는 영력을 일으켜 소환진을 그렸다.
잠시 후 소환진을 넘어 본체 모습을 한 피오라가 넘어왔다.
삐약?
“어머나? 귀여운 아기새네. 이리 온?”
레이나가 감탄사를 터트리며 손짓했다.
피오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별 의심 없이 레이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레이나 앞의 스테이크를 쪼아먹었다.
그 모습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레이나가 레오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너랑 계약한 피닉스는 어디 있니?”
삐약! 삐약!
피리나가 항의하듯 날개를 활짝 펼치며 지저귀었다.
그걸 보고 레오가 덤덤하게 말했다.
“걔가 피닉스에요.”
그 말에 피오라가 우아하게 날개를 접고 턱을 치켜들었다.
“……병아린데?”
뺙-!
그리고 불만스럽게 항의했다.
“피닉스 맞아요. 이름은 피오라에요.”
“그렇군.”
레오의 말에 레이나가 납득 하자 피오라가 다시 우아한 몸짓으로 인사하듯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피리나의 딸은 엘런의 딸이랑 계약하는 거 아니었어?”
“어쩌다 보니 계약했어요. 룬드아의 후계자랑도 만나서 벌써 이야기를 끝냈고요.”
“엘런의 딸을? 아아! 수학여행에서 만난 모양이구나?”
놀라던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참. 너도 정말 한 학기를 정신없이 보냈구나.”
“루메른은 원래 이런 거 아니에요?”
“아무리 루메른이 빡세도 너처럼 스펙터클한 한 학기를 보내기는 쉽지 않거든?”
루메른 출신의 레이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어쨌든 학기 동안 힘들었을 테니 방학 때는 푹 쉬렴.”
식사가 끝나고 다과까지 즐기며 오랜만에 아들과 긴 대화를 나눈 레이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에 돌아왔다.
씻고 잘 준비를 끝내고 방에 온 데이드는 책상 앞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보고 있는 레이나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학창 시절 앨범.”
데이드가 부드럽게 웃으며 레이나 곁에 앉았다.
“드디어 볼 마음이 생긴 거야?”
“응. 레오의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그리워지네.”
불의의 사고로 불꽃을 잃은 레이나.
태연하게 웃고 있었지만 루메른을 포함해 제르딩거로서 활약하던 시절은 레이나에게 있어 아픈 상처나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최대한 그때 시절을 떠올릴만한 것들은 자제하고 살았다.
데이드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레이나에게 과거를 떠올릴만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어때? 내 십 대 시절 모습?”
“아름답군.”
“지금보다 더?”
“아니 지금만큼이나.”
“잘 피해가네?”
레이나가 쿡쿡 웃으며 앨범을 넘겼다.
데이드는 앨범에 있는 다른 종족들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다른 영웅 사관 학교 학생들인가?”
“응. 이쪽 엘프가 앨런, 여기 수인이 베르가. 드워프는 잭이야.”
그 이름을 듣고 데이드가 혀를 내둘렀다.
전부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영웅이거나 그에 준하는 명성 높은 실력자들이었다.
“듣자 하니 수인 영웅 사관 학교 아조니아는 다른 학교들과 달리 여름에 입학식을 한다고 했던가?”
“맞아. 걔들은 가장 더울 때 입학식을 해.”
“이유라도 있는 건가?”
“응. 아조니아는 입학식은 가장 힘든 걸로 유명하거든.”
수인 영웅 사관 학교, 아조니아의 입학식은 무척 독특했다.
다름 아닌 사막 횡단 마라톤이었기 때문이다.
“뭐, 말이 입학식이고 사실 최종 입학시험이야.”
“최종 입학시험?”
“응. 아조니아는 다른 학교들이 입학식을 치르는 시즌에 자유 강의를 열어.”
“자유 강의?”
“응. 열다섯 살이 되면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어. 다른 종족이 가도 괜찮아. 원하기만 하면 강의를 들을 수 있어. 그래서 의외로 아조니아 학생 중에 인간이나 드워프 학생들도 있어.”
“엘프는?”
“엘프는 아조니아 교풍에 질색해서 절대 안 갈걸?”
레이나가 턱을 괴었다.
“어쨌든 그렇게 공부하다가 중간중간 시험을 치지. 그리고 통과한 애들만 계속 수업을 들을 수 있어. 그렇게 최종적으로 여름까지 살아남은 학생에게는 입학식을 치를 기회가 주어지는 거야. 그리고 마라톤을 완주하면 정식으로 아조니아의 학생이 되지. 그래서 입학식을 최종 입학시험이라고도 말하는 거야.”
“특이하군.”
“독특하지? 뭐, 자기 학교에 맞는 인재를 선별하는 시험인 셈이지.”
“모두 공평하게 자유 강의를 들어야 하는 건가?”
“아니. 영웅 명가 학생들이나 추천장을 받은 학생은 자유강의를 건너뛰고 추천으로 입학식을 치를 수 있어. 물론 추천이라도 입학식에서 떨어지면 입학이 불가능하지만.”
“그렇군.”
“어쨌든 추천으로 선정되면 예비 아조니아 학생이니까 입학식에 참가할 수 있…….”
팔락-!
앨범을 넘기던 레이나가 멈칫했다.
넘긴 페이지에는 사진 대신 편지 봉투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의아한 얼굴로 편지 봉투를 꺼낸 레이나가 뒤를 보았다.
그리고 봉인지에 찍힌 밀랍 인장을 확인하고는 ‘아!’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왜 그래?”
레이나가 볼을 긁적였다.
“옛날에 아조니아 입학 추천서를 받은 걸 깜빡했어.”
“뭐?”
데이드가 깜짝 놀랐다.
“아조니아 아카데미의 던전 공략을 도와준 적이 있었거든. 그때 혹시 자식이 생기면 입학시킬 생각 없냐고 권유를 받았었어. 거절하긴 했는데. 억지로 떠넘겨서 얼떨결에 받아 버렸어.”
수인은 강함을 숭상하는 종족이었다.
그런 만큼 뛰어난 무력을 지닌 무인을 적극적으로 아카데미에 받아들이려 하는 경향이 강했다.
당시에 레이나의 힘을 본 아조니아에서는 그녀의 강함에 경의를 표하고 추천서를 건넸다.
“뭐, 20년도 정도 된 이야기지만.”
“그럼 상관없잖아? 그들도 추천서를 준 걸 깜빡했을 텐데.”
“으응~ 그렇겠지?”
레이나는 태연하게 앨범 사이에 추천서를 끼워 넣었다.
“어쨌든 오늘은 이만 자도록 하자, 레이나.”
“응.”
데이드와 레이나는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덮고 천장을 바라보던 레이나는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 연회 때 술 먹고 기분 좋아져서 베르가에게 추천서를 받을 때 정령이랑 계약 비슷한 걸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계약서를 쓸 때 피를 떨어뜨렸던 게 생각났다.
찝찝함을 느끼던 레이나가 피식 웃었다.
‘에이, 레오는 이미 루메른 학생인데, 뭐. 무슨 일 있으려고.’
***
집에 돌아온 레오는 느긋한 방학 생활을 보냈다.
물론 꾸준히 숙제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레오의 경우 학과별로 하나씩.
숙제가 무려 세 개나 되었기에 다른 학생들보다 숙제량이 엄청났다.
하지만 별문제 없이 숙제를 해 나갔다.
그러는 와중에 주변 귀족가에서는 계속해서 레오를 파티에 초대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중에는 아예 레오를 만나러 저택에 오는 이들도 있었다.
‘델란 왕립 학교에 다닐 때는 신경도 안 쓰더니. 간사한 인간들.’
쯧쯧- 혀를 차며 레오는 초대를 거절했다.
그런 자리에 가봤자 귀찮은 일만 생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족들에게만 편지가 오는 게 아니었다.
“아들! 아들!”
“왜요.”
“여기 클로에, 첸 시아, 넬라, 일리아나라는 애는 어떤 아이들이니! 이름 보니까 여자애들 같은데?”
아침 식사 자리에서 레오 앞에 온 편지를 대신 받은 레이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델라드로 오는 편지들은 직송편이 없었기에 로드렌을 한번 거쳐서 온다.
그래서 다른 지방에 있는 친구들의 편지가 한꺼번에 배달을 온 것이다.
레이나는 ‘우리 아들이 이렇게 인기가 많다니!’ 라며 즐거워했다.
칼과 테이드를 포함한 친하게 지냈던 남학생들의 편지도 있었지만 레이나는 거기에는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애들 이야기는 안 물으세요?”
“남자 이야기 따위는 관심 없어.”
지극히 아들의 연애사에만 관심 있는 어머니를 보며 레오가 한숨을 쉴 때였다.
“마님.”
“무슨 일이야?”
하녀 한 명이 허둥지둥 다가왔다.
“마님과 도련님께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 귀족 손님이면 바쁘다고 거절해.”
“그게.”
하녀가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조니아 아카데미에서 왔다고 합니다.”
“아조니아?”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나는 끄응-! 하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일단 들어오라고 해.”
“예.”
깊게 한숨을 쉬는 레이나를 보며 레오가 물었다.
“아조니아에서 어머니랑 저를 왜 찾아요?”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그 말에 레오가 미간을 좁힐 때였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이 더운 여름날에 로브를 깊게 눌러 쓴 사람이었다.
그걸 본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령?’
[레이나 제르딩거님 되시죠?]
“지금은 제르딩거가 아니긴 한데. 일단 레이나인건 맞아.”
[안녕하세요, 저는 아조니아의 심부름꾼 정령입니다.]
정령은 정중하게 고개를 조아리며 두루마리 양피지를 건넸다.
그걸 펼쳐 본 레이나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레오에게 건넸다.
양피지를 확인한 레오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축하드립니다, 레이나 제르딩거님. 귀하의 자녀분께서 아조니아 추천 입학 후보생에 선정되셨습니다.]
양피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이틀 뒤에 남부 지방의 해양 거대 도시, 아즈렉에서 열리는 아조니아의 입학식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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