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107.
“올해도 기운찬 녀석들이 많군.”
고양이 귀와 꼬리를 가진 수인, 베르가는 서류를 확인하고 말했다.
보통 캣 일족이라고 한다면 선이 가는 미형의 수인족이었다.
하지만 베르가는 달랐다.
키는 2m에 달했으며 몸집 역시 크고 우락부락했다.
고양이 수인이 아니라 곰 수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크기였다.
얼굴 역시 매우 험악했으며 왼쪽 눈의 흉터는 그 인상을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다, 당장 그놈들을 엄벌하겠습니다! 베르가 교관님!”
입학 후보생들 사이에서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고 하고 온 고양이 수인 부교관, 알제야가 귀와 꼬리를 바짝 세우며 힘껏 외쳤다.
베르가는 학생뿐만 아니라 부교관들 사이에서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왜 벌을 내려야 하지?”
“네?”
베르가 튠.
3년 전 아조니아의 요청으로 교관이 된 그는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영웅이었다.
그는 교육에서 오직 하나의 가치만을 추구했다.
강함.
그렇기에 수많은 아조니아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남자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베르가가 창가로 다가갔다.
벌컥-!
와아아아아아아-!
창문을 열자 방음 마법으로 차단되어 있던 함성이 쏟아져 들어 왔다.
그걸 들으며 베르가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투쟁이야말로 우리 아조니아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다!”
베르가의 말에 알제야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베르가 교관님! 아조니아에 가장 어울리는 교관!’
콜로세움에는 관중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입학 후보생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잠시 후, 투기장에 쇠창살이 열리더니 타르타로스의 마수, 맘모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조니아에서 생포한 마수였다.
입학 후보생들은 맘모스를 보더니 빠르게 산개했다.
그리고 각자의 무기를 들고 맘모스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기술을 뽐내며 맘모스를 몰아붙였다.
화려한 기술이 터질 때마다 관중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쿠웅-!
이윽고 맘모스가 쓰러지는 걸 본 베르가가 물었다.
“얼마 만에 쓰러트렸지?”
“36분이 걸렸습니다!”
“지금 열 명의 자유 강의 성적은?”
“모두 중상위권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군.”
“네? 36분이면 준수한 성적인데요?”
“흥. 그건 일반적일 때의 이야기다. 알제야 부교관. 그대 역시 이번 루메른 1학년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나?”
베르가의 말에 알제야가 입을 다물었다.
루메른 1학년들이 기간테스 레이드에 성공했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슈였다.
아마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루메른이라고 해도 쉽게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터무니없는 대사건이었다.
“게다가 세이룬 역시 만만치 않지. 특히 엘런 놈의 딸, 루니아라고 했던가? 몹시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
오랫동안 경쟁해온 같은 세대의 엘프 영웅을 떠올리며 베르가가 콧방귀를 꼈다.
“그런 만큼 이번 우리 신입생들도 뛰어난 녀석들이 많아야 해!”
종족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영웅 사관 학교들은 서로에게 강한 경쟁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베르가의 말을 듣고 알제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 세대는 루메른이 앞서가는 분위기는 하죠! 하지만 우리 후보생들도 화려해요! 특히 이번에는!”
와아아아아아-!
“베르가 교관님의 따님도 참석하잖습니까!”
알제야의 말에 베르가가 콧방귀를 끼었다.
“당연하지!”
베르가가 보기에도 자신의 딸, 아르는 자신의 뛰어넘는 자질을 가진 무인이었다.
‘저 아이라면 학년 대표 정도는 너끈하겠지!’
딸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던 베르가의 눈에 맨 마지막에 들어오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토끼 수인 소년이 들어왔다.
그 소년을 보는 순간, 베르가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교관님?”
“알제야여. 맨 마지막에 혼혈 소년에 대해 아는 게 있나?”
“네? 음…… 처음 보는 얼굴인데요?”
알제야가 당황한 얼굴로 입학 후보생 명단을 뒤져 보았다.
이미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후보생들의 얼굴과 이름은 파악해두었다.
알제야가 모르는 학생이라면 별로 주목받지 않는 하위권이거나 입학 추천밖에 없었다.
알제야가 다급히 명단을 뒤지는 가운데.
베르가는 소년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눈 레이나와 닮았어!’
학창 시절.
루메른의 학년 대표이자 자신이 목표로 삼았던 여인을 떠올리며 베르가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레이나는 아조니아 입학의 추천서를 받았었군.’
잊었던 옛날 일을 떠올린 베르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정말 레이나의 아들인가?!’
***
“와아아아!”
“기대하고 있겠어!”
“멋진 모습을 보여줘!”
투기장에 들어온 레오는 환호성을 내지르는 수인들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벽에 기댄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입학식 중 하나인가? 아조니아 입학식은 사막 횡단 마라톤만 하는 거 아니었어?’’
다른 후보생을 바라보니 그들은 관중들 앞에서 자신을 뽐내기 바빴다.
무기를 보여주고 화려하게 휘두르는 이가 있는가 하며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을 보여주며 힘자랑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 가운데 낯익은 얼굴로 있었다.
‘아까 나한테 시비 걸었던 놈들도 있군.’
아까 전 시비가 붙은 수인 세 명이 힘자랑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아는 얼굴이 있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관중들의 탄성을 이끌어 내고 있는 고양이 소녀, 아르였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아르는 벽에 기댄 레오를 발견하고는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같은 조가 됐네?!”
“이것도 아조니아의 입학식이야?”
“응 무슨 소리야?”
“입학식은 사막 횡단 마라톤만 있는 거 아니었어?”
레오의 말을 듣고 아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입학식이 아니야! 마수 카니발이라고!”
“마수 카니발?”
“마수 카니발을 몰라? 너 정말 수인 맞아?”
“난 혼혈이라 주로 인간 사회에서 살았거든. 그래서 수인 문화에 대해서 잘 몰라.”
“아조니아의 입학식은 단순한 입학식이 아니야!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지.”
“고양이 누나! 멋진 모습 기대할게요!”
남자아이가 힘차게 응원하자 훗-! 하고 웃은 아르가 주먹을 말아 쥐고 벽을 향해 내질렀다.
콰앙-!
“와아아아-!”
“저 여자애, 장난 아닌데?”
“튠 가문의 후계자래!”
“역시!”
주먹으로 벽을 박살 낸 아르를 보며 관중들이 더 큰 환성을 내질렀다.
“매년 엄청난 수의 수인들이 입학식을 보기 위해 아즈렉을 방문하지! 이건 그 방문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축제 중 하나야!”
후두두둑-!
“그리고 저들에게는 축제지만 우리 입학 후보생들에게는 의식이기도 해!”
“의식?”
“그래! 타르타로스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이 입학식에서 동족들에게 외치는 거야!”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쫙-! 편 아르가 당당하게 소리쳤다.
“‘우리가 왔다!’ 고!”
“호오?”
레오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때 쿵-! 쿵-!
지축이 울렸다.
관중들에게 자신을 뽐내던 후보생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아르도 훗-! 웃으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쿠구구구궁! 철컹-!
크워어어어!
쇠창살이 열리고 주황색 피부를 가진 3m 크기의 마수가 튀어나왔다.
“퀴클롭스! 재미있겠네!”
호전적인 미소를 지은 아르는 레오의 코를 눌렀다.
“뿝! 아까처럼 겁먹지 말고 어디 잘 싸워봐! 검은 토끼!”
한쪽 눈을 찡긋한 아르가 퀴클롭스에게 돌진했다.
“우리가 왔다, 라.”
레오가 피식 미소 지었다.
‘난 눈에 뜨일 필요가 없으니 뒤로 빠져서 아조니아 입학 후보생들 실력이나 구경해 볼까?’
입학식이 아니라면 굳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레오가 아조니아의 입학식에 참석한 이유는 다른 종족의 영웅 후보생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아르온의 기술을 이을만한 녀석도 찾아야 하고.’
레오의 목적은 에레보스의 완전한 소멸이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동료가 필요했다.
분명 카일은 최후의 대영웅으로서 에레보스 토벌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건 동료들이 남긴 힘의 정수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그 당시에도 에레보스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봉인하는 게 최선이었다.
아무리 레오가 카일 시절의 힘을 되찾는다 해도 혼자서 에레보스를 완벽히 소멸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새로운 대영웅들이 필요해.’
그러기 위해서는 레오가 알고 있는 친구들의 힘을 이어 받을만한 이들이 필요했다.
어떤 의미에서 레오는 대영웅‘들’ 그 자체이니 말이다.
레오는 아홉 명의 아조니아 입학 후보생들이 퀴클롭스와 전투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찬찬히 아조니아 입학 후보생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레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력은 루메른 애들과 대등하네.’
지난 반년 동안 아조니아에서 실시한 자유 강의에서 살아남은 이들이다.
실질적으로 루메른 1학년들과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아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쟤는 확실히 수준이 달라.’
레오가 눈을 빛냈다.
날카로운 손톱 끝에 오러를 담아 퀴클롭스를 베어냈다.
‘아직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군.’
아르는 혼자서도 퀴클롭스를 상대할 만한 실력자였다.
거기에 수적 우위까지 있으니 거의 가지고 노는 수준이었다.
손을 휘두를 때마다 단단한 퀴클롭스의 피부가 난자당했다.
뼈가 잘리지는 않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상급 마수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레오가 느긋하게 싸움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휘익-!
무언가 레오 쪽으로 날아왔다.
고개를 돌리니 관중들 사이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넌 뭐야!”
“다른 애들은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왜 너만 구경하고 있어!”
“이 겁쟁이 토끼 자식아!”
아홉 명 전부가 퀴클롭스를 상대하기 바쁜데 레오 혼자 멀뚱히 쳐다보고 있으니 관중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강함을 추구하는 수인은 그 누구보다도 비겁함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레오가 머리를 긁적일 때였다.
구오오오오!
갑자기 퀴클롭스가 레오를 향해 돌격했다.
레오 앞에 도달한 퀴클롭스가 굵은 손바닥을 치켜들었다.
그걸 본 레오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오러를 일으켰다.
***
‘저 토끼 자식!’
째릿-!
최전방에 선 아르는 뒤에 있는 레오를 노려보았다.
그건 다른 입학 후보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눈에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태연하게 싸움 구경을 하는 레오의 모습이 곱게 비칠 리 만무했다.
‘완전 실망이야!’
레오가 꽤 마음에 들었던 아르는 고양이 귀를 축 늘어트렸다.
다른 후보생들 역시 레오가 아니꼬운 건 마찬가지였다.
“저 겁쟁이 자식! 마음에 안 들어!”
“아주 혼꾸멍을 내주자고!”
몇몇 수인들이 악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무방비 상태로 구경하는 레오를 향해 퀴클롭스를 강제로 떠밀었다.
아홉 명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사냥당하던 퀴클립스는 혼자 있는 레오를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돌격했다.
고오오오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퀴클롭스의 눈에 진한 살기가 어렸다.
화악-!
레오 앞에 도달한 퀴클롭스가 손을 치켜들었다.
그걸 본 아르가 다급히 도약했다.
‘뭐야? 피하든지 반격하든지 해! 안 그러면 다친…….’
퍼엉-!
관중들과 다른 입학 후보생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레오가 주먹을 휘두르자 퀴클롭스의 팔이 뭉개지다 못해 터져 버렸다.
단 한 방에 퀴클롭스를 즉사시킨 레오의 모습은 가히 전율스러움 그 자체였다.
“오오오오……!”
“우와아아아아아아!”
찢을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르 역시 눈을 부릅떴다.
레오가 단 일격에 퀴클롭스를 쓰러트렸기 때문이 아니다.
저 정도는 아르도 할 수 있으니 놀랄 건 없다.
그녀가 놀란 이유.
‘방금……!’
그건 레오와 정면에 있었던 아르만 발견할 수 있었던 레오의 몸에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다.
아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오른쪽 눈을 가린 레오를 바라봤다.
‘분명해…… 방금 저 녀석, 수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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