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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09화 (109/483)

【109】108.

관중들은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준 레오에게 환호성을 보냈다.

‘눈에 띌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야.’

몸에 묻은 피를 보며 레오가 한숨을 쉬었다.

조금 전 퀴클롭스가 터져 죽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피와 살점을 뒤집어쓴 것이다.

레오는 환호성을 받으며 진행자들의 안내를 받아 투기장을 떠났다.

안내된 곳은 콜로세움 내의 대기실이었다.

들어가니 먼저 마수 카니발을 끝낸 입학 후보생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피를 뒤집어쓴 레오를 발견하고는 뚝- 멈추었다.

이들 모두가 먼저 마수 카니발을 끝내고 경쟁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만큼 방금 전 레오의 활약상을 본 것이다.

모두가 경계 어린 눈으로 레오를 보았다.

아조니아 후보생들 입장에서 레오는 강력한 경쟁자였다.

“어디 씻을 곳 없어요?”

레오에게 안내해 준 진행 요원이 말했다.

“방에 가면 씻을 수 있습니다.”

“방은 어디로 가면 되나요?”

“방에 가기 전 입학 후보생들은 이번 입학식을 주관하는 교관님의 말씀을 듣고 가야 합니다.”

‘이대로는 눈에 띌 것 같은데.’

레오만큼 화려하게 피칠갑을 한 이들도 없었기에 레오의 지금 모습은 더욱 눈에 띄었다.

‘그냥 조용히 구석에 있어야겠군.’

레오는 드넓은 대기실의 구석에 가서 혼자 앉았다.

‘그나저나, 수화라니. 생각도 못 했네.’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손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의외인데, 폴리모프로 수화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니.’

지금은 [용자의 숨결]이라 불리는 아르온의 호흡법.

물론 아르온이 사용했던 ‘원본’ 과는 많이 다르기에 자유로운 수화 능력은 사라졌다.

그런데 폴리모프한 레오가 그 수화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뭐, 나 같은 경우에는 신체의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폴리모프는 겉모습을 바꾸는 마법이지 근본을 바꾸는 마법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혼혈 수인이고 숨결로 수화 능력을 발동시켰다지만 레오는 어쩔 수 없는 인간.

수화가 된 건 겉모습뿐, 레오의 육체가 강화된 건 아니다.

그렇기에 아르온의 숨결을 극한으로 끌어낼 때의 후유증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었다.

레오가 용자의 숨결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아르는 멀리서 레오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본 게 아니야!’

투기장에서 찰나의 순간 레오의 수화를 봤던 아르로서는 계속해서 레오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수인들은 오랫동안 수화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해왔다.

수화는 수인 종족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자유자재로 수화를 하는 건 수인의 가장 큰 염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역사상 그것이 가능했던 수인은 단 한 명뿐.

‘[용자] 아르온님!’

아르가 귀와 꼬리를 쫑긋 세우고 고양이 눈을 했다.

‘그런 아르온님 조차도 자유자재로 수화했다는 건 문헌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으셔!’

현재 남아 있는 아르온의 히어로 레코드 중에 ‘전투’에 관한 히어로 레코드는 없다.

그렇다 보니 아르온이 정말 자유자재로 수화를 했다는 사실은 문헌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걸 두고 수인들 사이에서도 진짜이다, 가짜이다 의견이 갈리는 상황.

물론 아르는 아르온이 자유자재로 수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아르온님이 못하는 건 없으실 테니까!’

어릴 때부터 아르온의 영웅담을 들어온 소녀에게 아르온은 못하는 게 없는 대영웅이었다.

그 이름조차도 아르온게서 따왔으니 말이다.

‘한 번 물어봐야겠어!’

아르는 대기실 구석에 앉아 있는 레오에게 다가갔다.

“검은 토끼,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어이.”

하지만 아르보다 먼저 레오에게 접근한 이가 있었다.

자신 앞에 온 이를 보며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키가 180cm가 훌쩍 넘어 보이는 근육질의 늑대 수인 소년이 레오를 내려다보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제법이던데?”

소년은 레오를 품평하듯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냥 구석에 박혀 있길래 영락없는 겁쟁이인 줄 알았는데. 인상 깊었어.”

회색 머리카락에 야성적인 황금색 눈을 가진 소년은 호전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디온 덴이다, 넌?”

“카일.”

“카일? 시작의 영웅과 같은 이름이라니. 특이하군.”

“나한테 무슨 볼일이야?”

“뭐, 간단한 이야기야. 약해 빠진 녀석들만 있을까 싶어서 걱정했는데 너만 한 실력자도 있으니 안심이라고 할까?”

크큭-! 웃은 디온이 눈을 번뜩였다.

“덕분에 시시한 학교생활은 되지 않을 것 같아.”

“근육 바보. 또 헛소리하고 있군.”

팔짱을 낀 아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뭐야? 아르잖아.”

디온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 봐도 빈약하기 짝이 없는 몸이군.”

“흥! 필요 이상으로 근육을 늘릴 필요는 없어. 봐, 이 유연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그래. 언제나처럼 볼품없어.”

“누구 보고 볼품없다고 하는 거야!”

“소꿉친구인 너한텐 큰 흥미 없어. 네 강함만큼은 잘 알고 있으니까. 나는 새로운 강자들과 경쟁해보고 싶거든.”

히죽 웃는 늑대 수인 소년은 강함을 추구하는 지극히 수인 다운 수인이었다.

“그럼 나 다음에 실컷 이야기 나누셔! 나도 검은 토끼에게 볼 일이 있으니까!”

“나한테?”

“그래! 너에게 물어볼 게 있어!”

“뭔데?”

“너!”

“잠깐!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나 다음에 해.”

“웃기지 마, 새치기 따윈 사절이야!”

“내가 얘랑 더 먼저 알았거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순서 지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두 수인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사이가 좋네.”

“이런 싸움밖에 모르는 똥개랑 안 친하거든?!”

“이런 바보 같은 고양이랑 친할 것 같아?!”

“모두 집합해라.”

대기실에 누군가 들어와 입학 후보생들을 모았다.

“집합부터 하자.”

레오가 집합하러 가자 이야기할 타이밍을 놓친 아르는 디온을 걷어찼다.

“너 때문에 이야기할 기회를 놓쳤잖아! 아무튼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흠! 강자다운 여유를 가지고 있다니! 더더욱 마음에 드는군!”

“무시하냐!”

“학기가 시작되면 세계는 루메른이 아닌 우리를 주목하게 될 거다!”

“무시하지 마!”

자신의 말을 귓등으로 안 듣는 디온의 등을 힘껏 때렸다.

“네 손만 아플 텐데.”

실제로 맨손으로 때려봤자 단단한 근육 때문에 손만 아팠다.

비웃는 디온을 보며 아르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손톱을 세웠다.

얼굴을 구긴 디온이 아르의 손목을 잡고 공격을 막았다.

“이 망할 고양이가!”

“뭐! 이 망할 늑대야!”

도끼눈을 뜬 아르는 발로 디온의 얼굴을 마구 밀어댔다.

“거기! 집합 안 하고 뭘 하나!”

결국 둘은 부교관에게 한 소리 듣고 말았다.

***

마수 카니발이 끝난 이후.

입학 후보생들은 내일 있을 사막 횡단 마라톤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게 되었다.

룰은 간단했다.

아즈렉에서 출발하여 대사막을 횡단하고 사막 한가운데 있는 아조니아에 도착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입학의 조건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몹시 간단했다.

그러나 아조니아와 아즈렉 사이의 사막을 건너는 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즈렉 대사막은 대륙에서 가장 혹독한 지역 중 한 곳이다.”

대기실에 사막 횡단 마라톤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남자, 베르가를 입학 후보생들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수인 영웅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남자.

불과 얼마 전까지 최전선에서 활약한 말 그대로 강대한 영웅이었다.

“그러니 너희에게 충고 하나만 해주겠다.”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고 베르가를 보았다.

“만용과 용기를 착각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도록.”

그 말에 학생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몇몇 이들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겨우 자유 강의를 뚫었는데 포기하라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루메른처럼 아조니아에도 입학 가능한 연령 제한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그 연령 제한을 가득 채운 재수생들도 많았다.

그런 그들에게 ‘포기’ 하라는 말은 영웅의 꿈을 접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입학 추천자들은 앞으로 나와라.”

그 말에 다섯 명의 소년, 소녀들이 앞으로 나섰다.

자유 강의를 통과한 학생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우리는 힘들게 자유 강의를 뚫었는데! 저 녀석들은……!’

자유 강의를 통과하여 이 자리에 있는 이들과 입학 후보생들의 결정적인 차이.

그것은 자유 강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이 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힘들게 자유 강의를 통과한 학생들 입장에서는 추천 입학자들이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그들 모두가 유명한 명문가 출신이라는 점은 더더욱 다른 입학 후보생들의 기분을 탐탁잖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베르가는 팔짱을 끼고 추천 입학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아, 아버지! 역시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오늘은 더 힘을 주신 것 같은데…….’

‘역시 베르가님! 이 얼마나 강한 위압감이란 말인가!’

어릴 때부터 자주 봐 왔던 딸인 아르도 바짝 긴장했다.

다른 두 수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레오만이 태연한 얼굴로 베르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레오를 빤히 바라보던 베르가가 말했다.

“자유 강의를 듣지 않는 너희는 다른 후보생들과 친분이 없을 터. 그런 만큼 자기소개를 해라.”

그 말에 입학 후보생들이 차례차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자기소개를 한 건 안경을 쓴 여우 수인이었다.

“스테아 루알이라고 해요. 주특기는 마법이에요. 잘 부탁해요.”

“레이트 베가라고 한다. 정령술사지.”

곰 수인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아르 튠이야. 모두 최선을 다하자.”

“카일이야. 잘 부탁해.”

카일의 소개에 몇몇 학생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영웅의 이름은 너무도 유명하기 이름에서 몇 글자를 따와서 이름을 짓는 경우는 있어도 이름 자체를 쓰는 경우는 없다.

하물며 카일은 동화 속 인물 정도로 취급되기에 그 이름을 쓰는 자는 더더욱 없다.

앞선 네 명의 추천 입학 후보생의 소개가 끝나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디온에게 향했다.

디온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싸늘하게 웃었다.

“약한 녀석은 발목 잡지 말고 일찌감치 포기해라.”

입학 후보생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몇몇 부교관은 흠칫했고 베르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디온에게는 저런 말을 할 실력이 있지. 하지만 감당할 수 있을까?’

베르가는 강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단순히 강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베르가가 인정하는 첫 번째 조건.

그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이었다.

이 한마디로 디온은 자유 강의를 뚫은 입학 후보생들 전체를 적으로 돌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르는 소꿉친구를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각자 소개가 끝나자 베르가가 고개를 말했다.

“좋다. 궁금한 사항이 있는 후보생 있나?”

그 물음에 손을 드는 이는 없었다.

“그럼 해산해라. 저 복도로 넘어가면 숙소를 배정받을 수 있을 거다.”

베르가의 말에 자유 강의를 통과한 학생들이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모두가 쌀쌀맞게 입학 후보생들을 외면했다.

그걸 보고 입학 후보생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들도 예상을 했기에 기분 나쁜 기색은 내비치지 않았다.

그렇게 입학 후보생들도 대기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아르가 입구에서 레오를 기다릴 심산으로 힐끗 레오 쪽을 볼 때였다.

“카일이여.”

“예.”

“나와 따로 면담을 하지.”

‘면담? 뭐지?’

루메른에서 교수라고 할 수 있는 교관이 따로 부르자 레오는 살짝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가운데 아르는 인상을 썼다.

‘면담이 오래 걸릴까?’

계속 타이밍이 어긋난다고 생각하며 아르는 숙소로 향했다.

‘나중에 숙소에 찾아가지, 뭐.’

어떻게든 레오의 비밀에 대해 알고 싶은 아르였다.

학생들이 떠나고 부교관들도 통제를 위해 대기실을 나섰다.

둘만 남게 되자 베르가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카일이여. 혹시나 해서 묻겠다.”

“예.”

‘역시 내가 루메른이란 사실을 들킨 건가?’

레오가 긴장 할 때였다.

“그대, 혹시 레이나의 아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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