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09.
베르가의 물음에 레오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와 아는 사람인가?’
잠시 고민하던 레오는 이내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어머니를 아십니까?”
“과연! 레이나의 아들이 맞았군!”
베르가가 껄껄 웃었다.
“난 네 어머니의 오랜 친구다. 레이나의 아들이여. 그녀와는 루메른의 학년 대표와 아조니아의 학년 대표로서 실력을 겨루곤 했었지. 네 어머니에게 나! 베르가 튠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겠지?”
“아뇨. 한마디도 안 하셨는데요.”
“그, 그럴 리가 없다! 나와 레이나가 얼마나 절친한 사이였는데!”
“어머니는 학창 시절 이야기를 잘 안 해주셨거든요.”
그 말에 베르가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러고는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찬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 떨기 꽃과도 같았던 네 어머니가 얼마나 강하고 늠름했는지…… 너는 모르는 모양이구나.”
“…….”
베르가의 중얼거림에 레오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베르가라고 한다면 수인족에서 유명한 영웅일 텐데?’
레오 역시 명성이 높은 영웅의 이름은 한 번쯤은 들어봤다.
강함을 추구하는 수인족들 사이에서 거침없는 행보로 명성이 높은 영웅이 바로 베르가였다.
실제 조금 전 모든 입학 후보생들이 베르가를 보며 눈을 빛냈다.
물론 레오는 아니었지만.
‘머리에 문제가 있나?’
레오는 베르가가 심히 걱정되었다.
한 떨기 꽃?
‘어머니랑은 너무 안 어울리잖아?’
삼촌인 지스에게 듣기로 전성기 시절 레이나의 별명이 바로 ‘화염의 마녀’ 였다.
마법사도 아닌 어머니에게 ‘마녀’ 라는 호칭이 붙었다면 그 행보가 어땠을지에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엘런…… 그 어리석은 놈만 아니었어도……!”
베르가의 손등에 불끈 힘줄이 치솟았다.
이를 뿌득- 가는 베르가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옛날이야기는 해주지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으셨어요.”
“……!”
레오의 말을 듣고 베르가의 눈이 흔들렸다.
“후후. 그래! 그래야 레이나 제르딩거 답지! 후하하하하핫!”
그러고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레오는 어머니의 오랜 친우라는 사람이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 과거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 마수 카니발에서 네 힘은 똑똑히 봤다! 마치 학창 시절의 레이나가 떠오를 정도로 강력한 모습이었어! 내일 입학식도 기대하고 있겠다, 레이나의 아들이여!”
“저한테는 카일이라는 이름이 있는데요.”
그 말에 베르가가 훗-! 하고 웃었다.
“이름은 내일 입학식을 통과하게 되면 불러주도록 하마!”
그 말에 레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레이나. 너는 불꽃을 잃었어도 여전히 아름답고 늠름하겠지.’
창밖을 본 베르가가 추억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너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때는 이미 넌 불꽃을 잃고 잠적을 한 상태였다.’
씁쓸한 미소를 짓던 베르가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비록 우리가 가는 길은 달랐지만, 레이나! 걱정 마라! 내가 너의 아들을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겠다!’
과거 짝사랑했던 여성에게 맹세하며 베르가는 굳게 다짐했다.
‘내 딸과 네 아들이 함께라면! 최강의 세대라 불리는 루메른의 지금 1학년들도 넘어서는 게 불가능은 아니겠지! 지켜봐다오! 레이나!’
레오가 루메른의 학년 대표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베르가는 타도 루메른을 외치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
배정받은 숙소에 도착한 레오는 곧바로 숙소에 딸린 샤워실로 들어갔다.
뒤집어쓴 마수의 피와 살점으로 인해 찝찝함을 계속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숙소는 좋네.”
이 콜로세움은 원래 투기장으로 이용되는 만큼 이곳에 참가하는 글라디에이터들에게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곳이었다.
‘수인의 나라에서는 글라디에이터로 활약하면 큰 명성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가?’
수인들이 공인하는 콜로세움은 모두 다섯 개.
그리고 그 콜로세움에 군림하는 챔피언은 일국의 왕 못지않은 권세를 누린다고 알고 있다.
당연히 그 챔피언들 모두가 영웅, 혹은 그에 근접하는 맹자들이었다.
그리고 매년 콜로세움에 참가하는 것이 아조니아의 학과 일정 중 하나라고 했다.
‘아무튼 옛날부터 전투를 좋아하는 종족이라니까.’
솨아아아아-! 끼익-! 끼익-!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기를 끈 레오가 수건을 들었다.
머리를 말리던 레오는 머리에 걸리는 토끼 귀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군.’
지금은 토끼 수인으로 변장하고 있긴 했지만 역시나 이 토끼 귀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럼 아까 있었던 수화 현상에 대해 좀 더 연구해 볼까?’
오러 강화로 인한 후유증을 이겨낸 건 아니지만 수화 현상을 몸으로 느낀다면 후유증을 이겨내고 [용자의 숨결]을 보완할 만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레오가 본격적으로 오러를 일으키려 할 때였다.
“음?”
인기척을 느끼고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와 함께.
달칵!
“검은 토끼! 너의 비밀을 밝히러 왔…… 왜 벗고 있어!”
“벗기는 무슨. 그냥 상의만 탈의하고 있구만.”
“그래도!”
“그리고 여긴 내 방이거든? 어떻게 하고있든 내 자유잖아?”
레오의 말에 눈을 가린 아르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아르를 보며 한숨을 쉰 레오가 상의를 입으며 말했다.
“입었으니까 이제 눈 떠.”
그 말에 아르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이미 해가 어둑어둑 지고 있었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노을 빛에 아르의 푸른색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래서? 내 무슨 비밀을 밝히러 왔다는 거야?”
비밀을 밝히러 왔다고 하니 레오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쪽도 아조니아 입학을 목표로 해왔다면 경쟁 학교인 루메른에 대해 파악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루메른 학년 대표 레오와 아조니아 추천 입학 후보생 카일이 닮았다는 건 관심이 있는 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일 터였다.
‘그리고 아까 전부터 날 주시하고 있었지. 물어볼 것도 있다고 했고.’
레오가 살짝 긴장하는 가운데 아르가 말했다.
“아까 마수 카니발 때 봤어! 너! 마음먹은 대로 수화를 할 수 있지?!”
삿대질하며 묻는 아르를 보며 레오는 살짝 안도했다.
‘아주 부녀가 쌍으로 놀라게 하는군.’
아까 전 베르가를 떠올리며 혀를 찬 레오가 방 한켠에 있는 책상의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응, 맞아.”
“진짜였어?!”
순수하게 인정하니 오히려 아르 쪽이 놀라고 말았다.
“역사상 수화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수인은 아르온님 뿐인데?!”
“네가 물어 봐놓고 네가 확인하듯 되물으면 어쩌잔 거야?”
레오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호, 혹시 보여 줄 수 있어?”
조심스럽게 묻는 아르를 보며 레오가 오러를 활성화시켰다.
첫 번째로 변화를 맞이한 건 눈동자였다.
인간과 똑같던 레오의 동공이 세로로 좁아지더니 사백안이 되었다.
손에는 마치 장갑처럼 폭신폭신한 털이났다.
이빨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수화를 끝낸 레오가 가볍게 손을 쥐락펴락했다.
“세상에…… 진짜였어.”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레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호기심이 동했는지 꼬리를 중간 높이로 들고 살랑살랑 흔들며 레오의 주위를 맴돌았다.
새끼 고양이가 호기심을 풀 듯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레오의 손등을 톡 건드려보았다.
“오오오…….”
감탄하는 아르를 보며 레오가 수화를 풀었다.
“오래 유지할 수 없는 거야?”
“그런 건 아닌데, 피곤하거든.”
정확하게는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후유증 때문에 근육통에 시달려야 했다.
심드렁하게 대답한 레오는 손이 심심한 듯 책상 위의 깃펜을 들고 손 위에 빙빙 돌렸다.
“그래서? 내가 수화가 가능하다는 걸 알아서 뭘 어쩌려고?”
“…….”
“이봐?”
“응?”
레오 손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깃펜을 주시하던 아르가 눈을 깜빡거렸다.
“수화 능력에 대해서 묻는 이유가 뭐야? 가르쳐 달라고?”
“아니.”
레오의 물음에 아르가 딱 잘라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함부로 묻는 건 실례잖아? 너만의 특별한 능력일 수도 있고, 네 가계 능력일 수도 있지. 난 그저 증명하고 싶었을 뿐이야.”
“증명?”
“그래! 아르온님과 같은 능력이 있는 수인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아르는 고양이 눈으로 깃펜을 주시하며 말했다.
“아르온님이 자유자재로 수화가 가능했다는 건 문헌으로만 남아 있는 기록이거든. 그래서 그 사실을 의심하는 괘씸한 자들도 많아.”
레오가 다시 깃펜을 돌리자 아르의 손이 움찔했다.
“하지만 이제 덕분에 자유재로 수화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거야. 물론 네 수화에 관해서는 비밀로 해줄게! 알려지면 귀찮아질 게 뻔하잖아?”
순수하게 호기심을 채우는 게 목적이었던 듯 아르는 비밀을 약속하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흠.”
레오는 생각에 잠겨 휘리릭 깃펜을 돌렸다.
그러자 아르는 자신도 모르게 고양이처럼 손을 뻗었다.
잠깐의 침묵이 오갔다.
레오가 고양이와 놀아주듯 깃펜을 흔들자 아르가 오오! 하며 깃펜을 따라가다가 소리쳤다.
“애완 고양이 취급하지 마!”
휙-!
“잡았다!”
레오가 깃펜을 바닥에 던지자 손바닥으로 내려치다가 악-! 소리치며 깃펜을 집어 던졌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레오가 생각을 정리했다.
‘아르온은 자신의 호흡법을 수인들에게 전수해주고 싶어 했지.’
하지만 호흡법을 온전히 익힌 자는 카일 뿐이었다.
‘배운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하지만 아르온의 기술을 계승해야 할 자가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야.’
아르온의 뒤를 이을 자가 필요했다.
‘앞으로 있을 타르타로스와의 싸움에서 전력이 필요하니까.’
자격이 있는 자라면 레오는 친우들의 기술을 각 종족에게 전수해 줄 생각이었다.
‘그것이 지금 내가 이 시대에 환생한 이유일지도 모르지.’
설령 지금 다시 살아난 자신이 끝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유지를 이을 자를 남기라는 세계의 뜻일지 몰랐다.
레오가 아조니아의 입학식에 참석한 것도 그만한 재목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르는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성격도 나빠 보이지 않고.’
“가르쳐줄까?”
“응?”
순간 이해를 못 한 아르가 두 눈을 깜빡였다.
“수화하는 법. 가르쳐 줘?”
레오의 물음에 아르가 눈을 크게 떴다.
“가, 가르쳐 줘도 돼?”
“안 될 건 없지. 조건은 있지만.”
“조건? 그게 뭐야?”
아르가 귀를 쫑긋거렸다.
“증명하면 돼.”
“무슨 증명?”
빙긋 웃는 레오를 보며 순간 아르는 알 수 없는 전율이 이는 걸 느꼈다.
그건 수인으로서 가진 야성적인 감과 비슷했다.
‘이 녀석.’
쭈뼛쭈뼛- 솜털이 곤두서는 걸 느끼며 아르가 마른침을 삼켰다.
‘내려다보고 있어.’
“네가 정말 영웅이 될만한 그릇인지 아닌지 말이야.”
‘아주 높은 곳에서.’
“기대하고 있을 게. 아르 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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