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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14화 (114/483)

【114】113.

‘당신은 이 세계가 구할 가치가 있다고 보시나요?’

‘그게 무슨 소리지?’

‘그 말 그대로예요.’

엘시가 무표정한 얼굴로 레오를 직시했다.

‘이 세계가 존속할 이유가 있냐는 거예요.’

‘글쎄.’

카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거야 일단 구한 다음 생각해보면 되지 않을까?’

***

오래전 과거 일을 떠올렸다.

카일이 엘시를 처음 만났을 때는 에레보스 토벌대가 사람들이 기억하는 모습을 갖춘 뒤였다.

리시나스가 카일을 불가능할 것 같은 여정에 끌어들인 후.

루나와 아르온, 드웨노까지 차례대로 합류하며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대영웅’일행의 모습이 갖춰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엘시와 조우했다.

대영웅 일행에는 소환사로서의 자질을 가진 멤버가 셋 있었다.

카일, 리시나스, 루나.

그중 루나는 정령술사로서의 재능은 없었다.

카일은 환수와 정령 모두를 다룰 수 있었지만,  리시나스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엘시가 리시나스와 계약을 맺을 것이라 예상했다.

게다가 리시나스는 흑룡인 만큼 그림자 정령인 엘시에게는 최고의 계약자임이 분명했을 터였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엘시가 선택한 건 카일이었다.

‘계약 전에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왜 나를 선택했는지 이유에 관해서는 끝내 듣지 못했지.’

카일과 엘시의 계약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계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령왕, 헬 카이저와의 전투에서 엘시가 소멸했기 때문이다.

“검은 토끼! 가만히 서서 뭐 해?”

아르가 다가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봐야지.’

지금은 엘시와 이야기를 나눌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카일이 엘시를 만나는 건 지금으로부터 1년 뒤의 이야기.

심지어 레오는 카일도 아니다.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엘프 소녀가 죽 그릇을 건네자 레오와 아르가 그걸 받아들었다.

“혹시 그릇 하나만 더 줄래?”

“네?”

“저 아저씨도 뭘 드셔야 할 것 같아서.”

“네!”

그 말에 엘프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릇을 하나 더 건네주었다.

아르가 자신의 몫을 덜자 레오도 아곤의 그릇에 먹을 걸 보탰다.

“아저씨. 아저씨도 드세요!”

아곤에게 다가간 아르가 그릇을 건넸다.

그 말에 아곤이 그릇과 아르를 번갈아 보았다.

“왜 그러세요?”

살짝 당황하는 아르를 보며 아곤이 쓰게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릇을 받아든 아곤이 공터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 레오와 아르도 그 앞에 앉았다.

“너희들, 외부에서 왔군.”

그 말에 아르가 잠시 멈칫했다.

‘정확하게는 미래에서 왔지만.’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할 수 없기에 아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다면 빨리 이 도시를 떠나는 게 좋아.”

“예?”

느닷없는 말에 아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희가 단순한 난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이라면 어딜 가도 대우받겠지.”

레오와 아르의 실력을 꿰뚫어 본 아곤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 도시 말고도 아직 너희의 실력을 대우해줄 곳은 많아.”

재앙의 시대 당시에는 지금 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인재에 목을 매던 시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타르타로스의 공격을 방어해내기 위해서는 강한 전력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럴 순 없어요.”

“어째서지?”

“말했잖아요. 아르온이 여기로 우리를 보냈다고.”

죽을 떠먹으며 말하는 레오를 보며 아르가 귀와 꼬리를 바짝 세웠다.

“그래, 아르온이 너희를 여기로 보냈다고 했지? 녀석은 지금 어디에 있지?”

“아르온이 어디 있는지 당신도 모릅니까?”

“알지 못한다. 그 바보 제자 녀석. 벌써 반년째 무소식이다.”

아곤의 말에 아르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제자?’

아르에게 있어 아곤의 말은 충격이었다.

히어로 레코드에 기록되는 건 영웅으로서의 업적뿐.

그래서 대영웅의 과거 이야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건 거의 없다.

대영웅 모두가 5000년 전의 인물인만큼 이전 행적에 관한 문헌 역시 찾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아곤이 아르온의 스승이라는 말은 아르를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이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알게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저씨! 아르온님의 스승님이셨어요?”

눈을 반짝이며 묻는 아르를 보며 아곤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 못난 놈의 스승이지.”

“아르온님이 얼마나 대단한데요!”

“뭐?”

눈을 반짝이는 아르를 보며 이번에는 아곤이 당황하고 말았다.

“고결하고 위대하며 용감한 용자, 그런 분을 키우셨으면서 못났다니…… 겸손도 지나치면 안 좋아요.”

환하게 웃으며 아르온을 예찬하는 아르를 보며 아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레오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가씨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네?”

“내 제자는 고결하지 않아. 그렇다고 위대하지도 용감하지도 않지.”

아르가 입을 떡 벌렸다.

“물론 나이에 걸맞지 않게 대단한 힘을 가졌지만.”

아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힘에 걸맞지 않은 겁쟁이지. 아르온이 레이사르를 떠난 이유도 싸움이 무서웠기 때문이야.”

냉혹한 현실에 아르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 알겠다! 내가 아는 아르온님과 아저씨의 제자는 다른 사람일 거예요!”

아르가 허둥지둥 품에서 아르온의 사진을 꺼냈다.

“아저씨 제자는 이렇게 생긴 사람 아니죠?”

아곤이 사진을 보며 말했다.

“아니, 내 제자가 확실하군.”

“거짓말.”

“뭐라고?”

아르가 뒷걸음질 쳤다.

“그,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다고! 아르온님이! 그 아르온님이 겁쟁일 리가 없다구우우우!”

울부짖으며 우다다다! 달려 가버리는 아르를 보며 아곤은 물었다.

“네 친구가 왜 저러지?”

“아르온에 대한 환상을 가진 애거든요.”

‘하긴. 충격받을 만도 한가?’

아르온은 수천 년 동안 수인 종족의 자랑이자 자존심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수인들에게 있어 아르온은 위대한 용자였으며 용기의 상징이었다.

목숨이 걸고 싸움에 임할 때 아르온에게 기도를 올리는 전통이 있을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

그런 인물이 실제 역사에서는 겁쟁이였다고 하니 한참 영웅을 꿈꾸고 있는 아르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영웅의 세계는 실제 역사 그 자체.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기에 현실 부정을 하며 도망친 것이다.

“아르온에 환상을 가졌다라. 특이하군.”

“구원받은 겁니다. 당신의 제자에게.”

“뭐라고?”

“저 애뿐만 아니에요.”

레오는 죽그릇을 내려두며 아곤을 빤히 바라보았다.

“물론 아르온은 겁쟁이예요. 그건 나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싸움 앞에서 벌벌 떨던 친구를 떠올렸다.

“하지만 당신이 모르는 곳에서 많은 사람을 구했습니다. 나 역시 그가 구해준 사람이죠. 그러니 제자를 자랑스럽게 여기셔도 됩니다.”

비록 아곤의 입장에서는 먼 훗날의 이야기지만.

아르온은 세계를 구했다.

“그 애가…… 지난 반년 동안 그렇게 성장했단 말인가?”

아곤이 놀라워했다.

그의 얼굴에 뿌듯함이 떠올랐다.

안 좋은 이야기를 하긴 했어도 아곤에게 있어 아르온은 아들과도 같았다.

그런 아들이 칭찬을 들으니 그로서는 기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저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으니 데려올게요.”

레오가 아르를 데려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터에서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아르가 아르온의 사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르온님이 겁쟁이였다니, 믿을 수 없어. 뭔가 잘못된 거야.”

“아르온이 겁쟁이면 안 되냐?”

“흐악?”

마치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펄쩍 뛰었다가 내려온 아르가 소리쳤다.

“까, 깜짝 놀랐잖아!”

“그렇게 놀랄 것까지야.”

“검은 토끼! 너는 아르온님이 겁쟁이였다는 데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

“전혀. 그럴 수도 있지.”

수인에게 있어 겁쟁이라는 말은 욕과 같다.

하물며 신격화된 용자에게 겁쟁이라고 하는 건 수인 전체를 모독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역사가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상식과 다른 이야기를 들으면 화를 내기 마련.

하지만 아르의 반응은 이상했다.

어딘지 모르게 깊게 실망한 얼굴, 마치 갈 길을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만만하던 아르는 어딘지 모르게 위축돼 보였다.

“아르온이 겁쟁이였다는 사실이 그렇게 충격받을 일이야?”

“아르온님의 이야기는 나에게 용기를 줬으니까.”

꼬리를 축 늘어트린 채로 아르는 아르온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릴 때 엄청나게 소심한 겁쟁이였어.”

“전혀 안 어울리는데.”

“감성에 젖어 있는데 재 뿌리지마!”

째릿- 레오를 한 번 노려본 아르는 다시 회상에 잠겼다.

“나는 어릴 때 엄청나게 소심한 겁쟁이였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냐.’

다시 감정선을 잡는 아르를 보며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항상 강조하셨지.”

‘넌 최고가 되어야 한다! 나의 딸 아르여!’

“매일매일 끔찍할 정도로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지.”

짧게 만났던 엄청난 근육의 소유자였던 고양이 수인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 아저씨는 엄청 엄했을 것 같네.”

“감성에 젖는데 재 뿌리지 말라니까!”

꼬리와 귀의 털을 곤두세우던 아르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항상 포기하고 싶었어.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말해주셨어. 내 이름은 용자, 아르온님의 이름에서 따온 거라고.”

가장 위대한 영웅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

“그 말을 들으니 왜인지 모르게 용기가 나더라고. 그래서 아르온님처럼 되고자 노력했어.”

용자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고결하고 위대하고 용감한…… 어느 상황에서나 절대 위축되지 않는 당당한 아르온님처럼 되자고.”

어린 소녀가 아는 아르온의 모습은 동화 속에서 보았던 모습이 전부였다.

옛날 일을 떠올린 아르의 꼬리가 다시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런데 그런 아르온님이 겁쟁이였다니…….”

다시 꼬리를 축 늘어트리는 아르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간단하네.”

“뭐가 간단해! 사춘기 소녀에게는 복잡한 문제란 말이야!”

캬아! 소리치는 아르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그 겁쟁이는 세계를 구했어.”

“……!”

“동화책과는 다를 수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이유는 아니라고 보는데?”

레오는 자신이 보아온 아르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겁쟁이 녀석은 모두가 절망할 때 가장 용기를 냈었어. 그래서 신들이 용자라고 부르는 거야.”

레오가 웃었다.

“오히려 더 존경해야 되지 않을까?”

아르가 눈을 크게 뜨고 아르온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늠름한 모습은 분명 후대의 사람들에게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르온이 용자라는 사실은, 위업을 이루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아르의 귀가 쫑긋거리고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 그 말을 들으니까 아르온님이 더 좋아진 것 같아!”

홍조 띤 얼굴로 소리치는 아르를 보며 레오가 혀를 찼다.

“완전 팔랑귀네.”

“소녀의 감성에 재를 뿌리지 말라니까!”

악! 소리치는 아르를 뒤로하고 레오가 공터로 돌아왔다.

공터에는 아이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레오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러고 보니 이 애들 모두가 역병으로 죽는 건가?’

레오가 기억하는 이 공터는 거대한 묘지였다.

아곤이 돌보는 이 아이들은 모두 카일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역병으로 목숨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역사를 아는 레오의 입장에서는 이곳을 보는 게 괴로웠다.

씁쓸한 표정을 짓던 레오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잠깐. 역병?’

시간대로 본다면 카일과 리시나스, 루나가 레이사르에 도착하는 건 한 달 뒤.

‘우리가 레이사르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창천의 수호자를 제외하고 모두 역병으로 죽었다고 했어.’

아무리 강한 역병이라도 이 많은 아이가 한 달 안에 죽는 건 이상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오는 과거 일이 떠올랐다.

‘창천의 수호자는 더 설득하지 않는 거야?’

‘응. 그는 이미 의지가 꺾였어.’

‘의지는 다시 살릴 수 있는 거잖아. 저만한 인물을 두고 가는 건 아쉬운데.’

‘루나. 네 말대로 꺾인 의지는 다시 살릴 수 있어. 하지만…….’

리시나스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증오를 품게 된 사람은 세상을 구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을 찾아보자.’

그 이후로 아르온을 만나게 되었고 아곤은 토벌대의 앞길을 축복해 주었다.

그래서 그때 그 말을 그대로 넘겨 버렸다.

‘설마, 뭔가 있는 건가?’

레오가 굳은 표정을 지을 때였다.

“이것 참. 여전히 지저분한 곳이군요.”

어딘지 모르게 오만한 소리가 들렸다.

레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구겼다.

레오 역시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먼 훗날 토벌대가 타르타로스와의 전투에 앞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거절했던 남자.

하지만 토벌대가 승승장구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합류해 공적을 탐하며 영웅 행세를 했던 쓰레기.

레이사르의 영주,

‘레바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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